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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70화 (70/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70화

(70)

아래쪽으로 갈수록 마경은 점점 더 넓어지기만 했다.

우리 키보다 훨씬 큰 파란 버섯이 넓은 광장 같은 공동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치지지직-!

그 버섯은 몇 초마다 갓 테두리 부분에서 전류를 흘려댔는데, 그럴 때마다 내 검이 약간씩 전류를 끌어들여서 계속 왼쪽 허리와 허벅지가 감전당했다.

“왜 폐하만 멀쩡하십니까?”

“짐의 검 ‘유리거울’은 금속이 아니니라. 억울한가?”

“아닙니다. 폐하께서 감전당하시는 걸 보느니 제가 지옥 불에서 타는 게 낫습니다.”

치지지직-!

“아악!”

“……이리 오거라.”

보다 못한 제이릴리스가 자리를 바꿔 내 왼쪽으로 붙어서 몸으로 내 검을 가려 주었지만, 어차피 우리가 파란 버섯들 사이로 걷고 있는 건 똑같았다.

원래는 왼쪽 가장자리에 있던 내 허벅지만 고생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전류가 우리 둘 사이로 파고들어와서 제이릴리스까지 감전되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못 참아 주겠구나!”

그녀가 분통을 터뜨리며 보검 ‘유리거울’을 쥐었다.

흑단과 황금, 알이 굵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검집에서 날이 반투명한 검이 뽑혀 나왔다.

제이릴리스의 애병이자, 회귀 전 세상에서 세계 인구 감소에 크게 공헌한 보검이었다.

“폐하! 제가 검을 두고 가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나는 제이릴리스가 내 목을 날려버리려 할 줄 알았다.

체통이고 나발이고 다 던져 버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니라 버섯들을 향해 그 서늘하고 위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 파란 쓰레기 따위가 감히 누구 발목을 잡고 늘어지느냐!”

그녀가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사아아아아-

금색 오러 블레이드가 어떠한 전조도 없이 뿜어져 나갔다.

오러 블레이드가 창백한 빛으로 가득한 공동을 찬란하고 강렬한 금빛으로 밝혔다.

날아가는 도중에 좌우로 끝없이 길어지며 전방의 버섯들을 부채꼴로 휩쓸었다.

쿠웅-!

마침내 저 멀리 공동 끝부분에서 벽과 충돌한 오러 블레이드가 바위벽을 길게 부수고 사라졌다.

“대단하십니다.”

나는 이미 그녀의 힘을 알고 있었음에도 입을 쩍 벌렸다.

높이가 10m, 지름이 4m도 넘는 버섯 수백 수천 개가 모두 밑동이 잘려 나간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푸른색과 청록색으로 빛나는 빛이, 갓 아래서 튀던 전류가 사그라들었다.

적어도 이제부터 공동 끝까지는 편하게 걸어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속이 다 시원하구나. 응? 대공. 왜 엎드려 있느냐? 설마 놀란 건 아니겠지? 짐은 짐의 친족이 이 정도 가지고 경악하는 새가슴이라고 믿고 싶지 않도다.”

“예, 예. 그렇사옵니다.”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놀란 게 아니냐고?

회귀 전에도 비슷한 걸 몇 번 보지 않았다면 지금쯤 말도 못 하고 있었을 거다.

“폐하. 저기 신기한 게 있사옵니다.”

몇 걸음 걷다 보니 버섯 갓 위쪽의 평평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버섯이라면 둥그스름하고 매끈해야 할 그곳에는 연밥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큰 구멍은 지름이 1m도 넘을 거 같았다.

그 구멍 안에서 무언가 기어 나왔다.

“아무래도 저것들은 식물도 동물도 아닌 모양이구나.”

“마경 안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푸른 반투명한 몸에 긴 촉수, 치직치직 튀는 전류.

그건 작은 하늘 해파리였다.

“……폐하.”

“왜 그러느냐?”

“만약에 이 버섯 같은 것이 그냥 마경의 일부가 아니라, 일종의 알집이나 알 같은 것이라면.”

“것이라면?”

거기까지 말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제이릴리스를 있는 힘껏 밀쳤다.

정말로 예상치 못했는지 그녀의 얼굴에 일순 당황이 떠올랐다.

쾅!

직후, 그 자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돌바닥이 부서지고 파편이 튀었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내 하얀 제복에 ‘아콰테그’ 액체 갑옷을 먹여두지 않았다면 그 파편과 바닥에 퍼지는 전류만으로도 즉사했을 것이다.

거친 숨을 내쉬고 신음성을 토하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미친.”

지름이 5m에 육박하는 크레이터가 나와 제이릴리스 사이에 만들어져 있었다.

제이릴리스는 이걸 ‘꽤 강한’이라고 표현한 건가?

옆으로 밀려난 그녀는 나와 공동 하늘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예. 폐하.”

