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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45화 (45/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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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평범하고 살고 싶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책상에 박힌 단검 자루를 흘깃 확인했다.

평범한 인간이 제대로 제련한 강철을 녹일 만큼 독을 익히려면 평생을 수련해도 모자라다.

세레라지에의 전격을 막아낼 정도로 단단한 비늘을 자기가 자기 몸에 심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생득한 것에는 어떤 식으로든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누나. 견제해줘.”

나는 검을 겨누며 말했다.

세레라지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바스타틴. 허가를 받지 않은 마법약 제조는 최대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건 알고 있니?”

“!”

“황족은 그 법조문보다 위에 있는데, 순순히 따라오는 게 어떠니?”

“같잖은 말장난을!”

양팔에 녹색 비늘을 두른 놈이 나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송곳니가 뱀처럼 길어지고 노란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나는 놈이 근접 무투를 익혔다고 생각해 체내에서 마나를 폭발적으로 운용했다.

근섬유 한 가닥, 한 가닥을 마나가 단단히 감쌌다.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로 가속해 단번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뚝, 뚝.

“어?”

그 짧은 대치는 내가 불현듯 코피를 흘리며 끝났다.

일순 눈앞이 핑 돌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다급하게 마나를 더 끌어올려 독기를 억눌렀다.

“네놈.”

바스타틴이 허공에 띄워 올린 녹색 액체가 절반으로 줄어 있었고, 남은 절반도 계속 기화하며 가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

세레라지에가 가볍게 휘청거렸다.

마법사인 그녀는 마나로 몸을 강화하거나, 체내의 독기를 억누를 줄 몰랐다.

나는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검을 휘둘렀다.

감히 세레라지에를 건들어?

“감히 네놈이 누구에게 반항하는지 아느냐? 일곱 조각으로 찢기고 싶으냐? 네놈의 힘줄을 베고 머리를 민 뒤 와이번핏에 던져 넣어 버리겠다!”

정확히 손목을 노리고 힘껏 베어 내렸다.

카앙!

내 검은 놈의 비늘을 단번에 부수고 피를 흘리게 했지만, 놈의 손목을 자르지는 못했다.

놈이 비늘 덮인 양손으로 가드를 올리고 서서 버텼다.

나는 놈의 전투 교리를 다시 파악했다.

바스타틴의 전투법은 근접 격투가 아니라, 독을 뿌려놓고 시간을 끄는 암살이었다.

몸 상태가 생각보다 빠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바스타틴도 많아야 서른일 텐데, 이 정도 독기를 다루는 걸 보면 혈통 하나만큼은 진짜인 거 같았다.

그래서 더 가증스러웠다.

마법 약도 분명 제 능력을 사용해 만들었을 텐데.

내심 제압을 포기하고 척살로 노선을 틀었을 때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렌. 내가 하고 싶구나.”

나는 막 쳐들었던 검을 슬며시 내리며 말했다.

“누나. 움직이지 마. 독 더 번져.”

“누구는 고향에서 버려졌는데, 누구는 여전히 마법 거리에서 자유로운 마법사로 사는 게 질투 나서 말이지.”

바스타틴이 세로로 찢어진 눈을 번뜩였다.

“질투라고? 천하의 세레라지에가? 누가 누구를 질투해?”

“똑같이 피로 재능을 타고났고, 똑같이 누려왔는데, 왜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거기에 있니?”

“나는 황실의 지원 하나 안 받고 살았고, 너는 천재 황족으로서 상아탑에 들어갔으니까.”

그는 우리가 독기 안에 더 있으면 좋다는 듯 모든 대화에 응해 주었다.

“내가 더 누렸으니 더 많이 짊어져야 한다는 거니?”

“혈통 덕에 이런 힘을 얻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내가 내 손으로 이룬 모든 게 혈통 덕이라는 건 인정 못 해. 힘겹게 재능을 개화시킨 것도, 일과 학업을 병행한 것도, 이 나이에 이 거리에 번듯한 가게 낸 것도 나야. 모든 걸 지원받은 너와 달리.”

“너는 뭐가 힘겨운 줄도…….”

“발렌. 내가 말하는 중이잖니?”

세레라지에가 내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독무 속에 섰다.

“나도 충성을 증명할 기회를 주려무나.”

그녀의 금은 요동이 서로 다른 두 색으로 번뜩였다.

세레라지에가 언제 비틀거렸냐는 듯 똑바로 서서 주문을 외웠다.

“조각조각 흩어내며, 동심으로 번지는.”

허공에서 푸른 번개가 튀고, 녹색 독무는 안개가 걷히듯 흩어졌다.

바스타틴이 입을 쩍 벌리고 세레라지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팡이를 쳐들며 말했다.

