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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64화 (64/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64화

(64)

깡패들의 함성이 밤의 정적을 찢고, 어둠 속에서 수백 개의 횃불이 흔들렸다.

마치 수백 개의 눈을 가진 슬라임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영악하고 똑 부러진 인상의 소녀, 코넬은 낮게 웃으며 주변 척살조원들에게 명령했다.

“다친 애들이랑 금고를 챙겨서 비밀 거점으로 후퇴해.”

“대장은……?”

“같이 가셔야 합니다.”

“이 다리로 어디를 가라고? 심지어 여기는 3층이잖아. 빨리 가. 명령이다.”

아몬은 그들에게 리더를 따르는 본성을 주었다.

척살조원들은 침음성을 흘리면서도 물러섰다.

코넬은 창가에 기대고 서서 단검을 빼 들었다.

자비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잡힌다면 죽음을 간원하게 되리라.

그 전에 차라리…….

“어?”

그녀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단검이 손아귀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도와줄까?”

겨울밤, 찬 바람 부는 창가에 만월을 등지고 백금발의 소년 대공이 서 있었다.

금실 수놓은 하얀 제복을 입고, 붉은 띠를 찬 그가 비인간적인 금색 눈을 번뜩이며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다시 넣어 놓고.”

그가 창문 안으로 들어오며 단검을 빙그르르 돌려 자루 쪽으로 내밀었다.

“어떻게……?”

코넬은 그걸 받아 들며 물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내가 정말로 네 말을 다 믿고 그대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느냐?”

“!”

“네가 정말 아몬의 신도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었고, 네가 한 말이 정말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코넬은 이를 악물었다.

“나름 철두철미하게 주변을 경계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너 같은 애가 커서 된 게 나다. 속내가 훤히 읽히더구나.”

그의 뒤를 따라 루디와 텐티아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루디. 나와 함께 남은 전투조원들을 처리하자. 텐티아 경. 경은 저놈들을 몰아내 주게. 해줄 수 있겠나?”

갈색 머리를 올려 묶어 정리한 해맑은 인상의 시녀가 단정한 시녀복 안쪽에서 마총을 뽑아 들고, 붉은 머리의 늠름한 기사가 투구를 눌러 썼다.

“네. 발렌 님.”

“예. 발렌 전하.”

발렌시아누스는 목발을 짚고 일어난 코넬을 부축해주며 큰 바퀴 달린 의자를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대장!”

“주사액은 어디, 있습니까!”

계단 중간중간 살아있던 전투조원들이 이를 드러냈다.

늑대와 인간을 섞어 둔 듯한 외모에 목과 등에서 긴 촉수 갈기들이 살아 움직였고, 손가락과 발가락도 굵은 촉수로 변해 있었다.

코넬은 당황하며 발렌시아누스 곁에 바싹 붙었다.

그녀가 만든 만큼, 그 전투조원들이 얼마나 날래고 강인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발렌시아누스는 걱정 하나 하지 말라는 듯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루디가 사점 안경알 너머 녹색 눈을 번뜩이며 쌍 마총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감히 누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까? 모두 뇌수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 주세요!”

그녀가 양어깨를 뒤쪽으로 한 바퀴 돌리며 견갑골을 고정하고,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일류 궁수를 가볍게 뛰어넘는 속사였다.

텐티아와의 훈련 덕에 이제 반동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

곳곳에서 튀어나오던 변이된 전투조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터져 나갔다.

“전하, 위에!”

천장에 매달려있던 전투조원이 벽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흉악한 송곳니 사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발렌시아누스는 코넬을 몸으로 가리며 검을 휘둘렀다.

“감히 네 구원자 앞에서 이를 드러내느냐!”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

명상 수련으로 쌓은 마나가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제어력에 따라 움직였다.

본래 가느다란 실처럼 근육을 감싸고 있던 마나가 쇠사슬처럼 두꺼워지고, 그 몸이 몇 배로 가속했다.

하얗던 마나 블레이드에 찬란한 금빛이 덧씌워지고, 그의 검이 금색 초승달 같은 궤적을 그리며 세로로 휘둘러졌다.

전투조원의 정수리로 들어간 검이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퍼억!

허공에서 양단된 시체가 바닥에 떨어지고, 발렌시아누스는 무의식적으로 코넬의 눈을 가리려 했다.

그러나 코넬은 태연하게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이제 기사님과 함께 후퇴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백금 기사님이라도 저 숫자를 감당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발렌시아누스는 자조적으로 혀를 차고, 창밖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럴 필요는 없을 거다.”

“예?”

“이참에 봐 둬라. 왜 기사가 세상을 지배하는지. 오거의 힘과 체력, 엘프의 몸놀림과 마나 친화력을 다 가진 인종이 기사고, 귀족이니까.”

텐티아는 건물 앞마당에서 투구의 붉은 리본을 휘날리며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몰려오는 횃불과 빈민 깡패들의 바다에 대고 외쳤다.