“짐의 몸에 손을 댄 무례는 용서해 주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허나 짐과 그대를 공격한 저 괴물들은 용서할 수 없겠구나.”

공동 하늘에 수십 마리의 하늘 해파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푸르게 발광하는 거대한 생명체들이 길게 늘어진 촉수 다리에서 압도적인 전격을 튀겼다.

이 거리에서도 피부와 머리카락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저런 게 밖으로 나갔다가는 큰일이 날 거다.

“하오나 핵을 찾지도 못한 상황에서 저것들을 다 죽여 봐야 아무 의미 없사옵니다.”

“상관없도다. 그 잠시의 시간 벌이와 화풀이가 필요할 뿐이니.”

그녀가 다시 보검 ‘유리거울’을 쳐들었다.

왼손에는 금빛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었다.

이에 대응하듯 열 마리의 거대 하늘 해파리가 촉수를 들어 올리며 전격을 끌어모았다.

그 밑에서는 5m 정도 되는 하늘 해파리들이 포르르르 포르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럼 폐하. 저놈들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응?”

잠시 머뭇거린 제이릴리스가 이내 흥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짐의 친족이로다.”

그녀가 오러 블레이드를 하늘로 날리는 동시에 나 역시 다가온 하늘 해파리를 향해 마나 블레이드 두른 검을 내리쳤다.

* * *

전격은 상대하기 제일 피곤한 속성이었다.

마나를 이용하지 않으면 막을 방법이 없었고, 그나마도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반대로 공격자는 어떻게든 상대의 몸에 닿기만 하면 그만이었고, 상대의 금속 무기에는 전격이 알아서 유도되어 주기도 했다.

마경의 이물들이 상대인 만큼 발렌시아누스의 장기인 도발이나 심리전도 먹히지 않았다.

그 불리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건, 그가 황제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제이릴리스가 걱정된다고 하면 세상이 비웃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제일 가까이 다가온 하늘 해파리에게 불꽃을 덮어씌웠다.

“진득하게 감싸 안는 불꽃!”

마나가 이상하게 모여들어 통제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지만, 마법을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키이이익?!

전류가 흐르는 촉수가 마구 꿈틀거리더니 하늘 해파리가 측 늘어지며 바닥에 추락했다.

“불꽃에 닿으면 해파리에서 그냥 파리로 돌아가는구나! 오늘 네놈들의 비루한 인생에 파국을 선사해 주마!”

놈들에게 들리지 않는 걸 알지만, 그는 성질대로 내뱉으며 스스로 용기를 끌어모았다.

파지지직-!

작은 하늘 해파리 여러 마리가 동시에 전류를 모아 내리쳤다.

그러나 발렌시아누스는 세레라지에와 회귀 전의 전투법을 통해 전격에 대응하는 법을 깨닫고 있었다.

하얀 제복에 깃든 액체 금속 갑옷을 믿은 그는 되려 검을 바닥에 꽂고 몸을 웅크렸다.

번쩍!

그의 몸을 친 전격이 모두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일순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결국 그는 다시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우우우우우웅-

작은 하늘 해파리들이 더더욱 몰려와 다시 전격을 충전하고 있었다.

반투명한 푸른색 촉수과 몸통에 노란빛이 번쩍이며 전류가 모여들었다.

발렌시아누스는 황금색 마나 블레이드가 일렁이는 검을 꼭 쥐며 제국 검술을 펼쳤다.

제국 검술 3단계, 자리이타(自利利他)

남을 돕는 게 나를 돕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 기술은, 상대의 공격을 깨부수는 게 아니라, 공격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서로가 다치지 않게 제압하는 기술이었다.

그 특성상 ‘나중에 움직여도 먼저 베는’ 후발선제의 묘리도 강하게 담겨 있었다.

1단계 일체개고나 2단계 불망과 다르게, 몸속을 흐르던 마나가 미친 듯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다.

단지 유유히 흐르는 그 속도를 더하며 최적의 검로를 내뻗을 수 있게 도와줄 뿐.

발렌시아누스가 금빛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며 검을 휘둘렀다.

5m급 하늘 해파리들이 일제히 전격을 내리치는 순간.

사아아악!

아찔한 곡선을 그리며 베어 올린 한 번의 검격이 하늘 해파리들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후, 하.”

거친 숨을 내쉬며 그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적의 수는 많았지만, 그는 방금의 공격으로 또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타악, 그는 넘어진 버섯 기둥 위를 밟고 하늘 해파리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머리 쪽에는 전류가 안 흐르는 거 같던데.”

!

놈이 움찔한 거 같았다.

“감전이라는 게 전류가 안 흐르는 거에다가 전류를 억지로 밀어 넣을 때 생기는 거라고 알거든.”

주변 하늘 해파리들이 발렌시아누스를 노리고 전격을 내리쳤다.

타이밍 좋게 그는 다음 하늘 해파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번쩍!

