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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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이상의 추격은 없었고, 우리는 무사히 북문 근처의 여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여관은 수도의 건물답게 고급스럽고 중후한 멋이 있었다.
건실한 영주의 영지에서도 3층 이상의 건물을 보기 힘든 시대지만, 수도답게 일개 여관도 5층이라는 규모를 자랑했다.
층고가 낮아 카지노 건물보다는 훨씬 협소해 보였지만, 그만큼 안락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서 제이릴리스가 내려 준 예산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5층에 방이 몇 개나 비어 있나?”
“지금 5층은 한 곳도 안 차 있습니다.”
“잘됐군. 앞으로 열흘간 전부 빌리겠네. 내가 시킨 룸서비스를 제외하면 아무도 올려보내지 말고, 우리가 왔다는 것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말게. 어긴다면 목을 치겠어.”
내 눈동자 색과 텐티아 경의 갑옷을 본 여관 주인은 곧바로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박비는 꽤 비쌌지만, 제이릴리스가 예산만은 넉넉하게 잡아주는 편이었기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아퀴나스가 물었다.
“아까 그런 놈들이 더 온다면 5층이 모두 비어 있는 게 더 위험하지 않겠는가?”
텐티아 경이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나는 신랄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도 올려보내지 말라 경고했으니, 감히 올라왔다는 건 그놈이 수상한 놈이라는 뜻이지. 이제 이 층에 누가 돌아다니는 게 보이면 손님인지 암살자인지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베어버릴 수 있다네.”
“그랬다가는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우리의 눈이 잠시 마주쳤고, 나는 절로 부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 입 다물게. 이 제국에서 제일 억울한 건 애를 둘이나 지켜야 하는 나야.”
나는 텐티아 경에게 절대 둘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
그녀 역시 정신 오염된 악어새 무리를 본 뒤로 이 일에 많은 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홀로 말을 달려 다시 황궁으로 향했다.
“나리! 도와주십시오!”
“멈춰라! 이곳은 기승이 금지된 거리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거리 곳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우려 했다.
전부 다 수상해 보여 몇 번이고 검 자루에 손을 얹었다.
피해망상에 걸린 기분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다행히 황궁에서는 아퀴나스의 계승권 포기에 대한 서류가 착실히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폐하의 서명은 오늘 오전에 받았고, 제 서명이 여기 있으며, 이곳에 아퀴나스 대공 전하의 서명이 들어가면 됩니다.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서명은 공증인이라고 쓰인 곳 아래에 넣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궁무대신이 사람 좋게 웃으며 준비된 서류를 내밀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는 나는 한 조항을 발견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왜 효력 발동일이 앞으로 사흘 후인가?”
“그날 후작 일가가 도착하니까요. 그전까지는 황가의 일원인 게 여러모로 낫기 때문입니다.”
황족에게는 황궁 출입부터 허가 없는 야간 통행 등 자잘하고 다양한 특권이 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면, 자칫하다가는 그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전에 후작 일가가 아퀴나스를 데려갈지도 모른다.
피로하실 테니 하루 이틀이라도 쉬어 가라고 애원해야겠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닐세.”
이를 악문 나는 담담한 척 궁무대신에게 서류를 받아 들었다.
서류는 보존 마법을 비롯한 다양한 마법이 걸린 양피지에 작성되었고, 잉크 역시 연금술사들이 황금 가루와 더불어 위조 방지를 위한 수십 가지 염료를 섞어 만든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전용 펜까지 품속에 잘 숨기고, 맛없는 커피를 거절한 뒤, 다시 여관 쪽으로 향했다.
악어새들과 만났을 때부터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니었기에, 해가 긴 여름임에도 벌써 꽤 어둑어둑했다.
“가자.”
어둠 속에서 말발굽 편자와 바닥이 부딪힐 때마다 작은 불꽃이 튀었다.
삐이이이익-!
“곧 해가 떨어집니다! 곧 해가 떨어집니다.”
야경꾼들이 호각을 불며 사냥개를 끌고 외각부터 골목골목을 순찰하기 시작했고, 부유한 거리의 상회에서 고용한 가로등지기들이 곳곳의 기름 등에 공기구멍을 열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제국의 도시들은 야간통행금지가 기본이었다.
