프랜차이즈 갓 1126화
262장 뉴 밀레니엄 삼한시대 (1)
하수영이 개성을 직접 방문하겠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위험합니다."
유희준 차장이 사색이 돼서 적극적으로 하수영을 말렸다.
하지만 하수영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위험하겠죠."
"그렇습니다. 그런 위험을 의원님께서 굳이 감수할 필요는……."
"어쩌겠습니까. 윤 차수도 그걸 감수하고 농장을 유치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예?"
순간적으로 유희준 차장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얼이 빠졌다.
다른 인물들도 비슷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니까 의원님이 개성을 방문하면…….'
'위험해지는 게 의원님이 아니라…….'
'윤태호 차수?'
'…….'
윤태호 차수가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런 인물의 본거지에 하영이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것은 VVIP를 인질로 갖다 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대통령이나 국가원수는 그 개인을 포기하고 통치권을 승계하면 그만이지만, 하수영은 대체가 불가능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윤차수 세력이 김씨 왕조 세력을 막아줄 수 있는 방패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설마 제 손으로 그 방패를 부서뜨리기나 할까요?"
"……저어, 의원님. 저희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제 신분을 감추고 조용히 암행시찰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제 눈으로 직접 봐두는 게, 앞으로 수영개성농장의 경영전략을 짜는 데 낫겠죠."
유희준 차장을 포함한 이들은 속으로 신음했다.
하수영은 자신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다.
"제가 뭐 윤 차수 목을 부러뜨리길하겠습니까, 측근들 사지를 절단을 하겠습니까? 조용히 암행시찰만 하고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아니, 저희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라니까요?
다들 이 말이 굴뚝 안 연기처럼 맴돌았으나, 어떤 토끼도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유희준 차장 파트의 힘으로는 하수영을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 청와대와 미 대사관이 발칵뒤집어져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만에 하나 윤태호 차수가 딴마음을 먹고 하수영을 인질로 붙잡아버리면, 전 세계 경제가 대공황에 빠진다.
식량은 물론이요,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시장도 몰락할 것이고, 금융까지 무너질 수 있다.
"의원님이 윤태호 차수에게 인질로 잡히기라도 하는 순간 세계3차대전 개시입니다. 가실 거면 적어도 1개 정예사단을 경호 병력으로 거느리고 가셔야 합니다."
경호원 일이백 명 정도를 데리고 가봤자, 납치 결심을 굳힌 '군벌'의 눈에는 귀여운 보디가드들일 뿐이다.
"의원님은 다른 국가원수와 달리 납치로 인해 얻는 이득이 불이익보다 압도적으로 큽니다. 통상의 국빈경호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북한입니다! 그것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흥군벌이라고요!"
치열한 내전이 한창 중인 소말리아반군기지에 미 대통령이 조용히 방문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물며 윤태호 군벌은 소말리아 반군기지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저는 윤차수 군벌을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살짝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아무튼 괜찮습니다. 이래 봬도 무수한 사선을 헤치고 살아남았습니다. 제 한 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그렇다면 미 특수부대라도 경호로 붙여드릴 테니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짐이 덕지덕지 붙으면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어요. 누가 수영장에 옷 입고 들어가나요? 수영복 입고 들어가죠."
"의원님!"
돌아가면서 설득을 했지만, 하수영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결국에는 미 대통령까지 영상통화로 나서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수영은 짧게 대답했다.
"CIA에 한 번 물어보세요. 저의 암행시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습니다.
잠시 물러난 미 대통령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라며 물러났다.
미 대통령이 너무 쉽게 물러나자 청와대 인사들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뭐야? 미 대통령이 왜 갑자기?'
'CIA가 뭘 알고 있는 건가? 혹시 하수영 의원님과 윤태호 차수 사이에 사전에 어떤 깊은 교감이 있었나?'
교감 따위는 개뿔.
CIA는 하수영이 그 어떤 신원 비공개 특수용사보다 더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고 있음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따름이다.
결국 하수영의 결정을 바꾸지 못했고, 청와대는 이제 어떡하면 그의 신원을 지킬 수 있을지를 놓고 고심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윤차수 군벌에 들키면 또 어떻습니까? 들키면 들키는 대로 이 중에서 첩자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실적 올리기 좋겠네요."
"……."
웃으며 하는 말에 다들 등에 긴장감이 쫙 흘러내렸다.
농담을 가장한 경고이자, 어디 한번 들어와 보라는 노골적인 덫으로 들렸다.
***
정부는 150인의 특별대북사절단을 꾸렸다.
기왕이면 사람이 많아야 하수영을 감추기 더 좋을 테니까.
심지어 그중 80인은 위장 신분을 가진 특수군인과 요원 등의 경호원이었다.
유사시 무조건 하수영만 챙겨서 바로 남쪽으로 튀는 임무를 맡았으며, 하수영에게도 그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하수영은 기자 신분으로 사절단에 참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바꿨기에, 80인의 비밀경호원 외의 다른 사절단원은 하수영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울릉군민일보? 이름만 보면 섬지방 영세 신문사 같은데?"
"너무 대형 언론만 구성하면 형평성이 좀 그러니까 정부에서 영세 신문사 기자들도 몇 명씩 끼워 넣었더라고."
