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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85화 (85/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85화

(85)

신장이 3m에 달하는 이물이 집게발을 내리쳤다.

발렌시아누스는 한 걸음 물러서며 피하고, 불꽃과 마나 블레이드를 두른 검으로 집게와 집게 사이 붉은 근육을 찔렀다.

그러나 잣을 닮은 이물은 움츠러들지 않고, 되려 튀어나온 갈비뼈를 세로로 벌어진 아가리처럼 사용하며 덤벼들었다.

그 섬세하고 악랄한 검술은 여전히 위력적이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지키고 버티는 방식의 싸움은 불가능했다.

작은 집게발 같기도 하고 촉수 같기도 한 갈비뼈가 우우 몰려들었다.

하얀 갑각 아래 붉은 근육이 꿈틀거렸다.

“빌어먹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불길을 쏘아냈다.

상아 같은 갈비뼈들이 불타오르면서도 달려들어 그의 단단한 몸을 거세게 두드렸다.

액체 금속 제복이 종이처럼 찢기고 용찬 의식으로 강화된 몸에 충격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책임이라는 말은 이물의 집게발보다도 무거웠다.

‘오늘만은 부수적인 피해가 없어야 한다. 다 내 책임이야.’

“이물이다!”

“꺄아아악!”

“귀 막고 도망쳐!”

“열어줘요!”

남은 관광객들이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동쪽 문으로 몰려들었다.

“갇혔어? 우리 갇힌 거야?”

“이러려고 문을 닫았나! 이 개자식들아!”

경비병들은 분노한 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며 부들부들 떨었지만, 끝내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들의 가족들은 솔레타라온 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죽으면 죽었지, 저 이물이 수도 쪽으로 가게 할 조금의 가능성도 만들어줄 수 없었다.

시이이이-!

이물이 거품을 토하며 발렌시아누스에게 돌진했다.

거대한 집게발이, 날카로운 갈비뼈 촉수들이 우우 몰려들었다.

그는 마나 블레이드를 몇 배로 끌어 올리며 대항했지만, 발이 길게 밀려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정면에서 막는 건 내 장기가 아니다. 피하고 다리 뒤를 그어버려야 하는데.’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물이 사람들 몰린 동문으로 돌진할 게 분명했다.

막을 수 없어 짓밟힌 것도 아니고, 막을 수 있는데 아프기 싫다고 안 막을 수는 없었다.

세금을 성실하게 납세하는 시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정말 성실하게 내고 있을까?’

발렌시아누스는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잡념을 지우며 이물을 눈에 담았다.

놈의 왼쪽 집게발은 굵고 단단해 방패 같았고, 오른쪽 집게발은 길게 튀어나와 기사들의 기병창 같았다.

하얀 갑각이 노을빛 아래서 선명하게 빛났다.

와장창!

기병창 같은 집게발이 짐마차를 휩쓸었다.

그 안에 든 수많은 나무 상자가 발렌시아누스에게 쏟아졌다.

발렌시아누스는 재빠르게 물러섰지만, 그 상자 안에 든 건 마법 시약이었다.

펑!

도로에 쏟아진 화염꽃 기름이 일제히 발화하며 폭발하듯 번졌다.

거리 전체를 불태울 듯한 기세였다.

발렌시아누스는 빈민가 재개발로 건축 관련 인건비와 자재비가 죄다 올랐음을 떠올렸다.

‘절반은 상아탑이, 절반은 내가 물어주게 될 수도 있다. 세레라지에와 또 반으로 나눠도 파산이야.’

“피워 올라 따르는 불꽃.”

용언을 다루게 된 그의 마나 제어력은 몇 배로 강해져서, 거리를 먹어 치울 기세인 불길을 모두 거둬드릴 수 있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구의 형태로 뭉쳤다.

그러나 이물은 되려 그 틈을 타서 덤벼들었다.

그것은 천성적인 악의로 지금 발렌시아누스가 자신에게 신경 쓸 수 없음을 눈치챘다.

