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9화
(39)
“발렌 전하, 그곳에 대체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빛의 종인 저는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발렌. 거기 뭐 있니?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슬슬 뭐라고 말하지 그러니? 멍청하게 천장만 보고 있지 말고.”
이걸 보여줘도 될까 안 될까 망설이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세레라지에와 마테오스가 다가왔다.
나는 한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우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거대한 토사물 같은 슬라임이 수십에 달하는 불우한 희생자를 집어삼키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한 대학생이 실을 타고 내려온 거미처럼 매달려 있었다.
검은 사제복 차림의 대학생은 토사물 같은 슬라임이 늘어트린 촉수를 조종하며 지하수로에 떠내려오는 오물을 건져 올려 희생자들을 살려 두는 양분으로 쓰고 있었다.
이 모욕적인 광경에 세레라지에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마테오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구용 표본이나 찾아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잠시 했지만, 그렇게 편하게 돌아가지는 않는구나.”
세레라지에가 힘없이 중얼거리고, 마테오스가 눈물을 흘렸다.
“신이시여.”
나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별걸 다 본 나도 절로 얼굴이 굳어지는 광경이었지만, 나까지 당황하면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냉정하거나, 냉정한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늘 필요했다.
“저 어린 종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저들이 저 사악한 이물의 손에 넘어가 저런 모욕적인 꼴을 당해야 하냐는 말입니까?”
나는 그를 번쩍 들어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며?”
회귀 전과 다른 반응이 묘하게 생소했다.
내가 아는 검은 성자 마테오스는 저런 걸 보면 ‘모조리 불태워라. 주께서 골라가실 것이다!’라고 외치던 신실한 성직자였는데.
나는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해야만 할 말을 했다.
“누나. 여기가 마법진 방위적으로는 어떤 곳이라고?”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세레라지에가 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내 계산이 맞으면, 이곳은 제물을 모아두는 곳이란다.”
“제물이 모이는 곳이면 중심부인가?”
“제사의 목적에 따라 달라지기는 한데, 이 녀석들의 목적은 찬양보다는 소환이나 기원에 가깝겠지. 그렇다면 반대야. 외곽부란다.”
마테오스가 침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이런 게 더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최소 네 개, 많으면 열여섯 개까지도 더 있을 거야.”
세레라지에가 지팡이를 꼭 쥐며 말했다.
마테오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선량한 갈색 눈동자에는 공포와 의로운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전하. 저 부정의 덩어리를 불태우고 죽임 당한 제 친구와 저 가여운 양들에게 안식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예?!”
“왜? 내가 전격으로 지지면 되잖니?”
세레라지에조차도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서 누나가 저걸 지져서 부순다고 치자. 기껏 모은 재물이 왕창 사라지면, 침식자들이 순순히 포기할까, 아니면 재물을 다시 모으려고 할까?”
세상에는 좋은 의도에서 한 일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때도 있었다.
나쁜 의도에서 한 일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때와 달리, 원인 제공자를 심하게 책망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
“신이시여. 그럼 저 끔찍한 참상을 두고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까?”
나는 만고의 진리를 선언하듯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다 부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이 넓은 지하수로를 이용한 마법진이 얼마나 클지도 모르고. 공격받았다고 생각한 침식자들이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거나, 심하게 날뛸 확률이 높아. 어느 쪽도 썩 좋은 결과는 아니지.”
“저는, 눈앞의 불의에 눈감으라 배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는 이 대학생이 말한 사실 중 한 가지를 수정해줘야 했다.
“저기 매달려 있는 게 네 친구 디스마스지?”
“예. 전하. 그렇습니다. 이렇게 죽어도 될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아끼고, 빈자들과 고통받는 여인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교리를 삶에 채화한 친구였습니다. 매주 이곳에서 봉사 활동을 했는데.”
마테오스가 눈물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줄줄이 답했다.
나는 그 절절한 우정에 탄식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저 친구는 제물이 된 게 아니다.”
“예?”
마테오스가 그 말뜻을 이해하기까지는 몇십 초가 더 걸렸다.
“그럼, 설마…… 아닙니다. 아무리 대공 전하라 하셔도 신학생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슬라임과 일체화되어 저 제물들이 죽지 않게 관리하는 게 네 친구다. 디스마스는 침식되고 타락한 거야.”
“……”
마테오스는 말이 없었다.
나는 불길한 기분으로 물었다.
“못 돌이키는 거, 알고 있지?”
제발 그렇다고 해라.
“그럴 리가 없습니다.”
* * *
디스마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언쟁을 들으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스르륵, 소리와 함께 척수 안으로 들어와 있던 슬라임의 촉수가 빠져나가며 그의 감각이 다시 인간의 몸에 달린 것으로 한정되었다.
슬라임의 감각 기관은 인간의 것과 달라 인간의 말을 듣고 분석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신께서 그를 저버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도와주실 겁니다.”
“고집 그만 부리렴.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란다.”
“마법사가 왜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소리만 하는 겁니까?”
