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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21화 (100/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21화

(121)

제국 의회의 의원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열여섯 살 소녀의 말에 모두가 이목을 집중했다.

“사실상 자경단 조직이라는 이름의 사병을 거느리겠다는 말입니다.”

“그래. 우리 모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지.”

200명의 평민 의원들은 계산 끝에 눈에 불을 켜며 흥분했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 선거구에서 영향력이 강한 부호들이었다.

이 법이 통과되었는데도 자경단 하나 못 먹을 얼간이는 없었다.

“머리를 잘 썼군.”

“우리에게는 큰 상관은 없는 일입니다만.”

“그래 봐야 평민들 아닙니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네.”

직할령, 총독령 출신 의원들과 성직자 의원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총독령 출신 의원들은 수도 내부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의회에 오는 이유는 황실에 말을 전하기 위해서지, 수도 내부의 일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영특하군,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성직자 의원들은 인자한 표정 안에서 치열한 계산을 이어 나갔다.

광명교회는 기본적으로 귀족들과 평민들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귀족들과 황족들에게 신의 권위를 부여해 평민들이 자발적인 충성을 바치게 하고, 동시에 신 앞에 평등하다는 교리를 통해 지나친 양극화와 차별, 수탈을 막았다.

“지금은 평민들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 줘도 좋을 거 같습니다.”

한 늙은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성직자 의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가라앉았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법이다.”

“감히 사병을 부리려 해!”

반면, 궁정 귀족 의원들의 반응은 벌집을 쑤신 거 같았다.

그들은 저택이 늘어선 인구 밀도 낮은 거리에 살았고, 호위병들을 거느렸다.

지금껏 그들은 평민 의원이 똘똘 뭉쳐서 뭔가 해보려 할 때 그 호위병들을 보내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러니 평민 의원들이 사병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건 그들의 중대한 카드 하나가 약해진다는 소리였다.

이 법이 통과되어 봐야 다 같은 귀족들 있는 거리에서 자경단을 모을 수는 없었으니까 얻는 것도 없었다.

“표결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나 200명의 평민 의원들과 100명의 성직자 의원들이 법안에 절대적인 호의를 품었고, 총독령 출신 의원들도 코넬이라는 인물을 주목했다.

귀족들과 유난히 친밀한 부르주아 평민 의원 중에서는 반대표도 여럿 나왔다.

“감히 어르신들을 들이받아?”

하지만 그 규모가 전세를 뒤집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찬성 255표, 반대 135표, 기권 110표.

통과였다.

“……!”

귀족 의원들은 코넬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적갈색 칼단발, 영악하고도 총명한 인상의 소녀.

코넬은 그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종족 혼혈 궁정 귀족들의 기세는 어마어마했지만, 그녀는 희대의 망나니와 몇 번이고 독대했고, 옛 신을 섬기는 대제사장이었다.

그 외 몇 건의 안건이 더 처리되고, 폐회 시간이 왔다.

코넬은 의사당을 나서 보좌관과 함께 마차가 줄 지어선 곳으로 달렸다.

“빨리!”

의족을 찬 게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 귀족 의원들에게 잡힌다면 식사나 같이하자는 말로 어딘가에 끌려가서 파묻힐 수도 있었다.

궁정 귀족들이란 그런 힘이 있는 자들이었다.

방금까지는 당장 법을 통과시켜야 하니 성직자 의원들과 평민 의원들이 그녀의 편을 들어 줘야 했지만, 이제 법이 통과되었으니 입 씻어 버릴 수도 있었다.

앞으로도 그녀가 이런 법만 내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저 꼬맹이에게 하나 건졌으니 이제 됐다, 라고 생각할 자들이 태반이다.

“코넬 의원. 어디 가는가? 나 의원 마르쿠스네.”

덩치 크고 수염 진한 부르주아 의원이 그녀의 앞길을 벽처럼 막아섰다.

“우리 같은 의원들끼리 식사나 한번 하지.”

“내가 사두마차를 가져왔네. 가자고.”

코넬은 침음성을 흘렸다.

정문이 코앞이었다.

이제 계단만 내려가서 도로까지만 나가만 마차를 탈 수 있었다.

그때 궁정 귀족 의원들과 그 호위병들이 그녀를 복도 벽으로 몰아 둘러쌌다.

이종족 혼혈 귀족들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민첩했다.

그 호위병들도 늑대인간 전투조를 다 불러와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정예들이었다.