“나는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의 기사, 텐티아다! 물러서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

빈민 깡패들의 발소리가 다 묻힐 만큼 큰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미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빈민 깡패들이었다.

“기사다!”

“그래 봐야 한 년이야! 이 인원으로 가서 밀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저 갑옷은 내 거다!”

그들은 보통 빈민이나 유민이 아니라, 힘을 추구해 적극적으로 침식을 선택한 자들이나, 홍등가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았던 자들이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혼자서 수천 명 앞을 망설임 없이 막아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텐데.

화르륵, 텐티아의 장검에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가 타올랐다.

타악, 그녀가 바람처럼 빠르게 땅을 박찼다.

코넬로서는 눈으로도 쫓지 못할 속도였다.

마나 블레이드의 붉은 빛만이 허공에 선으로 남을 뿐이었다.

텐티아가 수천에 달하는 빈민 깡패들에게 유성처럼 돌진했다.

“아.”

한 사람이 천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가?

코넬은 막 그 질문에 답을 얻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둠 내린 거리를 바라보았다.

사악-! 사아아악-!

붉은 선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수백 개의 목과 팔다리가 날아올랐다.

탈곡기에 얹은 밀짚에서 밀알이 튀어 오르는 거 같았다.

수백 개의 불타는 눈을 가진 괴물이, 깡패들의 파도가 기사라는 방파제에 부딪히고, 멈칫하고, 결국 부서졌다.

수백 수천 개의 횃불이 사방으로 갈라지고 흩어지며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괴물의 불타는 눈들이 흩어져 도망가는 거 같았다.

발렌시아누스가 흡족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텐티아 경이야.”

이내 그는 여전히 넋을 놓고 있는 코넬에게 몸을 돌리더니, 그 비인간적인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코넬.”

“예. 전하.”

“너는 똑똑하니, 많은 걸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옛것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그는 피식 웃으며 제안했다.

“나랑 일 하나 같이 해볼 생각 없냐?”

* * *

황립 마도 공방에서 평균적으로 공방주에 오르는 나이는 50대였다.

그런 곳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로 당당히 한 공방의 주인이 된 마법사가 있었다.

세레라지에, 긴 남색 생머리와 남색과 노란색의 금은 요동을 가진 새침한 인상의 마법사.

그녀는 들어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굵직한 주문을 두 개나 만들어냈다.

전류가 땅에 스며들지 않고 넓게 퍼지게 하는 주문과 전류를 갑옷 안으로 파고들게 하는 주문.

전자는 천재적인 발상의 산물이었고, 후자는 체계적인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둘 다 수식화까지 끝나서 마법 스크롤이나 마도구로 양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나이치고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대단한 업적이었다.

“우리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지.”

“나는 함께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저격 술식을 연구해 보겠네.”

“이 연구는 폐기다! 더는 전격 마법 위력 강화 연구는 필요 없어. 캐스팅 시간 줄이기에만 집중해라!”

평생 천재 소리를 들어 온 자긍심 높은 공방주들이 다시 한번 경쟁심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물론 공방에 딸린 제자들과 생도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그들의 숙명이었다.

“좋은 날이잖니.”

막 출근한 세레라지에는 어제 퇴근 못 한 제자와 생도들의 인사를 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했다.

“오늘도 즐거워 보이네. 아주 입꼬리가 귀에 걸렸어.”

그래서 그녀의 공방 소파에서 발렌시아누스를 목격하자, 그녀는 전격 스크롤 시안을 밟고 감전된 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지팡이를 휘저었다.

“꺄악! 언제 들어온 거니? 분명히 네 전용 감전 마법을 문고리에 걸어 놨는데.”

발렌시아누스는 쓰다듬던 고양이를 놓아주며 답했다.

“부르니까 안에서 열어 주더라. 빵 사 오니까 많이 반가워하던데? 돈도 많으면서 애들 끼니 좀 잘 챙겨 줘.”

“배움의 열정으로 불타는 중에는 끼니 같은 건 생각도 안 나지 않니? 세상 모두가 발렌 너처럼 술과 고기를 위해 사는 건 아니란다.”

세레라지에로서는 마법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끼니 생각이 난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쪽 방에서 밤샘 작업 중인 제자와 생도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딸린 입들이 많이 늘었네.”

발렌시아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세레라지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따라가 주었다.

“워낙 할 일이 늘었잖니. 폐하께서 완제품을 원하신단다. 바깥쪽에 공방을 또 차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나야 그쪽에는 관심 없지만, 폐하는 내 마법 스크롤을 양산해서 전쟁 병기로 쓰시려는 거 같으니. 설마 네가 부추긴 건 아니지?”

발렌시아누스가 눈을 피했다.

세레라지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게 네 일이잖니. 열심히 하려무나.”

“누나가 안 그린다고 막말하는 거야?”

“월급을 주잖니. 너도 월급을 받으니까 사람 썰고 다니는 거 아니니?”

