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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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은 물자 운송의 원활함을 위해, 솔레타리온 한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운하를 파고 강물을 끌어들였다.
깊이는 5m, 넓이는 100m, 바닥과 벽은 흙과 모래를 마법으로 굳혀 만든 돌로 마감해 물이 탁해지거나 새어나가지 않게 막았다.
선착장은 운하 북쪽에 세 개, 남쪽에 세 개가 있었는데, 발렌시아누스가 밤바람 맞으며 서 있던 곳은 황궁에서 제일 가까운 강북 중앙 선착장이었다.
도망치는 카지노 지배인들을 잡는 건 흑철기사단의 일이었기에,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복 남매들에게만 집중했다.
회귀 전에도 대탈출이 몇 번은 있었다.
시작점은 각기 달랐지만, 결국 끝은 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귀족들은 대공들의 혈통과 계승권을 원해 그들을 품을 것이고, 제이릴리스에 대한 악담을 퍼뜨릴 것이며, 제이릴리스는 제위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내전은 시작되고, 혼란을 틈타 마경과 침식자들은 몇 배로 늘어나고, 대륙의 왕국과 공화국들이 제국에 반기를 들고,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 나가고…….
발렌시아누스는 별 총총한 하늘과 운하 건너 대성당을 바라보며 금실 자수가 놓인 제복을 여몄다.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는지, 밤바람이 서늘했다.
헝클어진 백금발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 황금빛 찬란한 눈을 번뜩이며 그는 대로를 샅샅이 훑었다.
“마차 행렬 비슷한 거라도 보이면 곧바로 황궁으로 달려가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령들이 머리를 숙였다.
황족들이 황궁에서 떠나는 순간을 노려 잡는 게 제일이겠지만, 그랬다가는 카지노 지배인들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반드시 한 번은 성공할 수 있는 탈출 수단을 보유하고 있을 게 뻔했다.
하지만 황궁 밖으로 나가는 것과 수도 밖으로 나가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밤은 깊었고, 네 성문은 완전히 닫혔다.
발렌시아누스의 40년 묵은 후회는 깊었고, 그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봐.’
오늘 모든 걸 끝내겠다.
“텐티아 경.”
“예. 전하.”
“내가 오늘 내 이복 남매들을 모두 베어 죽인다면, 경은 말릴 텐가?”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특유의 경망스럽고 불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과 해도 되는 일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 고민을 하는 거 같기도 했다.
붉은 머리의 늠름한 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머리 쓰는 일 시키지 말라고 그리 말씀드렸습니다만.”
“미안하네.”
“피에는 권리와 의무가 따른다. 그리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랬지.”
“선황께서 자식을 그렇게 많이 보셨던 이상, 누가 제위에 오르시던 대숙청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계승권자가 많으면 언제나 피가 흘렀다.
그건 시대와 종족을 벗어난 만고의 진리였다.
그는 그 시대에 태어났고,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죄책감을 마주할지 말지는 그의 선택이었다.
“……고맙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에서 짐마차 수십 대가 줄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가 아니라 짐마차? 제법이군. 짐으로 위장할 생각이었나?”
도시는 기본적으로 야간통행금지지만, 새벽에 운하 수문이 열리자마자 도시를 나가야 하는 선상 일꾼들에게는 밤샘 작업을 용인해주었다.
“전하. 서쪽에서 조운선이 오고 있습니다.”
텐티아가 낮게 속삭였다.
“그걸 잡는 건 우리 일이 아니네.”
과감하게 고개를 돌린 발렌시아누스는 검을 뽑아 들고 대로로 뛰쳐나갔다.
“누구냐?”
달려오던 첫 번째 짐마차 마부는 당황하며 다급하게 감속 깃발을 쳐들고, 고삐를 당겼다.
뒤따라오던 짐마차 마부도 연이어 감속 깃발을 쳐들고 고삐를 당겼다.
마부가 육두문자를 퍼부으려 했지만, 텐티아가 먼저 외쳤다.
“금지된 물품을 운반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잠시 검문이 있을 테니 협조해 주기 바란다.”
그녀의 판금 갑옷은 자정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리, 어찌 이 시간에?”
마부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짐마차에서 내려 짐칸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기사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짐과 함께 운하에 던져질 수도 있었다.
