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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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의 성부터 와이번핏으로 가는 길은 좌우로 상록수가 자라고 있었고, 판석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리 넓지는 않았다.
텐티아는 그 좁은 길을 몸으로 틀어막고 섰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의 기사, 텐티아다. 물러서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
기사의 로망과도 같은 말을 하면서.
이곳은 적진의 심장이었고, 수적으로 불리했으며, 소모전이 되면 결국 질 수밖에 없었고, 황제와 발렌시아누스가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텐티아의 심장은 더더욱 거세게 뛰었다.
백금 기사단의 하얀 갑옷은 새벽하늘 아래서도 빛났고, 그녀의 투구 뒤에 단 붉은 리본은 겨울바람을 맞아 흔들렸다.
“마법사만 살려간다.”
가면의 암살자들은 기사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세 명의 암살자가 판석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좌우 두 명은 겨드랑이를, 정면을 맡은 자는 투구와 목 사이를 노렸다.
텐티아가 정면의 암살자를 베려 검을 쳐들면 그때 겨드랑이를 찌를 속셈이었다.
“수작을!”
그러나 텐티아는 천 옷 입은 검객이 아니라 갑옷 두른 기사였다.
그녀는 검을 치켜드는 대신 어깨를 앞세워 정면을 맡은 암살자를 들이받았다.
쾅!
공성추로 성문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암살자가 내지른 소검은 텐티아의 갑옷을 뚫지 못하고 부러졌고, 텐티아에게 들이받힌 암살자는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좌우의 암살자가 왼손으로 텐티아의 팔을 붙잡고 갑옷 틈을 찌르려 했다.
캉!
제국 최고의 공방에서 만든 판금 갑옷은 관절 부위 안쪽에 마디 있는 철판을 이중으로 둘러놓았다.
“이 갑옷은 내 충성에 대해 내려주신 답, 내 충성이 그깟 꼼수에 뚫릴 거 같았나?”
텐티아가 오른손에 쥔 장검을 힘껏 베어 올렸다.
서걱!
압도적인 힘이 암살자를 공중으로 띄워 올리며 반 토막 냈다.
동시에 그녀는 왼팔을 팔꿈치 아래에서 한 바퀴 돌리며 제 팔뚝을 잡은 암살자의 팔을 꺾고, 그대로 잡아당겨 팔을 부러트렸다.
“올 테면 오거라. 천 명이라도 상대해 주마!”
그 호통에 암살자들이 잠시 주춤했다.
두려움을 느껴서가 아니라, 정면으로는 텐티아를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서였다.
텐티아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와이번핏으로 가십시오.”
세레라지에는 지팡이를 쥐며 답했다.
“이 길목에서 농성하는 게 낫지 않겠니?”
“아무래도 거물들이 오는 거 같습니다.”
검은 옷의 암살자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텄다.
연갈색 판금 갑옷을 입고 연갈색 투구를 쓰고 푸른 망토를 두른 기사, 네 명의 제자를 대동한 금발의 마법사, 세로줄 무늬 검은 정장을 입은 집사가 암살자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갈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투구 면갑을 올리며 말했다.
“프로이하이트 기사단장 로베로스다.”
기사답게 강직한 인상의 사내였다.
이에 텐티아 역시 투구를 올리며 붉은 머리와 눈을 보였다.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검, 텐티아다.”
곧바로 암살자들이 독화살과 단검을 날리려 했지만, 로베로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집사. 나를 부끄럽게 할 셈인가?”
하얀 콧수염을 기른 노집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손짓했다.
그는 암살자들을 물려놓고 텐티아 너머 루디를 바라보았다.
루디는 오른손에 단검을 드는 척하며 왼손을 시녀복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잘 기억해 두렴. 천재 마법사는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헤레인은 애제자들과 함께 세레라지에를 응시했다.
세레라지에는 챙 넓은 고깔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잡으며 홀로 다섯 마법사를 새침하게 흘겨보았다.
“보고 싶니? 천재가 어떤 건지.”
다시 투구를 눌러쓴 로베로스와 텐티아가 땅을 박차고, 루디와 집사, 암살자들이 상록수를 향해 몸을 날리고, 다섯 마법사와 한 마법사가 주문을 외웠다.
