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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52화 (52/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51화

(51)

애당초 현장을 잡은 이상 막으려는 자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

흑철 기사단의 기사 넷만 해도 과잉전력이었다.

거기에 미래의 소드마스터 텐티아, 천재 전격 마법사 세레라지에, 백발백중의 사수 루디, 망나니 대공 발렌시아누스까지 더해지니 전장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수송선들은 출발할 때를 놓치고, 결국 텐티아와 세레라지에가 널빤지 사다리 위를 달려왔다.

“올라왔다!”

“떨어트려, 아아악!”

용감한 가드 하나가 그녀를 밀어내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되려 손목을 잡힌 채로 물속에 던져지고 말았다.

“잠깐! 항복하겠다!”

“경. 살려만 주게. 친정에서 몸값을 받아 오겠네.”

황족들이 검을 늘어트리며 머리를 숙였다.

“읏…….”

텐티아는 본래 백금기사단이 지켜야 할 황족들에게 쉽게 검을 들이밀지 못했다.

그러나 세레라지에는 제 이복남매들을 향해 사정없이 주문을 퍼부었다.

“따르고 또 따르는 나의 번개여! 내 모든 적들을 일소하소서!”

파지지직!

주문 단 한 방에 막 출발하려던 배 위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몸을 부르르 떨며 간판 위를 나뒹굴었다.

“첩 소생 따위가!”

“제발 눈감아다오.”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야?”

간판에 선 황족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뱃전에 선 세레라지에는 금은 요동을 외로이 번쩍이며 분노에 찬 말을 토해냈다.

“나는 너희들이 파벌을 꾸리든 말든, 누가 황제가 되든 말든 상관없었단다. 그런데 너희는 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니? 상아탑에서 행복하게 살던 나를 이 붉은 달무리 궁에 가둔 게 너희들이잖니? 몇 년만 숨죽이고 지내면 어련히 외가로 돌려보내 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니?”

“어떻게 그런 말을……!”

“대체 왜 그 몇 년을 못 참고 그 난리를 피워서 ‘모든 황족’이 붉은 달무리 궁에 연금되게 한 거니? 소드마스터를 어중간한 독이나 암살자 따위로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 한 거니? 6서클 마법사를 마법으로 공격하자는 제안은 어디의 누가 꺼낸 거니? 하필 그게 전격 마법일 건 왜니?”

“!”

“너희보다 훨씬 강한 언니 오빠들이 다 쓰러진 걸 보고도 왜 대항하는 거니? 황제 폐하가 너희랑 같은 인간 같니? 태풍이 오면 방 안으로 숨어야지, 대체 왜 태풍에 맞서겠다며 배를 끌고 바다로 나가는 거니? 태풍은, 너희랑 싸울 생각도 없는데.”

세레라지에의 관점에서 그들은 잠자는 용의 비늘을 뽑은 무식하고 용감한 자들이었고, 그녀는 분노한 용이 불태워버린 마을의 주민이었다.

이제 그 용의 그녀의 후원자이자 감시자가 되었으니, 원망은 용의 비늘을 뽑은 자들에게로 향했다.

“이, 이 황제의 개가!”

“그래. 이참에 그 잘난 실력 좀 보자.”

“마법 좀 쓴다고 잘난 척하는 게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결국 황족들의 눈이 다시 희번덕거렸다.

그들도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부릴 수 있는 자들이었다.

화염구가, 돌 가시가, 사슬 번개가, 바람 칼날이, 독무가 세레라지에에게 쏟아졌다.

텐티아가 몸으로 받아내려 했지만, 세레라지에는 고개를 저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시계는 거꾸로 돌고, 단추를 잘못 끼운 옷은 결국 끝단이 어긋나 못 입게 된다.”

쨍그랑!

허공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나고, 날아들던 마법들이 모두 연기처럼 흩어졌다.

왼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던 텐티아가 뻘쭘하게 웃고, 황족 마법사들이 입을 쩍 벌렸다.

