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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89화 (89/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89화

(89)

코넬이 깊은숨을 들이켰다.

지팡이를 쥔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그럼 뭘 망설이는 거냐? 혹시 기탁금이 모자라나? 아니면 당선될 자신이 없나? 내 서명을 받으면 등록 심사도 필요 없다.”

“둘 다…… 아닙니다. 저와 부하들 몫은 단단히 챙겨 두었고, 이곳 사람들은 저를 지지하니, 당선될 자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그걸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아직 새 창을 달지 않은 창가로 다가갔다.

나는 말없이 그 옆으로 붙었다.

그리고 아무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에 대해 아나?”

“이름은 장. 검은 양모 코트를 입고 있고 손가락 두 개가 없습니다. 꽤 늦은 시점에 제 조직에 합류했지만, 성실하고 능력 있어 빠르게 섞였습니다. 과거, 설계 일을 배웠고 지금도 그쪽 업무를 맡고 있으며, 먹여 살릴 동생들이 세 명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그만. 충분하다. 저 사람에 대해서는 아나?”

코넬이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에리 아주머니.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밖에서 들어온 분입니다. 독실한 광명교 신자라 제가 아몬을 섬기는 걸 알고 많이 경계하셨지만, 이제는 저를 딸처럼 대하시죠. 셈에 능하지만, 잔정이 많아 관리 업무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은?”

“피에스트. 용병단을 따라다니던 고아 출신입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깡패였다가 제 밑으로 들어왔죠. 선을 잘 타서 비슷한 놈들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재로 오물을 닦아내자는 안건을 낸 녀석입니다.”

“저 사람은?”

“벤톤.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아몬 신자고 밀주 파는 놈들을 단속하고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최근 애인을 사귀었습니다.”

코넬의 대답은 조금의 막힘도 없었다.

나는 이번에는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2층으로 짓는 중인 긴 건물이었다.

“저 건물은 어떤 공방과 얽혀 있지?”

“저곳은 상아탑의 하청을 받는 상단에서 운영하는 공방의 지부 공방입니다. 손이 많이 가고 많이 소모되는 하급 시약을 가공할 예정입니다. ……계약을 따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해당 공방의 간부 중 과거 빈민출신의 깡패에게 칼을 맞은 간부가 있었는데, 그 깡패가 속해있던 조직을 무너뜨린 게 저라고 했습니다.”

“저 건물은?”

“2차로 지어질 벽돌 공장입니다. 자재 길드에서 유일하게 가입 업체 수에 제한을 두지 않은 곳이라 저희가 주도적으로 건립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내부적으로 사용되는지라, 기존의 업체들과 거의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 건물은?”

이미 지붕까지 깔끔하게 덮인 번듯한 건물이었다.

“발렌 전하가 이어주신 선물입니다. 광명교회에서 온 물자를 저장해두는 창고죠.”

“줄이 길군. 뭔가를 받는 거 같은데?”

“지원받은 은화를 기초자산으로 저희 빈민가 내부에서만 통하는 표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가져오면 배급을 내주는 식으로 은화를 지키는 동시에 물가를 안정시키는 중입니다.”

“반발도 있었을 거 같은데?”

“처음부터 서명 운동을 통해 주류를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몬 신의 힘을 자재를 나를 때만 쓰는 건 아닙니다.”

그녀가 늑대 같이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코넬 너는 의원이 가져야 할 모든 재능을 다 갖추고 있잖으냐?”

“예?”

“너는 이곳의 건물에 대해 알고, 이곳의 경제 구조에 대해 한다. 이곳의 범죄에 대해 알고, 이곳의 사랑에 대해서 안다. 그건 사람을 안다는 말이지. 너는 이 거리를 좋아한다.”

코넬이 이를 악물고 몸을 떨었다.

“저는 이 거리를 증오합니다. 아버지가 평생 벗어나려 애쓰셨지만 결국 그저 그런 깡패 두목으로 죽은 곳이죠. 다 때려 부수고 원래의 형태는 하나도 남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인 법이지. 이렇게 때려 부수는 걸, 나 같은 높으신 분들은 훌륭한 재개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도시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할 기회는 흔치 않은 법이지. 의원에 아몬 신도만 아니었다면, 너를 황실 행정관으로 임명하고 싶을 정도다.”