“신학생이 왜 이럴 때만 마법사 같은 소리를 하는 거니!”
디스마스는 그 세 사람이 무엇을 하려 왔는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백발의 사내와 마법사는 모두 썩 대단한 마나를 품고 있었고, 그의 친구였었던 사내 역시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많은 은총을 품고 있었다.
싸워서 저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제물로 만들 수 있을까?
그 의문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할 수 있다는 답이 나왔다.
그는 새로운 신을 만나, 새로운 믿음을 얻었고,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쌓았다.
길고 허망한 세월이었다.
교회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어린애를 신학생으로 키워주었다.
신학생이 된 어린애는 받은 은혜를 갚아주고 싶었다.
이 세상은 농경 사회였고, 농민 외의 직업은 1%를 넘지 않았으며, 수도 근처의 땅은 한정되어 있었고, 당연히 수도에는 땅 없는 사람이 넘쳐났다.
신학생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빈민가 가장 어두운 거리로.
“사, 사제님.”
“저는 아직 사제가 아닙니다.”
빛의 은총으로 병든 사람들을 쓸어 돌보고, 빈민 깡패들간의 항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공짜로 치료해주며 신뢰를 쌓았다.
“괜찮으시다면 이제 칼은 안 쓰시는 게 어떨까요? 설마 어차피 제가 치료해 줄 거라며 막 싸우는 건 아니시죠?”
“먹고 살려면 싸워야 하지만…….”
“디스마스 선생님께 부담을 더 지워 드릴 수는 없지.”
신학생의 지위를 이용해 빈민가 밖 부자들에게 기금을 모았다.
“선생님. 혹시 제 아들도 한번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왜 교회에 가지 않으시고?”
“부끄럽습니다만, 신의 저주라 밖에서 보일 수가 없습니다.”
“제, 제 딸도 부탁드립니다.”
침식과 관련된 소문이 퍼지기 쉬운 희귀한 피부병이나, 문란함의 대가인 성병으로 오해받기 쉬운 병들을 고쳐 주었다.
“너 요즘 휴학하고 이상한 짓 하고 다닌다더라.”
몰려다니던 무리가 찾아와 말했다.
“어, 어?”
“그 이상한 짓, 우리도 좀 끼워 주라.”
우리도 함께하고 싶다고.
이 세상에서 신은 믿는 게 아니라 아는 거였다.
빛의 은총을 받은 신학생들은 모두 치유와 정화의 권능을 부렸다.
학교에서는 그 권능을 아끼고,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며, 진심으로 빛에 귀의한 신자들만을 위해 써야 한다고 귀에서 피가 나도록 말했다.
하지만 선택받았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그 말은 고리타분한 잔소리 그 자체였다.
그들은 이 세상 모든 가엽고 괴롭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고 싶었다.
신학생들의 봉사로 운영되는 구호소가 빈민가에 만들어졌다.
청부살인을 일삼는 조직도, 대립하는 패거리의 두목들도 그곳에서는 환자 또는 신자일 뿐이었다.
항쟁도 감염도 벌레도 줄어들었다.
구호소 일대 빈민가의 살인사건과 영아사망률이 곤두박질쳤다.
“살기 좋은 거리가 있데.”
“병도 고쳐 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 준데.”
빈민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빈민가 인구가 급증했다.
많은 사람이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본래라면 진작 패싸움이 나고 빈민들은 다시 흩어져야만 했다.
“나누십시오. 밀 한 알도 나누셔야 합니다.”
그러나 신학생들의 노고를 모두가 알았다.
억눌린 불만은 위로 폭발하는 게 아니라 옆으로 퍼졌다.
빈민가 근처에서 갈취, 구걸, 소매치기, 절도, 강도, 추행 등의 범죄가 50배로 급증했다.
“미친.”
해당 구역을 담당하는 치안감은 기겁하며 수도의 귀족 자제들을 불러 모아 인간 사냥 허가증을 팔았다.
“오오.”
“오랜만이군.”
“내 용맹을 보여줄 기회요!”
수도에서 날고 기는 귀족 망나니들이 죄다 모여들어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사방에 불을 싸지르고 화살을 쏘고 검을 휘둘렀다.
신학생들은 구호소가 불타고 빈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며 황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그들은 학교로 돌아가 교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수님.”
교수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교실로 돌아가거라. 많은 걸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디스마스는 말없이 동료들의 뒤를 따르다 이를 악물었다.
이 부조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어째서 선의가 보답받지 못하는가?
빛 앞에서는 모두 평등한데, 왜 그 많은 사람이 그리 무가치하고 잔혹하게 죽어야 했는가?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홀로 찾으려 했다.
빈민가 사람들에게 권능을 베풀며 느꼈던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구세주가 된 듯한 그 기분.
이 세상의 신은 믿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선택받은 신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순간 무척이나 오만한 시선을 가지게 된다.
‘나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빛을 의심하고 자신의 권능에 취한, 나아가 그것이 옮다 믿어 의심치 않는 자에게 옛것은 찾아온다.
