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4화
(24)
나는 차분하게 6층 복도를 걸었다.
검은 더이상 휘두를 생각도 없다는 듯이 늘어트렸다.
걸음은 의상실의 일류 모델과 같이 길게 그은 줄 위를 밟는 듯 유유하게 옮겼다.
불안감과 경외감, 공포로 얼룩진 눈동자 수십 쌍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때로는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때로는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무시했다.
중요한 건 너희는 절대로 나를 꺾을 수 없다는 위압감을 계속해서 주는 거였다.
약간 조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칩 가방을 든 세레라지에가 마법사 특유의 원뿔 모자를 쓰고 남색 망토를 펄럭이며 따라붙었다.
“안 먹히면 소란 감수하고 다 날려버릴 거란다.”
“그때는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야. 일단은 웃어.”
나는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고, 가장 가까운 복도 가운데 계단을 향해 걸었다.
“내려가게 내버려 둬도 돼?”
“그런 네가 덤빌 거야? 아까 타 죽는 거 못 봤어?”
“고작 두 명이잖아. 한 번에 돌격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닥쳐. 나는 타 죽기 싫다고.”
“그러다 저놈이 기사들 불러오면?”
“빈민가로 도망갈 거야. 아무리 기사들이라도 거기까지 따라오지는 않겠지.”
나는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레라지에와의 격돌과 불꽃을 피워 올리는 과정에서 마나를 다 써버린 탓에 걷는 것도 힘겨웠다.
제발 아무도 용기 내지 말라고 내심 되뇌었다.
그때 계단 바로 앞에서 한 기도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보였다.
놈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놈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쩍!
지쳤다고는 하나, 소드 엑스퍼트에 달한 나와 카지노 기도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뇌가 흔들린 놈은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줄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용서해 주겠다고 말했잖아.”
나는 실망했다는 듯 차갑게 말하며 놈을 걷어찼다.
옆에 있던 기도들은 눈을 내리깔며 벽에 바싹 붙었다.
우리는 무사히 계단 앞까지 다다랐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중간에 곤란해지면 3층쯤에서 뛰어내릴 자신도 있었다.
“거기 서라.”
행동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천한 것아. 말을 높이거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건 복도를 가로지르는 요란한 발소리뿐.
나는 놈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2kg가 조금 넘는 롱소드가 천근만근 묵직하게 느껴졌다.
세레라지에를 앞으로 보내고, 검을 가슴 앞까지 치켜들었다.
나무 바닥이 요란하게 울린 순간, 오른발을 뒤로 한 걸음 크게 딛으며 상체를 회전시켜 검을 찔렀다.
찰나, 놈의 눈동자에서 당황과 경악의 빛을 보았다.
내 검이 놈의 목을 파고들고, 퍽, 하는 소리가 늘어지게 났다.
놈이 달려오는 힘을 받아내느라 손목과 어깨가 욱신거렸다.
‘미래’의 행동대장이 목에서 피거품을 뿜으며 경련했다.
놈이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철퇴가 바닥에 떨어지며 철그덕, 소리가 났다.
단검과 곤봉을 쥐려 하던 기도들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나는 유유한 척 중앙계단을 내려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4층까지 다다르자 네 명의 기도가 3층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세레라지에가 내 옆구리를 툭 치며 속삭였다.
“쟤들은 어쩔 거야?”
“…….”
사람은 함께할 때 강해진다.
나는 그 결속을 찢기 위해 ‘나만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퍼뜨렸다.
이 방식은 적대 조직의 유대감을 갈기갈기 찢고 겁먹은 개개인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누구냐!”
“황금 악몽?!”
“잡아라!”
그 분위기를 맛보지 않은 자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망할.
“이 버러지들이 감히 누구 앞길을 가로막느냐! 심판의 날에 지옥으로 끌려가 유황불에 튀겨질 구더기들아!”
나는 발작적으로 악다구니와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계단 중턱에서 뛰어내리며 선두에 선 놈의 면상에 날아 차기를 날렸다.