싸움은 비겁한 쪽이 살아남는 법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몇 번이고 불꽃 회오리를 그대로 저 이물에게 밀어붙이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았다.

이 정도 폭발을 놓아주면, 불씨가 사방으로 퍼질 게 분명했다.

“엄마!”

“손 놓지 마!”

그럼 시시각각 도망치고 있는 저 사람들과 이 땅값 비싼 거리의 가게가 죄다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그는 한 번 더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기병창 같은 집게발이 날아드는 걸 바라보았다.

퍽!

발렌시아누스의 신영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이물은 키득키득키득, 하고 그를 비웃으며 동쪽으로 달려 나갔다.

싸움은 더 비겁한 쪽이 강한 법이었고, 그는 비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유의 강점을 잃었다.

그의 제어력이 흐트러지자 간신히 붙들어놓았던 화염의 구가 폭발하려 했다.

“속성 부여. 불꽃이여, 뜨겁게 굴러 전격이 되어라.”

그때 화염의 구가 허공에서 붙들렸다.

굵은 형태로 변하며 맹렬히 회전하고, 그 주문대로 전격이 치직치직 튀었다.

화염과 전격을 휘감은 굵은 바퀴가 발렌시아누스의 머리 위를 지나 미친 듯 내달리는 이물의 다리를 후려쳤다.

펑!

통쾌한 소리와 함께 네 다리가 동시에 기울어졌다.

* * *

발렌시아누스는 폭삭 주저앉은 이물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송은 피했네.”

“기껏 하는 말이 그거니? 네가 지켜준 사람들이 울겠구나.”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내 지갑을 지킬 생각이었지.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네가 혼자서 달려 나갔잖니.”

세레라지에가 지팡이를 짚고 숨을 헐떡였다.

그 옆에서는 끝단 붉은 크림색 머리의 니아르가 똑같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예상보다, 놈이 빨리 나왔습니다. 문을 열고 사람들을 다 내보낼 거니까 이제 마음껏 싸우셔도 돼요.”

“거리랑 가게가 부서지는 건?”

“거리는 대지 학파에서 마법 한 번이면 복구할 수 있습니다. 가게도 설명하자면 길지만, 일단 괜찮습니다.”

발렌시아누스는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 떨어트린 검을 주웠다.

“그래. 그래야 싸울 만하지.”

이물도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그는 장창 같은 불꽃을 쏘아 보내는 동시에 달려 나갔다.

높게 솟은 동쪽 성벽 위로 달이 뜨고, 사람들이 성문으로 우르르 빠져나가고, 이물이 몸을 일으켰다.

세레라지에와 니아르는 발렌시아누스의 등을 보며 주문을 외웠다.

“선배. ‘전광창’ 주문 같이 쓰시겠습니까?”

“그걸 아직도 혼자 못 쏘니?”

“그게 혼자 쓸 수 있는 주문이었습니까?”

“끝이 있는 선이 되어 깊게 파고들어라.”

“심지어 개량까지?”

허공에 천천히 떠오른 전격이 창의 형태를 이루었다.

세레라지에가 어깨를 으쓱하며 금은 요동을 빛냈다.

“당연하지. 누구 제자인데.”

번쩍, 하고 쏘아져 나간 ‘전광창’이 발렌시아누스보다 빠르게 이물의 갈비뼈에 틀어 막혔다.

“키이익!”

동시에 발렌시아누스가 쏜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이 이물의 반대쪽 옆구리를 후려쳤다.

화르륵!

“시익?”

전격에 바들바들 떠는 이물은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질긴 가죽이 없는 이물은 전격과 열기에 취약했다.

“아까는 잘 웃더니.”

늘어트린 검에 마나 블레이드와 불꽃을 두르며 발렌시아누스는 말했다.

“이번에도 웃어봐. 이 잣 같은 새끼야.”

이물이 기병창 같은 집게발로 찔러 왔다.

발렌시아누스는 오른발을 축으로 빙그르르 돌아 피하며, 네 개의 다리 중 오른쪽 앞발 관절 뒤쪽을 노렸다.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

제국 검술 3단계, 자리이타.

