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53화
(53)
긴 밤은 끝나고 결국 새벽이 왔다.
수백, 수천, 수만 쌍의 눈동자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부산스럽게 어젯밤의 난동을 이야기했다.
황족들이 탈출하려 했고, 침식자가 나타났고,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침식자가 교회를 공격하게 유도했다고.
거리의 풍경 역시 그 이야기에 살을 더했다.
수많은 사람이 촌극을 바라보듯 관람했다.
황제의 기사들이 란체아의 정신 파동에 당해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교회로 보내고, 벌벌 떨고 있는 짐마차 마부들을 다독이고, 허탈하게 웃고 있는 발렌시아누스 대공을 질질 끌고 황궁으로 향하는 걸.
안 그래도 와이번핏 처형법과 배움의 거리에서 일어난 난동으로 발렌시아누스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은 때였다.
이번에야말로 저 망나니가 목이 매달릴 거라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수도의 카페와 시장과 배움의 거리가 수많은 호사가의 입방정으로 부산해질 무렵, 솔레타라온 황궁 알현실에서 황제는 흡족하니 웃고 있었다.
전날 밤 일어났을 일을 대략이라도 아는 모든 행정관과 법관과 기사들은, 즉위한 지 1년 된 어린 황제를 한없이 올려다보았다.
“바르바토스 경.”
“예. 폐하.”
제일 먼저 불린 건 흑철 기사단장이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거구의 기사가 보석으로 포장한 화려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 ‘붉은 등 끄기’ 작전은 모두 그대의 공이요. 정확히 짐이 바라는 만큼 홍등가를 철거해주었군.”
바르바토스와 흑철기사단, 흑철기사단 휘하 치안감들은 지난밤 홍등가의 모든 카지노와 고급 주점을 습격해 그동안 그들이 저질러 온 모든 죄를 물었다.
탈세, 불법 고리대, 마약 제조 및 판매, 알선, 살인 청부 등의 죄목을 뒤집어쓴 지배인들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결코 낼 수 없는 막대한 벌금을 현장에서 물리고, 돈과 건물을 모두 압수하는 식이었는데, 그렇게 얻은 재산은 군비로, 땅과 건물은 인구 밀집 해결에 쓰일 예정이었다.
유일하게 꼬투리 하나 잡히지 않은 건 발렌시아누스를 통해 내부 협력자 노릇을 하던 적가면이 유일했다.
7할이 날아가고 성치 않은 3할만이 남은 홍등가에서, 밤의 새 왕은 그녀가 될 것이었다.
“‘조직’의 장이 상당한 실력자라고 들었는데, 어떠했는가?”
황제의 물음에 바르바토스가 호쾌하게 웃으며 나무 상자에 담긴 목을 내밀었다.
그는 발렌시아누스만이 기억하는 회귀 전의 역사에서, 홍등가의 왕으로 군림하다 숙청이 닥쳐오자 타국으로 도피했고.
제 몸값으로 그동안 모아온 모든 비사를 풀어, 제국 궁정 귀족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킨 자였다.
“흑철 기사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폐하.”
그 많은 비사를 하나도 말하지 못하고 간 허망한 최후였다.
“그래. 역시 경의 흑철이군.”
바르바토스가 입에 귀에 걸릴 듯 웃었다.
제이릴리스가 그 웃음이 보기 좋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홍등가는 한동안 어수선할 테고, 그곳을 안정적으로 개발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괜찮다면 공사를 맡을 건축 길드 선정도 그대에게 맡기고 싶은데, 어떤가?”
어디서든 군주의 공사를 맡을 때는 뇌물이 오가는 법이었다.
굳이 기사에게 그 협상을 맡긴다는 건, 뇌물을 받아 부하들 입에 기름칠 좀 해주라는 뜻이었다.
바르바토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폐하. 망극하옵니다.”
그가 물러선 다음 황제 앞에 고개 숙인 건 세레라지에였다.
