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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08화 (148/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08화

(108)

황제의 네 기사단에서 배우는 기사 검술은 일반적인 검술과 조금 달랐다.

최상급 마도구인 전신 판금 갑옷 덕에 방어를 도외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둘러싸서 찔러!”

수적들은 끝 뾰족한 전투 망치와 날이 쭉 뻗은 직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온 힘을 다해 전투 망치를 내리치면 갑옷을 이루는 2mm 철판 정도는 손쉽게 뚫을 수 있었다.

캉, 캉, 캉!

투구를 내리친 전투 망치가 튕겨 나가고, 몸통을 친 직도가 휘고 부러졌다.

“미친!”

“뭐, 뭐야!”

그들은 텐티아의 하얀 갑옷 두께가 6mm이 넘는다는 사실도, 설령 행동 대장 급인 소드 유저가 나선다 해도 그 갑옷을 깰 수 없다는 걸 몰랐다.

텐티아는 당황한 그들을 향해서 붉은 늑대 같은 웃음소리를 흘려주었다.

손목 스넵으로 장검을 빙그르르 휘둘러 그들의 무기를 걷어냈으며.

“어어어?”

손을 떠난 무기를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린 장검이 대각선으로 베여 내려갔다.

사악!

그녀의 검은 마나 블레이드를 두르지 않고도 그들의 천 갑옷과 가죽 갑옷을 베고, 비루한 정신을 죄악에 찬 육체로부터 해방해주었다.

“물러서라!”

뒤늦게 그녀가 돈만 많은 부잣집 호위병이 아니라, 기사라는 사실을 알아챈 행동 대장이 직접 몸을 날렸다.

덩치가 텐티아의 두 배는 될 거 같은 덜퍽진 몸을 가진 사내였다.

사내가 근육질 몸을 뒤틀며, 거대한 직도가 횡으로 휘둘렀다.

후우우우욱-!

어지간한 사슬 갑옷은 가볍게 뚫고 그 안에 든 사람의 몸을 으깨버릴 기세였다.

텐티아는 면갑 안에서 붉은 안광을 빛내며 사납게 웃었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를 위하여!”

그녀는 오른발을 한 걸음 뒤로 빼며 중심을 단단히 잡은 뒤, 왼팔을 들어 직도를 쳐냈다.

카가가각!

직도는 곡면을 띄는 건틀릿 철판을 베어내지 못하고 옆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힘으로 막아내거나 갑옷의 강도만 믿은 게 아니라, 충격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게 흘려내는 게 기사의 전투법이었다.

어차피 갑옷은 뚫리지 않으니, 중심을 잃지 않고 공격을 빗겨내는 게 핵심이었고, 텐티아는 그걸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크게 엇나간 검에 행동대장의 스텝이 꼬였다.

텐티아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푸욱!

뱃가죽을 베인 행동대장이 신음했고, 텐티아는 행동대장을 왼손으로 번쩍 들어 물에 던져버렸다.

풍덩!

산에서 눈 녹은 물이 내려온 2월 호수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행동대장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수적들은 패거리 안에서 실력으로 몇 손가락을 다투던 행동 대장의 허무한 죽음에 당황하며 물러섰다.

그때 수염을 짧게 깎은 또 다른 행동대장이 배에 올라서며, 막 도망치려던 수적 하나의 허벅지를 칼로 찌르고 호수에 던졌다.

“둘러싸! 둘러싸라고 이 X신들아! 팔다리 잡아서 물에 던져버리면 되잖아! 꼬르륵 가라앉을 거 아니야!”

그의 일갈에 주춤주춤 물러서던 수적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잡아!”

“다리! 다리!”

달이 밝고, 텐티아의 하얀 갑옷은 백금처럼 빛났으며, 수적들의 옷은 죄다 어두운색이었다.

갑판 위에서 내려다보면 빛을 탐하려 덤벼드는 수십의 악귀 같아 보였다.

한순간 하얀 갑옷이 검은 수적들에게 덮였다.

“생각이 얕구나.”

텐티아가 마나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장검 날이 붉게 물들고, 그녀가 무용수처럼 민첩하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육중한 갑옷이 절그럭거리고 허공에 붉은 선이 혜성의 꼬리처럼 그어졌다.

츠카아아악!

강철도 자르는 마나 블레이드는 수적들의 무기와 팔뚝과 어깨와 목, 또는 몸통을 그대로 베어냈다.

수적들의 신체 일부가 집어 던지기라도 한 듯 날아올랐다.

그녀는 강자를 알아보지 못한 죄를 지은 행동대장에게 다가갔다.

수적 따위는 달빛 아래서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 두른 검을 늘어트리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기사의 앞을 감히 막아설 수 없었다.

“아, 아.”

수염 짧은 행동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그 역시 소드 유저였고, 집중하면 가죽 갑옷 입은 병사 둘 정도는 한 번에 베어 버릴 수 있었다.