일순 섬광처럼 가속한 검이 관절 뒤쪽을 깊게 찔렀다.

검에 두른 불꽃이 지글지글 타오르며 이물의 다리 속을 태웠다.

이물이 솔방울 끝 같은 입을 쩍 벌리고 정신 파동을 내질렀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

모여들던 상아탑 마법사들이 비틀거리거나 이상한 환각을 보고 구토하고, 아직 대피가 끝나지 않았던 관광객들이나 호텔 투숙객들이 그대로 기절했다.

그 정신 파동을 들은 들개나 고양이들은 몇몇은 꼬리나 귀, 다리가 몇 개 더 나는 수준에서 그쳤고, 몇몇은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물로 변이했다.

동족 확보보다는 제압에 치중된 위력이라 변이한 ‘사람’은 없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위력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용찬 의식을 마친 발렌시아누스조차 구토감에 비틀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용언의 황금빛을 끌어 올리며 정신을 되찾았다.

이물의 다리에서 검을 돌려 뽑은 뒤 이물의 목을 향해 찔러 넣었다.

카드드득!

하얀 솔방울 같은 갑각은 마나 블레이드로도 잘 베이지 않을 만큼 단단했고, 붉은 근육도 질겼다.

그러나 그는 용과도 싸워 본 검객이었다.

섬세하고 잔혹하게 근육의 결을 탄 검이 목의 붉은 근육을 깊게 가르고, 끝없이 흘러나오던 정신 파동이 멈췄다.

그 수간, 이물이 여덟 개의 눈으로 발렌시아누스를 정확히 바라보았다.

“!”

우웅우우우우우웅-!

정신이 나갈 듯한 압박이 전해져 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견뎌냈다.

이물이 거대한 집게발을 쳐들고,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미리 피했다.

이물이 쳐들었던 집게발을 휘두르는 동시에 하얀 거품을 뿜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비눗방울처럼 퍼진 거품이 하얗게 부풀어 오르며 발렌시아누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석화?’

그는 오랜 경험에 따라 저 거품이 이물의 갑각과 같은 것임을 알아챘다.

다급하게 불길을 일으켰지만, 이미 갑각회된 거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그의 한쪽 다리를 붙들었다.

‘기동성을 빼앗으려 한다.’

이물의 집게발이 다시 하늘 높게 치솟아 올랐다.

* * *

세레라지에는 도망치지 못하는 발렌시아누스를 보고 무영창 전광창을 발사했다.

“이제는 내 앞에서 죽어 죄책감을 남길 생각이니?”

니아르는 허공을 가르는 남색 창의 파도를 보며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속도도, 위력도 무엇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파지지직-!

연속으로 전광창을 맞은 이물이 몸을 부르르 떨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놈은 끝끝내 쓰러지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발렌시아누스에게 다가갔다.

발렌시아누스가 황금빛 용언의 기운을 안개처럼 끌어 올리며 불길을 피워 올렸다.

마경의 핵에서 끝없이 튀어나오던 하늘 해파리의 다리를 불살랐던 일격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 대피했고, 아무리 저 가게들이 비싸도 그의 목숨보다는 쌌다.

그가 불길을 방사하기 직전, 이물은 ‘입’을 쩍 벌렸다.

머리에 있는 솔방울 같은 입이 아니라, 가슴부터 배 아래까지, 그 상아 같은 하얀 갈비뼈들을 쩍 벌린 것다.

“미친.”

갈비뼈들이 좌우로 벌어지고 붉은 근육이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으로 놈의 뱃속을 들여다보았다.

‘존재 자체가 핵인 건가?’

그 안은 검은 성자 마테오스의 머리카락만큼 짙은 검은색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이를 악물며 용언의 불길을 방사했다.

동시에 그 불길한 심연의 아가리로부터 피어오른 붉은 안개와 하얀 거품이 발렌시아누스의 불길을 막아냈다.

또한, 그것 역시 ‘입’이었기에 정신 파동을 쏠 수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

“세상!”

솔방울 같은 작은 아가리로 쏠 때보다 몇 배는 강한 위력이었다.