이는 도둑과 방화범, 첩자를 잡기 위한 필수적이고 상식적인 조치였다.
귀족들이 주로 방문해 자체적인 경비병을 보유한 부유한 상가 거리를 제외하면, 밤의 도시는 모든 불이 꺼지고 적막이 찾아왔다.
분주히 귀가하는 시민들 사이를 지나치며 나는 말을 달렸다.
“젠장.”
저 멀리 여관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매캐한 냄새를 맡은 텐티아는 다시 울기 시작한 아기를 뒤로하고 방문 앞에 섰다.
“경. 나가야 하지 않겠나?”
아기를 안은 아퀴나스가 떨리는 목소리도 물었다.
그녀는 방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짧게 답했다.
“저희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수작일 수 있습니다. 부디 침착하게 앉아 기다려 주소서.”
오랜 시간 훈련받은 텐티아는 반사적으로 주변의 상황을 분석했다.
‘석조 건물인 만큼 불에 탈 건 많지 않다. 건물이 무너질 위험도 없어. 우연이라면 곧 꺼질 거다. 안에서 발렌 대공 전하를 기다리며 농성한다.’
쿵쿵쿵쿵.
거친 발소리가 복도에서 울렸다.
자각자각, 자각자각, 거대한 벌레가 빠르게 도망치는 듯한 소리도 함께.
아퀴나스가 비명을 삼키며 문틈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연기를 가리켰다.
“경!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지 않겠나? 이대로 있다가는 태 죽거나 질식해 죽을지도 모르네.”
“나갔다가는 아기가 질식할지도 모릅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훈련받은 암살자가 전하와 아기를 노린다면 저 역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피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제가 전하와 아기를 안고 뛰어내릴 것이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뛰어내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기 높이가 낮아도 12m은 넘을 텐데!”
아퀴나스의 말은 비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텐티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훈련 때는 15m에서도 뛰어내렸습니다.”
쿵쿵쿵쿵!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스르릉, 텐티아는 장검을 뽑아 들고 문 정면을 향해 겨누었다.
‘황제 폐하는 친족들을 견제하시고, 아퀴나스 대공 전하는 사생아를 두고 계승권을 포기하려 하신다. 망나니 발렌 대공은 기이한 일들을 몰고 다니고, 후작 부인은 조카를 데려가려 한다.’
폐하는 사생아를 죽이려 하실 거고, 후작은 사생아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단다.
발렌 대공이 의심하는 제3의 세력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들은 아퀴나스 대공을 노린다.
“목적은 내전인가?”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방금 뭐라 했나?”
아퀴나스의 물음을 무시하면서.
그리고.
텅텅, 텅텅텅, 텅.
노크 소리가 일정한 박자대로 울렸다.
“전하?”
“나일세.”
발렌시아누스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래층 식당에서 튀김을 만들다 기름 솥을 쏟아 불이 났다더군. 보아하니 기름만 좀 타고 꺼질 거 같아 다행이네. 이제 문 좀 열어 주게나.”
텐티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열쇠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셨습니까?”
짧은 탄식과 함께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문 안쪽에 재빠르게 사슬을 걸었다.
철커덕, 문이 중간에 멈추고 검을 뽑아 든 그녀를 본 발렌시아누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지키고 있었군.”
“전하가 맞으셨군요. 다행입니다.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라 많이 놀랐습니다.”
“나도 오는 길에 보고 놀랐네. 대놓고 습격을 받은 줄 알았어. 혹시 연기 외의 특이사항은 없었나?”
“이렇다 할 만한 건…… 아.”
텐티아는 사슬을 열고 복도로 나가 천장을 가리켰다.
“이쪽에서 뭔가 발 여럿 달린 벌레 같은 게 기어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경이 들었다면 잘못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눈이 마주친 둘은 곧바로 검을 뽑아 천장 곳곳을 쑤셨다.
만에 하나를 넘어갈 수 없는 삶을 살아온 둘이었다.
푹, 쑥.
