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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01화 (141/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01화

(101)

성자는 정화와 치유의 권능을 하나로 사용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침식이 너무나도 깊게 진행되어 정화해도 죽었을 사람을 살려낸 것이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든 게 광명신의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전쟁을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안타레스 백작가의 장남이었고, 곧 도르카이시스 가문의 장녀와 연애 결혼할 사이였으며, 30년 전쟁을 끝낼 사람이었다.

나는 봄비를 맞으며 그대로 누워 있다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대충 상황 돌아가는 건 알았으니, 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

“발렌시아누스다. 내 이름 한 번은 들어 봤겠지?”

“아! 예, 예. 대공 전하.”

“황실에서 종전 협상 도와주겠다고 기사들이랑 행정관들 오는 건 아나?”

“예. 황제 폐하의 은혜가 하늘에 닿아…….”

“빨리 가서 그거 말려라. 거기 청은 기사에게 가서 말해. 우리 전쟁 끝났고, 광산 개발 바로 올해에 시작할 거고, 황실에 미리 약속한 대로 물량 잘 넘길 거라고.”

“예?”

“너희 아버지랑 장인어른이랑 같이 죽게 생겼다. 원래 우리 계획은 그 둘을 죽이고 너희 둘을 억지로 결혼시키는 거였어. 그런데 너희가 결혼하고 전쟁 끝낼 생각이라니 굳이 죽일 필요가 없어졌잖아.”

“!”

그가 얼굴을 굳혔다.

뭐라도 증표를 줘야 청은 기사단도 내가 한 말임을 믿겠지.

나는 품속을 뒤져 루디가 자수를 놓아 준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수도의 유명한 의상실에서 만든 고급 손수건에다가 이니셜까지 새겨 놓았으니, 청은 기사들도 대충 알아보겠지.

“가라. 마구간은 저쪽이다.”

그가 나와 마테오스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마구간을 향해 달렸다.

이제 저쪽 문제는 확실히 내 손을 떠났다.

죽을 운명이면 죽겠고, 살 운명이면 살겠지.

나는 백작가 후계자를 보내고 마테오스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신 파동에 당해 쓰러진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정화하고 있었다.

“일단 아이들부터 들여보내겠습니다. 다들 내일까지는 다들 푹 쉬게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이상 증상을 보인다면 저희가 정화의 은총을 베풀겠습니다.”

“한동안 악몽을 꿀 겁니다. 침식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은총에 중독되지 않을 정도로는 계속 베풀어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심성의껏 받들겠습니다.”

후속 조치를 지시했고.

“무너진 성당은 제가 내일 백작에게 가서 인부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아닙니다. 내일 저희 성기사 후보생들이 공사하겠습니다. 공병대 일도 최근에 배운 참이고, 이 ‘파도’의 흙과 돌들이 작업하기 좋아서 일주일간에 재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저도 함께 도와드리겠습니다.”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냈으며.

“아래쪽에 동굴이 있고, 그곳이 침식자들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들은…… 수도부원장 오단과 수녀 텔라, 몇몇 성기사 후보생들을 살해한 뒤 그들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옛것의 힘을 이용한 마도구를 이용해 수도원 안에서 암약했고, 놈들의 목적은 성검과 성물을 오염시키거나 탈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도구는 제가 파괴했고, 놈들은 저와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해치웠습니다.”

“텔라 수녀님. 흑, 흑…….”

성자답게 아픈 진실을 홀로 짊어졌다.

마테오스가 추락한 거대 까마귀에게 다가갔다.

살점 하나 없이 하얀 뼈와 검은 깃털로 이루어진 거대 까마귀의 정체는, 엄격한 사제이자 부원장이었던 오단이었다.

그걸 아는 건, 지금도 앞으로도 나와 마테오스뿐이었다.

변이한 오단은 내 불꽃에 날개와 몸통 사이를 정통으로 맞고 한 건물 지붕에 비스듬히 추락해 있었다.

그는 백작가 후계자가 말을 타고 달려 나간 걸 본 뒤로 약간의 버둥거림까지 멈추었다.

붉은 눈에 끝없이 빗물만 흘렀다.

