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73화
(73)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나는 파란 버섯들이 모여드는 경계에서 동굴 벽 사이에 숨어 가며, 치사하고 졸렬하게 하늘 해파리들을 저격했다.
불꽃의 창을 맞은 하늘 해파리 하나가 쪼글쪼글해지며 떨어지고, 수십 마리의 하늘 해파리가 전격을 방사했다.
번쩍!
다음 순간 내가 숨은 바위가 두 조각 났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다음 바위 뒤로 숨었다.
놈들은 그 반투명한 하얀색 몸에서 노랗고 파란 전격을 ‘우우우우우웅!’ 하고 모아 ‘쾅!’ 하고 내리친다.
강력하지만 전조를 눈치채기 쉬웠고, 건조한 이 동굴 속에서는 전격이 옆으로 퍼지지도 않았다.
즉, 어떻게든 직격만 피하면 된다는 뜻이었고, 40년간 별 전장을 다 겪은 내게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놈들의 진가는 이 마경 밖, 높은 하늘에 떠서 일방적으로 전격을 퍼부을 때 나올 거다.
높이가 100m도 안 되는 이 동굴은 내게 아주 유리한 싸움터였다.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나는 다음 불꽃 창을 만들어 날린 뒤, 황금색과 암적색이 소용돌이치는 뒤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본래 용언으로 마법을 봉인하면 일대 수 km의 마나가 붙들린다.
회귀 전에 제이릴리스가 상아탑을 토벌할 때 보았다.
그러나 비룡의 마법 봉인은 그 둘의 싸움터에 한정되었다.
제이릴리스 역시 똑같이 용언으로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그 상황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제이릴리스가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물론 고강한 검사였지만, 그녀의 진가는 단신으로 막대한 기동력을 선보이며 창공에서 일방적인 대마법 폭격을 퍼붓는 데 있었다.
마법을 사용 가능하다면 ‘진노의 창’이나 ‘대지 붕괴’ 같은 기술로 용의 발을 묶고, 오러 블레이드로 목을 그어 버리겠지만, 마법으로 빈틈을 만들지 못하는 지금 같은 전략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버섯들을 베어버릴 때처럼 오러 블레이드를 날릴 수도 있지만, 용맥을 끼고 있는 비룡이 제이릴리스에 비교해서 마나가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놈은 브레스와 정신 파동으로 원거리와 중거리 공격도 사용할 수 있지만, 마법을 봉인 당한 제이릴리스는 놈과 달리 오러 블레이드 방출 외에는 중,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아. 미치겠네.”
저 앞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용병들과 버섯을 캐러 내려온 모험가들로 보였는데, 이미 변이가 끝나 있었다.
키는 2m 정도였지만, 그 등에 높이가 2m 정도 되는 파란 버섯들 수십 개가 탑처럼 솟아 있어서 실제 덩치는 훨씬 커 보였다.
마치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거 같았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십시오.”
“내가 꼭 돌아갈게.”
“엄마, 엄마. 미안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데.”
……저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 같은 걸 성대만 조작해 계속 되풀이 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화낼 필요도, 도발에 응해줄 필요도 없다.
치지지직-.
놈들이 손에 쥔 병장기에서 푸른 전류가 튀었다.
도끼창, 검, 장도, 쇠사슬이 번쩍번쩍 빛났다.
나는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하늘 해파리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키득키득키득키득.
놈들이 반투명한 촉수를 흐느적거리며 웃는 거 같았다.
“웃어?”
저것들도 한 놈 한 놈 저격으로 해치우는 게 제일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저런 도발을 받고도 가만히 있는 건 내 성격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단말마를 계속 재생한다는 저 악의는 어지간한 나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
기본적으로 부하를 감수하고 가속하는 기술이라서 오래 쓰기는 좋지 않았지만, 비슷한 류의 각성기와 비교했을 때 가성비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내 몸을 실처럼 흐르는 마나가 쇠사슬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느끼며 나는 땅을 박찼다.
사악!
먼저 검을 내리쳐 선두에 선 놈의 머리를 깔끔하게 잘라냈다.
퍼엉!
놈의 몸이 힘없이 무릎을 꿇고, 굴뚝처럼 솟은 버섯들이 전격 포자를 뿜었다.
포자는 벌레 때처럼 나를 따라왔고, 그때 나는 물러서는 대신 놈들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졌다.
파지지지지직-
“어어어어?”
“우어어어어어어!
버섯 부분은 감전 면역이겠지만, 인체 부분은 아니었다.
열댓 명의 침식자들이 일제히 전격 포자를 뒤집어쓰고 감전되어 비틀거렸다.
그때 나는 놈들의 다리나 목을 베어냈다.
푸쉬익!
푸쉬익!
뿜어져 나온 포자는 밀집된 놈들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퍼억, 전격 철퇴에 등을 한 대 맞았다.
“이런 젠장!”
