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54화
268장 너의 미국은 Your America (3)
한 번은 전생 중에서 무기과학자 인생을 산 적이 있었다.
투자를 받아서 한국에 방산업체를 차리고, 전 세계가 놀랄 만한 무기들을 차근차근 개발해서 공개하며 단단한 입지를 쌓았다.
정부와도 긴밀히 소통하고, 다른 재벌과도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정치인들은 적당히 떡값을 쥐여주고 적당히 어르고 뺨치고 달래면서, 한국에서의 정치적 영향력도 구축했다.
미국의 모든 방산업체들을 파산시킬 만한 차세대 무기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전투기, 공격위성, 공중항공모함, 공중수송선, 공중구축함, 공중전차…….
핵이 아니면서 핵보다 무서운 반물질 폭탄을 만들었을 땐, 드디어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가며 어떻게든 협상을 시도하던 태도를 버리고, 적대적인 무력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무너뜨리고 그의 방산업체를 나눠서 갖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에 핵이 터졌고,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그의 가족도 모두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기과학자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폭군의 황관을 꺼내 썼다.
중국을 멸망시키고, 미국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10년에 걸쳐 차근차근 전쟁을 진행하며 짓밟았다.
세상은 그 10년의 기간을 세계 제 3차대전이라고 불렀다.
그 과정 중에서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그들에 가세한 자잘한 나라들도 철저히 징벌을 받았다.
일본은 최후의 휴대폰 충전 케이블하나까지 모두 파괴된 채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일본은 아무런 인공전파가 없는 청정구역이 되었으며, 해상이 봉쇄되어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갈라 파고스가 되었다.
더 이상 세상의 소식을 듣지도, 세상에 소식을 전달하지도, 물품이나 사람이 오갈 수도 없는, 국제사회의 맹인 신세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무너뜨리고, 워싱턴에 점령기를 꽂았다.
잿더미가 된 백악관 앞에는 굴욕과 후회, 분노로 점철된 미국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미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한제국의 황실 총관 김범석이 미국 전역에 공포한 선언이 큰 혼란에 빠뜨렸다.
"신한제국의 절대유일군주 지성웅폐하께서 북미 대륙을 정벌하고 점령하여 직할령으로 삼으시니, 이로써 구 미합중국의 모든 것은 신한제국 황실의 소유물이 되었도다."
"아아, 은총이고 또 은총이로다! 신한제국 지성웅 폐하 만세! 만세!"
"구 미합중국의 헌법과 모든 법률은 폐기하며, 이 자리에서 새로운 질서를 공포한다."
"구 미합중국의 새로운 이름은 신한제국 북미령으로 정한다."
"신한제국 북미령은 지성웅 폐하를 살아 있는 신으로 모시는 태왕신교를 국교로 삼는다."
"북미령 주민들은 정치와 종교, 거주의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북미령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북미령의 통치는 지성웅 폐하께서 관리하시되, 통치대리인을 임명하여 파견하는……."
충격, 또 충격이었다.
무조건 항복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폭거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예 국가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박탈하고, 전제군주국가로 만들어 버리다니.
시민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자유 자체를 영구적으로 박탈하겠다니.
아무리 먼저 핵공격을 했고, 그래서 전쟁 끝에 완전히 패배했다지만, 이건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졌지만, 그들은 농기구와 야구배트, 쇠파이프 등을 들고일어나서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신한제국의 황제가 물었다.
"이것이 너희가 말하는 무조건 항복이냐?"
미 대통령은 입술을 깨물며 피를 흘렸다.
핵에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그의 광기는 차분해서 오히려 두려울 정도였다.
절대 흥분하지 않고, 정확하게 모든 것을 측정하여 고통을 주입한다.
이것을 거부했다가는 미국의 모든 것이 불탄다.
일본처럼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가축의 삶을 사는 것이 어찌 자유라 할 수 있겠는가.
시민들은 가축으로 길러지는 것보다는 자유인으로서의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 의사의 합치를, 국민을 대표하는 자신이 뒤집을 수는 없었다.
"전쟁에는 그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겠으나, 죽음을 지불할 수는 없소.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하여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이오."
"죽음을 내린 적 없다. 제국에 편입시키고 직할령으로 삼을 뿐이다."
"그게 바로 죽음이나 마찬가지요. 자유의 나라 미국은 인간성을 박탈 당한, 죽음과 같은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요."
"맨틀 아래로 가라앉는다 해도?"
"……그렇다 해도, 자유인으로서 죽을 것이오."
미 대통령은 아주 잠깐이나마 멈칫했지만, 설마 국가 전체를 학살하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심해봐야 일본처럼 모든 문명을 박탈당하고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수준 이리라.
그렇다 해도 미국은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자유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는 한은 대통령은 그렇게 믿었다.
"너희의 선택을 수용하겠다."
신한제국의 황실공중모함이 떠났고, 미국인들은 압제에 굴복하지 않았다며 모두가 환호했다.
그리고 미 대륙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지진이다! 한국 황제가 공격하고 있어!"
"숨어!"
처음에는 반물질 폭탄의 폭발로 땅이 심하게 흔들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방의 해안가에서 들어오는 영상을 본 대통령은 온몸이 무너지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높이의 바닷물이 해안을 삼켜 버리며 끝없이 내륙을 향해 쳐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쓰나미?