꼭 그를 대신해서 눈물을 흘리는 거 같았다.

마테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성력을 발휘했다.

하얀 불꽃이 차갑고 또 뜨겁게 오단을 불살랐다.

텔라 수녀가 그 뒤를 이었다.

현명하고 탐구심 넘치던 인상의 수녀는 변이한 뒤에도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본래 침식자가 신성력에 닿으면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다.

하지만 검은 성자는 그들에게 잠드는 듯한 죽음을 선사했다.

내막을 모르는 몇몇 수도 사제가 의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정도였다.

그러나 안 그래도 말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운 인상인 마테오스다.

비애에 찬 그 단단한 검은 눈동자를 보며, 화려한 예복이 비에 젖어 늘어지는 걸 마다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며, 누구 하나 그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가 모두의 주의를 끄는 동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수도원장 한센의 멱살을 잡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성물 찾기를 시작한 것이다.

* * *

수도원장의 방이 부서지고 비가 들이쳤지만, 성당이 워낙 커다란 덕에 안쪽은 무사했다.

1, 2층을 오가며 복도 문 몇 개를 닫아걸자 다시 외부와 내부가 완벽히 차단되었을 정도였다.

“살겠네.”

구르고 치이고 찬비 맞다가 그래도 벽난로마다 불이 타오르는 성당 안에 들어오니 좀 살 거 같았다.

그러나 여유 부릴 시간도 없었고, 그럴 만한 몸 상태도 아니었기에, 나는 넋이 나가 있는 수도원장 한센에게 일갈했다.

“텔라 수녀가 성물을 연구하던 방이 몇 층의 어디냐?”

그가 언데드처럼 힘없이 팔을 들어 3층 끝 방을 가리켰다.

“앞장서라.”

혹시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 지친 내가 앞장설 수는 없었다.

다행히 변이한 성기사 후보생들은 성자가 다 처리했는지, 성당 안은 말끔했다.

3층 끝 방의 문을 열 때까지도 말이다.

끼이익-.

듣기만 해도 불길해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성물을 연구하던 수녀의 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자체는 여타 성당의 부속실들과 똑같이 평범한 네모 방이었지만, 책장에 꽂힌 책들은 특별했다.

가죽과 금속, 얇은 고급 목제 판자로 표지를 제본한 그 책들은, 밖에서는 천금을 주고도 못 구하는 금서들이었다.

흑마법사들이나 상아탑 칠흑 학파 원로들이 보았다면 진지하게 탈취 작전을 세웠을 정도였다.

과연 수도원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시선을 돌려 책상 쪽을 바라보았다.

텔라가 정말 오늘까지 뭔가를 연구하고 있었는지, 반쪽은 채워져 있고 반쪽은 비어 있는 연구 노트와 잉크병에 담긴 깃펜이 있었다.

저 연구를 이용해 침식의 힘을 제어했던 것이리라.

반드시 챙겨 가야 한다고 되뇌며 눈을 돌렸다.

책상 위 유리로 된 보관함 안에 은은한 기운을 뿜어내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손때가 타 반질반질한 나무 묵주, 은 함량이 10%나 되어 보이는 싸구려 은반지.

반쪽 남은 정강이뼈, 빼빼 마른 미라화된 손, 끝에 잔금이 간 나무 지팡이.

보석이나 비단실 하나 끼워 넣지 않고 길게 땋은 머리카락, 탄 자국이 남은 붕대 뭉치, 잔금 간 주석 잔.

마지막으로 수수한 나무 손잡이와 염색도 하지 않은 갈색 가죽으로 두른 칼집을 가진, 어디 기사령이나 남작령에 딸린 조그마한 장원의 대장장이가 만든 듯한 밋밋한 장검.

많은 성인은 부귀영화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았다.

마테오스가 치유해준 불의 성인 헤리스처럼 분에 넘치는 은총을 하사받아서, 속세의 기준으로는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사용하다 축복을 받은 물건이나 유해가 그리 대단해 보이는 물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보석 장식 하나 없는 그 검이 제이릴리스의 보검 ‘유리거울’에 필적할 것이라 맹세할 수 있었다.

