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3화
(33)
세레라지에는 상아탑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시선을 받았다.
“세레라지에?”
“황녀님!”
“오랜만이야!”
“미안해. 그동안, 그동안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면서도……!”
접수처의 사람들까지 뛰쳐나와 소식을 묻고, 걱정했다고 말하고,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아예 자기 스승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자까지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그들을 진정시키고, 지팡이를 사려고 왔다는 뜻을 전했다.
마법사들은 내부인용 승강기로 셋을 안내했고, 그녀는 능숙하게 석조 벽면에서 발광하는 고대 문자를 조작하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승강기가 움직였다.
“하하.”
그녀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기쁨 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모든 게 익숙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도.
비슷한 사람들 속에 있는 건 언제나 즐거웠다.
“세레라지에 대공 전하. 방금 무얼 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때 그녀의 상념을 깨는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아, 루디 너는 못 읽겠구나. 엘프어야. 서클 마법은 엘프들이 만든 거라서 마도서는 대부분 엘프어로 쓰지. 방금 내가 한 건 60층으로 올라가겠다고 한 거란다.”
그녀는 특별한 마법사답게 친절히 답했다.
“60층이요?”
“상아탑은 위로 100층까지 있어. 높이는 500m. 높지?”
“500m이요?!”
루디가 기겁하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건가요?”
“잘 짜인 바람 마법진이 반영구적으로 새겨져 있어. 마나만 불어넣으면 알아서 움직이지.”
“우와.”
경탄하는 루디와 불안한 눈빛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발렌시아누스를 보며 세레라지에는 현실로 돌아왔다.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다시 상아탑에 다니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이복동생 발렌시아누스는 상아탑에서 마총을 얻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협박 재료를 들고 와도 그걸 들어주실 리는 없지. 그건 우리의 치부니까. 하지만 그럼 이 녀석이 어디로 튈지 몰라. 어제 옆 공방 애가 와이번핏 쪽에서 큰 소란이 있었다고 하던데……. 설마 여기서까지?’
발렌시아누스가 어떤 비밀이나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도 않았다.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 찾아가는 사람은 더더욱.
한번 해 봐라, 그리고 다쳐 봐라.
그런 마음도 없다고는 못 했다.
하지만.
‘다짜고짜 배에 검을 찌른 다음에 그걸 돌리면서 마총 팔면 뽑아줄게! 이러지는 않겠지?’
마음속에서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주술 회로 새겨진 전신 판금 갑옷의 발전에 따라 전투마법사들의 교리도 바뀌었다.
이제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그 갑옷을 뚫고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
따라서 전투마법사들은 대개 먼 거리에서 병사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강력한 광역 마법을 쓰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스승님이…… 워록이셨던가?’
전투마법사조차 그러한데, 일반 마법사라면 기사가 검을 뽑자마자 몸이 꿰뚫릴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알기로 발렌시아누스는 백금기사단의 기사를 쓰러트렸고, 텐티아에게 검을 배운 실력자였다.
“아.”
세레라지에는 익숙지 않은 고민에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마법 외의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건 언제나 불쾌한 일이었다.
그래서 승강기에서 내려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대응이 늦었다.
“시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뭐?”
“시녀분은 로비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또래로 보이는 마법사가 지팡이를 바닥에 짚으며 문 앞을 막아섰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거나, 지난 1년 동안 새로 들어온 유망주일 것이다.
그리고 스승은 별 볼 일 없는 녀석은 실험체로 써버릴 테니, 지난 1년 동안 새로 들어온 유망주이리라.
세레라지에는 우선 발렌시아누스가 검부터 뽑을까 눈치를 살피고, 혀를 차며 말했다.
“루디도 귀족 출신이란다.”
“선배. 아시잖습니까? 이곳에서 세속의 신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법사의 탑에는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루디는 자신 때문에 그가 싸우는 걸 바라지 않았다.
“발렌 님. 밖에서 기다릴게요. 여기 소파도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어지간한 그녀도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 로비가 아니라 1층 로비입니다.”
마법사가 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본래 계단을 이용하셔야 하지만, 세레라지에 선배와 함께 온 만큼 특별히 승강기는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세레라지에는 발렌시아누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걸 보았다.
황족으로서 이번만큼은 그녀도 그의 분노를 이해했다.
시녀를 이렇게 대한다는 건 시녀를 데려온 사람까지 무시하는 거였다.
“마법사 한 놈이 감히-!”
“전하!”
발렌시아누스가 허리에 찬 검으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 루디가 그의 팔을 힘껏 붙들었다.
“전하.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와 보고 싶던 곳인데, 거리를 둘러보고 있겠습니다.”
“루디. 놔.”
“몇 시간만 휴가를 주십시오.”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세레라지에도, 입구의 마법사도, 발렌시아누스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며 이 자리에서 유일한 비마법사는 말했다.
“발렌 전하도 일하고, 세레라지에 전하도 일하고, 저 마법사도 일하고 있는데, 저만 휴가면 제가 제일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또 같이 와주신다면, 음. 그때 가볼 만한 곳 찾아 놓을게요.”
