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91화
(91)
코넬은 빈민가를 통제할 능력이 있고, 본인도 책임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해야 할 이유도, 하고 싶은 이유도 있다.
코넬은 광명 신이 아니라 아몬을 섬기며, 승승장구하다 파멸을 겪었다.
하면 안 될 이유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의지로 취사선택한다.
“그래. 잊지 마라. 너는 의원이 되고 싶고, 될 거다.”
나는 최대한 단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코넬에게 믿음을 주고 마음을 다잡아주기 위함이었다.
“천천히 하나하나 정리하자. 말해봐라.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한 제일 큰 문제가 뭐냐? 힌트를 주자면 사람들의 신뢰를 잃은 건 아니다. 그건 셀 수 없는 거고, 있다고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다. 네 실적은 실적대로 존재해. 그걸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뿐이지. 자. 문제가 뭐냐?”
코넬이 영악하고 총명한 눈을 빛냈다.
오래지 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교회입니다.”
텐티아 경이 흠칫했다.
“교회라고 했느냐?”
나는 흡족하니 웃으며 말했다.
“정답이다. 왜지?”
“제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힘이 교회 물자를 배분하는 권한이었습니다.”
조합에 가입하고 일을 하면 배급을 준다.
공장도 일자리도 당장 돈이 되는 상황은 아니다.
심지어 겨울이라 늦봄 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곡물값은 계속 오르기만 할 거다.
이런 상황에서 곡식으로 가득 찬 창고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게 그녀의 가장 큰 힘이었다.
“하지만 그건 제 물자가 아닙니다. 교회의 물자죠. 그리고 교회는 이단 신을 섬기는 애에게 그 권한을 남겨줄 수 없습니다.”
좋은 애니까 이단 신을 믿어도 계속 함께하겠다.
신도들의 헌금이 중요한 교회가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다.
“그래. 너를 몰아내려는 다른 의원 후보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도 그쪽이다. 너를 침식자로 몰아가는 거지. 바꿔 말하면 그 부분 하나만 어떻게든 잡으면 너는 부활할 수 있다.”
텐티아 경이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든, 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심기를 건든 거 같았다.
나는 한 박자 쉬며 코넬의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리고 말을 이었다.
“그걸 내가 처리해주마.”
“예?”
“일주일 안에 네가 침식자라고 떠들어대는 후보 놈들을 다 잡아 족치고, 교회가 다시 너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너는 다시 민심을 잡는 데만 집중해.”
코넬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왜 제게 이렇게까지 해주십니까?”
“뭐?”
“제 아버지를 죽인 것에 죄책감이라도 느끼시는 겁니까?”
나는 하,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황형 발렌시아누스. 무죄무치다. 이 몸은 오로지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에게만 책임을 지지.”
내가 나서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껏 네게 투자해준 돈이 얼마인데, 여기서 날려 먹을 수는 없지 않느냐?”
이해타산도 있었다.
“내가 네 뒤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널 쳤다는 건, 나를 무시했다는 거다.”
50년 가까이 살고도 여전한 자존심도 있었다.
혈통이 아니라 지식으로 힘을 얻은 코넬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했고, 일종의…… 의무감도 있었다.
책임감과 능력이 다 있는 인재를 잃어서는 안 되다는 의무감.
아까 그것들이 떠들던 말이 있었다.
코넬이 한 일이 뭐 있냐고.
정말 비열한 말이다.
사람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일을 잘 시켜서 성과를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인재를 남 깎아내리는 것밖에 못 하는 놈들이 건든다는 게 불쾌했다.
굳이 꽃밭에 들어가 꽃을 하나하나 꺾고 있는 미친놈들을 본 기분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신분제 사회에서 최고의 중죄는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건든 괘씸죄였고.
그리고 나는 황제의 가장 가까운 친족,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으신 분이었다.
그 길로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텐티아 경이 바싹 따라 붙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별거 없네. 가서 들이받아야지.”
“기사다운 결정이시군요. 하지만 전하다운 결정은 아니신 거 같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묘한 걱정이 어려 있었다.
“경답지 않군. 내게 이런 행동을 요구하던 게 아니었나?”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사가 아니라 의원을 도우려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기사의 문제는 의원처럼 해결하고, 의원의 문제는 기사처럼 해결하시려 하니, 그 저의가 궁금할 뿐입니다.”