‘세상을 좋게 바꿀 힘’을 원하는 자는 순식간에 ‘세상을 바꿀 힘’을, 나아가 ‘힘’을 원하는 자가 된다.
홀로 위험천만한 빈민가에 들어가 봉사할 정도로 신실하던 신학생이 옛 것들에게 침식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철푸덕! 철푸덕! 철푸덕!
짧은 회상을 마친 디스마스는 새로 얻은 힘에 감탄하며 비어버린 몸뚱이들을 내보냈다.
제물로도 못 쓰는 자들이나, 데려올 때부터 상처가 심한 자들은 영양분 또는 언데드로 만들었다.
사자를 살리는 건 수많은 인간의 소망이었고, 옛 것들에게 시체를 움직이게 하는 건 기초적인 권능이었다.
인간들은 그걸 언데드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다.
“좋게 끝나기는 글렀네. 누나. 지져버려.”
파지지지지직!
‘어?’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푸른 전격을 보며, 디스마스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다.
* * *
언데드가 시체가 전기를 맞으면 신경과 근육이 타고, 그 안에 있던 옛것의 기운은 주인에게 돌아가거나 흩어진다.
검은 연기 같은 게 슬라임에게 돌아가거나 대기 중에 녹아드는 걸 보며, 나는 검을 휘둘렀다.
촤악-!
목이 베인 시체가 그대로 수로에 떨어졌다.
마테오스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디스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충격이었어. 사람이 그렇게 가치 없게 죽어서는 안 돼. 나도 고민했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도 원망했어. 그 치안감과, 젊은 귀족들, 아무것도 못 한 나까지. 그런데 왜 너는 거기에 있지? 대체, 무슨 선택을 했지?”
나는 목소리를 착 깔고 마테오스에게 말했다.
“주문을 쓰거나 물러서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하지 그래? 이왕이면 둘 다 해주면 좋고.”
그는 내가 알던 마테오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거 같았다.
훨씬 어리고, 훨씬 물렀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대한 기대와 호의가 남아 있었다.
이게 황실에 좋은 건지 아닌 건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으리라.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그의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는 걸 보았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건 세레라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남색 눈과 노란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시체들을 튀기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양쪽 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사람 수십을 무슨 그물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처럼 오물거리고 있는 구토색 슬라임을 처음 봤을 때 보일 만한 정상적인 반응.
나 역시 그랬다.
“흐으.”
인간으로서 가지는 본능적인 혐오감과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 감정만 챙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또 다른 침식자들이 보이지 않는지 먼저 확인했다.
이미 한 개체와의 전투가 시작되었으니, 동료들도 뭔가를 느꼈을 거다.
“디스마스를 죽이고 후퇴한다. 불운한 자들에게 평안한 안식을.”
미래의 성자님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간절한 눈빛으로, 마지막이라는 듯 단호하게 물었다.
“정화할 수는 없겠습니까?”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을 끊게 도와줘야 했다.
침식자에 대한 추억은 침식을 불러올 뿐이었다.
“빛께서는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만 힘을 내려 주시지?”
“예.”
“옛것들은 다를 거 같아?”
“!”
쑤욱, 그때 슬라임에서 긴 창 같은 촉수가 돋아났다.
“젠장!”
나는 마테오스를 옆으로 힘껏 밀어냈다.
미래에 세상을 다섯 번쯤 구할 성자님이 만에 하나라도 치명상을 입게 할 수는 없었다.
푸욱!
“전하!”
아, 저게 겉보기만 슬라임이라는 걸 잠시나마 잊어버린 내가 모자란 놈이지.
관통당한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철벅, 철벅,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언데드 특유의 걸음걸이에 익숙했다.
저건 절대로 산 것들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발렌!”
파지지지직!
세레라지에가 전격을 방사해 촉수를 불태웠다.
나는 발광 이끼로 덮인 벽을 잡고 중심을 잡으며 말했다.
“전략 변경. 바로 후퇴한다. 침식자를 찾았으니 이제 흑철기사단에서 다 알아서 할 거야.”
“……예.”
“알았어.”
마테오스가 능숙하게 나를 부축했다.
빈민과 부상자들을 여럿 구호해 본 경력자다웠다.
후방에서 전격을 방사하던 세레라지에가 날카롭게 외쳤다.
“발렌. 어보미네이션이야!”
망할.
나는 탄식하며 답했다.
“죽도록 뛰어! 누가 조종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서 인파 속에 섞여야 해!”
* * *
내가 들어온 출입구 계단이 저 앞에 보였다.
어보미네이션의 발소리를 워낙 빨리 들은 덕에, 그리고 지하수로 인도가 어보미네이션에게 좁은 덕에, 우리는 충분히 도망갈 여유가 있었다.
계단 아래서 마테오스가 갑자기 멈춰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마테오스?”
“저희가 도망치면 저들은 따라오겠지요?”
“그렇지.”
“그럼 그 중간에 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운 나쁘게 부모 손 잡고 나왔다 저 괴물과 마주친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질문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건 언제나 당혹스럽고 힘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