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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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누스는 붕괴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빼어난 화염 마법사였지만, 애초에 완성된 건물도 아니었던지라 어떤 주문으로 부수었는지를 정확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누나. 그냥 실수로 불이 났을 가능성은 없을까?”
코넬이 얼굴을 노랗게 물들였다.
세레라지에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벽돌 건물에 그냥 불이 나고 타오를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니? 게다가 보렴. 앞쪽에서 불꽃이 들이치자, 벽이 폭발로 무너지면서 뒤쪽 벽까지 날아갔잖니. 이런 건 강력한 불꽃 마법으로만 가능하단다. 화염 파도나 화염구 계열일 거 같구나.”
그녀가 코넬을 향해 말했다.
“너희 잘못이 아니란다. 이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마음먹고 왔으면 너희는 못 막아. 추가 예산을 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철거 들어가렴.”
“감사합니다.”
코넬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세레라지에의 발밑에 엎드려 절했다.
세레라지에는 손짓으로 코넬을 일으키며 말했다.
“동생아. 아무래도 또 올 거 같구나.”
슬라임 양식장, 슬라임 가공 공방, 스크롤 1차 가공 공방, 마도구 1차 가공 공방 중 무너진 건, 마도구 1차 가공 공방뿐이었다.
“그래. 누나. 생포해야 하지?”
“당연하지. 배상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니? 나는 협박이나 경고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란다. 감히 누굴 건드린 건지 알려 줘야지.”
“그럴 줄 알았어.”
발렌시아누스와 세레라지에는 잔혹하게 웃으며 불탄 폐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빛과 바람이여, 내 그림자를 없애라.”
세레라지에는 은신 마법으로 둘의 몸을 가렸다.
시간이 흘러 달이 떠오르고 밤이 왔다.
눈이 돌아간 아몬 신도 전투조원들이 야경꾼들과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수상한 마법사를 찾았다.
발렌시아누스와 세레라지에는 그들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다 뚫고 왔잖니.”
세레라지에가 가학적으로 웃었다.
동공을 세로로 바꾼 발렌시아누스와 야간 시야의 주문을 쓴 세레라지에는 깊은 어둠 속도 초저녁처럼 보였다.
그녀의 공방 앞에서 공간이 일렁이더니, 여섯 개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화 물약을 먹었군. 비쌀 텐데, 선수금을 넉넉히 받았나 보네. 지금 공격하려고 하는 건가?”
“당연하지. 마나를 끌어 올리면 투명화가 일그러지는 걸 알잖니.”
“칠까?”
“기다리렴. 저쪽도 우리가 마나를 끌어모으는 걸 알 수 있을 거란다. 하물며 네 불은 보통 마법도 아니잖니.”
“그럼 공방 하나 더 부수게?”
세레라지에는 고개를 저었다.
“불꽃 터트릴 때 ‘피어올라 따르는 불꽃’으로 차단해 주렴. 마법이 제때 펼쳐지기만 해도 방심하게 될 거란다. 그렇게 마나를 소모하면, 내가 사슬 번개로 지지면 되잖니.”
발렌시아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마법사 중 둘이 앞으로 나섰다.
휘이이잉-.
주변의 바람이 둘의 손아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발렌시아누스는 촛불보다도 작은 불꽃을 보고 내심 경탄했다.
지금 모이는 마나와 바람의 양으로 추측해 보니, 건물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그렇게 강력한 마법을 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면 술사 역시 4서클은 넘어 보였다.
둘이 고개를 끄덕이고, 불길이 터져 나갔다.
‘화염구’가 하나, 좁은 부체꼴의 ‘화염파도’가 하나였다.
화르르륵!
붉은 불길이 밤의 어둠을 찢으며 나아가 공방 건물을 향해 쇄도했다.
발렌시아누스는 은신을 깨고 나서며 주문을 외웠다.
“피어올라 따르는 불꽃.”
마나 제어력은 영혼에 깃드는 힘이다.
40년의 실전에 더해 용찬까지 한 지금, 그의 마나 제어력은 대륙에서도 손에 꼽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후우욱!
맹렬하게 돌진하던 불의 파도와 화염구가 갑자기 방향을 틀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펑!
상공 50m에서 폭발한 화염구가 어둠 내린 옛 빈민가를 환하게 밝혔다.
‘화염 파도’는 다시 한 점으로 모여들며 형태를 바꾸더니 ‘불의 창’이 되었다.
“저쪽이다!”
“다시 왔다!”