짐마차의 짐칸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나 술통이 가득 실려 있었다.
텐티아는 저 뒤까지 들어선 짐마차 행렬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하. 이걸 다 검사하고 있다가는 다른 곳으로 향하는 황족들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발렌시아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의 말이 맞네.”
“그러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가 마나를 끌어올리며 외쳤다.
“진득하게 감싸 안는 불꽃!”
허공에서 홍염이 피어나 이글이글 타올랐다.
“싹 다 불태우면 한 놈은 나오지 않겠느냐?”
그가 만고의 진리를 선언하듯 말했다.
“전하!”
“전하……!”
“아니 됩니다!”
텐티아가 당황하고 마부들이 달려와 발렌시아누스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발렌시아누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물었다.
“그대들은 어느 운송 길드 소속인가? 길드 문장이 없는 마차들이 몇 보이는군. 어둠을 틈타 행렬에 끼어들었나?”
하드리탄이 말했다.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하는 마부들에게 운송을 맡길 거라고.
마부들의 눈에 경련이 일었다.
발렌시아누스는 한껏 비웃으며 불꽃을 문장 없는 짐마차에 덮어씌웠다.
화르륵, 타닥타닥, 그런 소리와 함께 짐칸 전체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마부들이 품속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지만.
“무엄하다! 감히 누구 앞에서 고개를 들으려 하느냐!”
텐티아가 강철 건틀릿 낀 주먹과 철판 두른 전투화로 마부들이 다시 고개를 조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불타기 시작한 짐마차 화물들이 이리 들썩 저리 들썩 흔들렸다.
텐티아는 치안총감에게 빌려온 전령들에게 외쳤다.
“가라!”
“!”
전령 다섯 기가 밤중의 도로를 질주했다.
“황족들이 탈출한다! 아경꾼들은 중앙 선착장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게 무슨…….”
졸지에 한밤중에 길 한가운데에서 멈춰 서게 된 길드 소속 마부들만 멍청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불길 속에서 황족들이 하나둘 굴러 나왔다.
연기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색색의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눈, 훤칠한 키와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다리.
혈통의 정점인 황실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이들이었다.
“발렌시아누스!”
“클라렌스.”
덩치 큰 황족 사내가 이를 악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검댕 묻은 뺨, 보석도 금붙이도 하나 없는 가슴팍이 초라했다.
발렌시아누스는 금은으로 한껏 장식된 어깨를 으쓱하며 달려들었다.
“붉은 달무리 궁의 대공들이 홍등가의 거물들과 함께 외국에 황실의 기밀을 팔아넘기려 하니…….”
“살고 싶었을 뿐이다!”
카앙, 카앙, 카앙!
검과 검이 부딪치고,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반역죄를 물어 모두 잡아들이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비켜라! 이 친족살해자야!”
카앙, 카아앙!
클라렌스는 발렌시아누스보다도 힘과 호흡이 좋은 사내였다.
애초에 나이도 여섯 살 정도 차이 났고, 검을 익힌 기간도 더 길었다.
물론 발렌시아누스에게는 회귀 전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동안 쌓아 온 마나의 양이 다른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싸움에서는 더 비겁한 쪽이 강한 법이었다.
퍽!
구둣발로 무릎 아래를 걷어차고, 긴 가드와 가드를 얽으며 잡아당기고, 그렇게 바싹 붙은 상황에서 무릎으로 배를 올려 찼다.
“윽!”
클라렌스가 일순 비틀거릴 때, 발렌시아누스는 특유의 섬세하고 가학적인 검술을 펼쳤다.
사악!
빠르게 휘두른 검이 정확하게 클라렌스의 목을 그었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파고 들어간 칼날은 정확하게 혈관을 끊었고,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발렌시아누스는 쓰러진 클라렌스의 품속을 뒤적였다.
황궁의 상세한 지도가 나왔다.
죄책감이 약간이나마 덜어져서 씁쓸했다.
“황실의 비밀을 팔아넘기려 하니…… 이름뿐인 명분은 아니었군. 이게 네 몸값이었구나.”
발렌시아누스는 정면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의 주인에게 물었다.
“아리에타. 너도 이런 걸 가지고 있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품속에서 두 뼘짜리 소검을 들어 허공에 그었다.