금색과 청색의 금은 요동을 번쩍이며, 겉은 남색이고 속은 붉은색인 로브를 두르고 고깔모자를 쓴 천재 마법사는, 정중하게 로브 자락을 걷어 올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세레라지에. 그대가 짐의 금고에 보태준 바가 크다. 덕분에 올해 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되겠어. 상을 주고 싶은데, 짐이 새 지팡이를 내어 주면 받겠느냐?”
“스승의 선물이라 애착이 깊사옵니다. 마법진 시안 기간만 더 늘려 주시지요.”
“마법사답구나. 그래. 한 달을 늘려 주마.”
세레라지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조각처럼 웃으며 말했다.
“막 그대 몫이 얼마인지 보고가 들어왔다. 그대가 십여 개 카지노에서 딴 금화가 총 8만 5천 6백 38닢이니…….”
그 자리의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어지간한 대영주의 예산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금액이었다.
“4만 2천 8백 19닢이 그대의 것이니라. 아직 다 담지도 못했다고 했으니, 차차 찾아가거라.”
“예. 폐하. 감사합니다.”
방금의 대화로 세레라지에는 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물러서고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린 건 노구의 궁무대신이었다.
제이릴리스는 시종을 불러 그녀에게 의자와 지팡이를 가져다주며 노신에게 존중을 표했다.
“궁무대신. 짐의 혈족은 이제 몇이나 남았느냐? 짐의 즉위 전과 비교해 읊어보도록.”
얼굴에 깊은 주름살을 새긴 궁무대신이 헛기침을 하고는 두루마리를 폈다.
“선대 황제 폐하와 황후와 황비와 첩, 그리고 그들로부터 태어난 모든 아이를 통틀어, 법률상 황실에 속하는 이들이 672명이 있었습니다.”
선대 황제는 세 자릿수의 애첩을 두고 정기가 바닥날 때까지 자손을 만들었다.
“그랬지.”
“폐하께서 즉위하신 날 선대 황제 폐하가 승하하시고, 그분을 포함해 122명의 황실 구성원이 죽었습니다. 다음날 모든 첩과 비, 피가 섞이지 않은 황실 구성원들을 친정으로 돌려보내셨으니, 법률상 황족 중 남은 이가 426명이었습니다.”
“많구나.”
그 뒤로 수많은 암살 시도와 반란 모의, 그에 따라 1년간 이어져 온 제이릴리스의 탄압이 궁무대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알현실에 모인 법관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침식한 자 6명이 처형당했고, 폐하의 잔에 독을 탄 배후로 13명이 자결했으며,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법률상 황족에 속하지 않지만, 황실의 피를 물려받은 사생아’ 67명 중 47명을 베었습니다. 그들은 황족에 속하지 않으니, 황궁에 남은 이가 47명이었습니다.”
“길었다.”
제이릴리스는 옥좌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젯밤 발렌시아누스 대공과 흑철기사단의 기사들이 황실의 기밀을 타국에 넘기려 집단 탈주한 45명 중 13명을 베고, 31명을 황궁에 압송했습니다. 1명은 수색 중이나, 곧 잡힐 듯합니다.”
“길었어.”
그녀의 노란 눈이 은은하게 빛나고,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그중 미리 궁무부와 밀서를 주고받으며 내응한 8명을 제하고 23명이 오늘 아침 자결했습니다.”
그 웃음을 보며 궁무대신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법적으로 황족에 속하는 자는 폐하와 발렌시아누스 대공, 세레라지에 대공 외 8명, 총 11명입니다. 계승권이 아니라 혈통으로 범위를 넓히면, 플라니티에스 후작가에 양자로 입적한 아퀴나스 백작도 있습니다.”
모든 게 그녀와 선황의, 황실의, 제국의 업보였다.
실험이 성공하면 실험체들은 쓸모가 없어지는 법이었다.
“헬레나, 하드리탄, 데니아 대공은 황실에서 근무할 뜻을 밝혀 왔으며, 남은 5명은 계승권을 포기하고 모친의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제이릴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불허하노라. 그들은 인질로서라도 남아 있어야만 하느니.”
“그리…… 전하겠습니다.”
황제가 백금발을 스스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지난 1년간 피를 많이도 흘렸구나. 모두 필요한 일이었음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언제 짐도 못 이길지도 모르는 괴물로 변할 자들과 한 궁에서 잘 수는 없었으니.”