"울릉군민일보가 규모는 작아도 영세는 아니지. 거기 후원자가 수영농장인데."
"아, 그러네. 울릉도는 이제 수영농장 본거지 텃밭이나 마찬가지지."
"괜히 신경 거슬리지 않게 조심하자고."
다른 베테랑 기자들은 젊은 신참기자로 변장한 하수영을 소 닭 보듯이 대하기로 했다.
수십 대가 넘어가는 버스와 경호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위 장성이 부하들을 데리고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다.
윤태호 차수는 아니고, 그의 오른팔로 알려진 최섭곡 대장이었다.
최섭곡 대장은 사절단 총책임자인 국무총리와 굳은 악수를 나눴다.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북한 억양이 묻어나지만, 최대한 서울표준어에 가까운 어휘를 구사했다.
"저희 사절단은 선발대입니다. 30분 안으로 후발대가 곧 도착할 겁니다."
"그들도 사절단 일원입니까?"
"사절단은 아닙니다. 국군 공병사단과 수영농장 개간팀입니다. 아, 개간팀에서 귀 정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싣고 온다고 들었습니다."
"공병사단? 수영농장 개간팀?"
최섭곡 대장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럼 개성농장 건설을 개시하는 겁니까?"
"네, 오늘 곧바로 건설 작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 이렇게나 빨리…… 차수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
환영 인사를 나누는 도중, 또다시 굉음과 함께 후발대가 도착했다.
자재를 가득 실은 공병차량과 공병 수송차량들이 줄을 지어 도착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컨테이너를 줄줄이 매단 거대한 트레일러 차량 부대였다.
"저 트레일러 컨테이너에 무엇이 실려 있을지 매우 기대가 되는군요."
"하하, 수영농장에서 준비한 컨테이너들이니 아마 만족스러운 선물이 들어 있지 않을까요?"
트레일러 부대는 끝없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던 최섭곡 대장도, 국무총리도, 그리고 사절단 일행도 나중에는 기가 질린 표정으로 변했다.
"아직도……?"
"도대체 컨테이너 몇 개를 보낸 거지?"
직업 정신을 발휘하는 기자들이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그때, 안드로이드 프리덤 1기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최섭곡 대장님. 저는 수영개성농장의 총관리를 담당하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프리덤입니다. 그냥 프리덤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여, 영광이올시다."
최섭곡 대장은 저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존댓말로 대답해 버렸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의 동작과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진짜 사람이 그 안에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농장 건설을 시작해도 될까요?」
"그, 그렇게 하시구려."
「감사합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의 두 눈에서 파란 빛이 번쩍거렸다.
그러자 수십 대의 컨테이너가 일제히 열리며, 안에 실려 있던 로봇들이 일제히 나오기 시작했다.
농사 로봇 군단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광경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4대의 다리와 10개가 넘는 팔을 가진 중대형 로봇이 있었고.
멀티 프로펠러로 비행하는, 초소형부터 중대형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드론들이 있었으며, 4륜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거대한 크레인암 로봇도 있었고.
스스로 움직이는 트랙터들이 초대 형 쟁기 등 각종 농장비를 실은 트레일러를 끌고 있었다.
그 광경은 그 어떤 군 사열식보다 더 절도 있고, 웅장하며, 심금을 울리는 마력이 있었다.
구경을 나온 비쩍 마른 북한 주민들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들도 저 로봇들이 순전히 농사만을 위해 지어진 금속 일꾼이라는 이야기를 주입 당하듯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농사 로봇들이 미리 정해둔, 척박하기 그지없는 농사 예정지로 향했다.
돌과 잡초만이 가득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길이 2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쟁기가 로봇 트랙터 뒤에 채워졌다.
일부 로봇들은 공병사단이 벽을 세워야 할 곳에 선을 그었고, 중장비로봇들은 물을 끌어올 수로를 파기 시작했다.
나름 쥐어짜낸 살림에 환영식을 준비했던 최섭곡 대장은 만찬장으로 안내할 생각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황량한 벌판이 순식간에 비옥한 농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사람의 수고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로봇들은 모든 것을 알아서 착착 움직이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최 대장에게 설명했다.
「우선적으로는 벼와 콩을 재배할 겁니다.」
"오, 그럼 쌀과 콩은 주민들이 주식으로 활용할 수 있겠군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콩은 주식이 아니라 반찬입니다.」
"……."
「그리고 대두 위주로 키울 겁니다. 주로 가축 사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닭과 돼지를 키울 용도입니다. 볏짚은 소 사료로 활용합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최 대장은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깍듯하게 대하고 있었다.
저 안드로이드 개체를 통해 하수영이 자신을 보고 들을 것이다.
영혼이 없는 로봇이지만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 동력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전기 충전식입니다. 수소발전기를 가져왔으니,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겁니다.」
"수소발전기? 호, 혹시 우리도 전기를 좀 끌어서 쓸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윤 차수 군벌은 모든 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기초 생필품은 물론이고 기름, 전기, 식량, 건설자재 등 풍족한 게 전혀 없었다.
「그것은 사절단 책임자인 국무총리님과 이야기하시면 될 겁니다. 저희는 농장, 목장, 양식장만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