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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92화 (92/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92화

(92)

발렌시아누스는 알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박차고 주먹을 날렸다.

정확히 턱을 노린 정권.

퍽!

정통으로 얼굴을 얻어맞은 알센이 크게 휘청였다.

빠진 이빨이 핏물과 함께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발렌시아누스는 그 빈 자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뚝, 바닥에 주저앉은 알센의 턱이 빠졌다.

“으어어어?!”

고통과 당황으로 알센이 울부짖었다.

자신만만하던 초록색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발렌시아누스는 한껏 웃으며 주머니 속에서 하얀 기운 감도는 붉은 약을 꺼냈다.

엄지로 코르크 뚜껑을 툭 따내고, 벌린 입 안에 그 액체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부었다.

“삼켜라.”

턱을 강제로 닫고 잠시 뒤, 목울대가 움직였다.

“발렌 전하. 뭘 먹이신 겁니까?”

옆으로 다가온 텐티아가 반쯤 의도된 질문을 던졌다.

발렌시아누스는 알센을 놓아주며 말했다.

“원래는 내가 비룡화를 통해 힘을 얻을 때 쓰는 약이네.”

“!”

알센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텐티아가 여전히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그는 용찬 의식을 하지 않았잖습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발렌시아누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알센을 한껏 비웃으며 답했다.

“폭주하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침식자와 거의 똑같을 걸세. 누가 봐도 무리하게 힘을 간원하다 이성을 잃어버린 줄 알 거야.”

“그걸 전하께서 잡는 겁니까?”

“나뿐이 아니지. 나, 성기사, 그리고 코넬과 그녀의 부하들이 함께 잡을 걸세. 이미 그녀의 건물에서 여기를 보고 있을걸?”

알센은 황망한 표정으로 온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대각선에 있는 건물 6층을 바라보았다.

빈민가를 제패한 조직만이 아지트로 삼을 수 있었다는 그 건물 꼭대기에서, 영악하고 총명한 인상의 소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빈민가에서 약이나 팔던 천한 년이 감히-!”

그의 발악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 알센. 말 잘했다. 성문 앞에서 뇌물이나 받아먹던 천한 것이 감히 누구를 거스른 거냐?”

발렌시아누스가 알센의 배를 구둣발로 짓눌렀기 때문이다.

힘에는 힘으로, 술수에는 술수로, 신분에는 신분으로.

이윽고 알센의 살덩이가 부풀어 오르는 순간, 발렌시아누스는 손에서 불길을 피워 올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

“자. 알센. 부디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괴물이 되어 주기를 바라네. 늑대 인간 따위는 아무도 기억 못 할 정도로 충격적인.”

제일 먼저 변한 건 의외로 다리였다.

바지가 터지고 골반 옆에서 다리 두 개가 더 튀어나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골반이 부풀어 오름에 따라 다리와 다리 사이에서 계속 새로운 다리가 튀어나왔다.

발가락까지 딱 다섯 개 달린 인간의 다리였다.

다리가 서른 개가 넘어갔을 무렵,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살구색 가죽 위로 핏줄이 불거지고, 눈알 같은 무늬가 새겨졌다.

그 와중에도 상체는 가슴 아래로 거의 그대로여서, 특유의 금발과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텐티아는 알센의 변이가 끝나자 검에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를 둘렀다.

“전하. 그 바람 이루어지신 거 같습니다. 악몽에서도 안 나올 괴물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알센은 마치 껍질 까지 않은 4m 크기의 양파에 인간의 다리를 여럿 단 듯한 하체와 싹처럼 툭 솟은 상체를 가지고 있었다.

배와 허리 부분이 워낙 커다래서 꼭 거대한 살덩이 위에 인간의 상체를 꽂아둔 거 같았다.

“생긴 건 끔찍하고 별 전투력은 없어 보이는군. 쉽게 이길 수 있겠어.”

발렌시아누스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불길을 쏘아냈다.

화르르르륵!

거세게 쏘아져 나간 불길이 알센의 몸을 지글지글 태웠다.

“쿠오오오오!”

상체가 천장에 짓눌린 거구가 분노에 찬 함성을 내지르며 수십 개의 발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쿵쿵, 쿵쿵, 쿵쿵!

“예상 외로 빠르군요.”

“그래 봐야 신체 구조적으로 속도가 못 나오네.”

보통 인간이 빨리 걷는 정도의 속도로 변이한 알센이 다가왔다.

발렌시아누스가 일체개고를 준비하는 순간, 두 명과 한 괴물 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쩍, 쩌적!

노후화된 바닥은 잔뜩 부풀어 오른 거체를 감당하기에 너무 약했다.

쿵!

