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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26화 (105/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26화

(126)

연무장의 높이는 15m이 넘었다.

그 천장까지 푸른 전격과 붉은 화염이 넘실거렸다.

서로를 향해 독니를 드러내던 두 치명적인 원소 덩어리는 땅, 하는 맑은소리가 두 번 울리자 언제 있었냐는 듯 흩어졌다.

세레라지에와 파이넬시아는 이 정도는 서로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디스펠.

마법사간의 1대 1 결투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마법을 이용한 방어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불꽃 화살.”

파이넬시아가 시동어만으로 여섯 발의 불화살을 쏘아 보냈다.

땅, 세레라지에는 주문을 외는 대신 지팡이를 땅에 내리치고, 동시에 왼손으로 원과 복잡한 수식을 그린 뒤 강하게 잡아당기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번쩍, 그리고 파스슷.

여섯 발의 불화살이 허공에 녹아들고, 그녀의 왼손에서 속이 빈 원을 그리며 전격이 뿜어져 나갔다.

파이넬시아 역시 지팡이로 땅을 내리쳐 그 공격을 흩어냈다.

“수인만으로 4서클 급 마법이라. 대단하십니다. 전하.”

다시 디스펠.

두 번 주고받은 그녀들이 원을 그리며 서로를 탐색했다.

순수한 힘을 다루는 파괴술사들이나 역장을 치고 미늘방패를 두르고 자시고 하는 거지, 대부분의 원소술사들은 이렇다 할 방어술이 없었다.

바람 방벽은 이름과 달리 방어기술이 아니라 공격 기술이었고, 대지를 이용한 토벽은 쌓아 올리는 게 너무 느렸다.

역장이 워낙 비효율적이라 그 파괴술사들도 주문으로는 어지간해서 사용하지 않으려 드는 걸 생각하면, 마법사들은 마도구와 기사 없이는 사실상 무방비해지는 셈이었다.

즉, 마법사 대부분이 연습하는 전투법.

약간 시간이 더 걸려도 기사와 병사들을 믿고 버티며 강한 마법을 준비하는, 그 전술 교리는 결투할 때 무용지물이 된다.

“이건 어떻습니까? 전하.”

파이넬시아는 지팡이로는 디스펠을 준비하고, 오른손을 들어 수인을 그렸다.

‘새처럼 날아드는 불꽃’이라는 수식어로장식되는 유도계 주문, ‘불의 날개’였다.

까마귀 정도 크기에 불꽃으로 이뤄진 새 세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 마리가 오른쪽 왼쪽으로 빙 돌며 세레라지에를 노렸다.

한 마리는 여전히 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세레라지에가 디스펠을 사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수는 게 만드는 것보다는 쉽다지만, 연속으로 부수는 건 그것대로 일이었고, 둘은 찰나의 틈만 있어도 서로에게 무영창 주문을 꽂아 넣을 실력자들이었다.

세레라지에는 새침하게 웃으며 단숨에 주먹을 쥐었다.

번쩍!

세 줄기의 전격이 나뭇가지처럼 뿜어져 나가고, 세 마리의 불꽃 새가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연기로 변했다.

그 순간 파이넬시아가 붉은 외눈을 번뜩이며, 흑요석 지팡이를 네 번 연속으로 내리쳤다.

땅! 땅! 땅! 땅!

절삭력을 가진 열풍이 초승달 같은 형태의 붉은 칼날의 형태로 쏘아져 나갔다.

바람 마법과 불꽃 마법의 융합, ‘불의 칼날’이었다.

세레라지에는 노란색과 파란색의 금은 요동을 깜빡이고, 한 번 크게 옐로우 사파이어 지팡이를 내리쳤다.

땅!

막대한 위력의 디스펠이 일순 일대의 마나를 흩어내고, 네 개의 칼날이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졌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긴 주문으로 디스펠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성장이었다.