“나는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봉사할 뿐!”

“그럼 무급으로 일할 수 있니?”

발렌시아누스의 얼굴에 잠시 경련이 일더니, 금세 가라앉았다.

“사실 고문직이 월급은 쥐꼬리고, 대부분 수입이 뇌물이랑 횡령이랑 상여금에서 나와서, 무급으로 일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런 개망나니를 보는 건 처음이구나. 역시 남매가 쌍으로 악독해.”

세레라지에가 새침한 목소리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리고,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는 왜 왔니?”

“마도구 중에 반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영원히 빌려줘. 실전 테스트하고 결과 보고서까지 가져다줄게.”

“영원히 빌려달라는 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니?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려무나.”

말과 달리 세레라지에는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전 테스트 데이터는 확실한 가치가 있었고, 제작자로서 자신의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혀를 차면서도 생도를 불러 반지를 가져오도록 했다.

* * *

12월, 눈발 휘날리는 날이었다.

빈민가 공터 앞에서 목걸이 패거리가 외쳤다.

“줄을 서시오! 줄!”

“배급은 충분합니다. 줄 안 서면 묻어버릴 거니까 줄 서세요!”

“홍등가 재개발 인부로 나가고 싶으면 식사를 받은 후 이쪽으로 오게나! 명단에 이름을 올려서 내일까지 보내야 한다네.”

“벽돌 공장에 취업하시려는 분은 이쪽입니다!”

“지금 이름 부르는 분들은 오늘 저녁에 외곽 임시 예배당으로 가세요. 봉사 나오신 신학생분들이 정화의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겁니다!”

수도 밖에서 온 빈민들과 본래 살던 빈민들은 가릴 거 없이 섞여 줄을 섰다.

재개발 인부, 벽돌 공장, 배급, 침식 정화까지.

몇 주 전까지 피가 튀겼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 떨어진 건물 모퉁이에서 바라보다 말했다.

“코넬. 잘하고 있구나.”

목발을 짚고 옆에 선 코넬이 고개를 저었다.

영악하고 총명한 그녀는 붉은 기운 감도는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쑥한 코트를 입고, 나무를 깎아 만든 의수를 단단히 딛고 있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홍등가 재개발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바르바토스 흑철기사단장님이 어떤 건축 길드를 고용할지도 모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저희 인력을 써 주십사 애원해야 하고요.”

“그래도 약이랑 침식은 잡았잖냐?”

“다 발렌 전하 덕분입니다. 수상한 돌이나 책이나 문자 새겨진 단검 같은 것들을 싹 걷어다가 교회에 바치라 말해주셨지요. 덕분에 저렇게 식량과 침식 치료도 받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마테오스의 친구 디스마스의 전례로부터 열정 넘치는 신학생들의 존재에 대해 배웠다.

배움의 거리에서 나날이 거물이 되어가는 진을 이용하면 배움을 당장 실천하지 못해서 안달 난 신학생들을 끌어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면 본의 아니게 침식된 끝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들은 크게 줄어들겠지.

“나한테 감사하다는 거냐? 교회에 감사하다는 거냐?”

코넬이 눈을 슬쩍 피했다.

“당연히 두 분 모두지요.”

나는 옅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알 굵은 노란 보석이 박힌 은반지가 오른손 중지에 끼워져 있었다.

“반지는 여전히 쓸 만하고?”

코넬이 주먹을 꽉 쥐자 노란 전격이 치지직, 하고 튀었다.

“덕분에 반란을 세 번, 습격을 다섯 번, 항쟁을 네 번이나 이겨냈습니다. 저로서는 값을 매길 수도 없네요. 하지만 가끔 공격 범위가 너무 커져서 아군도 휩쓸립니다. 좀 더 둔하게 만들어도 좋을 거 같네요.”

“상품평 좋네. 글로 길게 써 줘. 그래야 제작자가 다음 물건도 테스트 맡기지.”

“예. 안 그래도 준비해 놨습니다.”

나는 그녀가 준 봉투를 받아 품속에 넣고, 금화 몇 개가 든 주머니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착하게 살라고는 안 한다. 선만 넘지 말고, 이겨라. 네가 계속 여기를 잡고 있어야 약도 청부살인도 침식도 줄어들 테니.”

또, 네가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 궁금하니까.

코넬의 아몬드 같은 눈이 독기와 총기를 품고 반짝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경 쓰실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 *

높은 기둥과 별자리 같은 샹들리에로 밤하늘같이 꾸민 웅장한 알현실.

옥좌에 앉은 제이릴리스가 내게 권태로이 물었다.

“빈민가에 얼굴만 비추고 오라 했더니, 모든 걸 해결하고 왔구나. 그래. 어째서 그 아이를 현지 조력자로 골랐는가?”

“능력 있으니 세력을 키울 것이고, 아몬을 섬기니 침식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부친의 최후를 보았으니 약에 손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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