“디스펠?”

“말도 안 돼.”

“이제 스물을 겨우 넘었을 텐데.”

“일단 이 배라도 출발시켜!”

‘뱀’의 지배인이 머뭇거리는 조타수를 밀어내고 직접 키를 잡았다.

타아앙!

다음 순간 날아온 마탄이 키를 반으로 쪼갰다.

* * *

“잘했어. 루디! 아무도 출발 못 하게 막아! 오늘 저것들 다 운하에 던진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죽지도 살지도 않아서도 방해만 되는 것들!”

악을 쓴 발렌시아누스가 흑철기사단의 네 기사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기괴하게 자라나 주변 시체를 먹어 치우는 변이 황족 촉수 괴물을 마나 블레이드 두른 검으로 내리찍고 또 내리찍었다.

하얀 제복에 체액이 가득 튀었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

“침식을 원하지 않았던 자에게도 안식을!”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촉수 하나가 폭발적으로 자라나더니, 흑철 기사 하나를 선착장 밖 도로까지 집어 던졌다.

“아아악!”

순간 발렌시아누스와 세 기사가 주춤하고, 그 틈을 타 촉수 괴물은 운하로 뛰어들려 했다.

그때 루디는 운하 가장자리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하급 귀족 출신인 그녀는 고귀한 황족들이 픽픽 죽어 나가고 있는 이 광경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모시는 자였고, 그녀가 모셔야 할 자는 지금 싸우고 있었다.

‘사용인에게는 사용인의 긍지가 있는 법이에요.’

그녀는 양쪽 어깨를 한 번 크게 뒤로 돌리며 견갑골을 고정하고,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막대한 반동에 온몸이 흔들렸다.

단정한 시녀복이 구겨지고 구둣발이 뒤로 밀려났으며, 코 위에 걸린 사점 안경도 위아래로 들썩였다.

그러나 루디는 녹색 눈을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보석으로 만들어 넣은 듯한 그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점만 바라보고 있었다.

촉수 괴물의 질긴 몸뚱이가 누덕누덕 산산조각으로 찢어졌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정수리에서 길게 뻗어 나온 촉수를 맞추고, 허벅지를 터뜨리고, 변이한 등허리를 쪼갰다.

선착장에 짧은 적막이 찾아왔다.

끝까지 반항하던 황족들도 일순 당황하며 검을 늘어트렸다.

저 먼 하늘에서 와이번 울음소리가 들렸다.

발렌시아누스는 배 위로 뛰어 올라가며 외쳤다.

“황족 사망자 숫자 파악해!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뱃전에 엎드려 있던 헬레나와 하드리탄이 외쳤다.

“우리 출발할 때 45명이었어!”

“저희 8명을 제하면 사망자와 생존자를 합쳐 37명이 나와야 합니다.”

그때 건물 지붕에서 내려온 루디가 발렌시아누스를 향해 조르르 달려와 말했다.

“발렌 님. 그 사람이 없어요.”

“없다니?”

“제가 처음에 쏜, 그 사람이 없어요.”

“뭐?”

넷은 란체아가 타고 있던 배에 올라갔다.

‘미래’의 지배인이 벌벌 떨고 있는 난간 위에는 핏자국만 길게 이어져 있었다.

세레라지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도 황족이니 빠르게 힘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 놈이 섬기는 옛것은 옛것 중에서도 은밀하고 지식이 깊기로 유명하단다. 그래도 붉은 달무리 궁 안에서 힘을 쌓았을 줄은 몰랐구나. ……발렌, 왜 몰랐니?”

“누나가 방금 옛것 중에서도 은밀하다고 말했잖아?”

발렌시아누스는 전생의 안 좋은 기억을 여럿 떠올렸다.

대놓고 침식자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등을 찌르는 그 순간까지도 기운을 숨기던 놈들도 있었다.

그는 핏자국을 따라 간판을 걸으며 란체아가 어디로 도망갔을지 추측했다.