코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놈이 쓰러지는 걸 흘깃 확인했다.
곧이어 허공에서 허리를 뒤틀며 착지, 검을 휘둘러 두 번째 놈의 허벅지를 깊게 베었다.
악을 쓰며 달려드는 세 번째 놈에게 검을 내지르려는 찰나.
“그만.”
하는 목소리가 4층 복도에 울렸다.
짧은 수염이 멋들어진 사내가 장도를 들고 있었다.
이국적인 형태의 코트가 인상적인 자로, 그 뒤로 서른에서 마흔 명쯤 되어 보이는 기도들이 따라붙어 왔다.
“백발의 사내여. 우리는 그대의 피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악몽을 두고 돌아가시지요.”
그는 마치 대단한 자비라도 베풀어 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대단한 자비가 맞았다.
마나가 바닥이라 제국 검술 일체개고도 못 쓸 상황이었다.
대여섯과 드잡이질을 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도망칠 곳도 없는 좁은 복도에서 수십 명을 상대할 힘은 없었다.
나는 그랬다.
“발렌시아누스.”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있어.”
“네가 진짜로 날 살려줄 수 있는 거 맞니? 폐하께 나를 천거해 줄 거니?”
나는 어색한 침묵이 찾아오기 전에 답했다.
확신을 주어야 할 때였다.
“당연하지. 누나 같은 마법사를 놓치는 건 제국의 손해라고.”
“폐하에게 선택받은 황족 마법사라면 홍등가 카지노 호텔 하나쯤은 말아먹어도 괜찮겠지?”
에라 모르겠다.
나는 망나니답게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세레라지에가 안심한 듯 옅게 웃으며 내 옆을 지나쳐 걸어 나갔다.
“잘 생각하셨소. ‘악몽’. 애꿎은 주변인까지 휘말리게 할 필요는…….”
“너희가 싫었지.”
뜬금없는 악평에 장도를 든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레라지에는 말을 이었다.
“도박이 싫었고, 도박쟁이들이 싫었지. 길거리에 나뒹구는 새끼들이 싫었고, 그 새끼들 아랫도리에 빠진 새끼들도 싫었어. 사실 마약이 싫었고 술도 싫었단다.”
“지금 무슨 말을…….”
“낙엽을 긁어모으듯 칩을 따고, 술과 약을 했지. 그래 봐야 가슴 속의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잖니. 그래서 내가 싫었단다.”
기도들이 강철 곤봉을 치켜들었다.
순순히 나오는 걸 보니 유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세라라지에는 곤봉을 못 본 듯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볕 잘 드는 방에서 책을 읽고 싶었지. 멋진 덩굴 식물을 기르고 싶었고, 주황색 고양이도 키우고 싶었단다. 마법은 언제나 좋았고, 학식 깊은 스승을 섬겼었지. 언젠가 장난꾸러기 제자를 두고 싶었어.”
나는 그녀의 어깨가 미미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왜 나한테 거짓말했니?”
장도를 든 사내가 혀를 찼다.
“미친년이구려. 고통 없이 보내주도록 하지.”
“다 잊을 수 있다고 했잖니?”
“쳐라.”
“다 잊을 수 있다고 했잖니!”
세레라지에의 남색 머리카락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파지지직!
푸른 전류가 발작적으로 튀며 벽과 바닥을 부수었다.
“너희는 약속을 어겼어. 나는 아프고 슬픈 과거를 다 잊을 수 있다는 너희 말을 믿었는데! 마법도 꿈도 다 잊어버리고 돈, 돈, 돈뿐인 도박쟁이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달려들던 기도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강철 곤봉이 전류를 끌어들인 탓이었다.
“저 아래층에서 도박에 빠져서 부모고 아내고 자식이고 다 날려버린 새끼들이 우글거리는데, 왜 나는 그렇게 못 되니?”
‘세레라지에.’