상아탑 특구 전체에서 개와 고양이, 쥐들이 열 배 정도의 크기로 부풀어 오르고 가죽이 녹아내리고 뼈와 합쳐져 하얀 갑각을 두른 이물로 변했다.

생도 마법사 중에서 기절한 이들이 생기고, 지원을 나오던 마법사들은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사방에서 나타난 이물들을 향해 걸음과 비행 빗자루를 돌렸다.

“선배.”

니아르가 힘겹게 말했다.

“대공 전하라, 부르렴.”

세레라지에는 토할 거 같은 기분으로 답했다.

“이대로는 선배 동생 오래 못 버팁니다. 시간 좀 끌어 주세요. 놈의 몸을 묶어야 합니다.”

“어떻게?”

“저는 선배처럼 무영창으로 전격을 퍼붓지는 못하지만, 나름 잘하는 게 있습니다.”

세레라지에는 니아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금은 요동과 니아르의 붉은색 섞인 크림색 눈이 마주쳤다.

“그래. 스승님이 어중이떠중이를 들이지는 않으셨겠지. 얼마나 필요하니?”

“3분이요.”

“3분?! 평소에 결투 좀 하지 그랬니?”

세레라지에는 탄식했다.

지금 3분이면 평소의 3일보다 긴 시간이었다.

“내 로브 안주머니에 좋은 시약 있단다. 그거 쓰렴. 1초라도 줄지 않겠니?”

“고맙습니다. 선배.”

세레라지에는 대답하지 않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부족하잖니.’

남색 용언의 기운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일대의 마나가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굳히고 밀어내는 전격.”

파지지직!

그녀의 남색 머리카락에 전류가 튀고 사람 머리통만 한 전격의 구 수백 개가 날아올랐다.

마법 거리에서 피어오른 그 구들은 마치 축제 날의 등불 같기도 했다.

“가려무나.”

번쩍!

경직과 반발 효과를 가진 마법이 이물의 머리와 다리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수십 개 정도만 되어도 버텨 냈겠지만, 수백 개가 되니 아무리 이물이라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와중에 혹여 발렌시아누스의 등을 치지 않도록 모든 구를 빙 돌려보내고 있었다.

“……세레라지에.”

발렌시아누스는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회귀 전 그에게 쏟아졌던 마법이 이제 그의 적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피부에 비늘이 솟도록 용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거의 사그라들었던 그의 불길이 조금씩 이물의 붉고 흰 안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선배! 준비됐습니다……?”

캐스팅을 마친 니아르는 세레라지에를 보고 당황했다.

그녀가 코와 눈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세레라지에는 굳어버린 니아르에게 외쳤다.

“안 쓰고 뭐 하니!”

“이익!”

정신을 차린 니아르는 이물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주문을 날렸다.

“옭아 메여 영원히 고통받을지어다. 세르비텔륨!”

손가락 사이에서 긴 쇠사슬 같은 전격이 일어나 빙빙 돌며 날아갔다.

발렌시아누스는 제때 머리를 숙이며 피했다.

차르르르륵!

니아르의 주문이 이물의 벌어진 갈비뼈들을 감았다.

푸른 불길이 이물의 살점을 지글지글 불태우고, 사슬에서 나온 가시가 이물의 몸을 찌르고, 작렬하는 전격이 이물의 근육을 굳혔다.

시이이이익?

굳은 육체로는 사슬이 조여드는 걸 막을 수 없었고, 그럴수록 가시는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어떠십니까? 선배. 저도 게스타르테 님의 제자라고요.”

삼중속성을 한 마법에 담은 공격이었다.

세레라지에는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씩 웃었다.

“이건 좀…… 제법이잖니. 후배.”

“아!”

이물의 아가리가 조금씩 닫혀 가자, 붉은 안개와 하얀 거품의 파도도 당연히 그 양이 줄어들었다.

마침내 발렌시아누스와 이물의 균형이 기울었다.

“웃어. 싫으면 내가 웃을게.”

용언의 불길이 갑각 두른 이물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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