가볍게 뚫린 천장에서 깨끗한 검이 뽑혀 나오기가 몇 번, 텐티아가 먼저 침음성을 흘렸다.
“대공 전하. 보십시오.”
긴 검 끝에 토막 난 지네의 몸통 조각과 체액, 약간의 은가루가 묻어 있었다.
“마물보다는 작군. 이상한 기운도 느껴지지는 않고.”
“하지만 그냥 독벌레라도 아기나 아퀴나스에게는 위험할 겁니다. 게다가 은이 왜 묻어나오는지도 모르겠군요.”
“독충도 대비해야겠군. 은가루 나온 쪽은 더 찌르지 말게. 여관 주인이 언데드나 고스트 대책으로 은가루를 뿌려놓았을 수도 있으니.”
이제 되었다는 듯 발렌시아누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텐티아는 밤마다 발렌시아누스가 불침번을 서고 천장과 구석을 확인하는 걸 보았다.
그가 피로로 우묵하게 들어간 눈을 서늘하게 빛나며 온종일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녀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는 아퀴나스의 옆을 지키는 일에 일종의 강박까지 느끼는 거 같았다.
그 긴장이 무색하게도 사흘은 아무런 문제 없이 흘러갔다.
마침내 후작의 도착 예정일이 됐고, 오후 2시쯤 궁무부에서 사람이 왔다.
“오늘 4시 즈음에 플라니티에스 후작이 와이번핏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궁무대신이 조촐하나 정갈하게 맞이할 것이며, 폐하께서는 납시시지 않을 것이옵니다.”
“알겠네. 늦지 않게 도착하지. 아퀴나스. 짐 싸게.”
발렌시아누스가 아퀴나스를 향해 말했다.
아퀴나스는 움찔거리는 담요 더미를 몸으로 가리고 어색하게 답했다.
“아, 알겠네.”
궁무부 행정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담요 더미를 바라보았다.
“저, 대공 전하. 혹시 저 안에 누가 들어 있기라도 하는 겁니까? 담요가 움직인 거 같았사옵니다.”
텐티아는 내심 탄식하며 행정관을 기절시켜도 될지 고민했다.
발렌시아누스가 민망하다는 듯 행정관의 눈을 피하며 답했다.
“내가 길거리에서 불러온 여자일세. 저 친구 이제 후작 가문에 들어가면 죽은 듯 살아야만 할 텐데, 마지막으로 좀 즐기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예?! 아니, 사람이 들어갈 크기가 아니잖습니까? 얼마나 어린아이를 불러오신 겁니까?”
텐티아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발렌시아누스가 얼굴근육을 부르르 떨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게 분노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수치심 때문이라는 걸 알아보았을 것이다.
“자, 자. 나가게!”
발렌시아누스는 행정관을 걷어차듯 문밖으로 밀어내고 아퀴나스를 싸늘하게 흘겨보았다.
“발렌시아누스…….”
“앞으로도 그렇게 멍청한 개X끼처럼 허둥거리고 있어도 좋아.”
“방금 뭐라고 했나?”
“애랑 같이 뒈지고 싶으면.”
“!”
“나랑 같이 있을 때는 그따위로 굴지 마. 지금 이게 장난인 거 같아? 나는 네 애 때문에 황제 폐하를 속여야 할 판이야. 소드마스터이자 6서클 대마법사를 속여야 할 판이라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금빛 눈동자를 마주한 아퀴나스가 몸을 굳혔다.
“빨리 짐 챙기고 애 숨겨. 네 고모님 거의 다 오셨다니까. 그리고 여기 서명하고. 오늘 자정부터 효력 발동이다.”
발렌시아누스가 가지고 있던 서류와 잉크 병, 전용 펜을 꺼냈다.
아퀴나스는 묵묵히 서명을 마쳤다.
그 모습을 보며 텐티아는 생각했다.
발렌 대공은 절대 생각 없는 망나니가 아니라고.
어쩌면 그에게 명예를 가르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 *
텐티아는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하늘과 녹슬지 않는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을 올려다보았다.