사악!
발렌시아누스는 한껏 검을 내리그으며 물러섰다.
카앙!
허공에서 불꽃 튀는 소리가 나고 그의 뺨에서 피가 흘렀다.
“무영창 바람 칼날? 역시 대단한데.”
“내 아버지는 선황 폐하고, 내 어머니는 실프의 피를 물려받았지.”
사악, 사아악!
허공에 예리한 선이 그어져 나가며 발렌시아누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그는 그 공격이 그를 죽이기 위한 게 아니라 길을 뚫기 위한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이다! 다들 뛰어!”
“가자!”
“이 빌어 처먹을 수도도 끝이다!”
아리에타의 외침을 들은 황족들이 선착장으로 질주했다.
몇몇은 검을 뽑아 들고, 몇몇은 그동안 숨겨 왔던 마법을 쏘아내며 후방을 지켜냈다.
헬레나가 아리에타의 뒤를 잡으려 했지만.
“가자!”
금발의 란체아가 씩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달려 나갔다.
발렌시아누스는 격노하며 주문을 외웠다.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장창 같은 불꽃이 란체아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의외로 세심하지 못하구나.”
그 틈을 타 아리에타의 바람칼이 발렌시아누스에게 쇄도했다.
카앙!
텐티아가 판금 갑옷 두른 몸으로 그 바람칼을 막아냈다.
날카로운 바람칼도 그녀의 갑옷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검을 내려놓으시지요. 아시지 않습니까? 5서클 마법 이하는 안 통하는 갑옷입니다.”
아리에타가 어깨를 으쓱했다.
“기사라면 알잖니? 질 걸 알아도 물러서면 안 될 순간이 있다는 걸.”
그때 선착장 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배들이 거의 도착한 것이다.
카지노 지배인들이 옛 부하들을 모두 끌어모았는지, 강철 곤봉과 단검으로 무장한 덩치 큰 사내들도 여럿 보였다.
발렌시아누스가 텐티아에게 외쳤다.
“경. 가서 저놈들을 상대해 주게. 아리에타는 내가 상대하겠네.”
“예. 전하.”
텐티아가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그녀의 검에 붉은빛 마나 블레이드가 은은하게 타올랐다.
아리에타가 다급하게 바람칼 줄기를 뿜어내 그녀의 등을 노리려 했지만, 어느새 발렌시아누스가 그녀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때 아리에타는 한 바퀴 돌아 발렌시아누스를 마주보며 웃었다.
“터, 져라!”
카카카카카칵-!
바람 방벽이 소용돌이쳤다.
아카데미 학생이었던 진의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어지간한 갑옷과 몸뚱이가 같이 갈려 나갈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아리에타의 눈앞에 들어온 건 발렌시아누스의 육편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불꽃이었다.
“무슨?”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당황함을 표현했고, 재빠르게 그 과정을 추론했다.
발렌시아누스가 짐마차의 불길을 주문으로 끌어와서 그녀의 바람 방벽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이익!”
졸지에 자신을 불꽃으로 둘러싼 꼴이 된 아리에타는 이를 악물며 바람 방벽을 흩어냈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 검을 쳐든 발렌시아누스가 달려들었다.
타악, 그리고 사악!
섬뜩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잠시 걸렸다가 흩어지고, 검을 쥔 둘은 빠르게 교차했다.
몇 초의 침묵, 아리에타의 목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왔다.
“……너는 네 여동생을 그리도 아끼는구나. 희대의 친족살해자를.”
발렌시아누스는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게 두 번이나 삶을 주었으니까. 아리에타 너도 그녀를 아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 라는 말에 잠시 아리에타는 당황했다.
누구도 황제 제이릴리스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내 아리에타는 비틀거리면서도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나를 그렇게 아껴 주는 언니가 있었지.”
발렌시아누스는 망설이다 물었다.
“황태자파였나?”
제이릴리스가 속한 1황자파와 적대하던 파벌이었다.
“그래.”
“유감이다.”
“앞으로도 네 여동생을 아껴 주렴. 네가 선택한 그녀니까. 절대 후회하지 말고.”
“진작 선택하지 않은 후회를 죽은 다음까지 하고 있지. 너희를 살려 보낸 후회도. 40년 동안 길고 긴 악연으로 물고 물리면서.”