“이건 기초 해독 마법, 아니. 해독이라고 하기도 뭣할 만큼 단순한 마법이란다. 상아탑에서는 누구나 배우지. 네가 정말로 노력과 연습으로 힘을 쌓았다면 이깟 마법에 독이 흩어지지는 않을 텐데.”

“!”

“재능 덕에 엄청난 양의 독을 만들 수 있었으니 굳이 더 정제해서 독성을 높이거나 새로운 독을 개발할 생각도 안 해봤겠지.”

“너.”

“노력이 뭐가 어쨌다는 거니?”

그렇게 말하는 세레라지에는 썩 즐겁지만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스타틴이 이를 악물며 다시 녹색 기운을 끌어모았다.

“네가 뭘……!”

“감히 황족을 공격했으니 그 죄를 목숨으로 갚아라!”

나는 호통치며 검을 찔러넣었다.

탕, 바닥을 박찬 내 발밑에서 마룻바닥이 부서졌다.

나는 놈의 목을 왼손으로 붙잡고 벽에 들이박았다.

“커억!”

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장난기 많고 서글서글하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약간의 피는 건설적인 대화에 있어 녹슨 검에 뿌리는 기름과 같지.”

나는 입에 붙은 말을 내뱉으며 검으로 놈의 발등을 찔렀다가 뽑고, 왼손으로 놈의 턱을 두 대 후려치며 빠진 뒤, 허벅지를 한 번 더 찔렀다.

그리고 검을 목 아래 바싹 겨누며 말했다.

비늘과 칼날이 비벼지며 카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지금부터 아는 대로 다 불어라. 저 아카데미에 우리 친척들, 그러니까 황족 사생아들이 잔뜩 다니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다. 그 녀석들 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네가 졸업생 신분으로 놈들을 돕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옛날에 어떤 녀석이 그런 말을 했었다.

약간의 안전을 위해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다가는 둘 다 잃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할 거면 확실히 해야 한다.

손도 대지 말거나, 아니면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리거나.

이번에 제이릴리스가 택한 건 후자였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2명도 아니고 6명이 침식돼?

혹자는 황제의 탄압이 그들을 몰아붙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게 아니냐고 물을 거다.

그래, 극단적인 선택 좋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고, 순순히 죽기 싫으면 반항을 해야지.

강자가 찍어 누르면 약자가 순순히 따를 거라는 것도 오만한 발상이니까.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하필이면, 온 세상 인류를 다 자기들 먹이나 놀잇감으로 쓰겠다는 옛것들을 선택해?

무슨 사연이 있어도 그걸 이해해줘서는 안 된다.

“놈들의 아지트든, 숙소든 아는 대로 다 불어. 그리고 우리랑 같이 간다. 네가 얼굴을 확인해줘야 하니까.”

바스타틴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안 돼.”

녹색 머리카락이 무릎까지 내려올 듯 길어지더니 그 끝이 세 마리의 뱀으로 변해 내게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예리한 독니가 번뜩였다.

“굳히고 밀어내는 전격.”

세레라지에가 주문을 외웠다.

파직!

짧게 쏘아져 나간 전격이 뱀과 바스타틴의 몸을 굳히며 크게 밀쳐냈다.

벽을 등지고 있던 놈은 비명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나는 반걸음 나아가며 검을 지긋이 찔러넣었다.

카득, 쩍!

검 끝이 놈의 목을 덮은 비늘을 지긋하게 눌렀다.

“이번에 침식됐던 6명, 네놈도 알고 있었겠지?”

“!”

처음으로 놈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더 터지면 그때는 우리가 아니라 기사들이 와서 바로 목을 벨 거다. 소환령이 아니라 척살령이 떨어질 거라고. 그러기 전에 폐하의 눈이 닿는 곳으로 들어와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잃을 게 많잖아?”

나는 달콤한 악마처럼 놈에게 속삭였다.

“아카데미의 녀석들, 살리고 싶지 않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싸움은 더 비겁한 쪽이 강한 법이었다.

나는 사생아들이 단체로 침식되어 수도에서 날뛰는 걸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비겁해질 수 있었다.

놈이 이를 바르르 떨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발렌시아누스 네놈을 어떻게 믿지?”

나는 옅게 웃으며 비겁한 강자답게 말했다.

“믿지 말든가.”

* * *

수도에는 대형 아카데미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다녔다.

마법이나 검술, 행정을 배워 마법사나 제국 기사, 행정관이 되고자 하는 궁정 귀족의 자제들.

거상이나 대형 공방 등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로서 고등 교육을 받고 친목을 다지는 학생들.

부유한 농민이나 수도 인근 중소 지주들을 자제들로서 인맥과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학생들.

고아 또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지만, 좋은 성적으로 후원을 받는 학생들.

