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38화 (38/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7화

(37)

수도 시장 뒷골목을 지배하는 깡패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야, 야.”

“저분 누구냐?”

“기사 아니야?”

“기사가 여기 왜 와?”

어제는 갑자기 어보미네이션이 나와서 온갖 높으신 분들이 와서 난리를 치더니, 오늘은 해도 제대로 안 뜬 아침부터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쇳소리를 내며 시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제 막 좌판을 펼치는 가게 주인도, 소매치기 꼬맹이도 숨을 삼키며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너희들, 물어볼 게 있다.”

“튀어!”

이내 골목에서 고개를 내민 깡패들을 발견한 텐티아는 그곳으로 성큼성큼 달려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깡패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지만, 한번 가속이 붙으면 1초에 30m 이상을 움직일 수 있는 기사를 따돌릴 수는 없었다.

뒤통수를 떠밀려 엎어지거나, 강철 군화로 등을 걷어차이거나, 목덜미를 잡아 채여 자빠지거나 하며 그들은 바닥을 굴렀다.

“아악, 아악! 나리, 살려주십시오! 나리!”

“제 발로 걸어가겠습니다!”

“아, 진짜 아무도 안 죽였다니까요!”

“저, 혹시 나리께서는 어떤 기사단 소속…… 실례했습니다.”

명예로운 기사는 시장 깡패들과 협상하지도, 대화하지도 않았다.

존중은 기사의 덕목이었지만, 같은 격의 기사들과 휘하의 병사들, 여인과 성직자들에게만 지키면 되는 덕목이었다.

“이익!”

퍽!

단검과 망치를 들고 저항하려 하는 자도 있었지만, 강철 건틀릿 낀 주먹 안에서 단검과 망치가 으스러지고 부러지는 걸 본 자들은 대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텐티아는 기사답게, 그들이 자비를 받아 마땅한 모양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악, 아악! 나리!”

“뭘 물어는 보고 패셔야 할 거 아닙니까?”

“뭐든지 말하겠습니다. 예? 인신매매요? 저희는 그런 거 안 합니다. 예? 아악, 아니요. 한 번, 한 번 했습니다.”

“아악, 아니요. 사실 저 친구가 거짓말한 겁니다. 여러 번 했습니다. 시체도 쓸 데가 있다길래 다 팔았습죠.”

“이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텐티아의 전투화가 사정없이 날았다.

침식자들과 범죄자들에 대한 본능적인 적대감.

황족과 함께 암약하는 침식자들을 비밀리 상대한다는 임무가 주는 두근거리는 고양감.

그리고 제 후배 본넬의 고간을 걷어찼던 망나니 발렌 대공이 제국의 흉사를 외면하지 않고 나선다는 사실의 기특함.

이 세 가지 감정이 섞인 젊은 기사의 심장은 낭만에 들떠 빠르게 뛰었다.

‘이 또한 빛께서 인도하신 것이겠지.’

“아는 대로 말하거라!”

이내 깡패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정보 대부분을 긁어낸 텐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100명?”

어지간한 수가 나올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백 명은 상정 이상의 숫자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팔아넘겼다는 말이냐?”

“항쟁 한번 하면 십수 명씩 죽습니다. 거기에 납치랑 이것저것 더하면, 하루에 열 명을 쉽게 넘기죠.”

호기롭게 나섰던 두목을 자근자근 짓밟으며 텐티아는 생각했다.

예상외로 일이 커지고 있었다.

기사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 * *

발렌시아누스는 빈민가 근처 위병 순찰 초소를 찾아갔다.

가장 실종자나 사망자가 많이 생기는 곳이었다.

‘황족 나리’의 방문에도 맞아 주는 이 하나 없었다.

“응?”

순찰 초소는 텅 비어 있었고, 근처 술집에서 흉악하게 생긴 사내들과 위병들이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세금 도둑놈들이!”

발렌시아누스는 성질대로 움직였다.

쾅!

곧바로 술집에 성큼성큼 들어가 위병의 얼굴을 테이블에 처박은 것이다.

“살고 싶다면 내가 묻는 대로 답해라. 첫 번째, 근무 시간에 뭘 하고 있는지. 두 번째, 눈앞의 덩어리와는 무슨 관계인지.”

‘덩어리’라 표현된 눈앞의 사내가 눈썹을 찌푸렸다.

“높으신 분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납시셨습니까? 거, 일 이야기 하는 중인데 좀 놔 주십시오.”

“너는 뭐 하는 놈인데 위병과 일 이야기를 하느냐?”

“아. 새로 부임하신 감사관 나리신가 보네. 나리. 제가 술값 좀 찔러 드릴 테니…….”

쾅!

발렌시아누스는 덩어리의 머리에 검 손잡이를 내리쳤다.

달걀만 한 쇳덩이에 맞은 덩어리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졸졸졸졸.

술을 덩어리의 머리에 부어버린 발렌시아누스는 벌벌 떨고 있는 두 번째 위병에게 물었다.