만조백관은 그 모습을 보며 기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제 친족들의 피는 흘릴 만큼 흘린 거 같구나. 하지만 아직 남은 친족이 있다.”
궁무대신이 침을 삼켰다.
“발렌시아누스 대공을 불러와라.”
* * *
성기사 앙겔로스는 황제를 싫어했다.
그녀는 교회와 좋은 사이를 유지했던 선황을 죽였고, 1년간 각종 핑계로 수백의 친족을 죽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데, 거기에 더해 즉위한 지 1년도 넘게 교회를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의 상식상, 세속의 군주가 이렇게까지 신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만백성이 교회에 다니는데, 어찌 그들을 다스리는 군주가 교회를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대영주와 타국의 왕들이 인륜과 천륜을 어기고 패륜을 저지른 제이릴리스를 파문하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걸 참아주고 있는 교회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공식적인 사절이나 친서 하나 보내지 않았다.
아니, 사절이라면 사절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하나 오기는 했다.
무려 현 황제의 쌍둥이 오빠를 보냈으니 나름 격식을 차린 사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쌍둥이 오빠가 뒤에 변이한 침식자를 달고 왔다는 것이다.
세상천지에 그런 걸 달고 대성당에 오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성자님이나 신도들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앙겔로스로서는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다.
성자님이 말리지만 않았으면 진짜로 그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나마 그가 워낙 평판이 좋지 않고, 얼마 전에는 배움의 거리에서 침식자와 관련된 문제까지 일으켰으니, 황제도 곧 그의 목을 칠 거 같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준비되었나?”
“예. 성자님.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는 홍의주교와 성자 마테오스, 여러 사제, 성기사들과 함께 황궁으로 향하는 이 행렬에 낀 게 무척 자랑스러웠다.
황제가 찾아와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제 아비도 죽인 자에게 그런 걸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교단이 황제를 파문하리라 믿었다.
아무리 빛이 자비와 용서를 말한다 해도 그런 무례를 저지른 황실을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뭐, 뭣이.”
그래서 앙겔로스는 밤하늘 같은 천장을 가진 황궁 알현실에서, 황제 옆에 서서 성자를 맞이하는 자를 보자마자 눈을 까뒤집으며 뛰쳐나갈 뻔했다.
“그때는 무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대공. 침식자를 앞에 두고 이 마테오스가 물러설 수는 없는 법이지요.”
샛노란 눈을 반짝이며 백금발을 뒤로 넘긴 어린 대공이, 하얀 제복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건방지게 검을 차고 신까지 신은 체로 성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존경하는 철두철미한 홍의주교는, 손녀를 만난 할아버지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친족살해자 황제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세속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게 되니 빛의 종으로서 기뻐 마지않습니다.”
“진작 찾아갔어야 했는데 미안할 따름이구나. 피 묻은 손으로 교회의 문턱을 넘는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이해하거라.”
“이제라도 폐하께서 저희를 찾으시니 다행입니다.”
“내 사과의 뜻으로 교화에 금화 1만 닢을 헌금하고, 다섯 대공과 여러 혈족에게 수도서원을 권하겠노라. 금화는 교회가 침식자들과 맞서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데에 쓰면 될 것이고, 혈족들을 보내는 건 짐의 믿음의 표시이니라. 짐의 사과를 받아 주겠는가?”
“폐하께서는 사람에게 사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빛과 양심만이 폐하에게 죄를 물으실 수 있으니, 정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이번 주말에 대성당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앙겔로스는 잠시 곱씹은 다음에야 황제가 한 말을 이해했다.
“!”
수도자가 되면 결혼을 하지 못하고, 대숙청에서 미루어 추측해 보건데, 황제는 피를 통제하려 한다.
대공 다섯, 그리고 아마 사생아를 뜻할 혈족을 모두 수도서원 시키면, 이제 황실의 피가 번질 일은 없다.
그리고 금화 1만 닢이면…… 많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는 내심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성자 옆에서 아릿하게 웃는 저 개망나니는 앞으로도 많이 보게 될 거 같았다.