먼지가 피어오르고 알센의 몸이 2층으로 떨어졌다.

쿵!

한 번 더 먼지가 피어오르고 알센의 몸이 1층으로 떨어졌다.

* * *

“건물이 무너진다!”

“아니야! 뭔가 떨어진 거야!”

“엄청 커다란 살덩이 같은데?”

“어보미네이션이다! 다들 피해!”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발렌시아누스는 그걸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어차피 사람들 앞에 노출 시켜야 했네. 좋군.”

“아닙니다.”

텐티아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다 잡아 놓고 마지막에 코넬과 성기사들과 같이 잡는 연기만 할 거였잖습니까? 저놈은 고작 3층에서 떨어진 정도로 죽을 놈이 아닙니다.”

“쿠오오오오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먼지 속에서 괴물이 움직였다.

알센이 쿵쿵거리며 사람들이 몰린 광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갔다.

지름만 4m에 달하는 거대한 살덩이가 달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박력이 있었다.

“망나니 황족 발렌시아누스와 손잡은 코넬은 의원이 될 자격이 없…… 으아아아악!”

“코넬 님을 따라 우리의 낙원을 만들…… 꺄아아아악!”

피켓을 들고 언성을 높이던 옛 빈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드디어 모두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군.”

발렌시아누스는 크게 만족한 듯 중얼거렸고, 텐티아는 개소리를 들은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농담이라 믿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네.”

아니라는 뜻이었다.

텐티아는 붉은 눈을 한 번 흘기고 벽 허물어진 가장자리에 섰다.

타악,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붉은 망토와 머리칼을 휘날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악한 침식자 알센은 이 텐티아의 검을 받아라!”

광장을 넘어 빈민가 전체에 들릴 듯한 기세로 고함을 지르면서.

“침식자?”

“알센 나리가?”

광장 쪽에 무슨 일이 터졌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그 고함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텐티아는 그걸 흘깃 보며 발렌시아누스의 통찰력 또는 비열함의 깊이를 다시 한 번 짐작했다.

단숨에 알센의 목을 쳐버리지 말라 한 것도, 코넬과 성기사들이 나서기 전까지 고전하는 척 연기하라 한 것도, 알센의 위험함을 더더욱 부풀리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마나 블레이드 역시 색만 날 정도로 만들어서 평소와 같은 절삭력은 없었다.

사악, 사아악!

하지만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거대한 살덩이의 돌진을 능숙한 스텝으로 피하며 다리를 찔러 조금씩 무력화시키는 늠름한 기사에게는,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뭇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깡패들을 시켜 의원 후보들을 죽인 죄!”

텐티아가 내지른 검이 정확히 한 다리의 무릎을 꿰뚫었다.

“코넬에게 침식자의 누명을 씌운 죄!”

발목이 날아간 다리가 부르르 떨며 축 늘어졌다.

“교회와 조합 간 이간책을 쓴 죄!”

두툼한 살덩이가 깊게 베이고 피가 튀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코넬을 배신하게 하고 네 이득을 취하려 한 죄다!”

텐티아의 목소리가 거리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애초에 빈민가에서 무슨 일이 있든 기사들과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빈민들이 늘어나 빈민가가 확장될 거 같으면 치안감들이 귀족들에게 인간 사냥권을 팔 뿐.

그래서 다른 사람도 아니라 무려 백금 기사가 자신들을 위해 싸워준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감격했고, 그녀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깊게 새겨들었다.

코넬을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있던 사내는 잠시 텐티아를 지긋이 바라보다 피켓을 바닥에 던지고 밟아버렸다.

“망할 놈!”

“감히 코넬 님을!”

“여기가 어디라고.”

“코넬 님을 의회에 보내자!”

민심은 붉은 머리의 기사 앞에서 순식간에 한 덩어리가 되었고, 그때 건물 6층에서 소녀는 중얼거렸다.

“발렌 전하가 말한 그대로네요.”

발렌시아누스였다면 쓰게 웃었을 것이고, 텐티아라면 감격에 차 웃었을 것이다.

외다리 빈민 코넬은 그저 그 목소리를 마음에 담아둘 뿐이었다.

저렇게 오락가락하면서도, 저렇게 뜨거워진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자.”

“예. 코넬 님.”

기도로 상처를 치로하고 힘을 받아온 간부진과 전투 대원들이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나는 벌써 그들이 움직이는 걸 보며 당황했다

“아직 안 되는데.”

계획대로라면 코넬은 알센이 거의 다 죽었을 때 튀어나와 싸우는 척만 해야 했다.

하지만 본래 계획과 달리 알센은 여전히 생생했다.

나는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길까 두려워, 초조한 기분으로 입술만 깨물었다.

“침식자다!”