분명히 저 검이 성검 ‘영원’이었다.

“한센 수도원장.”

“전하. 저는 이제 수도원장이 아닙니다. 광명교인도 아닌, 한낱 죄인일 뿐입니다.”

“파문당했구나.”

당연히 그랬을 거다.

아직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회귀 전의 마테오스라면 아까 침식자들을 불태울 때 그부터 죽였을 테니까.

“저 검. 뽑을 수 있겠나?”

의외로 금세 대답이 돌아왔다.

“못 뽑습니다.”

“생각보다 담담하군.”

“제가 수도원장일 때도 뽑지 못했습니다. 성검은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악을 물리치고자 할 때만 자신을 내어주지요.”

“그럼 나도 못 뽑겠군.”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본래 성기사 후보생 출신이었습니다. 성검을 볼 때마다 미련이 생겼지요. 이제 속이 썩어 문드러진 죄인이 되었으니, 잡기만 해도 온몸이 불타 죽을 것입니다.”

나는 책장 쪽으로 몸을 돌리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고해성사는 죽기 전에 하도록 해라. 나는 사제가 아니라 대공이니라.”

와장창!

그때 갑자기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당황하며 뒤돌았고, 깨진 창문 너머로 들어온 인영을 보며 더더욱 당황했다.

상대의 후드가 높고 평평한 투구를 쓴 거 같은 형태임을 제외하면 수도사와 너무나 비슷한 복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등에 까마귀와 같은 날개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

한센 전 수도원장이 당황하는 걸 보니 서로 아는 사이였던 거 같았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평생 수도만 하고 살았을 그들이, 아무리 금서에 둘러싸여 있다 해도 옛것과의 계약이라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방에 언데드가 돌아다니는 판에 살아있는 부상자들을 여기까지 옮겨오는 게 쉬울 리도 없었다.

도움을 준 놈이 있다.

침식자 사제다.

소드 엑스퍼트만큼 단련해 소드 엑스퍼트만큼의 힘을 쥔 자들,

“세상!”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비늘을 일으켜 공격에 대비했지만, 놈은 내게 공격해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서 왼손에 노트를 낚아채고, 오른손으로는 유리 진열장을 깨고, 성검 영원을 포함한 한 줌의 성물을 쥔 채 다시 창밖으로 몸을 날리려 했을 뿐이었다.

나는 지독한 오판을 내렸다는 걸 알아채고 쓰게 웃었다.

놈이 내게 덤빌 필요가 없었는데.

“날카롭게 찌르는……!”

두통을 이겨내며 주문을 외우려 했다.

코피가 왈칵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전 수도원장 한센이 움직였다.

그가 놀랍도록 준민한 움직임으로 성검의 검 자루를 잡았다.

사제는 성검의 검집을 쥐고 있었고, 한센은 한 걸음 물러서며 성검을 뽑았다.

뽑히지 않을 걸 예상하고 잡아당기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르릉-.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났다.

성검 ‘영원’의 날이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만에 바람을 맞았다.

녹슨 듯 거무튀튀하던 칼날이 은은한 하얀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침식자 사체의 후드 안 어둠이 꿈틀거린 거 같았다.

나는 한센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센이 한 걸음 나아가며 성검을 휘둘렀다.

유려한 대각선 궤적을 그린 성검이 침식자 사제의 오른손을 잘라냈다.

묵주, 반지, 땋은 머리카락 등이 방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큭!”

팔 하나를 내어 준 침식자 사제가 침음성을 흘리며 창틀을 박찼다.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나는 끝내 주문을 완성해 장창 같은 화염을 날렸다.

내 불꽃이 놈의 허리를 관통했고, 절벽 위까지 날아갔던 놈은 400m 아래로 추락했다.

‘해치웠……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단 와이번을 불러서 확인부터.’

그것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한센! 어떻게? ……아.”

온화하고도 심지가 강한 인상의 중년인.

성기사 후보생 출신의 수도원장.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사내의 침식 앞에서, 무엇을 행해야 할지 고민하던 자.

아마, 기록되지 못할 성검 사용자.

그의 온몸이 잔잔하고 은은한 하얀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성자님께…… 성물을 지켰다고…….”