그가 원하는 곳으로 놈을 끌고 가야 했다.

“운하로 도망친 걸까요?”

운하 가장자리에 물결이 기묘하게 소용돌이치는 게 보였다.

“놈의 발버둥은 아니란다. 지하수로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통로야.”

“!”

넷의 눈에서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빠르게 지시했다.

“루디. 헬레나랑 같이 황족들 시체, 아니. 시신 수습하는 거 도와줘.”

“전하, 저도 같이……!”

“마탄, 몇 발 남았어?”

“아…….”

“강에서 내가 떠내려오거든 그때 도와줘. 세레라지에 누나는 흑철 기사단이랑 같이 카지노 잔당 척결하고, 텐티아 경. 경은 반항하는 황족 잔당들을 처리해 주게. 와이번이 올 때까지 아무도 도망가서는 안 돼.”

“왜 내게만 반말…….”

“예. 전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루디의 사격에 잠시 기세가 꺾였던 황족들은 이제 사방으로 도망치거나, 어떻게든 카지노 지배인들과 함께 배를 몰고 수로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기세로 몰아붙인 덕에 승기를 잡았지만, 이쪽의 전력은 일단 기사 다섯뿐이었다.

실력과 별개로 도주를 막을 머릿수로는 부족했다.

“다들, 무사히.”

“전하께서도.”

“발렌 님도요.”

“적당히 다쳐서 돌아오렴.”

* * *

발렌시아누스는 지하수로에 들어서자마자 동쪽으로 달렸다.

동쪽에 운하 수문과 방벽 성문이 있으니, 놈 또는 놈들은 그 둘 중 하나를 이용할 게 분명했다.

쏴아아아아-.

수로를 따라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구멍이 여럿 있어서 물소리가 요란했다.

자기 발소리도 상대의 발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타악, 그는 몇 번이고 땅을 박찼다.

천년 제국의 수도는 수도 안에서 운하를 파야 할 만큼 거대했고, 중앙 선착장에서 동문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마나를 운용하며 달렸음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그러나 놈 역시 옛것의 힘을 이용해 몸을 보조하고 있을 테니 조금도 걸음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걸 느끼며 란체아를, 유스티아누스를, 아리에타를 생각했다.

그는 그들의 원한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원망했다.

그는 많은 걸 선명하게 기억했다.

사방에서 마경이 열리고 옛것들이 이 세상으로 파고들어 오는 절망의 시대를.

어제 영지 하나가 통째로 옛것들에게 넘어가 80만 명이 죽었는데, 협조를 원한다면 ‘자리’부터 내놓으라며 뻔뻔한 요구를 해오던 자들을.

쐐애액!

슬슬 동쪽 끝까지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발렌시아누스의 눈앞에 촉수가 날아들었다.

쩌저저저저적!

단단한 돌벽을 길게 부술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재 기사 텐티아와의 대련을 통해, 회귀 전보다도 불망의 묘리를 깊이 깨달은 검객이었다.

그는 몸을 숙여 피하는 동시에 검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사악!

머리 위에서 질긴 촉수가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참 신기하지.”

모퉁이 뒤에 숨어 있던 란체아가 걸어 나왔다.

막 잘려 나간 왼팔이 꾸물거리며 자라났다.

“옛것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강해지는 건 아니라니. 웃기지 않아? 나는 이 세상에서 쌓은 모든 걸 버렸는데, 그것들은 한 줌의 힘만 주더라고.”

존재를 바친다고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면, 이미 이 세상은 침식자들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검에 모든 걸 건다고 누구나 소드마스터가 되지 못하듯, 침식에도 재능이 필요했다.

열심히 주문과 기도문을 외고, 사람을 죽여 제물을 바치고, 변이된 몸과 기이한 기운을 잘 다루는 법을 연습해야 했다.

“침식 그거 가성비가 안 맞아. 알면서 왜 그랬냐?”