“광명신이시여!”

그때 임시 교회 쪽에서 네 명의 성기사가 달려왔다.

사슬 갑옷과 두꺼운 서코트를 입고, 큰 방패를 들었으며, 신성력 타오르는 검을 쥐고 있었다.

“성기사님들이다!”

옛 빈민들의 환호가 극에 달했다.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약간 안도했다.

일단 성기사, 기사, 코넬이 함께 싸우는 그림은 확실히 나올 거 같았다.

“저기 코넬 님이다!”

“우리 옆에 계셨어!”

빨리도 내려왔네.

영악하고 총명한 인상의 소녀가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나왔다.

희망찬 미소는 또래에 어울렸지만, 지팡이를 짚은 걸음걸이에는 ‘보스’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이 있었다.

그녀를 따라 내려온 전투대원들이 손에 단창과 단검을 쥐고 달려 나갔다.

텐티아 경이 나를 흘깃 바라보았고, 나를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나 블레이드에 다시 예기가 깃들었다.

가볍게 찌르는 게 전부였던 공격은, 다리를 가볍게 베어버리는 수준의 참격으로 변했다.

몸통 박치기를 피하던 스텝은, 몸통 박치기를 정면에서 막아서는 일권이 되었다.

“보아라, 사악한 자야! 네가 아무리 술수를 부려도 그림자는 빛 앞에서 사그라들고, 영웅은 돌아오기 마련이다!”

경전의 문구를 이용한 일갈에 성기사들이 환호했다.

코넬의 부하들이 알센에게 단창을 꽂았다.

승리가 눈앞이었다.

그때 나는 알센과 눈이 마주쳤다.

놈의 머리와 상체는 변이하지는 않았지만, 부풀어 오르는 하체 때문에 천장에 짓눌려져 반쯤 으깨졌었다.

그 머리가 내 쪽을 바라보더니, 입 모양으로 말했다.

기다렸다, 하고.

“빌어먹을 놈이 감히!”

나는 끔찍한 예감을 느끼며 다급히 주문을 외웠다.

황금빛 용언의 기운이 손바닥에 일렁이고 허공에 불꽃의 창이 만들어졌다.

나는 알센을 향해 창을 쏘아 보내려 했지만, 일순 망설였다.

불꽃 마법은 궤적이 눈에 너무 잘 띈다.

이곳은 고작 3층이니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볼 수 있다.

나는 최근에 또 침식자와 엮였다.

내가 상아탑에서 한 실험 때문에 난리가 나고, 그걸 숨기려 목격자들을 죄다 죽이려 했다는 식이었다.

내가 코넬을 도와주는 모습을 누군가 보다면, 그 애의 지지율은 다시 바닥에 추락할 거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창끝을 돌렸다.

허공에 불길 대부분을 흩고 약간의 열기만 남겼다.

보기에는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훅, 하고 치솟고 바로 꺼져버리게.

텐티아 경과 성기사들, 코넬의 부하들이 알센의 다리를 대부분 베어냈다.

코넬이 오른손에 지팡이를, 왼손에 단창을 쥐고 알센에게 다가갔다.

알센이 초록색 눈을 음흉하게 깜빡였다.

그 순간 나는 코넬의 발밑에 주문을 발사했다.

쐐애액!

불꽃의 창이 허공을 가르며 뿜어져 나가고, 코넬의 발 바로 앞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펑!

열기와 풍압에 휩쓸린 코넬이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슈슈슈슉!

동시에 알센의 몸에서 장창 같은 뼈 가시 수백 개가 솟아올랐다.

텐티아 경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막고, 성기사들이 방패 뒤로 몸을 숨기고, 코넬의 전투조원 몇몇이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아.”

그리고 넘어진 코넬의 머리 위에서 장창 같은 가시 세 개가 움찔거렸다.

머리, 가슴, 배를 다 관통할 높이였다.

“어어?!”

“누가 코넬 님을 공격했다. 하얀 머리에 하얀 옷이야!”

“저 건물 3층이다!”

“알센 저놈, 힘을 숨기고 있었나?”

“하얀 머리면 발렌시아누스 황형 아닌가?”

“그 망나니 녀석이라면 알센과 손을 잡았을 만도 하지!”

나는 옛 빈민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 지하수로로 내려갔다.

분노에 찬 텐티아 경이 마나 블레이드를 이글이글 피워올리며 알센을 다지는 게 얼핏 보였고.

“여러분! 우리는 망나니 황형 발렌시아누스와 타락한 의원 후보 알센으로부터 승리했으며, 의심으로부터 승리해 다시 하나로 뭉쳤습니다!”

코넬의 앳된 고함도 들려왔다.

훌륭한 의원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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