* * *
루디는 자신이 집사와 암살자들을 모두 상대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직 저는 소드 유저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녀는 상아탑에서 받아온 비싼 마탄을 아낌없이 장전했다.
“다 돌아가 주세요. 싫으시다면…….”
타다다다다다-.
나뭇가지 위를 뛰어온 암살자가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바닥을 기듯 달려온 암살자가 뱀처럼 솟구치고, 정면에서 달려온 암살자가 마법사들의 점멸 주문이라도 쓰듯 도약했다.
이에 루디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대응했다.
“죽어주세요.”
타아앙!
새까만 주둥이 같은 총구에서 마탄 한 발이 수십 개로 쪼개지며 분사되었다.
세 명의 암살자가 온몸에 벌집 같은 구멍이 뚫린 채로 바닥을 굴렀다.
“기이한 무기를 다루는군.”
노집사가 나무 그늘 뒤에서 튀어나오며 루디의 목을 노렸다.
파아앙!
송곳을 키운 듯한 검 에스터크가 상록수 한 그루를 관통하며 루디의 목을 노렸다.
나뭇조각이 튀어 오르는 가운데, 루디는 넘어지듯 피하며 산탄 한 발을 더 쏘았다.
노집사가 나무 위로 뛰어오르며 산탄을 피했다.
“칫!”
바닥에 누운 루디는 벤시 같이 높게 외치며 두 자루 마총을 발사했다.
사점 안경 쓴 녹색 눈동자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노집사를 쫓았다.
‘위, 아래, 나무 오른쪽, 다시 위쪽.’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관통 마탄이 나무를 산산조각 내고 하늘을 가르고, 전격 마탄이 명중지점으로부터 지름 3m의 공간에 전류를 퍼뜨리고, 폭발 마탄이 나무를 불태웠다.
마법사들이 우리 무덤을 우리 손으로 팠다고 평가한 무기가 충성스러운 시녀의 손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노집사가 계속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날리며 피하자, 루디는 벌떡 일어나 산탄으로 암살자들을 견제하는 동시에 노집사를 따라 달렸다.
“충성스럽군.”
“당신이야 말로요. 이걸 보면 도망칠 줄 알았는데.”
“그런 무기를 시녀 따위에게 들려주다니.”
“이런 암살자들을 집사 따위에게 붙여 주다니요.”
집사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던졌다.
타아앙, 그리고 캉!
루디는 허공에서 단검을 맞춰 떨어트리고 반대 손으로 한 발을 더 당겼다.
노집사는 나무 뒤로 한 바퀴 돌며 피하고, 길게 도약하며 루디 가까이 붙었다.
그녀가 마총을 쏘며 나무 밑동에 구멍을 남겼지만, 집사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왔다.
루디는 오른손에 쥔 마총을 단검으로 바꾸며 근접전에 대비했다.
‘두 발 남았어요.’
그녀는 먼저 심리전을 걸었다.
“대공 전하를 암살하려 하다니, 사용인이 되어 가문을 위기에 빠트릴 셈인가요?”
나무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집사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어떻게 충성을 바칠지는 내가 아니라 그분께서 정하시는 것이다.”
“그분께서 자신과 가문을 모두 파멸로 몰고 가신다면요?”
“어려운 일이지. 그분께서 내가 보기에 틀린 거 같은 선택을 했을 때도 따르는가.”
“아니면 목숨 걸고 안 된다고 애원하는가.”
그건 모든 사용인의 고민 중 하나였다.
무엇이 진정한 충성인가?
“어린 시녀야. 네 주인은 파멸을 택하지 않을 거 같으냐?”
“!”
역으로 심리전을 되돌려 주며 집사가 달려들었다.
루디는 일순 발렌시아누스를 떠올리다 그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녀의 대공은 가끔 자기 자신을 황제를 위한 말이나 디딤돌로 여기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타아앙!
한 발이 허공을 갈랐다.
사아악!
에스터크가 바람을 가르며 그녀의 심장을 노렸다.
루디는 단검을 베어 올려 에스터크를 밀어내는 동시에 뒤로 몸을 던졌다.
까드득, 하며 불꽃이 튀고 에스터크가 시녀복을 얕게 찢었다.
쿵, 허리와 뒤통수가 아득하게 울리고, 시야가 일순 흔들렸다.