“최근 시체를 발견하거나 지하 수로에 던지는 걸 목격한 적 있나? 바른대로 답하지 않으면 네놈과 이놈을 사이좋게 변소에 던져 주겠다.”

빌어먹을 침식자 놈들.

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집을 무너뜨리려는 놈들.

집주인이 돼서 그걸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 * *

세레라지에는 내심 만족스럽게 이 모험에 뛰어들었다.

제이릴리스의 사전 허가 없이 침식과 옛 것들에 관한 연구 표본을 얻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혈통의 정점인 황족은 그 재능만큼이나 침식률도 높았다.

침식 수용성 자체가 마나 수용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었다.

“이 평민들의 몸에 옛것들이 바로 강림하지 못하는 게 그 덕분이잖니.”

“예, 예.”

“세레라지에 님 말씀이 옳으십니다.”

마법사의 로브만 보고도 반항할 생각을 완전히 버린 시체안치소의 병사들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그녀에게 복종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시체가 이 꼴이 돼서 나오면 의심을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니?”

세레라지에는 종이봉투 안에 시체 손가락 하나를 떼어서 집어넣었다.

똑, 소리가 났다.

시체는 체액이 완전히 빠지고 말라비틀어져 수백 년은 지난 미라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 시체 수십 구가 안치소에 놓여 있었다.

“지하 수로가 지면으로 올라오는 부분에 엉켜 있었다니?”

“예, 예.”

“한 번에 너무 많이 쏟아지니 슬라임들이 소화하지 못했나 봅니다.”

세레라지에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천재 마법사인 그녀는 금붕어 사이에 홀로 사람이 된 기분을 오랫동안 느껴 왔다.

아직도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면 말해 봐야 소용없었다.

그 슬라임들이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시체가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 * *

“발렌 대공.”

“예. 황제 폐하.”

제이릴리스는 최근 검은 옷을 좋아하게 되었다.

피가 몇 방울 튀어도 티가 잘 안 난다나 뭐라나.

백금발이 검은 드레스 위로 치렁치렁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자니 꼭 정교하게 만든 인형 같았다.

“그 시종이 짐의 차에 독을 넣었다. 어찌 처형하면 좋겠는가?”

시종 하나가 기사들을 붙들려 단상 아래 무릎 꿇고 있었다.

나는 경멸의 눈빛으로 시종을 바라보았다.

가혹할 때는 가혹해야 하는 법이다.

암살 시도를 용납해 줄 수는 없었다.

“목을 베고 와이번핏에 보내시지요. 아니, 굳이 목을 벨 필요도 없을 거 같습니다.”

“와이번핏? 오호. 그거 좋구나. 역시 그대는 짐의 혈육답게 명석하군.”

“전쟁용으로 쓰는 아이들이니 사람을 사냥하는 법을 잊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할 듯했습니다.”

황제가 손짓하자 기사들이 움직였다.

시종은 비명과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발버둥 쳤지만 결국 홀에서 끌려 나갔다.

민심이 흉흉한 이 시기에 효수 따위를 할 수는 없었으니, 이게 본보기를 겸하면서도 인력 낭비를 막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이건 제이릴리스가 한 발상이 아니었다.

우리는 쌍둥이다.

비교당하기 딱 좋았다.

이 상황에서 제이릴리스를 올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나를 낮추는 거다.

나는 나를 제이릴리스보다 욕하기 쉽게 만들어줘야 했다.

“이왕이면 폐하, 이 처형법에 제 이름을 넣어 주십시오. 누구의 발상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죄인들에게 알리고 싶사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제이릴리스가 그 오빠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야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조금이라도 더 갚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 좋구나.”

흡족하니 웃던 제이릴리스가 이내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나는 약간 자세를 바꾸며 경청했다.

노란 눈동자가 용 같은 분위기로 나를 찍어 눌렀다.

“그런데 요즘 그대의 이름이 짐의 귀에 여럿 들어오고 있구나.”

“예?”

“휴가를 주었더니 온 수도에서 난리를 치고 있느냐? 인간 사냥을 하고 싶다면 빈민가로 들어가서 즐기거라.”

제이릴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체 텐티아 경과 세레라지에까지 뭘 하는 건지, 하고 이어 중얼거렸다.

“폐하, 실은…….”

“짐도 알고 있다.”

“예?”

“그대가 무엇을 쫓고 있는지. 그대가 짐에게 보고하지 않았더냐? 침식자들이 나타났다고. 놈들은 역병과 같이 번지니, 지난 1년간 혼란에 빠져 있던 수도는 딱 좋은 먹잇감이겠지.”

허나, 하고 운을 떼며 제이릴리스가 말했다.

“짐이 휴가를 주지 않았더냐?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푹 쉬도록 해라.”

“폐하. 이대로 놈들이 제물을 계속 바친다면…….”

황제는 무심하게 내뱉었다.

“세가 급증하고, 힘이 늘어나, 어둠 밖으로 기어 나오겠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짐은 그걸 기다리고 있노라.”

“예?”

