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65화
271 장 의원님은 못 말려 (1)
"김 상무! 네놈이! 네놈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으어어어!"
늙은 회장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골프채를 휘둘렀다.
김 상무는 가까스로 몸을 뒤로 날려 골프채를 피했고, 늙은 회장은 충혈된 눈으로 노려봤다.
"이거 봐라? 피해? 네놈이? 감히?"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제발요!"
"이놈아! 오늘 네놈은 죽는 거다!
이리 딱 대! 임자들, 뭐해? 저놈 어서 붙들지 않고!"
"……."
"……."
임원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바로 달려들어서 사지를 붙잡아 회장 앞에 대령했을 것이다.
회장은 그저 월급을 주는 고용주를 떠나서, 자신과 가족의 생사를 결정 할 수 있는, 이 나라를 주름잡는 재벌이었으니까.
퇴사를 하더라도 눈 밖에 나면 사주를 받은 검찰의 괴롭힘에 평생 시달리게 된다. 자살할 때까지.
그렇게 써먹기 위해서 재벌들이 검찰에 돈을 먹이는 것이니까.
"안 잡아? 임자들, 지금 내 말 무시해?"
늙은 회장은 아무도 자신을 위해서 나서지 않자 뒷목을 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할 임원들이 말을 전혀 안듣는다.
'어차피 망할 기업이다.'
'우리 그룹에서 통신, 인터넷 사업을 빼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유선통신? 어차피 머지않아 사장 될 텐데.'
'같이 죽을 순 없지.'
곧 망할 재벌 기업 회장을 위해서 폭력행위에 가담할 수는 없다.
김 상무가 고소라도 하면 감당 못한다. KST그룹은 지켜줄 힘을 곧 상실한다.
"이놈들이! 이놈들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가정도 건사하게 해줬더니! 이놈들이! 이놈들이이이이! 끄……억……!"
"회, 회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회장님!"
늙은 회장은 뒷목을 잡고 넘어졌고, 임원들이 놀라서 달려들며 부축했다.
"119! 119에 연락해! 어서!"
***
SC그룹 역시 분위기는 초상집이었다.
본래는 통신, 정유, 화학, 반도체로 당당히 재계 2위를 차지하고 있던 대기업.
그러나 프라임오일이 들어오면서 정유에서 힘없이 밀려났고, 서진파운드리 때문에 반도체 사업도 피눈물을 머금고 손을 놓았다.
"이제는 무선통신마저 건드리는군."
"……."
회장의 한탄에 임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KST 회장은 어떻다고?"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으면, 그 양반 성격에 그 정도로 그친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정유와 이동통신은 매달 안정적으로 수천억 원씩 현금이 남는 캐시카우다.
하지만 이제는 옛날얘기로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자네들 말은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통신사업을 폐업하는 게 낫다는 거지?"
"예, 회장님."
"폐업이 하루 늦어질수록 천문학적인 유지비만 지출될 뿐입니다.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매각은 힘들겠나?"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화산텔레콤에 넌지시 운을 떠봤는데, 자기들은 우리 통신사업 인프라가 전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IP 컨텐츠는 거래 가치가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 자체적으로 생산한 건 얼마 되지 아서 화산텔레콤이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들을수록 첩첩산중이다.
SC회장은 통신 가입자 숫자를 물끄러미 살폈다.
수천만 명이 넘어가던 통신 가입자는 겨우 100만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그마저도 전혀 돈이 안 되는 3G망 사용자들이다.
어떻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고 2주도 채 안 돼서 그 많은 가입자들이 전부 넘어갔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화산텔레콤, 한 번 가져와 보게."
"예, 회장님. 여기 있습니다."
임원 한 명이 얼른 나서서 프리폰을 공손히 올렸다.
회장은 앱을 이용해서 인터넷 속도를 체크했다.
약 30초가량 걸린 체크 작업이 끝나고, 평균 인터넷 속도가 10.2GB/S를 나타냈다.
회장은 수치를 보고 신음했다.
'이건 말이 안 돼.'
"놈들이 무슨 주파수대역을 쓴다는 말은 없었나?"
"네, 그런 건 없었습니다."
"과기부에서는 뭐라고 하고?"
"확인해 줄 수 없는 영역이라고. 통신사 낙찰 주파수대역을 쓰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만 말을 했습니다."
주파수는 공공재다.
때문에 이동통신사들은 원하는 대역폭에 대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내고 국가로부터 낙찰 받아서 사용한다.
하지만 놈들은 무슨 주파수를 사용 하는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 역시 한편이라도 된 건지, 아니면 협박이라도 당하는 건지 공개를 하지 않는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임원들 역시 머리가 폭주할 지경이었다.
'대체 어떤 원리로 이런 게 가능한 거지?'
무슨 주파수를 사용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원리로 구동되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덤폰을 낱낱이 분해해서 조사했지만, 정체불명의 데이터 송수신 칩만 발견했을 뿐이다.
심지어 통상적인 내장 안테나의 형태를 띠고 있지도 않은, 눈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반도체 부품일 뿐이었다.
그래서 찾아내는 데도 애를 먹었고, 분해를 해도 원리를 알 수가 없었다.
'폐업만이 살길이다.'
통신사업 관련 주가는 바닥을 쳤고, 끝도 없이 하락하고 있었다.
이미 회생은 틀렸다.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접는 것만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백 년, 이백 년은 이어질 줄 알았던 통신사업이 불과 2주 만에 죽음을 앞두게 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회장님, 정부는 우리를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아무리 정부가 친재벌 기조를 띠어 왔다지만, 이런 천재지변 앞에서는 자기들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으리라.