집사는 에스터크를 그대로 돌리며 그녀의 몸을 찔렀다.
푹!
“응?”
젊은 시녀의 몸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질기고 단단했다.
꼭 갑옷이라도 입은 거 같았다.
집사가 다시 힘을 주기 전 아주 짧은 시간.
그때 루디는 녹색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아직 한 발 남았어요.”
타아앙!
노집사의 가슴 한가운데를 마탄이 관통했다.
막대한 위력의 탄환은 그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길 시간도 주지 않았다.
세로줄 무늬 정장을 입은 노인이 그대로 상체가 뒤로 꺾이며 쓰러졌다.
루디는 가슴팍을 감싸며 일어났다.
발렌시아누스가 사 준 가죽 갑옷이 뚫려 있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영광이네요.”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눈도 감지 못한 노집사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언젠가 제 주인도 파멸할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그분은 제게도 금화 수십 닢짜리 갑옷을 사 주신 분이에요. 제가 말린다면 분명 한 번은 더 귀를 기울여 주시겠지요. 그리고 그래도 듣지 않으신다면…….”
한 박자 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때는 함께 파멸해 드려야겠지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거니까요.
루디는 다시 약실에 산탄 마탄을 장전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텐티아와 로베로스는 좁은 길을 틀어막고 분노한 미노타우르스들처럼 부딪혔다.
마나 블레이드를 두른 검으로 관절부를 노리는 동시에, 강철 건틀릿 낀 주먹과 발차기를 날려 대며 서로의 몸을 두드리는 것이다.
쾅!
폭발 마법이라도 일어나는 듯한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뒤흔들었다.
텐티아의 옆차기를 맞은 로베로스가 비틀거리고, 로베로스의 정권을 맞은 텐티아가 휘청였다.
그리고 그 둘을 경계선 삼아 마법사들이 맞붙었다.
“대공 전하. 순순히 따라오십시오. 세상에 대해 알 만한 거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황족으로 태어나셨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셔야지요.”
“나가 죽으려무나. 내 혈통에 따르는 책임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방법대로 질 거란다.”
자유로운 영혼의 마법사는 제멋대로 살아야 했다.
우물에 빠질 걸 알면서도 하늘을 보면서.
“……정 그러시다면.”
헤레인은 제 제자들을 부려 빠르고 효율적인 견제 마법들을 퍼부었다.
프로이하이트 궁정 최고의 마법사들이었다.
“몰아붙여!”
“더 빨리!”
간지럼, 어지러움, 색약, 구토 유발, 기절, 바람 주먹 등의 주문이 쉴새 없이 하늘을 날았다.
수백 명이 몰려와도 죄다 쓰러트릴 캐스팅 속도였다.
그걸 세레라지에가 막는 동안 헤레인이 강력한 마법으로 단숨에 쓰러트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색 로브를 두른 세레라지에는 단 한 마디로 그녀의 계획을 망가트렸다.
“흩어져, 돌아가라.”
디스펠.
와장창!
일대의 마나가 요동치고 날아들던 주문들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그녀는 재능 있는 자가 노력하고 즐기기까지 했을 때 어떤 괴물이 나오는지 말해주는 증인이었다.
“우리와는 격이 다르다는 겁니까!”
헤레인이 ‘바람돌격창’ 열두 발을 연속으로 퍼부었고, 세레라지에는 ‘바위 방벽’ 주문으로 막아냈다.
세레라지에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푸른 전격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퍼지고 있었다.
분명 저 안 공동에서는 지금쯤 이물들이 켜켜이 들어차고 있으리라.
그걸 생각하면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발렌시아누스.
미웠지만,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단번에, 무너져라!”
“잡아, 네 품속에 가두어라”
헤레인과 네 마법사는 기사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강한 주문을 제대로 준비해서 날리는 데에 익숙했고, 마법사와 마법사가 격돌하는 결투 식 전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레인은 곧바로 전술을 바꾸었다.
자신이 바람 화살로 시간을 버는 동안 제자들이 강력한 주문을 완성하는 것으로.
세레라지에가 쌓아 올린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거대한 손의 모양으로 다시 합쳐지며 그녀를 옭아맸다.
골렘 마법을 응용한 5서클 속박 마법이었다.
