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29화
284장 자본가를 위한 실험 (5)
일본에 대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수출 금지가 완전히 풀어졌다.
차량 반도체, PC용 반도체를 가리지 않고 이제 자유로이 반도체를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도 거래 자체가 명시적으로 막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윈텔, ADM 등 반도체 업체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수출을 미루고 또 미뤘을 뿐이다.
그들의 반도체가 서진파운드리 공장에서 만들어져 배송이 되는 판인데, 수영농장의 심기를 거스를 순없었으니.
여기에 수영농장에서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5대 자동차 업체 공장에 파견한다는 보도가 떴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일본과 하수영이 모종의 대화해를 한 것이라고 판단했고, 곧장 투자금을 싸들고 일본 장으로 들어갔다.
"일본은 괜히 반도체 제재 따위나 해서 닌텐도를 수영그룹에 뺏겼군."
"먹는 쌀, 첨단산업의 쌀을 모두 수영농장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어."
"그게 바로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거야. 당장 내 가족들이 모두 굶어 죽어도 오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잡철로 만든 일본도를 들고 전차한테 뛰어드는 거지."
"매출의 3%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모든 노동력을 대체한다니. 이거 너무 매력적인 조건인데?"
"안드로이드 프리덤 공장이 효율이 엄청나게 좋은가 봐. 지금 5대 브랜드 자동차 생산량이 장난이 아냐."
"이러면 6위 스즈키와 7위 스바루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 아닌가?"
실제로 스즈키와 스바루는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보여주는 놀라운 생산력에 경악했고, 곧바로 경영진이 한국으로 뛰어갔다.
경차와 오토바이로 유명한 스즈키 CEO는 하수영은 만나보지도 못했고, 수영투자 김범석 사장만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부탁입니다. 저희 스즈키에도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제공해 주십시오."
"음, 5대 일본차처럼 인건비의 절반으로 파견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스즈키 CEO는 여기서 곧이곧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저희가 어떻게 5대 브랜드와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뒤늦게 찾아왔는데요. 생각하시는 조건을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최대한 성의를 다해서 거기에 맞춰보겠습니다."
"인건비, 아니 로봇 렌탈비는 5대 일본차처럼 매출에 비례한 고정금으로 해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스즈키의 지분을 원합니다."
"지분이요?"
스즈키 CEO는 가장 먼저 도요타가 가지고 있는 5%의 지분을 떠올렸다.
"유상이든 무상이든 증자를 하셔서 수영모터스가 최소 49% 이상 지분을 차지했으면 좋겠습니다."
"49%……."
스즈키 CEO는 숨이 새어나가는 소리를 흘렸다.
시가총액 20조 원이 넘는 스즈키의 지분 49%를 확보하게 해주려면 대체 무슨 짓을 벌여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해서 거래 자체를 파토 내려는 것인가?'
합리적인 경영가라면 차라리 이렇게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런 의구심을 알아차린 듯, 김범석이 온화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로봇 렌탈 서비스는 그 정도 값을 치러도 아깝지 않은 인건비 절약 방침입니다."
찬물을 확 끼얹은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자동차 브랜드와 앞으로 벌어질 격차를 생각하십시오."
"……하겠습니다."
어떻게 주주들을 설득하고, 또 증자를 할지는 지금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공장에 로봇 직원을 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일본으로 돌아간 스즈키는 이사들을 소집하여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진통 끝에 신주발행안이 통과되었지만, 뜻밖에도 주주들의 큰 반발은 없었다.
무리한 신주발행안이었지만 주가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소폭 상승하기까지 했다.
은행에서도 이 같은 신주발행안을 반겼다.
모두가 이 결정을 잘한 것이라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
수영농장은 자동차 회사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다양한 제조업을 파고들어 공략했다.
자전거, 장난감, 전자, 섬유, 직물, 철도차량 제작, 항공기 제작, 화학등 공장이란 공장은 닥치지 않고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파견했다.
사업주들은 처음에는 공장 운영 노하우나 기밀 등이 유출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뒤에는 히사타로 총리 각하께서 계십니다."
"히사타로 총리님이?"
비록 은퇴했지만 아직도 그 위명이자자한 전 총리의 이름은, 망설이는 사업주들이 믿을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히사타로 총리 각하께서도 우리 수영농장을 믿고 규슈의 농장 운영을 맡기셨죠. 일본을 대표하는 도요타 등 자동차 회사들이 왜 일제히 공장을 우리에게 맡겼겠습니까?"
"자동차 기업들이 모두 로봇을 도입했다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겠군요."
자동차 회사부터 공략한 것 역시 좋은 포석으로 작용했다.
사업주들은 불안과 의심을 풀고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공장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수하지 않고, 휴식하지 않고, 불평하지도 않으며, 인간보다 많은 성과를 내는 로봇들의 근로 형태에 깊이 감동했다.
공장 직원만 100명을 거느린 어떤 사업주는 불과 사흘 만에 공장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해고해 버리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냈으나, 사업주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패소할 일도 없지만, 패소해도 상관없다. 배상금 몇 푼 더 물어주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히니까."
"로봇들은 돈도 적게 받으면서 공장이 자기 것처럼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조용한 퇴직이다 뭐다 딱 받은 만큼만 일하려는 녀석들이 얼마나 넘쳐난다고. 로봇 하는 것에 반만큼이라도 열심히 일을 했어 봐. 내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자르겠냐고?"
심지어 직원 신분보증에 매우 민감한 방위산업체에서도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쓰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렇게 6만 기가 넘는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일본 제조업에 진출했다.
그리고 2차로 40만 기의 안드로이드 프리덤 추가 투입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 할 계획이었다.