방금 텐티아는 일격에 검의 궤적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베었다.

열 명? 스무 명?

“아아아악!”

행동대장은 자신이 타고 왔던 배로 다시 뛰어내렸다.

텐티아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뒤를 쫓아 갑판을 달렸다.

막 줄사다리를 기어오르던 다른 행동대장들과 수적들은 그의 탈출에 당황하며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위에서 뭔 소리가 들리던데.”

“……망했다.”

수적들의 배는 작은 나룻배 같은 게 아니라, 조운선보다 약간 작을 정도로 큰 배였다.

노 젓는 사람들만 서른 명이 넘었고, 배 하나에 탄 수적들도 그와 비슷한 숫자였다.

타악!

텐티아가 대장선 갑판이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몸을 날렸다.

전신 판금 갑옷 두른 몸이 수십m 거리를 날아 수적들의 배로 떨어졌다.

“어, 어, 어, 아아아악!”

배로 도망친 행동대장이 그녀의 강철 군화에 정수리를 짓밟히고 바닥에 쓰러졌다.

* * *

발렌시아누스는 돛대 위에 서서 주문을 날렸다.

“날카롭게 찌르는 불꽃!”

주문을 한 번 욀 때마다 어지간한 마법사들의 온 힘을 다해 쏘아내는 수준의 불꽃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긴 포물선을 그리며 수적들의 배에 불의 창이 떨어지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치솟고 배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수적들은 기겁하며 호수로 몸을 던졌고, 그들은 대부분 그대로 가라앉았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꼴이냔 말이다!”

수적 두목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기사 하나가 배와 배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뛰어 다니며 접근하는 수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고, 황족 마법사 하나가 화살이 잘 닿지도 않는 거리에서 막대한 위력의 마법을 날려대고 있으니, 조운선단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대장선에서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달빛 덕에 조운선들의 아래쪽으로 노가 길게 내려오는 게 보였다.

1열로 전진하던 조운선들이 3열로 배치를 바꾸며 가속했다.

동시에 선두의 대장선이 뱃머리를 돌리며 수적들과 조운선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저 둘을 믿고 시간을 끌어 보겠다는 거냐!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천천히 붙여라! 내 활을 가져와!”

두목은 자신의 배를 다시 전진시키는 동시에 친위대원들과 함께 활을 당겼다.

그는 장궁병 출신의 빼어난 사수였고, 350m 거리에서도 상대를 노릴 수 있었으며, 부하들도 똑같이 훈련시켰다.

“잡았다.”

그가 발렌시아누스의 얼굴을 정확히 겨냥한 순간, 대장선 돛대에 등을 기대고 선 한 시녀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잡았어요.”

사점 안경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게 필요 없는 녹색 눈이 달빛 아래서 번뜩였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마탄이 쏘아져 나가는 소리가 밤의 호수에 울리고, 친위대원들의 머리가 썩은 호박처럼 터져 나갔다.

“뭐, 뭐야!”

“아악!”

“피해라!”

두목은 황망한 기분으로 바닥에 몸을 던졌고, 루디는 갑판 아래로 사라진 그를 향해 섬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시 머리 내밀면 바로 쏴 버려야겠네요.”

초점이 오락가락하는 녹색 눈에 충심이라는 이름의 열기가 빛났다.

그때 곡식을 실은 조운선들은 착실하게 대장선 뒤를 통과하고 있었다.

수적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산개해서 대장선을 우회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 조운선에 탄 세 명의 선원들은 그 치열한 전투를 보며 눈빛을 나누었다.

“약간은 도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

“저 기사는 조금 위험하지.”

“앞으로 더 강해질 거야.”

자세히 보면 그들은 귓불이나 코끝 등이 도저히 인간에게 나올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목도리를 둘둘 만 선원들이 그걸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선원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기도했다.

“우리는 가장 깊은 곳으로 갈 것이다. 말의 머리에 끝없는 등을 타고. 기뻐하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커다란 물살 하나가 길게 일렁이더니, 대장선 앞에서 깊게 가라앉았다.

붉은 기사가 한참 싸우는 걸 바라본 셋은, 이내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 * *

북부 대공 세베릭은 르세나가 전해 준 말을 해석했다.

‘기선 제압을 위해서는 조금 뻔뻔하게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았어. 어차피 그 상황만 넘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때 최선을 다했고, 지금은 또 지금 최선을 다할 뿐이지. 그러다 보면 조금 비겁하고 뻔뻔한 소리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세베릭 대공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 다 내가 한 짓이라고 하자, 그냥 넘어가 주었어.’

대장선 뒤쪽 갑판에 선 그의 주변에는 수적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치워라.”

“예.”

북부의 병사들이 시신을 호수에 던지고, 세베릭은 갑판 난간으로 향했다.

“죽어라!”

