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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8화 (18/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8화

(18)

문제: 판잣집이 난잡하게 들어선 빈민가에서 빈민 패거리의 두목은 몇 층에 금고와 아지트를 둘지 고르시오.

1번. 언제든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1층.

2번. 판짓집들로 이어진 통로를 타고 다른 건물로 도망칠 수 있는 3층.

3번. 1층도 3층도 가기 쉬운 2층.

답: ???

“죽어! 이 미친 새끼야!”

손도끼를 든 놈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약을 하고 있었는지 온몸에 핏줄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나는 방금 심장을 찌른 놈을 들어 올려 방패로 삼았다.

순간 손도끼가 멈칫하자, 나는 놈에게 시체를 걷어찼다.

나름 서로 정이 들었던 사이인지, 차마 시체가 바닥에 구르도록 놔두지는 않았다.

왼손을 길게 뻗어 시신을 붙잡으려 드는 몸놀림이 눈물겨웠다.

“약쟁이 주제에 의리가 있구나.”

나는 검을 내리쳐 놈의 드러난 목을 그었다.

투두둑, 목 가죽과 혈관이 예리한 나이프로 버터를 가르듯 부드럽게 잘려 나갔다.

뼈를 가르는 웅장한 일격은 아니었으나, 나는 힘보다 세련미를 더 선호했다.

“커으윽……!”

놈이 바닥에 쓰러져 피가 줄줄 흐르는 목을 부여잡고 바르작거렸다.

나는 놈을 뒤로하고 아지트 안을 둘러보았다.

연기가 하도 많이 퍼져서 육안으로는 인영조차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몇 층으로 가야 금고와 두목을 찾을 수 있을까?

“지하수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동네지.”

나는 입 안에서 ‘수로’를 몇 번 더 중얼거리다 기둥과 벽을 확인했다.

“2층으로 가야겠군.”

3층은 높고, 1층은 불안하겠지.

석조 건물인 만큼 태울 건 많지 않았다.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연기가 그만큼 더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등 뒤로 두르고 있던 불길을 손바닥 안으로 모았다.

식은땀이 두 방울 정도 흘렀다.

욱신, 하고 중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려 했지만, 어찌어찌 잘 갈무리했다.

큰 구슬만 한 크기로 변한 불덩이를 왼손에 감췄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은 패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죄다 밖에서 일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2층에 들어선 나는 주저 없이 남쪽 가운데 방으로 향했다.

볕도 잘 들어오고, 적이 쳐들어오는 걸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고, 정면에 건물도 없어서 활로 저격당할 위험도 적었다.

“…….”

한눈에 봐도 두툼하고 고급스러운 참나무 문이 나를 가로막았다.

“찾았다.”

나는 다시 한번 판자 사이로 검을 찔러넣었다.

으드득, 하며 단단한 목제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아악! 이 새끼가!”

내가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문이 왈칵 열렸다.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깡마른 사내가 양손에 단검을 쥐고 뛰어올랐다.

“쯧.”

혀를 찬 나는 망설임 없이 불꽃 구슬을 전면으로 내질렀다.

화르르륵! 어린 용의 불길처럼 쏘아진 불길이 깡마른 사내와 그 뒤에 선 사내를 삼켰다.

나는 바닥을 구르는 둘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방에 발을 들였다.

내 뒤로 2층까지 올라온 연기가 새벽안개처럼 자욱하게 따라 들어왔다.

“미천한 것들이 누구 앞길을 막아서느냐.”

나는 희극에서 최후에 패배하는 악역 같은 말을 웃음과 함께 내뱉으며 검을 늘어트렸다.

“……!”

방 안에는 나를 제하고 일곱 명이 남아있었다.

책상 뒤 의자에 요지부동으로 앉은 게 한 명.

짧은 수염을 멋지게 다듬은 놈이었다.

그가 두목인 게 틀림없었다.

내 앞을 막아선 여섯 중에는 머리를 민 자도, 여인도, 망토를 뒤집어쓴 자도 있었다.

긴 곡도를 든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단검이나 손도끼로 무장했다.

나는 놈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두목을 향해 말했다.

“도망치지 않은 건 칭찬해 주겠다.”

“어느 패에서 왔지? 네놈 같은 실력자가 이 거리에 흘러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나는 회귀 전 삶 포함 57년을 살아오며 깨우친 모든 공감 능력을 쥐어 짜내 그 말뜻을 파악했다.

놀랍게도 칭찬이었다.

홍등가의 마약을 받아 팔 정도로 규모 있는 조직 두목의 인정.