지방 대귀족 출신으로 반쯤 인질로서 수도 올라온 자들도 본래 몇 있었지만, 그들은 제이릴리스 즉위 전 짧은 혼란기에 모두 눈치 빠르게 가문으로 돌아갔다.

워낙 거목 같은 아이들이었던지라 빈자리는 컸지만, 학생들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무척 길었다.

또, 아카데미의 유행과 파벌을 이끄는 궁정 귀족의 자제들은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어 내심 기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이 왔음을 기뻐하며, 번쩍이는 장신구와 장인이 만든 가방으로 몸을 치장하고, 학생들이 여럿 모이는 카페에서 지식과 교양과 실력을 자랑했다.

“다들 이번 시험 준비는 잘 되어 가는가?”

“당연하지. 교수님이 바라시는 답은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한 소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행정법 쪽이야 이미 다 외웠네. 마법학 과제 쪽은 어떤가?”

“‘양산이 가능한 회복 포션’이라, 사실 나로서는 왜 그리 양산에 집중하시는지 모르겠군.”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네.”

그렇게 입을 연 소년은 훤칠한 키에 잿빛 머리, 푸른 눈을 가진 쾌활한 미남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집안의 아이들도 과제물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네.”

주변 궁정 귀족 자제들이 하나같이 한탄했다.

“하하.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로군.”

“이곳은 배움의 아카데미인데, 어찌 그런 자들의 주머니 사정 따위에 교수님들이 휘둘리신단 말인가?”

“비싼 시약을 마음껏 쓰더라도 더 효과 좋은 포션을 연구하는 게 맞을 텐데.”

“시약값도 못 부담하면 이곳에 와서는 안 되지.”

“쩝. 이번에 구해놓은 만드라고라 뿌리와 꽃은 애물단지가 되겠군.”

잿빛 머리의 소년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아카데미의 후원자께서 그걸 바라시기 때문이네.”

학생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후원자?”

“우리 아카데미는 아퀼리스 공작가가 설립한 재단에서 운영하는 게 아닌가?”

“그 재단에 매년 4할의 운영비를 후원하시는 분은 저 높은 곳에 있는 분이시네.”

잿빛 머리에 소년이 황궁 쪽을 가리켰다.

세상이 내 것인 양 떠들던 학생들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황실이 신성한 배움의 거리에 황금을 앞세워 간섭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군. 하지만 이번만큼은 우리가 교수님들의 사정을 헤아려 주는 게 어떻겠는가?”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빠르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역시 자네야. 진 그대만큼 교양과 품위가 넘치는 귀족 자제는 본 적이 없다네.”

“암. 역시 자네는 우리 궁정 귀족의 자랑이야.”

“매일 같이 동족상잔만 일삼고 있는 그분들과는 비할 바가 못 되지. 얼마 전에도 6명이나 죽었다는데.”

“그건 사생아만 센 숫자고, 매달 붉은 달무리 궁에서 열 손가락으로도 못 셀 수가 죽어 나가고 있다고 하네.”

궁정 귀족들은 톱니바퀴 같은 행정관료로서 제국을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늙은 후로 직무에 손을 놓아버린 선황을 대신해 제국을 유지한 것도 그들의 힘이었다.

소드마스터이자 대마법사인 제이릴리스조차 그들을 존중하며 국정을 운영해나가고 있으니 그 콧대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있었다.

“혹시 우리 중에 그 사생아가 섞여 있지는 않겠지?”

“으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나?”

“이렇게 교양이 넘치는 우리 사이에 어떻게 혈통에만 의존하는 그분들이 앉아 있을 수 있겠나?”

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나는 잠시 일어나 보겠네. 외울 게 남아서.”

“그래. 그래. 자네의 성실함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네.”

“자네는 정말 마법사도 행정관도 기사도 다 할 수 있겠군. 부러울 따름이야.”

“매일 매일 저렇게 노력하는 덕이지.”

* * *

발렌시아누스는 바스타틴이 말해준 기숙사로 들어가 문 뒤에 몸을 숨겼다.

오래지 않아 문이 열리고, 한 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잿빛 머리의 진이 거울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

들어오는 길에 문 앞에 놓여 있던 편지를 손안에서 마구 구기면서.

거울 속 그의 푸른 눈동자는 기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네. 조금만 늦었어도 들킬 뻔했어.”

푸른 눈동자가 한껏 일그러지더니, 결국 노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이 녀석들은 요즘 같은 시기에 왜 또.”

책상 앞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편지를 펼친 그는 서랍 속에서 마법 약 하나를 꺼내 곧바로 들이켰다.

발렌시아누스는 씩 웃으며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뽑아 바닥에서 솟구치는 가시 공격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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