발렌시아누스가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세레라지에는 그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밝고 넓은 거리에서만 놀고, 소매치기 조심하고, 이거 다 쓰고 올 것.”
그가 루디에게 금화 세 닢을 건네주었다.
“이거…… 하루 만에 다 쓸 수 있는 돈인가요?”
루디는 그렇게 답했다.
입구의 마법사가 웃었지만, 세레라지에는 웃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웃었을까?
모르겠다.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 *
방 안은 넓고 호화스러웠다.
백색 대리석 일색이던 외벽과 달리 여기저기 붉은 보석과 은으로 만들어진 장식이 잔뜩 붙어 은은하게 빛났다.
“제대로 된 지팡이는 상아탑에서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고?”
“기사가 마검이나 성검을 만들어 파는 거 봤어?”
“그렇게 들으니까 이해가 확 되기는 하네.”
“그런데 가끔 자기가 원하는 검을 자기가 만들려고 하는 기사들도 있잖아. 최소한 재료를 구해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지.”
우리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이 방의 주인인 대마법사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주인도 없는 방에 들어와 있는 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 저질러야 할 짓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그래. 보통 지팡이까지는 돈으로 구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발품을 팔아야 하지.”
“그럼 이름 있는 지팡이 대부분은……”
“보통은 필요한 마법사가 재료를 구해다 마도구 장인에게 맞춤 제작을 맡기지.”
“그 재료가 무슨 보석, 무슨 나뭇가지 같은 거고?”
“응.”
“그리고 보통은 남이 만들어놓은 귀한 지팡이를 날름 받으려고 찾아오지는 않지.”
허공에서 붉은 전격이 튀고 소프라노같이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마법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번개를 타고 하늘을 달리는 최상위 이동마법으로 지금은 실전된 순간이동과도 맞먹는 기동성을 자랑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마주 보는 소파 자리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마법사보다는 일류 패션 디자이너 같아 보일 정도로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비단결같이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포도주같이 붉었고, 눈은 큼지막한 깃털 달린 모자에 드리운 망사로 가렸다.
속이 은은하게 비치는 긴 검은 비단 드레스 위로 깊은 주름이 물결치는 유광 남색 드레스를 입고, 회색 늑대의 모피로 만든 숄을 어깨에 걸쳤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는데, 검은 금속 재질에 주먹만 한 석류석이 박혀 있었다.
“1년 만이구나. 세레라지에.”
그녀가 반갑게 인사하자, 세레라지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겁결에 나도 따라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게스타르테 스승님. 못난 제자가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는 사제 상봉의 순간을 보며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위압 당하지 않으려고.
그녀를 전생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마흔 무렵이었지만, 눈앞의 여인은 그때도 지금과 같은 외형이었다.
게스타르테라 불리지만 이름, 출신, 나이는 불명.
전격 학파 최고의 실력자로 섬겨지며, 고고히 전격의 진리를 추구한 끝에 거대한 뱀을 닮은 고대 신에게 그 영육을 바치고 침식되었다.
옛신을 충분히 품을 수 있는 그릇이라 제이릴리스조차 상당히 고전했었다.
나도 붉은 벼락을 연속으로 서른 발쯤 맞고 꼼짝없이 타 죽을 뻔했었다.
“지팡이를 받으려고 왔지?”
“네.”
“잘도 대답하는구나.”
쓰게 웃은 게스타르테가 손을 휘둘렀다.
한쪽 벽의 서랍들이 줄지어 열리고 지팡이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는 그 지팡이들이 정확히 뭐가 다른 건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세레라지에는 금은 요동을 반짝이며 그쪽으로 달려 나갔다.
“보고 있으려무나. 대공 전하께서 내게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으니.”
“네!”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와 게스타르테는 동시에 슬며시 웃었다.
“저게 마법사의 정상적인 반응이지.”
“사람으로서는 비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둘 중에서 한 명이라도 걱정해야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너만 걱정하면 될 테니. 네 여동생 말고 날 압도할 수 있는 인간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으니까.”
“너? 네 여동생? 뭐, 저는 그렇다 쳐도 황제 폐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게스타르테가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로서는 존경하지. 황제로서는 아니야.”
나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경하다.”
“들어올 때 내 새 제자에게 들었겠지. 이 안에서 세속의 작위는 의미 없단다. 정확히는 세속의 모든 게 의미 없지. 우리는 피와 운명에 선택받은 자들이고, 운명이 우리를 선택하도록 한 자들이야. 특별하지.”
“그런 거치고는 금을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세속의 걸 탐하지 않아. 너희가 그걸 중요하게 여기기에 우리도 그걸로 값을 받는 것뿐이야. 그건 인정해. 사회와 교류하는 게 더 편하기는 하지. 분업은 효율적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더 효율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일 뿐.”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와 납득 사이에는 꽤 깊은 골이 있었다.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신랄하게 조소하며 말했다.
“그런데 도둑질은 왜 합니까?”
화염구를 터뜨리는 듯한 말이었다.
“도둑질?”