모든 기적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 * *

성당이 복구되고, 안타레스 백작령의 교회에서 뒷일을 경계해 성기사를 보내오고, 슬슬 봉쇄수도원에 들어가고자 했던 이름 높은 노사제 몇몇이 수도원장으로 자원했다.

초봄 하늘은 푸르고, 작은 꽃이 하나둘 꽃망울을 피웠다.

성자 마테오스가 막 묘비를 세운 수도원 공동묘지 앞에서 기도문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당신의 품 안에서 영원을 맞이하게 하소서.”

생년월일과 사망일시 다음에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한센.

알첸베르크 수도원 수도원장.

세 번째 성검 ‘영원’ 사용자.

고뇌 끝에서 빛을 택한 자.

마테오스는 그의 파문을 거두었다.

나 외의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밝히지도 않았으니, 거두었다고 하기도 뭣했다.

“그들 모두가, 당신의 품 안에서 영원을 맞이하게 하소서.”

수도원장 한센, 수도부원장 오단, 빼어난 학자이자 수녀였던 텔라, 그 외 여러 수녀와 수사, 성기사 후보생들이 죽었다.

그들은 모두 옛것과 싸우다 죽은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발렌 대공 전하.”

식당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아이가 와서 어설프지만, 정중히 예를 표하며 인사했다.

나는 마주 예를 표해 주며 아이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저도 열심히 기도하고 수련하면 기사가 될 수 있을까요?”

……코넬도 그렇고, 진도 그렇고, 요즘은 애들이 애가 아닌 거 같다.

아이는 아름답고 총명해 보였지만, 피로 힘을 물려받는 귀족 출신은 아닌 거 같았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 기사가 되려면 수십 배로 노력해야 걸 알고 있었고, 거짓말을 싫어했다.

“기사는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성기사는 될 수 있을 거다.”

각오는 충분하고, 어린 나이부터 수도원에 오래 머물렀으니 신성력에도 익숙할 터였다.

노력에 따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아이가 일순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반색했다.

“감사합니다. 꼭 성기사가 되겠습니다.”

“복수하고 싶으냐?”

“예. 전하.”

“그럼 미안하게 되었구나.”

나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먼저 복수할 거란다.”

아이가 마주 웃었다.

“발렌 대공.”

마테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그쪽을 바라본 뒤 목소리를 착 깔며 아이에게 말했다.

“제국의 대공, 황형 발렌시아누스가 말한다. 꼭 멋진 성기사가 되어 수도 솔레타라온으로 올라와 저분의 곁을 따르도록 해라.”

뭐라도 증표를 남겨주면 진짜로 올라올 거 같은 아이였다.

제복에서 금장 단추 하나를 떼 쥐여주고 몸을 돌렸다.

마테오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미래의 성기사 후보를 단추 하나로 꼬드겼습니다.”

“역시 악덕 망나니 대공이시군요.”

나는 성자와 함께 비탈길을 내려갔다.

검은 성문을 지키던 성기사 후보생이 경례를 올렸다.

경례를 받아주고, 성문을 지나 저 아래서 기다리는 와이번에게 향했다.

마테오스가 잠시 멈춰 서 뒤돌아보았다.

회귀 전의 그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던 사내였다.

원망하는 목소리는 성흔과 신의 이름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화형선고자였다.

그런 마음으로 살던 그였기에 제이릴리스를 대신해 수많은 침식자들을 불태우며 지방을 지켜줄 수 있었다.

내게는 그런 성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참담하게도,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전쟁을 막으려는 시도가 침식을 불러왔고, 그걸 막아낸 건 예상치 못한 기적이었다.

제국의 대공이 기적 덕에 문제를 해결한 일 자체가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내가 청은기사단과 함께 두 백작의 목을 베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선한 의도가 모여 악한 결과를 낳는다니, 책임지는 입장에서 너무나 황당하고 짜증나고 원망스럽고 울컥하며, 무엇보다 슬픈 일이었다.

나는 내심 한숨을 삼키고, 과장하며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와이번을 탈 때 알아두면 좋은 36가지 공중 기동술에 대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마테오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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