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76화
273장 펜션 델루나(5)
한국 제조업 입장에서 일본 시장은 철옹성이었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한국산이라고 하면 일본인들은 구매를 거부했다.
한국산 제품은 절대 일본산을 넘을 수 없다고 깔보는 우월의식 때문이었고, 해외 기업들이 스며들기 어려운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이었다.
하지만 3대 재벌 기업인 미쓰비시와 전면적으로 손을 잡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장님, 저희 회사도 다시 일본가전시장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부디 함께하도록 해주십시오."
"아, 물론이죠. 1억 3,000만 시장에 들어가는 건데 서해전자만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전 델지전자를 두 팔 벌려 크게 환영합니다."
김범석은 몰려드는 가전업체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았다.
이쯤 되자 불안해진 것은 서해전자 임원들이었다.
당연히 자기들만 일본에 입성하는 줄 알았는데, 최고 경쟁자는 물론이고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끼워 넣다니.
하지만 이현덕 부회장과 한창 승계 싸움 중인 그에게 감히 따질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이현덕 역시 떨떠름하지만 애써 아닌 척 대응했다.
"우리도 대실패를 맛보고 철수한 게 일본 시장이야. 미쓰비시와 손을 잡았다지만 결국 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겠지."
"예, 부회장님 예상대로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범석 사장이 일본 시장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쌀하고 생선이 잘 나가고 있으니까 가전도 혹시나 하는 거겠지. 전혀 맥락이 다른 아이템인데."
"맞습니다. 쌀과 생선은 외부 조달이 안 되니 눈물을 머금고 소비하지만, 가전은 전혀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일본인들 자존심과 애국심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임원들은 이현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굽실거렸다.
"한번 보자고. 얼마나 크게 뒤통수맞고 징징거리는지."
그때 핸드폰으로 뭔가를 확인한 임원이 당황해서 이현덕에게 다가왔다.
"부회장님, 이걸 확인해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뭔가?"
"직접 보시는 게……."
대수롭지 않게 폰을 확인한 이현덕의 안색이 경직되었다.
"이, 이게 무슨……!"
일본발 광고를 인용한 기사였다.
눈을 씻고 봐도 믿어지지 않는, 미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기획.
[서해그룹 김범석 사장, 일본 가전시장 진출을 선언하다!]
[매달 1만 엔 이상의 제품을 구매한 '일본인' 고객에 한해 추첨으로 달 1박 2일 관광 패키지 사은품 증정!]
[수억 달러짜리 달 여행 복권을 단돈 1만 엔으로 긁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김범석이 작정하고 칼을 빼들었다.
***
달은 인류의 오랜 친구이자, 신비이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라와 지역, 종족, 종교를 막론하고 달의 전설은 두고두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리고 수영그룹은 민간 달 관광을 마침내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첫 달 관광객, 안살린 왕자를 전 세계가 축복하고, 또 부러워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는 수영스페이스의 업적을 깎아내리며 불편하게 빈정거렸다.
하지만 자신들의 부러워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덮어두기 위한 발악이었다.
'죽기 전에 달에 한 번 가보고 싶다.'
'달에서 편안하게 지구를 내려다보며 호캉스 하고 싶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공통바람이었다.
적어도 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끼는 이를 위해 양보를 할지언정 거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에 뒤처진 일본의 우주진출 산업.
그 불편한 열등감을 애써 감추고 있는데, 일본에 대대적인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수억 달러의 비용 없이도 달에 갈수 있습니다.'
'매달 단돈 1만 엔으로 달 관광 티켓을 끊어 보십시오. 펜션 델루나가 여러분들을 기다립니다.'
'추첨은 매달 1회, 1만 엔이든 100만 엔이든 추첨 확률은 모두 동일합니다. 한국의 뛰어난 전자제품을 구매하고 달 여행 복권을 긁어보세요!'
***
매일같이 미친 듯이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신문, TV, 라디오, SNS, 포털 등 온갖 미디어에서 광고를 때려댔다.
미쓰비시유통에는 달 여행을 문의 하는 소비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거 정말입니까? 1만 엔 이상만 구매해도 자동으로 달 여행 사은품에 참가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고객님.