코넬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거리를 제 손으로 때려 부수기 위해 수백 명은 죽였습니다.”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의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손잡을 때 손잡고 끊어 낼 때 끊어 내는 것. 타협하는 법과 타협하지 않는 법.”

“더 좋은 사람이 의원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뭐냐? 미움받지 않는 사람?”

“!”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 같은 건 없다. 그래. 이 거리를 원래 지배하던 깡패 두목들은 너를 무척이나 싫어하겠지. 그런 놈들에게 미움받는 건 네가 잘살고 있다는 뜻이다.”

코넬은 답이 없었다.

지팡이를 쥔 손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텐티아 경의 눈치를 살짝 살핀 뒤,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 모든 게 즐거웠냐?”

“!”

그녀의 영악하고 총명한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어, 어떻게…… 아셨습……?”

“내가 말했잖냐. 너 같은 꼬맹이가 2년쯤 더 커서 된 게 나라고. 나도 네가 뭘 느꼈는지 알고 있다.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게 착착 진행될 때 생기는 그 성취감.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엮이고 사람과 함께 성장하며 느끼는 뿌듯함. 내가 했던 생각대로 세상을 바꿔 가는 전능한 기분.”

그리고, 하고 운을 떼며 나는 말을 이었다.

“가끔, 조금 피곤한 날,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맞을지 찾아오는 의심. 좋은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 길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

그런 건 사실 모른다.

내가 살면서 한 후회라고는 회귀 전 망나니로 살았던 젊은 시절, 정확히는 그 시절 탓에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반역 황자 유스티아누스를 직접 상대하지 못한 것뿐이다.

그렇지만 굳이 진실을 다 말할 필요는 없는 법이었다.

“아…….”

“그것도 의원에게 필요한 재능이다. 서명은 내가 해주지. 후보자 등록 기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출마하지 않는다면, 아직도 여기가 그때 그 빈민가인 줄 아는 놈들이 정화 작업을 시행한답시고 인간 사냥을 할 거다.”

코넬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요. 어떻게 이렇게 바꿔 놓았는데.”

“이제야 여기 기어들어 와서 제가 뭐라도 한 척하며 표를 받으려는 놈들이 있을 거다.”

“고깝군요. 다 묻어버리고 싶네요.”

“그런 놈들이 네 업적을 빼앗아 가는 걸 두고 보지는 않겠지?”

거기까지 말한 나는 몸을 돌렸다.

더는 말할 필요 없었다.

인적 드문 길로 빈민가를 빠져나왔다.

마차를 잡자, 텐티아 경이 오랜 침묵을 깼다.

“발렌 대공 전하.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전하께서는 그녀가 영영 빈민가를 관리해주기를 바라셨던 게 아닙니까?”

나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의원이 되라고 했잖나.”

“!”

“의원이 하는 일이 뭔가? 자기 뽑아준 애들, 지지해준 애들에게 잘해주는 거지. 빈민가 출신 의원이 빈민가를 벗어날 수 있을 거 같나? 이제 코넬은 기꺼이 거기 남으려고 할 거야.”

텐티아 경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경이 한 말 기억하나? 그 젊은 친구 알센에게 영주가 된 거 같이 군다고 했잖나.”

“예. 그랬습니다.”

“어찌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닐세. 자기에게 권력을 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야.”

그녀가 늠름한 얼굴에 허탈한 미소를 띄웠다.

“전하께서는 정말……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망나니 같기도 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황족 같기도 하십니다. 어느 쪽이 진짜이십니까?”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네. 둘 다거나 하나도 아니겠지. 오늘 돌아가서 검술 훈련을 하다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나?”

“그럼 망나니시겠군요.”

“하하하하.”

사흘 뒤.

빈민가가 만들어진 이래 내내 의원이 선출되지 않았던 구역에, 처음으로 후보자들이 등록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등록한 건 고작 16살에 한쪽 다리가 없는 소녀였다.

* * *

홍등가 고급 술집의 한 방.

장, 중년의 의원 후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열여섯 살짜리가 의원 후보로 나오다니, 제국 수도 의회의 품격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제멋대로 조합을 만들어가며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나, 군표를 멋대로 찍어내며 물자를 독점하지 않나. 완전히 미친 년입니다.”