내가 정말로 이 거리의 칼잡이였다면 나름 뿌듯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까지 올라갔던 사내며, 대공 전하이자 황제의 오라비, 황형(皇兄) 발렌시아누스였다.

이깟 빈민가 두목 따위에게 찬사를 들어도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기다려라. 천민아.”

굳이 도발적인 말을 하는 건, 자존심을 긁어 혹시나 놈이 도망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었다.

나는 검을 늘어트리며 여섯 칼잡이를 바라보았다.

살기 등등한 눈빛과 예리한 병장기의 날이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가자.

숨을 들이쉬며 한 걸음 나아간다.

온몸의 근육을 마나와 함께 팽창시킨다.

근섬유 한 올 한 올이 마나에 둘러싸이는 감각, 이에 따르는 부하는 감수, 어느새 들리지 않게 된 주변의 소리.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

카드드드드드득-!

내가 땅을 박차는 동시에 뼈 긁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올랐던 근육이 다시 쪼그라들며 식은땀이 흘렀다.

“어, 어?”

“크윽!”

“안 돼.”

“두목!”

“방금.”

횡으로 휘두른 장검에 피가 흥건했다.

한 호흡 뒤, 나를 막아서던 여섯 명이 가슴 높이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이거 장난 아니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욱신거리는 오른 손목을 주물렀다.

또래에 비하자면 초인이나 다름없지만, 성장도 안 끝난 열일곱 살 몸으로 쓰기는 부담스러운 기술이었다.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해 불꽃을 한가득 피워올린 다음에는 더더욱.

두목이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근엄해 보이던 표정이 바보처럼 변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읽었다.

그 순간 나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부웅, 내 종아리를 찌르려던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익!”

가죽 각반을 찬 사내가 울분에 찬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피를 흘리며 기어 왔는지, 뒤쪽 바닥에 피가 대걸레로 문지른 듯이 길게 묻어 있었다.

얕았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직도 검을 휘두를 때면 무의식적으로 예전처럼 움직였다.

속은 망가졌으나 육체적 성장은 마쳤고, 겉은 강인하던 시절이었다.

속도 겉도 미숙한 이 몸으로 못 따라가는 건 당연했다.

나는 뛰어올랐던 그 기세 그대로 떨어져 내리며 그의 등을 찔렀다.

척추를 부수고 돌바닥을 찍은 검에서 얼얼한 반동이 전해져 왔다.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

검을 회수하며 나는 물었다.

두목은 답하지 않았다.

“그대 같은 칼잡이에게는 도망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대? 말을 높이거라 천것아. 이 몸은 발렌시아누스. 제국의 대공이니라.”

나는 왼손으로 앞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두목이 별 미친놈 다 보았다는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눈동자를 움직여 금장 장식 화려한 내 제복과 백발 머리카락을 훑었다.

“!”

그의 입은 여전히 웃었으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차고 온 금장 장식의 무늬는 오로지 황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이십니까?”

당황을 넘어 황당한 듯한 목소리였다.

“이 몸이 뭐가 아쉬워 이겨 놓고 거짓말을 하겠느냐? 창밖에 백금기사단의 기사가 있으니 확인해 보아라.”

“하, 하하.”

두목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허탈하게 웃었다.

“드래곤 괴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군요.”

제국에는 ‘길거리에서 시비 붙은 상대가 사실 폴리모프해서 유희를 즐기던 드래곤이었다’ 같은 류의 괴담이 있었다.

“존귀하신 대공 전하께서…… 어떠하신 일로 저 같은 천것을 찾아오셨습니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설프게 예를 취하며 물었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보며 답했다.

“소포가 하나 왔을 텐데. 배송지를 잘못 썼더군. 다시 가져가려 한다.”

두목이 침음성을 흘렸다.

추정되는 진범을, 의뢰자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따라서 나는 그 유물의 주인을 다시 상기시켜주어야 했다.

“알고 있잖느냐? 그 유물은 제이릴리스 황제 폐하의 것이다. 정신을 차리도록 해라. 네가 무엇을 약속받았던지 그분의 진노가 앗아갈 것에 비하겠느냐?”

제이릴리스. 그 이름에 얹힌 권위는 한낱 빈민 패거리 두목이 감당할 수 없었다.

두목의 얼굴색이 노랗게, 또 파랗게 물들었다.

나는 두목에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 열쇠를 확인했다.

금고는 이 방 어딘가에 있으리라.

어울리지 않게 걸린 그림이나 유난히 큰 벽장을 의심해보았다.

“소포를 내놓아라. 네놈이 가질 만한 물건이 아니니라. 돈 한두 푼에 모든 걸 잃어버릴 셈이냐?”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놈이 순순히 열쇠를 내놓지 않는다면 목을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명색이 두목이니 비장의 한 수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 봐야 거지 깡패 두목이었다.