“자동서기, 울그림의 펜촉. 세속의 걸 탐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너무 세속적인 행동 아닙니까?”
게스타르테의 얼굴에 일순 경련이 읽었다.
뒤쪽에서 신나게 지팡이를 휘둘러보던 세레라지에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구름에서 땅으로 떨어진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모른다는 말씀 하지 마십시오. 몇 중으로 의뢰를 하면서 배배 꼬아 놓았지 않으셨습니까? 몰랐다는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마탑 원로가 아니십니까? 알았으면 동참이고 몰랐으면 무능입니다.”
나는 그녀의 소중한 사람을 비난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죄책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말이 길다. 요구사항이 있는 모양이구나.”
게스타르테가 요점을 찔렀다.
“제게 마총을 파십시오.”
나는 기다리던 본론을 꺼냈다.
“안 돼. 그건 우리들의 물건이다.”
그리고 시원하게 거절당했다.
“그럼 폐하께 보고하겠습니다.”
“아무리 제이릴리스라도 상아탑과 정면으로 붙을 거 같지는 않구나.”
반만 맞는 말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상아탑하고 정면으로 붙을 필요 없습니다.”
“뭐?”
“게스타르테 당신만 지목하면 됩니다. 상아탑이 뭉쳐 함께 싸워 줄 걸 기대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자기 진리를 추구하느라 바빠서 속세와의 연까지 끊어 버린, 꿈꾸는 자들이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너.”
“1년 전에 세레라지에 누나가 황궁으로 끌려왔을 때도 똑같습니다. 이미 한번 들어왔으면 나갈 수 없다. 전쟁이다. 그렇게 선포했다면, 등하교 식으로라도 상아탑에 보내주었을 겁니다. 당신이라도 이 악물고 원로들을 설득했다면 최소한 누나가 홍등가까지 가지는 않았겠지요.”
나는 신랄하게 일갈했다.
회귀 전 세레라지에의 최후가 떠올라 잠시 울컥했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죽어도 될 사람이 아니었다.
“이 무심하고 이기적인 자들.”
“너……!”
게스타르테의 이마에서 붉은 불꽃이 튀었다.
옛날이야기 속 현자들과 달리, 마법사들의 인성은 대개 개차반이었다.
현실이 마음에 안 들면 현실을 바꿔버릴 수 있는 자들은 주변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상대는 최소 6서클, 서클 마법 외의 무언가를 익혔다면 얼마나 강할지 모를 전기마법사였다.
그때 등 뒤에서 푸른 전기가 튀었다.
“스승님.”
지팡이 하나를 집어 든 세레라지에가 어느새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 * *
세레라지에는 지독한 두통을 느끼며 친애하던 스승을 바라보았다.
마법 외의 걸 생각해서 생기는 두통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감싸주지 않은 건.
세레라지에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긴 1년이었습니다. 스승님.”
그녀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져 한쪽 눈은 반짝이고, 한쪽 눈은 빛을 잃고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마법사는 꿈꾸고, 추구하고, 갈망하는 존재지요.”
“그렇지.”
“저. 하늘만 보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우물에 빠져 있었습니다.”
게스타르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꿈꾸기 위해 살지만, 꿈꾸려면 발밑에 뭐가 있는지 봐야 할 거 같아요.”
단지 옛 제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줄 뿐.
“하지만 스승님은 우물에 빠져 죽는다고 해도 깨어날 분은 아니지요.”
“좋은 비유구나.”
“제가 스승님 발밑을, 상아탑의 발밑을 살피겠습니다.”
숲속에서는 숲을 볼 수 없었다.
이제 세레라지에는 상아탑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아탑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향에 애정을 품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게 된 고향을.
“한쪽 눈만 감고 꿈꿀 수는 없는 법이다.”
게스타르테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레라지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황족이자 마법사입니다.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둘 다 저입니다.”
머리가 미친 듯 아팠다.
“폐하에게 공방을 받았습니다. 궁정 제일의 마법사가 되겠습니다. 상아탑 출신 궁정 마법사로서. 둘 모두를 대표하겠습니다. 상아탑의 말을 황실에 전하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분명히 무너지고 망가지게 될 거다. 한 사람이 두 곳에 속할 수는 없어.”
“사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려 했습니다.”
게스타르테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않았다고 믿는 게 더 즐거울 거 같습니다.”
“양 갈래 길을 동시에 가려다가는…….”
“그게 오늘부터 꾸게 된 제 꿈입니다. 추구하고 갈망하는 목표입니다.”
제자의 선언을 들은 전격학파 원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이복 남매는 자기가 유리한 순간을 골라 화두를 바꾸는 재주가 있더구나.”
세레라지에는 발렌시아누스를 노려보았다.
발렌시아누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새삼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대로 하는 게 꽤 즐거울 거 같아서 섬뜩했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들려 했다고 말했지요?”
“그래.”
“그 의심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십시오. 마총으로요.”
“지팡이로는 부족하니?”
“상아탑 제자를 설득시켰으니, 황실 궁정 마법사도 설득시키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