“그년은 광명신교도 믿지 않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당장 화형을 시켜야 합니다.”

“알센 님도 뭐라 말씀 좀 해보십시오.”

발렌시아누스에게 금화를 뜯긴 청년 의원 후보는 술 한 잔을 비우고 씁쓸하게 웃었다.

“저희 모두 다른 곳에서 패배하고 옛 빈민가까지 밀려온 몸들 아닙니까? 입이 열 개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한 장년의 여인이 혀를 찼다.

“우리 지지율을 다 합쳐도 그년의 15분의 1도 안 됩니다. 돈을 아무리 처발라도 말입니다.”

“당장 일자리 만들어주고 배급을 나눠주는 년을 어떻게 이깁니까? 멍청하고 천한 것들은 그렇게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퍼주는 것들만 좋아하기 마련이지요. 무릇 미래를 생각하면 건강한 투자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고급 정장을 입은 상단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눈가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술잔을 비우고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지지율을 올릴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그년의 지지율을 떨어트리고 그 표를 나눠 먹어야지요.”

“어떻게 떨어트린다는 말씀입니까?”

“요즘에 먹고 살 만한 거 같아도 다 결국 본질은 빈민들입니다. 침식의 공포와 그걸 명분으로 이뤄지는 인간 사냥의 공포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년이 옛것을 섬긴다는 걸 폭로합시다.”

모인 모든 의원 후보들이 혀를 찼다.

“여기 그걸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이미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칼자국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는 것과 대낮에 늑대인간이 나타나는 건 완전히 다르지요. 어쩌다 보니 침식자들의 본 모습을 밝혀 준다는 축성 받은 은도금 무기가 몇 개 들어왔습니다만…… 그걸 쓸 사람이 필요합니다.”

침식자들의 본 모습을 밝혀 준다는 축성 받은 은도금 무기가 어쩌다 보니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나 그걸 굳이 지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가 용병 출신 동생들이 몇 명 있습니다.”

“저도 옛 홍등가 기도 출신 애들을 도와주기 있지요.”

여기저기서 내가 몇 명을 데려올 수 있으니 없느니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알센은 입을 열었다.

“다들 코넬 그년 뒤에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있다는 걸 모르시는 겁니까?”

“!”

“우리는 결국 평민이지요. 놈은 같은 황족을 베어 죽일 정도로 막 나가는 놈입니다. 확실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순간을 노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론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칼자국 사내가 말했다.

알센은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말을 이었다.

“교회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옛것을 섬기는 년을 돕는다는 건 교회와 척지는 것. 그놈도 황제 폐하가 손잡은 교회에게 대놓고 거스를 수는 없겠지요.”

장년의 여인이 말했다.

“주일 임시 교회 앞 기도회 시간을 노립시다. 분명히 그년이 거기서 연설할 겁니다.”

여기저기서 찬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신성한 기도회 시간에 제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다니.”

“죄인의 본 모습을 모두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 * *

넓은 천막을 이어 붙이고 단상을 이용해 만든 임시 교회.

공짜 치료와 정화를 받을 수 있는 주일이었고, 그들의 영웅 코넬이 연설을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섰던 코넬은 이를 악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몸에 박힌 화살대를 쥐고 부르르 떨면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우리의 삶을 바꿨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방금까지 읽던 연설문이 흐릿하게 보였다.

“코넬 님을 모셔라!”

리더를 지키기 위해 조직의 간부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사람들 사이에서 은제 무기를 가진 칼잡이들이 뛰쳐나오고, 높은 건물에서 은 화살이 날아왔다.

그걸 맞은 간부들은 미약한 정신 파동이 섞인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늑대 인간으로 변이했다.

“……안 돼.”

코넬은 부하들의 손에 들려 단상 위에서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영악하고 총명한 본능이 지금 내려가면 끝이라고 소리쳤다.

장이, 에리 아주머니가, 피에스트가, 벤톤이, 그녀를 보며 웃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교회의 사제가, 지금껏 그녀를 성심껏 도와주던 신학생들이 의분에 찬 고함을 질렀다.

누군가 말했다.

운명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하여, 가장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고.

코넬은 아버지가 죽은 이후로 처음으로 울었다.

몰락이 가장 찬란한 순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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