‘너랑 친구여서 기뻐.’
“남들은 기억 상실에 폐인이 되다 못 해 아예 뒈질 만큼 약을 빨았는데, 왜 상아탑 친구들의 기억은 더 선명해지기만 하는 거니?”
‘세레라지에!’
‘함께 마도의 끝을 보러 가자.’
장도를 든 사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콱!
세레라지에가 주먹을 쥐며 내뱉었다.
“그 잘나신 황제 폐하는 말 한마디로 내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산산조각 내버렸단다. 다시는 그때로 못 돌아간다고 말이야. 그리고 너희는 그 고통을 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잖니.”
“소인이 언제…….”
“그러니까 이건 다 약속을 어긴 너희들 탓이야.”
그녀가 팔을 앞으로 뻗으며 주먹을 폈다.
갇혀 있던 전류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공간을 잠식했다.
댐이 무너지는 듯한 기세로 전류가 뿜어져 나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와 달리 전기 마법은 아주 짧은 순간 펼쳐진다.
번쩍!
불이 꺼졌다 켜진 거 같았다.
서 있던 기도들이 반으로 줄었다.
어찌어찌 버틴 자들도 무기를 떨어트리거나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번쩍!
바닥에 떨어진 단검과 강철 곤봉들이 전자기력에 휩쓸려 파들파들 떨었다.
근육이 오그라들어 무기를 놓지도 못하는 기도도 여럿이었다.
번쩍!
장도의 행동대장이 수염이 타는 고통을 버텨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머리와 어깨에서 고기 타는 연기를 뿜어내면서도 눈빛만은 형형했다.
“젠장.”
세레라지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왼손을 들어 허공에 복잡한 도형을 그렸다.
전기 마법은 자세히 모르지만,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지팡이, 지팡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괴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다시 한번 푸른 불빛이 번쩍 빛나고, 장도의 사내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세레라지에가 마법을 쓰던 오른손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비틀거렸다.
손톱이 들리고 손등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나는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여기서 재능을 다 불태워버릴 생각이야? 마법 회로 다치겠다. 빨리 마나 갈무리하고 뛸 준비나 해.”
“이거 놔. 내가 이 새끼들을 다 태워 죽이지 않으면…….”
“시간 없어!”
그건 어느 주문보다도 강력한 힘이 담긴 마법의 말이었다.
세레라지에가 침음성을 흘리며 전류를 흩었다.
그러나 강력한 주문에는 강력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거기 서라!”
“놓치면 다 같이 파산이다! 너희 월급도 못 준다고!”
복도 저편에서 성난 고함이 들려왔다.
계단 위층에서도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위에서 기도 수십 명, 4층 복도 양쪽에서 또 수십 명씩이 몰려왔다.
“뛰어.”
나는 세레라지에의 손을 잡아채고 아래를 향해 달렸다.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와중에 일련의 무리를 마주쳤다.
“찾았다!”
“빨리 불러와.”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치켜들었지만, 내 앞을 막아선 기도들은 이제껏 보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한 손을 들어 대화 의사를 표하거나, 양팔을 교차하며 물러선 것이다.
“너희 뭐니?”
세레라지에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2층 왼쪽 복도에서 두 자루 소검을 든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뒤에서 찌를 생각이냐?”
나는 이유 없는 호의를 얼씨구나 하고 곧이곧대로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저는 적가면 누님과 같은 편입니다.”
“증거 있어?”
사내가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지나쳐 계단을 뛰어 올랐다.
“악, 아악!”
“너, 너!”
“배신이다!”
위에서 악악거리는 비명이 들려왔다.
“이거면 충분하십니까?”
소검을 든 사내가 시체 두 구를 계단 아래로 집어 던지며 내려왔다.
그사이에 맞았는지 제복은 찢어지고, 관자놀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죽여!”
더더욱 성난 기도 무리가 그 뒤를 따라 내려왔다.
“그래. 충분하네.”