아리에타.
병사할 사촌을 대신해 백작위를 물려받고, 변방의 거대한 영지를 거점 삼아 수십 년간 유스티아누스에게 자금과 물자를 지원했을 자였다.
그녀가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그래. 알 필요 없어.”
“나는, 반역자로 기록되겠지? 그럼 가문에 폐가 될 텐데.”
아리에타의 목소리가 조금씩 약해졌다.
“아니. 폐하께서는 대귀족들과의 충돌을 원치 않으신다. 명예롭게 자결하고 화장될 거야. 뼈에 검흔이 남으면 안 되니까.”
그만큼 발렌시아누스의 목소리에는 각오가 어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예방적인 책임을 물을 각오였다.
“다행이네. 추워진다. 끝내줄래?”
“기꺼이.”
* * *
“이 추악한 도적놈들아! 당장 목을 길게 빼고 엎드려라!”
“도망쳐!”
“빨리 배를 띄워야 합니다!”
“어서 황족들을 태워라! 저들을 데리고 가야 한단 말이다!”
“늦었습니다! 그아아악!”
마법 회로가 새겨진 판금 갑옷을 입은 소드 엑스퍼트의 기사는 살아있는 재앙이었다.
텐티아와 검을 섞기는커녕 맞댈 수 있는 자도 없었다.
황족은 검과 손목을, 기도는 검과 목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황족 중 마법을 익힌 이들이 드러난 화염구나 전격 화살, 바람칼 같은 주문을 퍼부었지만, 텐티아의 갑옷은 그 모든 주문을 가볍게 튕겨 냈다.
지배인들은 그걸 보며 침음성만을 흘릴 뿐이었다.
“텐티아 경!”
서쪽에서 푸른 전격이 튀고 그들이 들어 본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몇 명과 남색 로브를 두른 마법사가 운하 옆길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흑철기사단이다!”
조운선에 타고 있던 한 가드가 외쳤다.
“지배인님. 이제 한계입니다. 저들까지 가세하면 저희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악어새 쪽에 심어둔 애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곧 와이번핏에서 와이번들이 뜰 거라고 합니다. 가셔야 합니다.”
“와이번? 그럼 이미 늦었잖는가! 배로 와이번을 어떻게 따돌리라는 거야!”
‘미래’의 지배인은 옆에 선 황족 하나를 붙잡고 외쳤다.
“란체아! 이게 무슨 일인가? 다 죽게 생겼잖아!”
긴 금발의 황족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과장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를 도망치게 해주겠다고 한 것도 당신이고, 같이 도망치자고 한 것도 당신이고, 여기로 오라고 한 것도 당신인데, 누구에게 따지는 거지?”
“지금 다 죽게 생겼단 말이다! 네놈이 황족들을 죄다 데려오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그게 무슨 소리야?”
란체아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황족 하나를 잡아 끌어당기더니, 허리춤에서 커다란 주사기 하나를 뽑아 그의 몸에 박아 넣었다.
“한 명 한 명이 우리를 지켜 줄 귀중한 방패들인데.”
“끄윽!”
주사액을 주입 당한 황족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틀거렸다.
주변 황족들은 당황하며 란체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목에 두 갈래 촉수가 꼬인 형태의 팔찌가 달빛에 언 듯 비췄다가 사라졌다.
“너.”
“설마.”
주변 황족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란체아는 낄낄 웃으며 비틀거리는 황족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배 난간으로 가 선착장으로 집어 던졌다.
쿵!
그 황족의 몸에서 보라색과 푸르딩딩한 색이 뒤섞인 굵은 촉수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란체아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발렌시아누스! 이런 걸 이미 한 번 잡아 봤다고 했었나?”
막 선착장에 발을 들인 발렌시아누스는 배 난간에 선 란체아를 쏘아보았다.
“한 번 더 잡아 봐!”
란체아가 발렌시아누스에게 중지를 펴 보였다.
그러나 발렌시아누스는 낭패감으로 얼굴을 굳히지 않았다.
되려 그는, 그가 생각하고 있던 오늘의 마무리가 완벽해질 거 같다는 감각에 웃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루디! 저 새끼 쏴버려!”
타아앙!
밤하늘을 한 발의 마탄이 갈랐다.
란체아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