"아닙니다! 땅이, 미국 땅이 가라 앉고 있습니다!"
"뭐라고! 땅이 가라앉는다고!"
그제야 대통령은 조금 전 황제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맨틀 아래로 가라앉는다 해도?
-……그렇다 해도, 자유인으로서 죽을 것이오.
그렇게 미국은 대륙 송두리째 사라졌다.
서울에 대한 기습 선제 합동핵공격의 부채를 10년 동안 상환하지 않고, 마지막에는 파산절차까지 거부 한 대가였다.
***
"그랬던 미국인데."
「이건 또 처음 듣는 전생 이야기 로군요.」
"항상 다 떠올리는 건 아니니까. 나도 얼마 전에 대통령이 가족 되어 달라고 한 말에 생각났다."
「저도 미국이 이 제안을 승낙할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부드럽게 나가니까 미국도 이렇게 신사적으로 나오는 건가? 옛날에 내가 너무 패도적이긴 했어. 웬만해서는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들고, 그땐 너무 가슴이 뜨거웠지."
미국은 하수영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아무래도 미국이 움직이면, 너무 많은 고위정치인들이 한국으로 이동하게 되고, 세상의 의심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하수영도 흔쾌히 승낙한 것이고.
"자자. 과연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날 미국으로 대하겠다고 할까? 기대 되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봤지만,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발동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무조건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거지."
***
하수영은 대통령을 면담했다.
컨벤션 홀에는 상원의장(부통령 겸직)과 하원의장, 그리고 다수의 상하원의원들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해서 하수영의 눈치를 티 나지 않게 살피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진지하고 대승적인 마음으로 이 딜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했다.
'흡족하네. 여기 대통령 일 잘하네.'
한 명이라도 반발심을 품은 이가 있었다면, 하수영은 이 거래의 신뢰성을 의심했을 것이다.
마치 중고 시세 100만 원짜리 물건을 90만 원으로 당근마켓에 올렸는데, 50으로 네고가 되냐고 문의가 들어온 상황과도 같다.
그냥 주저 없이 돌아서야 한다. 거래 해봤자 나중에 결국 탈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거래 과정이 매끄럽다.
"우리 미합중국은 국가의 이름과 자격으로 하수영 님과 비공개 조약을 맺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미 대통령이 조약초안을 내밀었다.
1. 하수영의 모든 언행은 미합중국의 언행으로 간주하여 미합중국이 무제한 연대책임을 진다.
2. 책임의 종류와 범위에는 그 어떤 제한을 두지 않는다.
3. 하수영은 언제든지 이 조약을 파기할 수 있다.
"와, 이걸 이렇게 3줄 요약이 된다고?"
아무리 3줄 요약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나를 미국으로 대할 것'이라는 요구를 이렇게 깔끔한 세 문장으로 정리하다니.
"심플 이즈 베스트,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조항 속에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하수영이 어느 나라에 선전포고를 하면, 그것은 미국이 한 것으로 된다.
하수영이 미국에 무슨무슨 법안을 요구하면, 그것은 미국이 요구한 것으로 된다.
이 경우 반드시 의회 통과가 된다고 볼 순 없으나, 그것은 대통령이든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든 마찬가지이므로 평등, 하수영이 핵탄두나 항모 등 전략자 원을 요구해도 미국이 한 것이기에 무제한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마음에 듭니다. 아주 깔끔하게 잘정리했어요."
"그래도 해석을 악의적으로 하면 악용의 여지는 있겠지만……."
"괜찮아요. 그럼 그때부터 가족이 아니게 되는 거죠."
"……."
"자, 서명합시다."
하수영은 초안을 수정할 필요도 없이 서명했고, 대통령과 상원의장, 하원의장, 그리고 다른 의원들도 차례 차례 서명했다.
서명 숫자만 해도 엄청났다.
상하원의원 전부가 모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명단만 해도 양원 비준은 이미 통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이 정치인들을 그 짧은 시간 내에 설득한 것이으로 놀라웠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설득하셨습니까?
"프리덤, 반도체, 반수성 금속처리, 입자집합명령 장치, 메탄 포집 장치, 핵융합, 청담스코프, 레일건의 가치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입자집합명령 장치의 활용도를 중점으로 설명했더니, 다들 납득했습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가 훨씬 더 싸고 유리한 조건으로 맺는 거래입니다. 이걸 거절한다면 국가운영의 자격이 없는 겁니다."
"그래도 결정적으로…… 암을 정복했다는 것이 가장 주효한 트리거가 되었습니다."
일부 의원들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들 역시 암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을 테니, 입집명 암 치료기가 보인 퍼포먼스에 경악했을 것이다.
"좋습니다. 조약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이건 비공개 조약으로 가시죠."
"배려 감사합니다."
"아, 근데 제가 나중에 맘 바뀌어서 공개해야 한다면 그래야 되는 거 아시죠?"
"무, 물론입니다……."
'본인'이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으므로,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겁먹지 마세요. 제가 이걸 공개한다면, '백악관'이 공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겁니다."
그 말에 조금 당황했던 의원들이 겨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리며 미국을 운영하는 거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이제 가족이 된 걸 마음껏 축하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