사방에서 눈이 돌아간 아몬신도들이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달려왔다.
* * *
여섯 마법사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조졌다.”
“튀어!”
한 마법사가 다급하게 주문을 외웠다.
“바람이여 우리의 몸에 깃들어…….”
세레라지에는 그 주문을 들으며 찬사의 눈빛을 보냈다.
여럿에게 동시에 신체 강화계 주문을 걸어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명씩 총 열 번 주문을 거는 게 동시에 두 명에게 주문을 걸어 주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대단한 놈들이네. 물론 나보다는 아니지만.’
세레라지에가 새침하게 웃으며 색이 다른 두 눈을 빛냈다.
번쩍!
은신 마법을 깨지도 않은 채였다.
무영창 사슬 번개가 여섯을 동시에 후려갈겼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역장’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은신에 역장까지?’
그 와중에도 신체 강화 주문을 걸던 마법사는 영창을 이어 나갔고, 결국 6인 모두의 몸에 은은한 녹색광이 스며들었다.
“뛰어!”
“은신! 빨리!”
그들이 엘프 같은 몸놀림으로 밤거리에 녹아들려 했다.
“안 되지.”
발렌시아누스는 ‘불의 창’을 집어 던졌고, 세레라지에는 다시 한번 전격을 방사했다.
6인 중 1인이 뒤도는가 싶더니, 시동어를 외쳤다.
“미늘 방패!”
반투명한 푸른색 육각형 방패 수십 개가 떠올라 전격과 불꽃을 한 차례 막아냈다.
내달리던 발렌시아누스와 다음 주문을 준비하던 세레라지에는 다시 한번 경탄했다.
생포해야 했기에 위력을 극한으로 억눌렀지만, 마법 중에서도 어려운 학문인 파괴술을 저 정도로 다루는 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불이나 지르고 있느냐?”
발렌시아누스는 그의 앞으로 성큼 나아가며 말했다.
“언제!?”
그가 경악하며 몸을 틀었다.
“내가 네놈들처럼 나약하고 느려 터진 줄 알았느냐?”
마법사가 이번에는 손에서 하얀 불꽃을 튀기며 내질렀다.
파괴술 마법 중 하나인 ‘반발의 손’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광소하며 그 손목을 틀어쥐고 힘껏 끌어당겼다.
세레라지에의 마법도 막아내는 그에게 어지간한 주문은 먹히지 않았다.
“무슨!”
마법사가 경악하고, 발렌시아누스는 그의 배를 무릎으로 걷어찼다.
쩍, 끔찍한 파공성이 울리고 마법사의 몸이 반으로 접히며 바닥을 향해 허물어졌다.
“누나! 한 명 잡았어!”
“잘했구나. 동생아. 내가 자백 마법을 사용할 테니 잘 잡고 있으렴.”
세레라지에가 폐허 속에서 달려 나오며 말했다.
“누나 정신계 마법도 쓸 줄 알았어?”
그녀는 그 물음에 새침하게 웃으며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에서 푸른 전격을 튀겼다.
“이게 자백 마법이잖니. 후드랑 마스크 벗겨 보렴.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으니까.”
“누나 마법에 맞으면 잘해도 죽을 텐데.”
“내 제어력을 그렇게 못 믿니?”
“마법사들 몸이 얼마나 허약한지 몰라서 그렇지.”
“그건 나도 뭐라고 못하겠구나.”
발렌시아누스는 후드를 벗기고 얼굴을 확인한 뒤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보다 더 젊었다.
이 정도면 아직 아카데미 재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거 같았다.
“누나. 잠깐만. 안 지져도 될 거 같아.”
그럼 알 만한 곳이 있었다.
* * *
바스타틴의 마법약 상점 안쪽 방.
“지난번에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엉클어진 녹색 머리카락에 노란 눈을 가진 유쾌한 인상의 사내, 바스타틴이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흑철기사들과 치안감들이 죄다 몰려와서 거리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다 전하 덕분입니다!”
“대비라면?”
“약국을 회원제로 바꾸고, 약들을 숨기고, 돈도 숨겼지요.”
나는 이제 그의 약이 필요 없다.
저 경망스러운 웃음을 보고 있자니 확 밀고해버릴까 하는 가학적인 충동이 들었지만, 내 정보통을 잘 키워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으로 억눌렀다.
“그래. 그 이야기는 그쯤 하지. 진.”
“예. 전하.”
회색 머리에 푸른 눈,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
어른스럽고 성실한 아카데미 학생이자 내가 심어둔 궁무부 현지 협력자.