다행히 내 척추는 무사한 것 같지만, 꼴사납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세레라지에가 못 봐서 다행이다.
우우우우웅!
넘어진 나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해파리들이 전격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굴러 일어나려던 순간, 동굴 안쪽에서 막대한 정신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키이이이이이이이-!
“아악!”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나는 감전된 듯 입을 쩍 벌리고 등을 휘며 바닥을 기었고, 하늘 해파리들은 탱탱한 몸을 꾸물럭거리며 하늘로, 위로 도망쳤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뒤쪽 통로가 새빨간 빛으로 들어찼다.
“아.”
나는 바닥을 기는 와중에도 그 빛의 정체를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브레스.
콰아아아-
다음 순간 통로 안쪽에서 막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지름이 100m에 육박하는 통로 전체가 불길로 채워져 있었다.
그 불길에 떠밀리듯 튕겨 하늘로 날아간 인영을,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제이릴리스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 * *
황제는 불에 타지 않았다.
소드마스터가 되며 한서불침의 경지에 올랐고, 고룡을 비롯한 다양한 이종족의 혈통에서 열기 저항력을 강하게 발현시켰기 때문이다.
발렌시아누스는 그런 그녀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며 경악했다.
‘비룡이라도 브레스는 브레스라는 거냐?’
“……안 돼.”
그는 몇 달 전 시체룡의 브레스에 죽고 회귀했다.
트라우마를 자극당한 망나니의 눈동자가 잔뜩 수축했다.
두 번 다시는 저 용종들에게 제이릴리스를 잃을 수 없었다.
놀라우리만큼 심장은 빨리 뛰고, 머리는 서늘하게 식었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가는 거 같았다.
후우욱!
통로 안에서 거대한 비룡이 튀어나왔다.
쿵, 쿵, 쿵, 쿵!
45m에 육박하는 생명체가 내달리자 지면이 요동치고 바위가 흔들렸다.
발렌시아누스는 제일 먼저 비룡의 상태를 확인했다.
‘저놈은 이제 한동안 못 난다.’
놈도 정상은 아니었다.
피막 날개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목과 어깨, 가슴 부분의 비늘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두 개의 꼬리 중 하나는 어디 두고 왔는지 하나만 남아 있었다.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바닥에 큰 웅덩이를 만들 정도였다.
“이제야 네 피를 맛보겠구나. 내 몸을 이 꼴로 만든 대가로 골수 한 방울까지 꼭꼭 씹어 삼켜주마.”
용이 정신 파동을 실어 울부짖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용의 가슴 아래 즈음에 누운 채로 저 앞에 떨어진 제이릴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온몸에서 연기를 뿜으며 일어섰다.
늘 자신만만하던 황금색 눈동자에는 어울리지 않는 초연한 각오가 떠올라 있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자신이 천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각오를 현실로 옮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검을 움켜쥐었다.
‘더.’
이 몸으로 할 수 있을까, 같은 의문을 애써 흩어냈다.
경지는 노력과 확신으로만 오를 수 있었다.
지금 몸을 혹사하면 이번 생에도 경지에 못 오를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히 못 오를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경지를 꿈꿨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룡이 목을 쳐들며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부풀고 목 아래쪽이 붉게 달아올랐다.
콰아아아-
그리고 마침내 놈이 불길을 뿜으려 목을 앞으로 길게 빼는 순간.
발렌시아누스는 땅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타악, 그는 비룡의 목 오른쪽 옆으로 뛰어오르며 바싹 붙었다.
오른쪽 꼬리를 잃은 놈의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체개고로는 안 된다.’
용의 가죽을 뚫을 때도 온 힘과 무게를 실어야 했다.
하물며 그때는 찌르기였고 지금은 베기였다.
더 강한 기술이 필요했다.
제국 검술 4단계, 손해자타(損害自他).
자신과 남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뜻처럼, 막대한 부하를 감수하고 막대한 힘을 사용하는 일체개고의 상위호환 기술이었다.
두근, 발렌시아누스의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침식이라도 당한 듯 온몸의 핏줄이 부풀고 마나가 웅웅 울며 체내에서 공명했다.
서클 마법의 기본 되는, 위력을 부풀리는 공명의 묘리가 인체 모든 곳에서 재현되었다.
츠카아악!
몇 배로 부풀어 오른 마나 블레이드가 제이릴리스가 만들어낸 상처의 궤적을 정확하게 따라 휘둘러졌다.
비늘도 가죽도 이미 없는, 드러난 근육과 신경만을 노리는 일격이었다.
촤악!
“크아아아!”
피가 튀고 용의 불길이 한순간 끊어졌다.
“……발렌시아누스.”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던 황제 제이릴리스가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방어 자세를 풀고 주문을 외우며 용언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일격으로는 부족하다.’
발렌시아누스는 쓰러질 거 같은 기분으로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들었다.