‘망했다.’

그녀는 손에서 지팡이가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탈출할 방법을 모색했다.

“코넬 의원?”

“발렌시아누스 전하!”

탈출할 방법이 의사당에 걸어 들어왔다.

거만하고도 핼쑥한 인상의 황족이 백금발 머리를 넘기고 샛노란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남색 생머리에 새침한 얼굴, 푸르고 노란 금은 요동을 가진 마법사도 함께였다.

“발렌시아누스 전하, 세레라지에 전하. 이곳에는 웬일이십니까?”

궁정 귀족들은 당황하며 코넬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을 풀었다.

그들은 모두 배운 바와 들은 바가 있는 만큼, 발렌시아누스가 세간에서 말하는 미친 개망나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발렌시아누스가 황제의 최측근이라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의 수족임이 틀림없어.’

‘폐하는 신민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신다. 그럼 나쁜 일을 도맡고 욕먹어 줄 사람이 필요해지지.’

궁정 귀족들은 결국 황실과 상류층의 이익을 공유하고 대변했다.

“코넬 의원을 데려가도 되겠나?”

“예? 예.”

“그렇게 하십시오.”

‘직접 처리하시려는 건가?’

‘아니면 이 법안 자체가 폐하께서 묵인하신 법안인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고?’

‘일단 폐하께 법안 반려 청원은 미루도록 하지.’

궁정 귀족들의 판단은 빨랐다.

그들은 눈빛을 공유하며 물러섰다.

* * *

셋은 마차를 잡아타고 옛 빈민가로 향했다.

발렌시아누스는 코넬이 터뜨린 법안을 듣고 흡족하니 웃었다.

“잘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다른 거리에서 의원들이 패악질 부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네요.”

“그 다른 거리에는 치안감들이 있다. 황실로서는 선 넘은 평민 의원들 족쳐서 금화 뽑아먹을 수 있으면 환영이지. 자경단들도 날뛰게 내버려 두어라. 오래지 않아 와이번핏에서 내 얼굴을 보게 될 테니.”

코넬은 침음성을 흘렸다.

“혹시.”

“혹시?”

“제가 이런 법안을 내실 걸 예상하고 있으셨던 겁니까?”

발렌시아누스는 비인간적인 황금색 눈동자를 빛냈다.

“잘 모르겠다.”

코넬은 그가 답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때때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흉내 내는 ‘무언가’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게 샛노란 눈 때문인지, 저 나른하고도 섬뜩한 미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부탁할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제때 만났을 뿐이다.”

“부탁이라 하시면?”

“너희 여전히 지하수로에서 슬라임 사냥해?”

“!”

코넬의 눈에 경련이 일었다.

세레라지에는 기겁하며 코넬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그 슬라임을 사냥한다는 거니? 그거 불법…… 잘못해서 빠지기라고 하면 그대로 잡아먹힐 텐데?”

코넬은 세레라지에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답했다.

시쳇말로 ‘알 거 다 아는’ 발렌시아누스와는 달랐다.

세상과 동떨어진 신비한 분위기의 마법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게 불편했다.

“네. 맞아요. 불법이죠. 그래도 일단 배움의 거리 쪽에 가면 돈이 되니까요. 음…… 예전에도 성행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걸리면 진짜 죽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막고 있고요.”

발렌시아누스가 쓰게 웃었다.

“핵 지름 10cm 이상. 일단 서른 개. 구해줄 수 있지.”

코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불편하고 자시고 발렌시아누스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네. 어렵지는 않습니다.”

“양식장이랑 가공 공방도 하나 지으려고 하는데.”

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빵이 나왔기 때문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빵이 있어야 살 수 있었다.

코넬은 나이에 어울리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투자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혹시 차명 투자나 무기명 채권 발행 등을 원하신다면 당연히 가능합니다.”

세레라지에가 검지와 중지에 전격을 모아 발렌시아누스의 손목을 지졌다.

“동생아! 애한테 뭘 가르친 거니!”

“애가 알아서 배운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하니?”

“누나는 사람 지지는 걸 누가 자세히 알려줘서 배웠어?”

“그건…… 아니지만.”

세레라지에가 일순 움찔했다.

발렌시아누스가 얼굴을 열 겹 철판을 깐 듯 뻔뻔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의원이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지. 자기 뽑아준 거리에 공방이랑 투자를 유치하는 건 의원으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뭐…… 그 과정에서 약간의 편의를 봐줄 수도 있는 거지.”