주요 업무는 황족 사생아 관리와 배움의 거리 쪽 옛것 관련 지식 통제.
“회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축하한다.”
“다 전하 덕분입니다.”
나는 칭찬과 아부를 좋아했기에, 기꺼이 웃으며 그에게 두둑한 활동비를 찔러 주었다.
세레라지에가 ‘너 이런 거 하니?’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이 녀석이나 이 녀석이 속한 조직을 아나?”
나는 진에게 어제 잡은 그 녀석을 들이밀었다.
진이 움찔하며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꼴로 만들어 놓으시면 제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놈은 결국 어제 세레라지에의 전기 고문과 코넬의 지팡이 찜질을 받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꽤 준수한 녀석이었는데, 잘 낫기를 빌어줄 뿐이다.
나는 세레라지에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그녀가 적반하장으로 답했다.
“동생아. 네가 잘 말렸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니?”
“누나. 솔직히 말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아?”
“나는 무죄무치란다! 니도 그렇잖니?”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니, 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죽은 생선을 손질하듯 그의 몸을 들쳐 보았다.
피어싱이나 문신, 목걸이, 팔찌, 반지, 남은 시약 같은 걸 집중적으로 확인하는 거 같았다.
이내 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꽤 주시하던 놈들입니다.”
“정말? 어디의 누구인가?”
“배움의 거리 외곽에 장기 휴학생들로 이뤄진 조직이 있습니다. 이름은 ‘올드 스콜라.’”
“늙은 학생이라. 기이한 이름이군.”
“주 수익원은 갈취와 용병 노릇입니다. 지방으로 가거나 타국으로 떠나면 용병 마법사나 모험가, 궁정 마법사가 되어 한몫 잡을 실력자들이지만, 수도에서 높으신 분들의 더러운 일을 맡아 하고 있죠.”
대충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애초에 마법 거리 자체가 졸업 후 수도를 떠나기 싫어서 모인 귀족 가문 셋째, 넷째들이 시작이었다.
먹고 살려면 뭐라고 해야 하고, 전공 살려서 먹고사는 건 모든 학생의 꿈이다.
이 녀석들은 전공을 살려서 더럽고 치사한 일을 적극적으로 대신해주는 걸 업으로 삼았나 보다.
세레라지에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실력이었지만 황궁에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지. 궁정 귀족들도 다들 실력 좋은 마법사 한둘은 고용하고 있고, 그렇다고 평민들 밑에 들어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어제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입 한 번 벙긋하지 않던 놈이 눈을 치켜떴다.
“목숨 걸고 마수를 잡거나 영지전을 나가기는 무섭고, 수도에는 머물고 싶고, 결국 의원들이나 궁정 귀족들 의뢰받아서 깡패짓이나 하는 거잖니? 너희는 마법사의 수치란다.”
치지지직!
세레라지에는 가학적으로 웃으며 그의 턱 아래를 다시 두 손가락으로 지졌다.
나는 그걸 못 본 척하고 진에게 물었다.
“위치는 확실히 알고 있나?”
“예. 안 그래도 날 잡아서 쓸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아지트가 요새화되어 있어 저희만으로는 뚫기 힘들었는데, 두 분 전하께서 도와주신다면 저로서는 감사할 뿐입니다.”
그때 놈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우리를 잡아 봐야,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을 거다.”
그럴 거 같다.
솔직히 놀랐다.
원래 이런 깡패들은 조금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술술 다 부는 법인데, 이 녀석은 그 고초를 당하고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독기가 있는 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독기나 신념을 꺾는 최고의 장인이었다.
“생포한 다음에, 제일 먼저 부는 놈은 세레라지에 누나 공방에 막내 제자로 들어가게 해 줄 생각이었는데. 이걸 말해줘도 입을 안 열까?”
“!”
놈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그것부터 말했으면 내가……!”
“너는 안 돼. 어제부터 한마디도 안 하던 게 너무 괘씸했거든. 게다가 어차피 한 번 쓸어버려야 할 놈들이기도 했고.”
세레라지에가 한 번 더 지져 놈을 기절시켰다.
“가볼까?”
“그래. 동생아.”
실력 있는 놈들이라는 걸 알았으니 어제만큼 봐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새로 얻은 검 ‘흑루’를 쥐었다.
오랜만의 공성이었다.
* * *
“건물을 통째로 부술 게 아니면 쉽게 뚫리지는 않을 거 같구나. 좋은 생각 있니?”
“우리도 불을 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