나는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과 대련했을 때 경이 해줬던 말이 있지. 검술은 허를 찌르는 거라고.”
“예. 그렇습니다.”
“똑같네. 저들은 코넬에게 침식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내가 코넬을 돕지 못하고 하려 하지.”
텐티아 경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예. 지금 전하가 저 아이를 돕는다면 전하도 침식자냐는 의심을 사게 될 것입니다.”
“그럼 내가 정면에서 코넬을 돕지 못할 거라고, 최소한 무력은 사용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겠지?”
“예. 그렇습니다.”
나는 아릿하게 읊조렸다.
“그럼 저들은 무엇을 방비하고 있겠나?”
“!”
텐티아 경이 눈을 부릅떴다.
“내게 무력이라는 카드를 완전히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 지금, 나태한 자들은 방심하고 있을 것이고, 부지런한 자들은 여론전을 대비하고 있겠지. 더욱 부지런한 자들은 서로를 찌를 준비를 할 것이고.”
“전하가 가서 다 엎어버리신다면…….”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나까지 침식자로 몰아가는 것뿐이지. 하지만 위협은 상대가 그걸 피하려 했을 때만 위협으로 기능하네.”
나는 한 박자 쉬고, 노란 눈을 세로로 바꿔 뜨며 말을 이었다.
“놈들이 나를 침식자로 몰아갈 생각이라면, 나는 황족 모독죄를 물어 놈들의 목을 칠 거라네. 알고 있네. 서로 물고 뜯은 끝에 남는 건 상처뿐인 승리겠지.”
하지만.
“이겨도 다치고 져도 다친다면 이기고 다치는 게 낫네.”
텐티아 경이 늠름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나 그 입꼬리를 조금씩 씰룩거리고 있었다.
처연한 늑대 같은 인상의 기사가 사납게 웃었다.
“이겨도 다치고 져도 다친다면 이기고 다치는 게 낫다……. 전하. 참으로 기사다우십니다.”
* * *
옛 빈민가에 직접 출마한 의원들은 열다섯 명이었고, 빈민가의 일부가 자신의 구역에 겹치는 의원은 일곱 명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직접 출마한 의원 후보 열두 명이 실종되었다.
여전히 빈민가 아래에는 지하수로가 흘렀고, 그곳의 슬라임들은 뼈와 나뭇가지까지 먹어 치웠다.
망나니 황형 발렌시아누스가 암약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후보들이 서로를 찔러 놓고 발렌시아누스에게 덮어씌우고 있다는 말도 만만찮게 나왔다.
코넬이 아직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증거였다.
황족의 뒤를 봐준다면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겠냐는 말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두 번째 증거로, 실제로 후보들이 고용한 깡패들이 싸우는 게 심심찮게 목격되었다.
언성을 높이거나 주먹다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단검과 강철 곤봉을 쥐고 피 튀기는 항쟁을 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정작 빈민들은 그런 항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종된 후보 열두 명 중 발렌시아누스가 직접 건든 후보는 단 셋뿐이었다.
“신기한 일이지요. 한번 누군가 물꼬를 터 주니 기다렸다는 듯 싸우지 않습니까?”
알센은 광장 옆 한 건물 3층을 차지하고 앉아 휘파람을 불었다.
“도련님 말이 맞습니다.”
그를 따르는 깡패들과 칼잡이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빈민가에서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빈민가에 걸친 구역이 꽤 많았고, 인구 밀도 상 그곳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떨어진 떡고물을 주워 먹는 건 저네요.”
“으으.”
그의 발밑에는 피를 줄줄 흘리는 의원 후보 하나가 엎드려 있었다.
“치워주세요.”
깡패들이 그를 질질 끌고 지하수로와 연결된 지하실로 내려갔다.
알센은 한쪽 벽이 반쯤 트인 건물 아래로 광장을 바라보았다.
[황형 발렌시아누스와 악녀 코넬의 인간 사냥!]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들은 보아라!]
온갖 자극적인 문구는 다 붙은 대자보들이 광장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중 인파가 제일 많이 몰린 곳은 알센의 대자보 앞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뭉쳐야 할 때입니다.]
“누구 막 욕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하거든. 양쪽 다 똑같이 나쁜 놈! 이러면 둘 다 망하는 거라니까.”