"우리 공장은 직원이 10명밖에 안됩니다만, 그래도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쓸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인건 비 지출 내역을 가져오십시오. 그것을 기준으로 로봇 렌탈 비용이 책정됩니다."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일 년 총 인건비의 50%를 넘지 않는 선에서 책정될 겁니다."
수영농장은 일본의 영세사업체에는 인건비의 40%, 30%를 받는 등 파격적인 할인율을 적용해 주기도 했다.
줘야 할 월급은 줄어드는데 일은 훨씬 더 잘하고, 식사나 복지 따위를 챙겨야 할 필요도 없다.
직원이 한둘밖에 되지 않는 사업체도 미친 듯이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찾았다.
일본 전체에 로봇 직원 열풍이 불었고, 실업률은 조용히 급상승 그래프를 그렸지만, 일본 정부는 늘 그렇듯이 뚜껑을 덮는 것으로 그쳤다.
[일본 상품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다!]
[낮아진 불량률, 빨라진 생산 속도, 줄어든 제조원가!]
[이제야말로 다시 한번 일본의 상품이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할 때!]
***
백두자동차 한두철 부사장이 하수영을 찾아왔다.
그는 초창기에 인연을 맺어둔 덕에, 다른 그룹 부사장은 만날 엄두도 못 내는 하수영한테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사장님께서 일본차 돌아가는 상황을 보시고 무척 아쉬워하고 계십니다."
한두철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모시는 분의 심기를 전달했다.
압박이나 투정으로 비춰져서는 곤란하다.
지금 수영그룹과 백두그룹은 갑과 을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커다란 격차가 벌어져 있다.
"백진택 사장님이요? 백두자동차 공장에도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집어넣고 싶어 하십니까?"
"아무래도 기업가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흠, 그 대신 지금 일하는 직원들은 일본 자동차처럼 전부 다 짜르구요?"
"……."
"노조 파업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정리해고도 아니고 폐업 수준으로 직원들 짜르는 건데, 진짜 공장이 불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장님도 그 정도로 가혹하게 나가실 마음은 없으십니다. 다만 기존고용은 유지하되 신규 채용을 줄이고, 그 대신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도입하는 것은 진지하게 검토하고 계십니다."
이사회에서도 그 정도 도입은 긍정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있는 직원들만 안고 가자.
대신 앞으로 채용은 싹 없애고 안드로이드 프리덤으로 대체하자.
"그건 당장 목이 마르다고 짠 바닷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꼴입니다."
하지만 하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백두자동차가 가장 큰 수익을 내는 시장은 어디죠? 미국인가요, 유럽인가요? 중국? 러시아?"
"……당연히 한국입니다."
"자기들을 해고한 회사의 자동차를 과연 누가 사서 타고 다니겠습니까? 자기 아들, 자기 남편, 자기 친구를 해고한 회사 차를 누가요? 앞으로 울산에서는 백두자동차는 구경도 못하게 되겠군요."
"울산 시장에서의 점유율 감소는 각오할 수 있다는 게 사장님의 의지입니다."
"한두철 부사장님 생각도 그렇습니까?"
그 말에 한두철은 조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솔직히 저는 우려가 더욱 큽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두렵습니다."
"아시죠?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한두철 부사장님 또한 대체할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공장장만 남겨두겠지요. 하지만 곧 공장장이 필요 없다는 걸 깨닫고, 완벽한 무인공장이 될 겁니다. 그 다음은 사무직이 되겠군요."
"……."
"프리덤 엔터프라이즈 버전은 기업을 위한 모델입니다. 파급효과가 너무 커서 시판을 하지 않고 있죠. 프리덤 엔터프라이즈 버전과 안드로이드가 합쳐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잠시 상상을 짚어보던 한두철 부사장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하수영은 이제 알았냐는 듯이 희미한 조소를 보였다.
"회사를 굴리기 위해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심지어 CEO 조차 말입니다. 표결을 위한 거수기로서 이사회만 필요할 뿐입니다."
"……!"
"그마저도 이사회는 큰 방향을 결정하는 것에 그치고, 실제로 해야 할 일은 전혀 없죠. 오너로서는 과연 비싼 월급을 줘가면서까지 이사회를 유지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겁니다."
"하지만 상법상 이사는 반드시 몇 명 이상 유지해야 합니다."
"그럼 상법을 고치자고 나올 겁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법은 고쳐야죠."
"……."
"제가 백두자동차에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공급한다고 해봅시다. 다른 제조회사들은 요구를 하지 않을까요? 제가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요? 백두자동차에도 이미 공급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
"안드로이드의 완벽한 인력 대체는 말이죠. 석탄 문명에서 석유 문명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수백 배는 더 강력한 패러다임의 변환입니다. 적어도 수십 년 이상에 걸쳐 치열한 사회적 합의와 대응책이 갖춰져야 문명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일본에는 안드로이드프리덤을 제공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공했죠. 앞으로도 계속 제공할 거고요. 늦어도 3년 안에 1,000만기 이상의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일본에 풀어버릴 생각입니다."
3년 안에 1,000만 기 이상의 로봇 일꾼이 풀린다고?
한두철 부사장은 갑자기 끔찍해졌다.
"상상해 보세요. 반도체 공장 엔지니어부터 시골 작은 편의점까지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알아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세상을요. 그런 세상이 3년 안에 급속히 열리면 어떨 거 같나요?"
"극소수의 기업가만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누리는…… 나라가 아예 무너지겠군요."
"제가 프리덤을 프로 버전만, 그것도 극히 제한적으로 푸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 국내 운영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수영은 타이르듯이 말했다.
"한국에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전면 도입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진택 사장님께 잘 설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