제국 검술 앞에서는 수수깡처럼 부서지겠지.

두목이 이를 악물었다.

그 표정을 본 나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각오를 마친 그의 얼굴색이 평온했다.

“이 발렌시아누스가 친히 기회를 주었는데.”

그가 책상 위로 뛰어오르며 손도끼를 집어 던졌다.

카앙!

나는 검을 빙그르르 돌리며 도끼날을 쳐냈다.

다음 순간 놈의 날아 차기가 내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신발 바닥에 날카로운 강철 징이 번뜩였다.

나는 제국 검술 상단 베기 자세를 취하며 크게 물러섰다.

턱. 등에 벽이 닿는 느낌이 났다.

다음 순간 내리찍은 발을 축으로 삼아 한 바퀴 돈 놈이, 원심력을 실어 단검을 던졌다.

나는 주저앉듯이 몸을 숙이며 피했다.

퍽!

정확하게 내 목울대가 있던 위치에 단검이 박혔다.

놈이 두 번째 단검을 역수로 쥐고 달려들었다.

나는 몸을 숙인 그대로 땅을 박차며 검을 베어 올렸다.

서걱!

놈의 오른쪽 겨드랑이로 들어간 칼날이 쇄골과 가슴 사이를 길고 깊게 베고 튀어나왔다.

비틀거리며 한두 걸음 더 걸어 나간 놈이 끝내 무릎을 꿇었다.

“왜 그랬느냐? 똑똑한 놈인 줄 알았는데.”

나는 물었다.

두목은 나쁘지 않은 싸움꾼이었지만, 내가 방금 처치한 여섯과 동시에 싸워 이길만한 실력자는 아니었다.

내가 여섯을 단숨에 벤 순간 이미 승패가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도전했고, 예견된 죽음을 맞았다.

질 걸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 같았다.

보통 지킬 게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했다.

나는 두목의 목에서 열쇠 여럿 걸린 목소리를 낚아챘다.

책상 옆에 놓인 큰 벽장 앞으로 다가갔다.

“금고는 그림 뒤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몸을 돌린 두목이 피거품을 뱉으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

나는 벽장 문을 왈칵 열었다.

안에는 치렁치렁한 옷이 가득했다.

마치 무언가를 가리려는 거처럼.

옷을 치워내자 벽장 안쪽으로 이어진 통로가 보였다.

어른도 살짝만 머리를 숙이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 뒤쪽에서는 희미한 물 냄새가 났다.

지하수로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였다.

마지막으로 소녀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두목을 닮은 소녀였다.

“그들에게 뭘 약속받았는지 알겠군.”

회귀 전에서부터 내심 짐작하기만 하던 배후가 확실해진 순간이었다.

소녀는 한쪽 다리가 무릎 위에서 잘려 나가 있었다.

비밀 통로의 사다리로 도망칠 수 없는 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두목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제국은 연좌제가 엄하지.”

개인보다 가문과 혈족이 우선시되었고, 공과 과 모두 나눠 가지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아비가 황가의 유물을 훔쳤다면 친딸은 당연히 함께 처형당하리라.

“제발.”

두목이 말했다.

많은 감정이 담긴 한 마디였다.

나는 검을 늘어트리고 다가갔다.

“빈민가잖느냐. 네가 없다면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될 수도 있다.”

“제 형에게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대공 전하.”

두목이 필사적으로 간청했다.

“그 형은 약을 안 하는가?”

“술도 안 마시는 사람입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

거무튀튀한 금고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개 열쇠를 세 구멍에 연속으로 사용하자 문이 열렸다.

사람 두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그 금고 안에는 하얀 가루와 붉은 가루,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은화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그 맨 위에 놓은 종이봉투를 집어 들었다.

위쪽을 찢어 종이로 싼 내용물을 꺼내고, 루디의 필체로 주소가 적힌 종이봉투는 마법으로 불태웠다.

유물을 챙긴 나는 검을 내리쳤다.

서걱, 두목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

나는 몸을 돌리자마자 아주 약간 후회했다.

외다리 소녀가 벽장 밖으로 나와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 탓이다.

아랫입술을 깨문 소녀가 입을 열었다.

원망과 당혹, 슬픔과 그 셋을 모두 억누르려는 정제된 이성의 빛이 그 눈에 어려 있었다.

나는 은화를 흘깃하며 말했다.

“챙길 만큼 챙겨서 떠나라.”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드립니다. 대공 전하.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허한다.”

“어째서 제 아버지를 죽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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