“너는 감전이 될까 안 될까?”

그가 올라타 있었던 하늘 해파리는 동족들에게 직격당하고 반투명한 몸을 새까맣게 태우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 죽어라 이 하늘의 해충 같은 놈들아!”

발렌시아누스는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며 해파리들을 떨어트렸다.

검으로 핵을 도려내기도 했고, 불꽃으로 불태우기도 했다.

“도망이냐?”

‘군체 의식? 아니면 전략? 개체마다 지능이 있는 건가?’

몰려있던 하늘 해파리 소형 개체들이 서로서로 간격을 띄우고 있었다.

이에 발렌시아누스는 이미 익숙해진 불꽃 마법을 구사했다.

“아찔하게 찌르는 불꽃!”

이번에도 마나가 요동쳐 원하는 형태로 빗어내기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해냈다.

펑!

직격당한 하늘 해파리가 몸을 오그라트리며 바닥을 굴렀다.

“폐하! 언제쯤 후퇴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나 그는 절대 짧은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이 마경은 그가 들어가 본 마경 중에서 기이하리만큼 평온한 편이었다.

물론 그건 제이릴리스가 진짜 강한 이물들을 상대해줘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파 계열 공격을 받지 않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마치 이물들이 뭔가의 기세에 눌린 거 같았다.

‘그것도 제이릴리스인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거 같은데.’

“한 놈만 더 떨어트리겠노라!”

하늘에서 벼락만 떨구면 어떻게 공격할 방도도 없는 거대 개체들이 제이릴리스의 오러 블레이드에 일도 양단되어 추락하고 있었다.

쿵!

한 개체가 추락하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되었다. 가자.”

“예.”

둘은 아래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후작 성 앞 광장에 화려한 깃발들이 모여들었다.

“외로운 강의 백작이 시그마인 님을 뵙습니다.”

“청동 산의 백작이 소집령에 따릅니다.”

“은 벌판의 남작이 왔습니다.”

“철 산의 기사가 주군의 부름에 응해 왔습니다.”

“관문의 남작이 영광스러운 의무를 다하려 합니다.”

세레라지에는 성 한쪽에 높게 솟은 탑에서 그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텐티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봉신들을 소집하고 있군요. 이미 군을 일으킬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그녀는 쉴 때도 그 하얀 갑옷을 벗지 않고 버텼다.

붉은 머리 역시 물에 적신 수건으로만 닦고, 한시도 세레라지에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방석을 깔고 명상 수련을 하던 루디는 녹색 눈을 떴다.

잘 웃고 부드럽던 얼굴은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세레라지에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종이와 펜을 잡았다.

한번 다녀왔던 만큼 봉인석으로 감춰놓은 마나의 흐름도 읽을 수 있었다.

베일을 한꺼풀만 벗기면 되는, 그녀로서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바람에 섞여 오는 색색의 가루를 읽어내듯, 그녀는 서쪽 산을 바라보며 마경의 기운을 종이에 그려 나갔다.

‘확실히 강해지고 있잖니.’

“세레라지에 대공 전하. 후작님께서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 하십니다.”

기사 하나가 탑에 올라와 말을 걸었다.

세레라지에는 대답 대신 옆에 놓인 잉크병을 들어 기사에게 뿌렸다.

“조용히 하려무나. 계산이 흐트러지잖니. 이게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인 줄 아니?”

“……그럼 집중을 도와드리기 위해 세 분을 잠시 떼어 놔 드리겠습니다. 텐티아 경? 연무장에서 후작가의 기사들과 검을 겨뤄 보는 건 어떤가?”

“입 다물렴. 둘 다 작업에 필요하단다.”

“기사와 시녀가 마법사의 관측에 왜 필요하시다는 겁니까?”

후작가의 기사가 정당한 항변을 했다.

그러나 세레라지에에게는 신분이라는 주문이 있었다.

“네가 마법사니? 꼬우면 네가 관측하려무나.”

‘내가 발렌시아누스를 닮아 가는 거 같구나. 이렇게 불쾌한 일이 있니?’

세레라지에는 끔찍한 생각을 떨쳐내려 애쓰며, 다시 펜을 쥐었다.

“머리 터지도록 계산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면 좋겠구나.”

“후작님께서는 하루빨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기사가 돌아가고, 셋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푸른 눈의 매 같은 인상의 귀족, 시그하임은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전해듣고 말했다.

“시간을 끌고 있군. 황제와 대공이 살아 있으리라 믿는 건가?”

“그럼 큰일 아닙니까?”

“괜찮다. 아무리 황제라도 마경에서 살아 나오지는 못할 테니.”

“하지만 그녀는 소드마스터이자 6서클 대마법사입니다.”

기사단장과 후작가 궁정마법사가 불안을 표했다.

후작은 그 완고한 얼굴에 드물게 미소를 드러냈다.

“그래도 용은 못 이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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