어차피 그는 선거만 끝나면 다시 관문 쪽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상권이 활성화된 그쪽이 세수는 훨씬 많이 나오고, 상인들에게 뇌물 받기도 좋았다.
“그러니까 이제 코넬 다시 불러와 봐야 아무것도 못 하는 거지. 걔가 뭐라고 해도 다른 후보들이 침식자 문제 가지고 욕하는 순간 서로 계속 물어뜯을 수밖에 없으니까.”
알센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틀렸습니까?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
그가 막 3층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알센은 그를 먼발치에서 처음 봤을 때처럼 숨을 들이켰다.
착실하게 준비하고 완벽하게 옭아맸다고 믿고 있지만, 발렌시아누스에게는 믿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뒤로 넘긴 찬란한 백금발은 유쾌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인상을 주었고, 황금색 눈동자는 인간 같지 않아 다음 수를 재단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붉은 띠와 금실로 수놓은 하얀 정장은 그를 더 완전하게 보이게 했고, 허리에 찬 크로스 가드 긴 검은 그의 핏빛 어린 소문과 어우러져 기이한 무게감을 만들었다.
게다가 그 뒤를 바싹 붙어 따라오는 기사는 또 어떤가?
쇼트커트로 자른 머리와 눈동자는 식어가는 피같이 차갑게 붉고, 늠름한 얼굴에는 명예와 영광을 아는 자의 분노가 깃들어 있다.
하얀 판금 갑옷이 물 샐 틈 없이 전신을 감싸고 있고, 마도구임이 분명한 붉은 망토는 그 기사를 주변과 분리된 존재로 보이게 한다.
“알센. 그때 길에서 본 뒤로는 처음 보는군. 일주일만인가?”
“예. 전하. 긴 시간이었지요.”
“그래. 시간은 언제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 아홉이나 없애줄 줄은 몰랐다.”
“제가 없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알센은 옅게 웃으며 대자보들을 바라보았다.
[황형 발렌시아누스와 악녀 코넬의 인간 사냥!]
[우리는 여전히 사냥감인가?]
“의원 후보들을 열둘이나 베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빈민들이 인간 사냥에 얼마나 민감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잘 알지.”
“막 나가는 전략은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저부터 베셨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제 빈민들은 전하와 코넬을 침식자가 아니라 살인마로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도한 게 알센이었다.
“전하께서는 치밀하신 거 같지만, 너무 상대를 깔보시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알센이 웃고, 발렌시아누스는 임시 교회를 내려다보았다.
신학생들은 둘뿐이었고, 사제는 없었으며, 성기사 넷이 망토를 뒤집어쓰고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있었다.
알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렌시아누스를 마주 보았다.
독기 어린 초록색 눈동자가 승리감으로 번뜩였다.
“황궁으로 돌아가십시오. 대공 전하. 이제 여기서 더 움직이시면 교회가 나설 거고, 그럼 빈민가 안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지. 침식자와 얽힌 만큼 황제 폐하께서도 나를 마냥 감싸주시지는 못하실 거고.”
“코넬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그건 조금 구미가 당기는군. 더 말해 보게나.”
“제 구역은 빈민가가 아니라 빈민가와 겹친 성문 쪽입니다. 제 구역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표만 받을 수 있으면 사실 빈민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코넬이 피의 복수를 하든 말든, 여기가 다시 망하든 말든 말이죠.”
발렌시아누스는 혀를 찼다.
“의원이 되겠다면서 그게 할 말인가? 내가 말했을 텐데. 자네는 귀족이 아니야. 옆 구역이 망하는 건 옆 영지가 망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일이네.”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의원이 되면 안 되지. 텐티아 경.”
발렌시아누스의 말이 떨어지가 무섭게 붉은 머리의 기사가 검을 뽑았다.
깡패와 기사의 실력은 비교하는 게 우스운 일이었다.
“아악, 아악!”
“살려주십시오!”
저항한 자들은 가슴에, 도망친 자들은 등에 검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알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정말 침식자와 한패라는 죄로 파문당하고 싶으십니까?”
그는 무력을 통한 협박을 벗어날 카드를 처음부터 챙겨 두었다.
“자네야말로 어쩌려고 그러나?”
“예?”
“침식되어 부하들을 다 죽이고 거리 한복판에서 날뛰다니 말이야.”
하지만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건 발렌시아누스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