파이넬시아는 다시 주문을 퍼부으려 했지만, 자칫하다가는 숨이 딸린 사이에 한 방 맞고 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세레라지에는 파이넬시아 정도 되는 마법사의 주문 네 개를 한 번에 디스펠하느라 숨이 멎을 거 같았다.

두 마법사는 다시금 연무장을 마주 보고 돌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

“!”

“!!”

파이넬시아는 오랜 시간으로, 세레라지에는 높은 밀도로.

둘 모두 기사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의 싸움을 겪어보았다.

둘은 디스펠을 무영창으로 상시발동시키고, 상대가 자신의 마법을 눈치채지 못하게 마법을 수인만으로 짜내려 갈 수 있었다.

따라서 둘의 싸움은 몇 안 되는, 볼 만한 마법사들의 결투였다.

번쩍, 그리고 파스슷.

화르르, 그리고 파스슷.

쉴세 없이 불꽃과 전격이 튀고 또 흩어졌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서클과 관계없이 결투 상황에서 어영부영하다 한 방에 간다는 걸 생각하면, 무척 대단한 일이었다.

* * *

세레라지에는 쓰게 웃으며 디스펠을 발동시켰다.

‘이대로는 내가 질 게 분명하잖니.’

디스펠에 들어가는 마나 양은 그 주문을 발휘시키는 데 들어가는 마나보다 많았다.

즉, 양쪽의 마나가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쉴새 없이 공격하다 보면 쉴새 없이 방어하는 쪽을 이길 수 있었다.

하물며 파이넬시아의 마나는 세레라지에보다 많았다.

그녀가 아무리 천재라지만, 시간으로 쌓아 온 마나 양은 하루아침에 뛰어넘을 수 없었다.

전격은 빠르고 강하고 마나도 많이 먹는다.

세레라지에도 파이넬시아도 그걸 알고 있었다.

막 날아드는 ‘불의 창’을 힘겹게 디스펠하고 곧바로 ‘전격 화살’로 대응했지만, 0.1초도 되지 않아 쏜 ‘전격 화살’에는 평소 같은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파이넬시아가 그녀의 마법을 손쉽게 디스펠하고 다음 공격을 쏘아냈다.

“전하. 그 망토에 화염 내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와 그렇지 않은 잔혹한 미소.

세레라지에는 파이넬시아의 오른손이 어떤 수인을 그리는지 알아보았다.

파이넬시아에게 명성을 준 마법, 그녀가 개량한 ‘화염 파도’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전장에서 사용되어 모두가 익숙해진 그 상급 마법의 효율을 20%나 끌어올렸다.

기존에 화염 마법 계열 마도구와 스크롤로 먹고살던 선배들에게 눈엣가시가 되었고, 공격을 받았다.

살이 죄다 타들어가고 다리와 팔과 눈을 잃었지만, 끝내 선배 셋을 상대로 승리했고, 결국 살아남아 거물이 되었다.

세레라지에는 이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으며 컸다.

전설 속 주인공은 그녀가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왜 그깟 세속의 권세 따위에 집착하는 거니? 같은 마법사인 나를 적대할 정도로.’

그녀는 파이넬시아의 한쪽 남은 붉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승리를 향한 열정과 야심으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듯.

문득 세레라지에는 그 눈을 보며 제 이복동생 발렌시아누스를 떠올렸다.

제게 저지른 지독한 패악질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가 없는 건 분명 그것 때문일 거다.

자신을 홍등가에서 꺼내준 일도 꺼내준 일이지만, 가끔 발렌시아누스도 그런 눈을 했다.

그 피폐하면서도 능글맞은 눈매 너머 비인간적인 노란 눈동자에 불꽃 같은 열망을 품고서.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듯 굴었다.

‘나의 황제, 라고 가끔 말했지.’

“화염 파도.”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잔혹한 시동어가 울리고, 부채꼴의 불길이 길게 쏘아져 나왔다.