"1만 엔이든 10만 엔이든 확률은 모두 똑같은 거 맞아요?"
-물론입니다, 고객님. 매달 1만 엔이상을 구매하신 고객님 개인에게 주어지는 사은품 자동 추천권이라서요. 그냥 구매하실 때 추첨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만 동의하시면 됩니다.
"여러 번 구매해도 안 된다는 거죠?"
-네, 여러 번 구매한다고 당첨 확률이 더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더 비싼 물건을 구매하거나, 아니면 여러 지점에서 구매를 하면 당첨확률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해 덕분인지, 1차로 들여온 델지전자 TV 1만 대가 예약판매 단계에서 모조리 팔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막 제품 출고를 마친 델지전자 가전사업부는 추가로 이어진 오더에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10만 대라고?"
"네, 10만 대입니다."
"아니, 1만 대를 다 파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달 여행 추첨권 때문에 지금 일본은 뒤집어졌거든요. 미쓰비시와 서해물산이 일본에 1차로 푼 제품 중에서 우리 TV가 가장 비싼 물건이었답니다."
돈을 더 많이 써야 사은품의 당첨확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이것은 만국공통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TV 같은 가전을 한 번 구매하면 잘 안 바꾸고 버릴 때까지 쓰는 가구가 많습니다. 그 가구들도 이참에 TV도 교체하고, 경품 행사도 참여할 겸 지갑을 열었습니다."
"일본 노인들 지갑은 단단히 빨아먹을 수 있겠군."
일본은 초고령층 사회다.
그리고 노인들은 죽기 전에 달 여행 한 번쯤 가고픈 욕망이 있을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항상 머리 위에서 지켜봐왔던 달에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은가.
델지전자는 부랴부랴 10만 대의 TV를 추가로 컨테이너에 실어서 보냈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이 출발하기도 전에, 또다시 예약판매에서 모조리 동나고 말았다.
"세탁기! 냉장고! 공기청정기! 식기세척기! 정수기! 닥치는 대로 준비해서 배에 실어!"
"오늘부터 공장 풀로 돌린다. 닥치는 대로 물건 찍어 내! 일본 주파수, 전압규격에 맞추는 거 잊지 말고!"
국내 가전공장들이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
한편 수영펜션은 달 여행의 희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지금 대부호들 상대로 1, 2억 달러씩 받고 티켓을 팔고 있는데, 일반 경품 당첨자들까지 섞이면 희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경매 시작가를 1억 달러에서 5,000만 달러로 낮추기로 했대요."
"아, 5,000만 달러면 괜찮네."
"프러포즈 드론쇼에 수십만 달러를 불태우는 사람들인데, 달 여행에 5,000만 달러 시작가면 꽤 합리적이지."
"그리고 경품 당첨자 전용 체임버를 따로 떨어뜨려서 설치했답니다. 실내공간이나 인테리어, 식사 메뉴, 서비스 같은 것도 등급을 팍 낮췄고요. 그냥 일반인들도 갈 수 있는 호텔 객실 수준이라고 하네요."
수영스페이스는 VVIP 전용 체임버와 일반인 체임버를 아예 분리시켜버렸다.
슈퍼리치들은 일반 평민들이 묵었던 객실을 이용할 염려가 없으니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 슈퍼리치들의 자존심을 한층 더 보듬어줄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들었어요? 달에 샵을 낸대요! 슈퍼리치 전용 호텔체임버에다가요!"
"샵? 무슨 샵이요?"
"사치품 파는 샵이요! 일단 파텍필립, 바쉐론, 오데마피게 3대 시계부터 당장 입점한대요! 문 컬렉션 신상 라인업 들고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과연 짤막한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최상류층, 그들만을 위한 리그이다 보니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리 퍼지지 않았다.
"문 컬렉션 워치?"
"달 샵에서만 파는 한정판으로 못박았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구에서는 못 산대요."
"이야, 워치 3대장들이 아주 작정을 했네요. 그러고 보니 이거 면세품 아니에요?"