* * *
양쪽 벽이 통유리로 만들어진 황궁 남서쪽 끝 방, 요정 숲의 식물이 자라는 공기 맑은 방.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제이릴리스는 나를 긴 의자 옆에 앉혀 두고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유스티아누스를 놓친 게 그리 충격이었나?”
내가 란체아를 대성당으로 유인하고 있을 때, 유스티아누스는 지하수로에 그대로 숨어 있다가 성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쳤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새벽 거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덜덜 떨었다.
그놈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체감상 4달쯤 전에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탓이었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기사들에게 부축을 받고서야 간신히 붉은 달무리 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죽을죄를 지었지만 진짜 죽이지는 말아 주소서.”
“할 만큼 해주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야.”
그녀는 잠시 나와 같은 색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내 어깨에 관절 반지 낀 손을 얹더니 어색하게 두 번 두드렸다.
본래라면 회귀 이후 처음 받는 위로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겠지만, 이번만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하오나 놈은……!”
“일신의 무력도 변변찮고, 번듯한 친정도 없지. 사방에서 황족 출신 반란군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상황도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게다가 이미 용기사들도 여럿 풀었으니.”
안심은 되지 않았지만,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전생의 이맘때 제이릴리스는 이미 전장에 있었고,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 대귀족을 외가로 둔 황족 수십 명이 탈출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여기에 있었고, 미래에 침식자 세력의 거두가 될 사생아들과, 친정 대귀족들을 등에 업고 황제를 칭할 반역 황족들은, 모두 한 줌 재가 되었다.
마지막 다섯 대공과 진을 제한 능력 있는 사생아들은 막 수도원으로 끌려갔고, 평생 나오지 못할 거였다.
구심점 없이는 세력이 생기지 않는다.
나도 제이릴리스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언젠가 재회할 것만 같은 유스티아누스를 떠올리며,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대의 말대로 되었구나.”
“예?”
“이번 주일에 그대와 함께 대성당에 예비를 드리게 되지 않았느냐?”
“아.”
제이릴리스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백금발이 어울리는 오만한 눈매와 아릿한 웃음, 경지에 오른 뒤로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은 그 얼굴이었다.
“그대는 기이하도다. 제멋대로 구는 거 같으면서도 결국 짐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느냐?”
“과찬이…….”
“후작과 만났을 때도, 새 형벌을 만들 때도, 배움의 거리에서도, 이번에 짐과 그대의 혈족들을 잡아들일 때도 그랬다.”
“모두 우연이옵니다.”
“그래. 이 세상에는 기적이 있지. 그러나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라고 하는 법이다.”
친족살해자 폭군은 그 나이 또래 소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짐이 지금껏 해온 일과 먹은 독을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니라.”
전혀 그 나이 또래 소녀 같지 않은 말을 하면서.
“맞사옵니다.”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죽지는 않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그녀가 낭랑하게 웃더니,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과업이 끝났구나. 그러나 이제 시작이로다.”
“예. 폐하. 탐욕스러운 대영주들을 견제하고 마경을 닫으셔야지요.”
“그대는 짐이 탐욕스러운 대영주들을 견제하고 마경을 닫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제이릴리스의 눈가가 장난스럽게 휘었다.
나는 천하의 개망나니 발렌시아누스답게 답했다.
“술을 마시고, 도박하고, 사방팔방에서 쌈박질을 하겠습니다.”
“불허한다. 아니, 허락해줘도 좋겠구나.”
“예?!”
“그대가 짐에게 가져다준 건 모두 그렇게 가져다준 것이니.”
내 눈이 미친 듯 흔들렸다.
그걸 못 봤을 그녀가 아니다.
제이릴리스는 유리창 너머에 노을빛 받아 붉게 달아오른 도시를 배경처럼 두르고 말했다.
“더더욱 개망나니처럼 굴어 주기 바란다. 짐의 유일한 혈육이여. 짐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다준다면 그 어떤 일탈도 눈감아줄 테니.”
나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며 답했다.
“예. 폐하. 언제까지나.”
분명 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겠지.
폭군의 충신, 희대의 개망나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