“잡았다!”
“기절이랑 수면 주문 준비해!”
“동시에 시전한다! 하나! 둘!”
세레라지에는 침음성을 흘리며 미련 어린 표정으로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아.”
곧 다 죽을지도 모르는 판인데, 저걸 어떻게든 탐구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이깟 곳에서 발이 묶여서, 신부나 황제 따위가 되게 생겼다.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인 사회나, 사람이 만들어낸 힘인 권력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있다고 믿는다면 있고, 없다고 믿으면 없어지는 게 대체 무엇이라고 그리도 집착한단 말이니?’
하지만 사람이 믿지 않아도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고 벼락은 하늘을 가른다.
그녀는 믿음과 별개로 존재하는 자연이야말로 진정 집착하고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만 탐구하고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쪽 하늘 가득한 마경의 아지랑이가, 옛것의 기운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놀라운 재능과 탐구심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아!”
저 전류의 아지랑이는 살아 있었다.
일정한 패턴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사람의 몸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 같았다.
‘저게 저 옛것의 본질 또는 파편이겠지.’
저 아지랑이는 살아 있는 전류였다.
그리고 전류라면 그녀가 이용할 수도 부릴 수도 있었다.
“흩어져, 무로 돌아가라!”
기절 마법과 수면 마법을 흩어낸 세레라지에는 무영창으로 용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남색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그녀의 하얀 이빨 사이에서 전류가 튀었다.
그 순간 헤레인은 느꼈다.
“말도 안 돼.”
서쪽 하늘에서부터 엄청난 마나가 끌려오고 있었다.
마치 구름을 한 움큼 뜯어 흩어낸 듯했다.
그녀 역시 서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멈춰.”
“예?”
“멈추라고! 속박도 풀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희는 안 느껴지니?”
세레라지에가 남색과 황금색의 금은 요동을 빛냈다.
그녀가 한겨울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끌어당기듯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전류의 아지랑이가 새벽하늘로 흩어져 나갔다.
터지기 직전의 화산에서 용암과 재를 미리 빼내 흩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헤레인은 입을 쩍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승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저희는 저분을 잡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푸른 전류의 파도가 치는 거 같았다.
한 인간이 작은 파도를 끝없이 일으키며 거대한 해일을 쪼개고 있었다.
“하, 하하.”
그녀는 완전히 압도되어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 완고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내 준비가 미흡했던 모양이군.”
척척척척척척척.
시그마인이 열 명의 기사들을 대동하고 다가왔다.
그의 푸른 눈이 매처럼 빛나고 있었다.
“대공이 새벽에 관측 탑으로 나갈 줄 몰랐고, 시녀가 마총을 다룰 줄 몰랐고, 기사가 잘 때도 갑옷을 입고 잘 줄 몰랐어.”
땀 범벅이 된 세레라지에가 눈과 코, 귀에서 피를 쏟으며 비틀거렸다.
“내 집사도 쓰러졌군.”
그가 상록수 아래 누운 집사와 루디를, 한참 마나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두 기사를 바라보았다.
“로베로스 경. 계속 붙들어 놓게. 대공은 내가 데려갈 테니.”
“각하. 면목이, 없습니다.”
“나도 그 젊은 기사가 그리도 강할 줄은 몰랐네. 마음에 두지 말게나.”
타아앙, 그리고 카앙!
루디는 방아쇠를 당기고 당황했다.
처음으로 반발의 소리가 들려왔다.
마탄이 후작의 판금 갑옷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간 것이다.
“솜씨가 제법이로구나. 영광으로 들어라. 네가 있는 줄 몰랐던 게 내 최고의 실책이었다.”
기사 둘이 말없이 루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작은 식은땀과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세레라지에에게 다가갔다.
“돌아가지. 대공.”
매 같이 완고한, 대귀족의 고집이 어린 목소리였다.
이에 세레라지에는 새침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깟 권력 놀음 따위.”
“그럼 끌고 가는 수밖에.”
기사들이 세레라지에의 속박을 풀고 양팔을 붙들었다.
그때 동쪽 산 위에서 해가 올라와 서쪽의 어둠을 밝혔다.
눈 덮인 산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두 개의 인영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레라지에!”
아득한 고함을 메아리치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