‘침식자로서 소드 엑스퍼트와 비슷한 힘을 얻으려면, 소드 엑스퍼트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까 열심히 단련해서 소드 엑스퍼트가 되면 되지, 굳이 침식될 필요가 없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힘을 숨길 방법이 이것뿐이었으니까?”

란체아가 양손을 촉수로 변이시켰다.

남자치고 긴 금발 곱슬머리 아래 가라앉은 눈빛이 음습했다.

발렌시아누스는 조소하며 물었다.

“너는 누구를 잃었지?”

“다. 형, 누나, 어머니까지.”

“황태자 파벌이었구나.”

“아니. 1황자 파벌이었어. 제이릴리스와 같은.”

“무엄하다.”

“나는 다 잃었는데, 이렇게 힘든데, 왜 너희 남매 놈들은 그렇게 실실 웃고 있…….”

발렌시아누스는 란체아의 말을 끊었다.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40년간 수많은 사람에게 들어 온 말은 그에게 조금의 울림도 주지 못했다.

화살 같은 불꽃이 란체아의 어깨를 꿰뚫었다.

“크악!”

그가 턱을 쳐들고 란체아를 오만하게 깔아보았다.

“원한 따위에, 감정 따위에 의존하지 마라. 약한 것아.”

“뭐……?”

“감정은 믿을 게 못 돼. 사람은 뱀 뿔 잎을 먹으면 원치 않게 침식된 팔을 자르는 동안에도 웃고, 검은 점 가시 나무즙을 먹으면 아침에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지고 저녁에 금광을 찾아도 우울함에 빠져 죽고 싶어지지.”

노란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황족답게 굴어라.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숫자로 셀 수 있는 것을 등불로 삼아. 우리는 그렇게 살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감히……!”

“황제 폐하의 적에게 죽음을.”

타악, 발렌시아누스는 장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두르며 달려들었다.

란체아는 양손을 촉수로 변이시키며 발렌시아누스를 옭아매려 했지만, 그는 발렌시아누스가 40년간 각양각색의 침식자들과 싸워 왔다는 걸 몰랐다.

사악!

눈 깜짝하기도 전에 촉수와 팔의 경계선이 베여 팔이 떨어지고, 그 부상을 회복하기도 전에 양쪽 눈에 두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아악! 이 비겁한 새끼!”

“싸우지 않고 말로 해결하는 게 제일 좋지. 싸우기 시작한 이상 무조건 이겨야 하고.”

발렌시아누스의 검이 제 심장을 파고들어 오는 감각을 느끼며, 란체아는 정신을 뒤흔드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지하수로가 무너질 듯 흔들리고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발렌시아누스는 일순 비틀거리면서도 루디를 데려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침식자는 변이한 육체보다 정신계 공격이 더욱 강력했다.

일반인인 루디라면 이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수도 있었다.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방금 저 함성 한 방에 병사 백 명 정도는 정신이 나가서 아군을 물어뜯으며 난리를 피웠을 거다.

란체아는 발렌시아누스를 비틀거리게 하는 동시에 반향전위로 일대 구조를 파악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천장 구멍을 향해 막 재생되기 시작한 팔을 뻗었다.

우선 목표는 탈출이었다.

지하수로로 물이 들어오는 구멍은 운하 벽 얕은 곳에 있었고, 침식자의 힘이라면 쉽사리 몸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는 촉수로 몸을 끌어당겨 운하 수면으로 떠 올랐다.

“아!”

막 재생된 눈이 세상을 비추었다.

격자 창살이 내려진 거대한 운하 수문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 옆 대로에는 외곽 성벽 동문이 솟아 있었다.

“아아아아아-!”

그는 양팔을 휘저어 운하 격자 창살 수문으로 붙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몸을 잡아당기는 손길을 느꼈다.

푹!

발목을 붙들고 따라온 발렌시아누스가 란체아의 허리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잘려 나간 허리띠에서 세 개의 주사기가 운하 아래로 가라앉았다.

“복수하겠다며? 그 말을 듣고도 내가 널 놔줄 거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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