나는 소검 사내를 쫓아 왼쪽으로 뻗은 복도를 달렸다.
“형님 오신다!”
소검 사내의 부하일 기도들이 호텔 방에서 가지고 나온 가구를 복도에 쌓았다.
적들을 몇 걸음 잡아둘 뿐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세레라지에를 데리고 ‘희망’까지 갈 수 있겠나?”
“문제없습니다. 전하.”
“부탁하네.”
세레라지에가 날카롭게 물었다.
“너는 어쩌려고?”
“맞고 도망치는 건 천성에 안 맞아서. 지배인 새끼한테 엿이라도 한 번 먹여 줘야겠어.”
“그럼 같이 가. 나라고 그런 성격 아닌 줄 알아?”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금색 눈은 나와 같이 이글거렸고, 푸른 눈은 나와 달리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한 번이야. 딱 한 방만 먹이고 바로 ‘희망’까지 도망칠 거야. 그리고 절대 무리하지 마. 누나 몸 상태 생각보다 안 좋아.”
“알았어.”
소검 사내가 검을 쥐며 말했다.
“퇴로는 확보해 두겠습니다.”
“미안하네. 사적인 복수에 휘말리게 해서.”
“아닙니다. 저도 ‘미래’ 놈들은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전하.”
전하,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썹을 움찔했다.
모르는 게 바보인 내 정체였지만, 대놓고 먼저 아는 척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그럼 부탁하지.”
나는 세레라지에와 함께 1층으로 향했다.
도박 테이블이 가득한 넓은 홀에 수십의 기도들과 열댓 명의 지배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래로 내려오는 우리를 본 ‘희망’의 지배인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참 많은 감정이 담긴 한 마디였다.
주변의 지배인들이 황급하게 떨어지고, 기도들이 몸을 움츠렸다.
나는 계단 난간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희망’의 지배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때 내 옆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복잡한 도형을 허공에 그리는 손동작도 함께 보였다.
“따르며 또 따르는 나의 번개여.”
나는 그 주문을 알고 있었다.
천재 세레라지에조차 아직은 영창과 수인을 함께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마법이었다.
“누나. 잠깐만…….”
“내 모든 적을 일소하소서.”
번쩍!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 전격이 넓은 홀 전체를 휩쓸었다.
거울에 반사된 빛처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모든 금속을 녹이고 모든 나무를 불태웠다.
수십 개 나무 테이블이 일제히 터지며 날카로운 파편을 튀겼다.
내가 다급하게 검을 휘둘러 세레라지에가 맞지 않도록 튕겨내야 할 정도였다.
기도들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고, 지배인들은 걷어차인 공처럼 튕겨 나갔다.
‘희망’의 지배인이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경련하는 게 얼핏 보였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지.”
세레라지에가 고양된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돌고 있었다.
“내가 딱 한 방만 먹인다고 하지 않았었어?”
나는 폭풍이 쓸고 지나간 거 같은 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딱 한 방에 끝냈잖아?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니?”
세레라지에가 결국 피가 터진 오른손을 망토 붉은 안감에 닦았다.
“사실 맞기는 하지만…….”
“아. 잠깐만. 많이 아프네. 눈앞이 막 돈다. 기절할 거 같아.”
그녀의 눈과 코,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발렌시아누스.”
그녀는 그 창백한 얼굴로도 웃으며 말했다.
섬뜩하지만 아름다웠다.
“나 진짜 천거해 줄 거니? 나 진짜로 당당하게 마법 쓰면서 살 수 있는 거니?”
‘다음 생에는 부디 당당하게 마법을 쓰며 살 수 있기를.’
나는 없던 일이 된 말을 떠올리며 그녀를 부축했다.
“응. 꼭 그렇게 해줄게.”
누나는 미래의 대마법사니까.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니까.
털썩.
쓰러진 그녀를 품에 안은 나는 폐허가 된 ‘미래’ 카지노 1층을 가로질렀다.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