"면세품이죠. 달에는 부가세와 사치세를 걷어갈 주체가 없으니까."
"완전 대박인데."
달에서만 구경할 수 있고, 살수있는 사치품.
슈퍼리치들의 수집욕을 한층 자극할 것이 틀림없다.
한 번 달에 다녀온 이들도, 이제는 저 시계를 구매할 목적으로 다시금 티켓 경매전에 참여할 것이다.
***
일본 제조회사들은 처음에는 애써 무시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해외 업체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했지만, 뼈아픈 실패를 겪고 철수했다.
일본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외산브랜드는 윈드밀, 맥OS, 래플폰 같은 것들뿐이다.
한국 가전제품은 예전에 큰 실패를 겪고 완전히 철수한 바가 있다.
이번에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는 도쿄의 한 가전매장입니다. 한국산 가전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인데요. 개점을 하기 전, 새벽부터 이렇게 수백 명의 고객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만 엔어치만 사면 달 여행권 경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잖아요.
-달 여행은 솔직히 기대가 거의 없구요. 하지만 생선배송 서비스는 구매액을 채우는 대로 집으로 보내 준다고 하니까. 그거 하나 보고 사는 거예요.
-왜 새벽부터 줄 서냐고요? 매장열리고 2시간도 안 돼서 전부 품절된다고요. 그러니까 일찍부터 와서 줄을 서야 돼요.
-인터넷 예약판매? 그건 더 지옥이에요. 렉, 오류 한 번 잘못 걸리면 그냥 아웃이에요, 아웃.
-델지전자 TV를 사서 써봤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좋고 편리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국산품이 너무 뒤처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앞으로도 모든 가전을 델지 것으로 바꿔나갈 생각입니다.
헬륨이 인질로 잡힌 미쓰비시 그룹의 전면적인 유통 협조.
구매액에 비례하는 정직한 생선배송권.
1회 치러지 여행 사은품.
그리고 뛰어난 성능과 좋은 가격.
이 네 가지가 시너지를 이루니, 한국 가전을 구매하려는 일본인들이 매일같이 줄을 섰다.
-윈텔 최신 CPU가 들어간 노트북을 사고 싶은데, 알아보니까 여기에서밖에 살 수가 없더라고요. 일본 노트북에는 최신 반도체 부품이 들어가지 않아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
김범석이 핸들링하는 대일 가전 무역의 매출이 무섭도록 솟구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놀란 일본 업체들이 비밀리에 모여 회동하고, 내각에 대한 로비와 경쟁자 제거 공작을 의논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출은 눈이 부시게 폭증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달여행 당첨자가 나왔다.
당첨자가 쓴 돈은 겨우 3만 엔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일본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희망을 주었다.
한편 그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 강제징용자의 후손이라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달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전국에 보도되었으며, 중간중간 홈쇼핑으로 나온 한국 제품들은 모조리 품절 대란을 맞았다.
***
하수영은 김범석과 통화 중이었다.
-주인님, 기뻐하십시오. 이번 달일본 TV 시장 점유율 65%를 달성했습니다.
"가전 총 점유율은?"
-21%입니다!
첫 달 만에 전체 가전 시장의 21%를 차지한 것은 기적 중의 적이라고 할 만한, 말도 안 되는 실적이다.
"이놈아, 내가 그렇게 팍팍 지원을 해줬는데도 겨우 그거밖에 못 먹었어? 그래가지고서 일본 가전업체들 전부 도산시키려면 한오백년 걸리겠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잘하자."
-네, 올해 안으로 일본의 가전시장을 초토화시켜서 수영그룹 생태계로 편입시키겠습니다!
"혐하 서적 코너는 어떠냐?"
혐한이 아니라 혐하.
하수영을 혐오하는 서적, 미디어 등을 따로 모아서 판매하는 코너를 말하는 것이다.
-많이 늘었습니다. 판매량도 올랐고요.
"그건 좋네. 야, 그거 이참에 종류별로 사와라. 휴민트타워에 전시해야겠다."
적이 퍼붓는 욕은 최고의 찬사인 법.
그것이 현실이든, 게임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