세레라지에가 목덜미를 잡았다.

코넬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세레라지에를 제대로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1년 전쯤 카지노에서 활동했던 금의 악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 황족이 수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재능의 마법사라서 다시 황제의 눈에 들어 마도 공방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양식장과 가공 공방은 한데 묶어서 설립하겠습니다. 교회 눈은 피하는 게 좋을 거 같으니 북쪽 외곽으로 빼겠습니다. 마침 분양되지 않은 부지가 있는데, 개발 원가에 모시겠습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고 있나요?”

“바로 보러 갈 수 있니?”

세레라지에가 새침하게 물었다.

코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혹시 공방과 양식장의 규모와 연 생산 목표, 투자 자금을 미리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더 정확하게 견적을 내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세레라지에가 로브 속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예산은 이 정도로 잡아 놨단다. 거기에 황실 지원금도 이 정도 받으니, 총예산은 이 정도 받을 수 있겠구나.”

“!”

코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마부 아저씨. 마차 다른 데로 갈게요! 북쪽 재개발부지로 가주세요!”

세레라지에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아, 혹시 부지 추가 매입 가능하니? 짓는 김에 마법 스크롤이랑 마도구 공방도 1차 가공은 그쪽에서 하고 싶은데. 그 공방 설립도 예산은 이 정도 잡아 놨단다.”

최종적인 마법진은 마법사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새겨야 했지만, 초반에는 사람 손 많이 들어가는 작업 과정이 있었다.

슬라임 양식장도, 가공 공방, 스크롤 1차 가공 공방, 마도구 1차 가공 공방.

그게 다 일자리고, 지역 경제 투자금이었다.

코넬이 황홀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부 아저씨! 더 빨리 가주세요!”

* * *

내가 할 일은 거기까지였다.

천재 마법사 세레라지에와 재개발 전문가가 된 코넬은 순식간에 견적을 짜고 설계도를 의뢰하고 며칠 만에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거 날림 공사 아니야?”

“설계 장인도 제 조합 소속이고 벽돌 공장도 제 조합에서 운영하는 거예요. 엄밀하게 말하면 제 조합은 아니지만, 간부진들이 죄다 아몬 신도고 제가 제사장이니 사실상 제 조합이죠.”

“잘한다.”

“네. 일자리 창출하고, 옛날 손버릇을 못 잊은 경범죄자들이랑 깡패들 단속하고, 황제 폐하가 개발하신 새 마도구 가로등 1차 설치 구역 대상자 심사 통과해오고, 재개발한 공동 주택들 결혼한 부부들에게 뿌리고.”

“음.”

“돈 들어오는 걸로 장난치려는 놈들 조지고, 배움의 거리 쪽에서 흘러온 옛 학생을 모아다 어린애들에게 글이랑 셈 가르치고, 교회 가서 사제님 보내달라고 빌고.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잘하고 있는 게 맞았다.

“언젠가 여기 사람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제 권한도 조금씩 줄겠죠.”

“절대 못 내려놓을걸? 권력은 부모 자식 사이에도 못 나눈다.”

“제가 막 나가게 되면 전하가 와서 제 목을 칠 텐데요?”

“!”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저는 눈치 잘 살펴 가면서 해 먹으려고요. 제 힘은 전하와 달리 혈통이 아니라 지지에서 나오니까요.”

믿음직한 녀석이다.

나는 웃으며 뒤돌았다.

금화 한 줌 투자해 놓고 중개비로 지분도 넉넉히 받았다.

세레라지에 누나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내 주머니도 묵직해지겠지.

그때부터는 돈이 궁할 일은 없다.

나도 맞춤 마법 갑옷 주문하고 비싼 시약 펑펑 쓰고 다녀야지.

그렇게 손을 떼고, 일주일 내내 텐티아 경과 훈련만 했다.

분명 내 실력도 늘었는데, 텐티아 경은 세베릭에게 자극을 받아 더 강해졌는지 격차가 더 커진 거 같았다.

“전하.”

그때 루디가 빈민가 북쪽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짓던 대형 공방이 전소되어 있었다.

사방에 부서진 벽돌이 나뒹굴었다.

코넬은 안절부절못했고, 세레라지에는 혀를 찼다.

“마법으로 지른 불이구나.”

다시 끼어들어야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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