서임 받은 뒤로 몇 번 와본 곳이었고, 앞으로 몇 년 뒤에 그녀 역시 와이번을 하사받으면 출입이 일상이 될 곳이었지만, 아직은 이 거대함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와이번핏, 직역하면 비룡 구덩이라 불리는 이곳은 제국 국력의 상징이었다.
일대의 건물은 깔끔하게 철거했고, 와이번핏과 100m도 넘는 거리를 두고 높은 울타리를 쳐 시정잡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제국의 정예병들과 고위 사제, 비밀스러운 궁정 마법사, 청은기사단의 선임 기사들이 상주했다.
그곳은 입구만 해도 서른 명의 기사가 나란히 말을 달릴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아래쪽만 보면 초대형 콜로세움 같았지만, 뒤집힌 거미 다리처럼 솟아오른 강철 뼈대 위에 몇 중의 마법이 걸린 강철 그물을 씌워 돔이나 새장처럼 보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제국 황제들은 대대로 이 안에서 와이번을 길렀다.
“가지. 3구역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발렌시아누스는 텐티아보다도 능숙하게 와이번핏에 발을 들였다.
황궁만큼이나 거대한 건축물 안에서 조금도 헤매지 않았다.
텐티아는 그가 방향 감각이 좋은 게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와 본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콜로세움의 옥상이자 와이번 착륙장에 다다랐다.
“오셨습니까?”
“앉아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궁무부 행정관들과 노령의 궁무대신, 와이번핏을 수호하는 병사들과 궁정 마법사들이 미리 약속된 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요.”
아퀴나스는 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콜로세움의 안쪽, 구덩이에 해당하는 부분만 지름이 700m는 되어 보였다.
반대쪽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들이 딛고 선 콜로세움을 위에서 바라보면 원형 띠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 띠의 폭도 100m에 달했다.
“이곳에서 와이번을 몇 마리나 기르는 건가?”
청은 기사가 답했다.
“성체만 180마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쥬브나일과 헤츨링을 포함하면 500마리도 넘습니다.”
“어마어마하군.”
아퀴나스는 텐티아와 발렌시아누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텐티아는 저 아래 와이번들을 보며 압도와 동경 사이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발렌시아누스는…… 마치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엇을?
아퀴나스의 그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병사들과 행정관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발렌시아누스와 궁무대신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와이번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키이이이이-”
타지에서 동족들을 만난 기쁨인지, 아니면 기선제압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울렸다.
피어가 실린 울음이 아님에도 행정관들과 아퀴나스는 무릎이 떨리는 걸 느꼈다.
아무리 그 핏줄이 쇠락했다 해도 와이번 역시 용종이었다.
“열어!”
마법사들의 신호에 따라 거대한 기계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들이 서 있던 3시 방향의 그물이 좌우로 젖혀졌다.
다섯 마리의 와이번이 속도를 줄이며 그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색색의 비늘과 뿔이 잔뜩 난 아가리, 익폭이 20m에 달하는 질긴 날개.
“워, 워.”
와이번이 착륙하고, 조련사들이 다급하게 달려가 고삐를 잡아 안쪽 구덩이로 내려가는 와이번용 계단으로 끌고 가고, 다섯 남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행정관인지 마법사인지 모를 여인이 한 명, 판금 갑옷을 입은 호위 기사가 남녀 각각 한 명, 그리고 후작과 후작 부인이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후작 부부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춘다고 생각했다.
후작은 짧게 자른 검은 머리에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왕성한 인상의 미중년이었고, 후작 부인은 물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고아한 미인이었다.
둘 다 흉갑 위로 제복을 걸친 기사 식 정복 차림이었는데, 그 제복은 금실과 색색의 술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한때 왕가였던 대귀족인 만큼 그들도 엘프 등 강력한 이종족의 피가 짙게 섞여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귀나 손가락 끝의 형태가 보통 사람과 약간씩 달랐다.
아퀴나스 역시 황궁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몸이었다.
후작이 자신을 마냥 환대할 이유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구나. 아퀴나스. 마르테 아팔렌사 플라니티에스다. 내 아들이 되어 주겠다니, 정말 고맙구나.”
그래서 후작이 그를 와락 포옹했을 때 그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눈만 부릅떴다.
-계승권 박탈까지 앞으로 8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