정유와 반도체에 이어 통신마저 정리하면, SC그룹은 이제 10위 밖으로 힘없이 밀려날 것이다.
더 이상 10대 재벌 취급은 받을 수 없다.
눈을 감고 있던 회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화산텔레콤과 교섭해 봐. 우리 SC 통신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지. 가격은 최대한 맞춰주겠다고."
"회장님!"
"이대로 폐업하면 그 많은 직원들은? 모두 다 내 책임이 되고 만다. 그룹 이미지가 무너지는 거야. 그것만큼은 막아야 해."
회장의 말은 즉, 대량실업에 대한 리스크를 수영그룹에 넘긴다는 뜻이었다.
"통신을 폐업하면 적어도 8,000명 이상의 실업자가 나오겠지. 그 책임만큼은 우리가 뒤집어쓸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상대가 인수에 응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 언론 플레이를 해야지. 덤핑전략으로 시장을 교란해서 수천 명의 실업자가 나온 거라고, 책임은 분산될 거 아닌가."
몇몇 임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시장 경쟁에서 실패한 것을 승리자 탓으로 떠넘기는 추악 패배자 취급을 받을 거 같은데…….'
"기자들에게도 연락 돌려. 우리만 8,000명이지, 다른 이통사까지 다 합치면 대충 2만 명이야. 가족들까지 합치면 4만 명 이상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거라고."
"……."
"뭣들 하나? 얼른 나가서 뛰어다니지 않고."
"예, 회장님."
자리에서 일어나는 임원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
로한은 국회 의원사무실에서 과기부 차관을 만나고 있었다.
차관의 안색은 핼쑥했다. 컨디션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로한 의원님, 화산텔레콤 때문에 지금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온 나라가 아니라 통신사들이 난리인 거겠죠. 그것도 1위와 2위만. 3위는 순순히 사업 정리를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3위 업체의 통신시장 점유율이 워낙 낮으니……."
"기업이 정당한 시장 경쟁에서 져서 사업을 접는 겁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한 일 아닙니까? 화산텔레콤이 언론을 선동한 것도 아니고, 검찰수사를 불법적으로 동원한 것도 아닙니다."
"그 많은 실업자들은 그럼 대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거야 그 회사들이 책임을 져야죠. 설마 화산텔레콤이나 수영그룹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까?"
"……."
"화산 호크스가 패배를 반복해서 만년 꼴찌를 한다고, 상대팀에서 화산 팬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거와 이거는 전혀 맥락이 다른……."
"분명히 합시다."
로한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딱딱한 표정으로 쐐기를 박았다.
"실업자 문제는 정당한 시장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의 문제입니다. 그 책임을 승리자에게 떠넘겨서는 안됩니다."
차마 '로한 의원님께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면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보급한 제 책임이라는 겁니까?"
"그, 그것은 아니지만……."
"난 부당히 높은 통신 요금에 고통 받는 수천만 소비자들을 돕고 싶어서 더 좋은 무선통신기술을 저렴한 가격에 보급했을 뿐입니다. 이런 내가 잘못을 했다는 겁니까?"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숨이 막힐것 같다.
차관은 머뭇거리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냈다.
"그럼 의원님은 국회의원으로서 그 많은 실업자들을 외면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실업수당, 재취직 지원, 훈련교육 지원, 생계지원 등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
"상황은 똑바로 보자는 겁니다. 자동차가 마부들을 실직자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자동차회사 잘못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니면 이제라도 화산텔레콤에 이야기해서 요금제를 다른 통신사들과 담합해서 조정하라고 할까요?"
"가 가능합니까?"
차관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묻고 말았다.
만약 화산텔레콤이 그렇게 전격적인 양보를 해준다면 KST와 SC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
화산텔레콤이 기존 가입자 고객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겠지만…….
"대신에 3대 이통사의 로비를 받은 과기부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통신사 실업자들 살려야 한다, 그렇게 양해를 구해야겠지요."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냥 잊어 주십시오."
차관이 꼬리를 내리자 로한은 딱딱함을 조금 풀고, 다리를 바꿔 꼬았다.
"차관님, 그냥 받아들이세요. 우리 나라의 통신 생태계는 이제 예전보다 수십, 수백 배 이상으로 좋아질 겁니다."
"예. 알고는 있습니다만. 당장의 피해가……."
"원래 당장의 운동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결실은 참 뿌듯하고 아름다운 법입니다. 실업자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제가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만이라도 정말 잘부탁드립니다. 실업을 앞둔 통신사직장인들은 지금 패닉 상태입니다."
"당연하죠. 국회의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요."
"저,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생각하고 계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통신사 직원 모두가 누락, 지체 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청에 압력을 넣을 겁니다. 그리고 통신사가 그들에게 즉시, 최대한의 퇴직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감시할 겁니다."
"그 두 가지만 제대로 되어도 일단은 살겠습니다만, 그래도 재취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걱정 마세요. 청담 스코프를 중심으로 수영그룹종합연구산업단지가 지금 구축 중이잖습니까?"
차관은 그 말에 화색을 띠었다.
"그건 부지 선정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제자리걸음인 줄 알았는데요. 설마?"
"연구단지가 돌아가면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인력이 없는 걸 걱정해야 할 겁니다. 추가 핵융합 발전소도 있고요."
"의원님은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저희가 설레발만 떤 거 같아서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