“이참에 수도를 대대적으로 청소하겠다. 선황께서 말년에 치세보다 혈통 관리에 더 집중하신 나머지 이곳저곳 문제가 심하다. 짐이 왜 아직 바르바토스 경에게 홍등가를 털어내라 명하지 않았겠느냐?”

그녀의 눈이 통찰로 번뜩였다.

“근본적으로 수도에 사람이 너무 많다. 주변 땅은 한계가 있으니 인구 부양에 하자가 생기고, 빵과 물, 공간 등 한정된 자원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지.”

황제에 어울리는 눈빛이었다.

“홍등가를 밀어 자금을 확보한 뒤, 빈민가를 철거해 재건축 사업을 벌일 영토를 확보하겠다. 그곳에 장인들의 공방과 공동주택을 여럿 짓고, 쫓아낸 빈민들은 영지민이 부족하다는 변방 대귀족들에게 보내겠다.”

듣는 귀가 하나도 없다는 듯 그녀는 술술 내뱉었다.

무슨 방해가 들어와도 그렇게 될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막 편성이 끝난 군대에 더해 빈민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겠지. 영지민이 부족하다고 거짓말한 건 그놈들이었으니 이제는 다른 소리 하지도 못할 거고.”

영지민이 부족해 징집병을 늘리지 못하니 기사나 마법사 전력을 보강하겠다는 게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논리였다.

“그러니 대공. 이 수도에서 하루에 몇백 명이 없어진다 한들 신경 쓸 필요 없노라. 짐은 그들이 쌓이고 쌓여 자신감을 가지고 뛰쳐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할 말을 잃고 내 쌍둥이를 올려다보았다.

제이릴리스는 처음부터 제이릴리스였다.

그녀의 냉철함은 전장에서 길러진 게 아니라 전장에서 드러난 거였다.

그러나 내 얼빠진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나를 놀릴 생각이었는지, 제이릴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만, 대공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휴가를 반납하고 일하고 싶다면야, 짐은 환영이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침식자 놈들을 찍어내고 빈민가를 쓸어내야 그들을 내보내기가 원활하지 않겠느냐? 서리 내리는 가을에 그들을 내보내려면 피가 많이 흐를 테고, 그럼 대귀족들에게 부담을 지울 만한 머릿수가 나오지 않을 테니.”

“아.”

……몇 명이나 죽일 생각이었을까?

“마냥 앉아 기다리는 것도 짐의 취향은 아니지. 그대가 발로 뛰어 물증을 찾아내면 지원은 해 주겠다. 혹시 침식자들에게 당해 죽지도 살지도 못한 꼴로 돌아온다면, 손수 목을 쳐주마.”

* * *

“손수 목을 쳐주겠다 하셨다고 했니?”

“응.”

“그럼 나도 움직여도 된다고 허락받은 거나 마찬가지구나.”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단다. 내게 잘못한 줄 알면 좀 그러려니 하렴.”

텐티아 경은 흑철기사단에게 정보를 뜯어내려 별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백금기사단장이 이번 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세레라지에 누나와 함께 빈민가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방위나 위치에 주술적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역사적으로 보면 수로의 통로를 마법진처럼 쓴 적도 많잖니. 아마 여기 지하 수로에도 그런 효과가 있을 거란다?”

“무슨 마법인데?”

“주로 해충 구제, 유해성 곰팡이 억제, 그린 스킨 포자 퇴치, 망나니 퇴치, 뭐 그런 거.”

“마지막 건 빼자. 그래. 침식자들도 수로를 이용해서 오망성 같은 걸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이제야 이해하는 거니. 내 입술이 다 닳을 지경이구나.”

역시 천재 마법사였다.

“아마도 방위상으로는 이쪽에 뭐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골목을 돌자 확실히 이례적인 게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이 친구를 보셨습니까?”

맑고 큰 목소리.

“보신다면 꼭 신학 대학에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빈민가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싹싹한 태도.

약간 곱슬기가 있는 밝은 갈색 머리에 깊고 선한 인상의 갈색 눈동자.

나와 비슷할 정도로 큰 키에, 신실하고 선량한 산비둘기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의 사내.

“신학 대학생?”

묘한 소년미를 가진 그는 신학 대학 특유의 금단추 달린 검은 예복을 입고 싸구려 마분지에 인쇄된 몽타주를 돌리고 있었다.

마법사와 사제의 관계는 예로부터 원수지간이었기에, 세레라지에는 그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빨리 가자. 내가 잘못 왔나보구나.”

그러나 나는 뿌리 박힌 나무라도 된 양 걸음을 우뚝 멈추고 그 대학생의 귀와 턱선을 바라보았다.

회귀 전과는 머리 색도 눈매도 달랐지만,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성자님?”

분노한 신의 검은 숫염소, 라 마테오스 투모르.

세상 사람들이 그를 부르기를, 검은 성자 마테오스.

수많은 침식자와 흑마법사들과 이단과 사이비 주술사들을 잡아 화형에 처한 제국의 기둥이었다.

제이릴리스를 대신해 여러 번 악역을 맡아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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