그는 줄사다리에서 붙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단검을 찔러 오는 수적의 얼굴을 걷어차 호수에 빠트렸다.

“살려만 주시면…… 이익!”

살려 달라고 애원하다가 단도를 뽑아든 수적도 호수에 빠트렸다.

그는 수십만 병사들을 이끄는 북부의 총사령관이었고, 어릴 적부터 많은 죽음을 겪었으며, 그중에는 진정 가까운 자들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견뎌낸 그는 수적 따위의 죽음을 조금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

끝끝내 발렌시아누스의 마법을 피해서 대장선을 지나친 수적들의 배를 향해, 그는 겨울과 같이 웃어 보였다.

잔혹하고 냉랭하고 무자비하게.

“겨울이여.”

그가 눈보라를 몰고 다닌다는 소문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의 장검이 만년설 같은 푸른 빛으로 빛나기 시작한 순간, 조운선에 숨은 세 명의 침식자마저도 문득 한기를 느꼈다.

세베릭이 장검을 세로로 그어 내렸다.

사아아아아-.

초승달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길게 뿜어져 나갔다.

대장선을 지나친 다섯 척의 배를 모두 관통하는 궤적이었다.

다섯 배는 그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었고, 그걸 어떻게 한 번의 오러 블레이드로 벨 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쩌저저저적-.

겨울에게는 아무도 도망칠 수 없다는 명료한 진리만 결과로서 남았을 뿐.

단면이 얼어붙은 배 다섯 척이 일도 양단되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발렌시아누스는 그걸 보며 북부를 대상으로 한 모든 무력 행사 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세베릭이랑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이득이 아니라 신념 때문에 움직이는 상대를 적으로 돌리면 안 돼. 대비조차 하지 말자. 싸움이라는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지우는 거야.’

회귀 전의 실수를 인정하고.

‘북부와는 확실히 손잡고 가야 한다. 지금 상황은 황실이 북부에 수작을 부렸다는 걸 인정해버린 모양새야.’

현 상황을 파악했으며.

‘내가 다섯 척이나 놓쳐서 세베릭이 오러 블레이드를 쏘게 했어. 망할. 좋지 않군. 공이 더 필요하겠어.’

행동 계획을 세웠다.

그런 발렌시아누스를 올려다보며 세베릭 역시 생각했다.

‘황제의 쌍둥이…… 대단한 재능이다. 배를 한 번에 침몰시킬 정도의 불꽃 창을 몇십 발이나 쏘았는데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 거 같군.’

실제로는 숨이 넘어가려는 걸 애써 버티고 있었으나, 세베릭은 제이릴리스를 상대로 길러진 연기력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때 최선을 다했고, 지금은 또 지금 최선을 다할 뿐이지.’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르세나가 듣고 있는 걸 알아채고 입에 발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베릭은 그 말과 이어진 말이 모두 내심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보면 조금 비겁하고 뻔뻔한 소리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발렌시아누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물이 아니라,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안 걸로도 충분했다.

세베릭 자신이 신념으로 움직이기에 알았다.

신념으로 움직이는 인간은 너무나 피곤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아집을 부리며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했다.

‘만약 발렌시아누스가 절대왕정 주의자였다면 무척 곤란했겠지.’

그게 아니라면.

도발적인 말과 파격적인 발언으로 모르는 게 약인 진상을 감추는, 영웅적인 희생의 낭만에 답이 없을 정도로 깊게 젖은 황족이라면.

‘북부에 데려가고 싶군.’

세베릭의 회색 눈이 은은하게 빛났다.

* * *

텐티아는 한 배에 있는 모든 수적을 창자에 들어가기 전의 소시지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고, 노 젓는 노예들의 사슬을 풀어준 뒤, 다음 배로 건너뛰어 똑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녀가 또다시 한 행동대장을 자비 받아 마땅할 꼬라지로 만들었고, 두목은 그걸 보며 벌벌 떨었다.

저 갑옷이 수십 kg는 나갈 터인데 어떻게 저걸 입고 저렇게 붕붕 날아다닌단 말인가?

“무릎 꿇고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

텐티아는 갑판을 뒤흔들며 착지한 뒤 언제나 그 말부터 했다.

열 번도 넘게 거절당하고도 계속 기회를 주었으니 가히 기사의 표본이었다.

이 말을 듣지 않은 다른 배들이 어떻게 됐는지 본 행동대장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무릎을 꿇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게 수적의 삶이라지만, 지금은 두목의 주먹보다 기사의 주먹이 더 가까웠다.

“훌륭한 판단을 내렸구나.”

텐티아는 늠름하게 말하며 행동대장의 무기를 호수에 던졌다.

“정말 살려 주시는 겁니까?”

“기사는 약속을 지킨다.”

행동대장이 반색한 다음 순간.

풍덩!

배가 왈칵 뒤집히고, 텐티아가 돌맹이처럼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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