이미 반쯤은 잠든 거 같았다.
제국 검술 5단계, 아사(我事).
나, 내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한 진득하고 끈적하고 지독한 집착.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회귀 전 발렌시아누스는 그리 즐기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죽음과 시간을 되돌아올 정도의 절박함을 이해했다.
주어진 기회를 절대, 절대로 날리지 않겠노라는 각오.
그의 머릿속이 서늘하게 식으며 주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가 벤 침식된 용병들의 머리카락 개수도 세려면 셀 수 있을 거 같았다.
발렌시아누스는 그 모든 정신력을 오로지 용의 목에 난 상처에 최대한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데 소비했다.
오른쪽으로 베어 올리고, 왼쪽으로 베어 내린다.
횡으로 긋고, 위로 틀어 찌르며, 그대로 체중을 실어 내려 벤다.
베는 와중에 손목을 안쪽으로 감으며 정확히 신경을 노린다.
사악, 사아악, 사아아악!
금색으로 빛나는 아찔한 검의 궤적이 허공에 선을 긋고 또 그었다.
“가능성을 깨우지도 못한 놈이!”
진노 섞인 정신 파동으로 울부짖은 용이 그대로 목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발렌시아누스의 검이 단단한 근육은 건들지도 않고 세심하게 목뼈와 신경만 헤집었던 탓이다.
그가 정신 파동에 당해 눈과 코와 귀 모두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비룡이 가시가 부러진 왼쪽 꼬리를 쳐들며 암적색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퍼억!
가시가 부러졌다고는 하나,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온 꼬리가 정통으로 발렌시아누스를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액체 갑옷 ‘아콰테그’에 새겨진 마법진이 부서지며 그의 제복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갔다.
그는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에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다.
‘아사’로 인해 정신력이 몇 배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쇼크로 즉사했을지도 몰랐다.
이대로 바닥에 떨어지면 머리가 깨지겠지, 같은 생각을 하는 찰나, 누군가의 손이 발렌시아누스의 몸을 붙들었다.
* * *
“정신 차려라! 지금 눈을 감으면 죽는다.”
발렌시아누스는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아주 잠시나마 심장이 멎은 거 같았다.
자신을 잡은 게 제이릴리스라는 걸 알아차린 것도 기적이었다.
“그대가 벌어준 시간이 충분했니라.”
바닥에 쓸리듯 발렌시아누스를 내려놓은 제이릴리스가 달려 나갔다.
여전히 화상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다시 승리를 향한 확신이 떠올라 있었다.
비룡은 이를 악물며 고통을 억눌렀다.
근육은 거의 베이지도 않았지만, 신경을 자극당한 고통 탓에 목이 경련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성처럼 달려든 황제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 놓치고 말았다.
“짐은 욕심이 많은 황제라서 말이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평소의 여유롭고 가학적인 미소가 아니었다.
“짐의 사람을 건든 걸 용납하지 못한다.”
황금색 오러가 보검 ‘유리거울’에서 타오르며 검의 길이를 두 배 가까이 늘렸다.
황제는 근육의 경련 탓에 목을 쳐들고 있던 비룡의 가슴팍으로 바싹 붙었다.
그곳은 용의 심장과 가장 가까운 약점이 아니라, 언제든지 비룡이 날개에 붙은 갈고리발톱으로 찍어버릴 수 있는 사지였다.
제이릴리스는 그걸 알고 있었고, 비룡은 그녀가 그걸 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이릴리스가 정면으로 돌진해올 때도 지금까지처럼 목을 노릴 거라고 예상했다.
푸욱!
“어?”
용은 당황 어린 고통을 토했다.
검을 역수로 쥔 제이릴리스가 용의 어깨에 검을 꽂아 넣은 것이다.
오러를 두른 장검이 용의 가죽과 근육을 뚫었다.
그녀는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틀어 머리가 바닥을, 발이 하늘을 향하도록 한 뒤, 용의 몸을 걷어차며 바닥을 향해 달려 나갔다.
황금색 오러 일렁이는 검을 꼭 쥔 채로.
사아아아아아악-!
제이릴리스가 어깨부터 가슴 아래까지 대각선으로 달려 나갔다.
용의 가슴팍이 쩍 벌어지고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보일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였다.
배신당한 예상은 큰 충격이 되어 비룡의 가슴팍을 찢었다.
비유 따위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는 문장이었다.
“이-!”
그리고 암적색 기운으로 뒤덮인 용의 날개가 그대로 제이릴리스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퍽, 제이릴리스의 신영이 그대로 돌바닥에 파묻혔다.
부서진 돌덩이가 튀어 오르고, 황제의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쿠웅, 동시에 용이 그 거대한 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내가…… 이런 곳에서!”
“안 돼!”
발렌시아누스는 다 부러진 팔다리를 질질 끌며 몸을 일으켰다.
제이릴리스가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