디스펠로 파훼하기에는 너무 강한 마법이었다.

세레라지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시동어를 외쳤다.

“생조 전림(電臨).”

혈마법과 전격 마법의 조합.

근육을 전격으로 강화하는 마법이었다.

바람을 이용한 가속과 달리 후유증이 심했지만, 그만큼 효과도 좋았다.

아직도 시동어만으로 쓸 수 있는 걸 보면 꽤 좋아하는 마법이었던 거 같다.

상아탑을 나간 뒤로는 거의 쓰지 않았지만.

타앗, 세레라지에는 점멸하듯 10m 거리를 튀어나가 ‘화염 파도’를 피했다.

파이넬시아는 뱀이 머리를 들듯 화염을 돌리며 그 끝을 틀었다.

지름 50m 연무장을 불길로 채워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때 파이넬시아는 너무나 마법사답게 웃고 있었다.

이걸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듯.

그 순간 세레라지에는 깨달았다.

‘그렇구나.’

산봉우리가 하나지만 산은 어디서 어떻게든 오를 수 있듯, 진리도 하나지만 다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상아탑에서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그녀는 벼락이 좋았다.

사실 대부분의 원소마법과 파괴마법과 그 외 온갖 기이한 마법들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그녀는 굳이 벼락을 골랐다.

언니와 오빠만 수백인 불안한 입지의 황족으로 태어나,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삶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둠 속을 순간적으로 밝히며 나아가는 한 줄기 섬광이, 그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벼락은 한순간에 빛나고 사라지나, 그 섬광은 사람들의 뇌리에 두렵고도 신비스러운 기억으로 남으니.

그녀 역시,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라면, 이 세상에 기억될 만한 한 줄기 섬광이 되고 싶었다.

제 쌍둥이 이복동생과, 저 파이넬시아가 불을 택한 이유도 알 거 같았다.

세레라지에의 진리는 순간에 있으나, 그들의 진리는 과정에 있었다.

그녀가 번쩍하고 빛나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살아가듯, 그들을 무언가를 위해 활활 타오르는 그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 거였다.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힘이든, 아니면 제 쌍둥이 남매의 신뢰든, 무엇이든 갈구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치들.

벼락은 빛나면 그만이나, 불은 타올라야 하니까.

‘이해했잖니.’

그녀가 되고 싶은 건 불이 아니라 벼락이었다.

찰나의 찰나, 세레라지에의 정신이 몇 배로 가속했다.

* * *

‘지금 용언을 쓸 수는 없단다.’

그건 온 정신을 모았을 때도 캐스팅에 분 단위가 걸렸고, 지금 그녀는 0.1초 단위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법은 반사적으로 디스펠 당할 게 분명해.’

멀리서 화력으로 찍어 누르거나 가까이서 속도로 밀어 붙이거나.

그녀가 이번에 택한 건 후자였다.

섬광이 되자.

세레라지에는 스승의 마법을 떠올렸다.

몸을 붉은 번개로 바꾸어 하늘을 달리던 게스타르테를.

문자 그대로 벼락이 되었던 그녀를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레라지에는 몇 서클인지도 모르는 그 마법을 기억만으로 재현하려 했다.

“빠르시군요. 전하!”

일단 파이넬시아의 불꽃에 휘말리지 않으려 최대한 ‘생조 전림’으로 몸을 날렸다.

방화 마법이 걸려 있다 해도 저 불꽃이 닿으면 로브가 타 버릴지도 몰랐다.

이제 불꽃이 거의 연무장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제 이복동생은 어디에 파묻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세레라지에에게 전격을 불러 쏘아내는 건 숨을 쉬는 일과 같았다.

몸이 전격을 따라가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옛것 연구.’

비물질의 물질화와 물질의 비물질화.

마나를 이용해 육체를 만드는 그 식을 뒤집어서 사용하면, 그게 곧 몸이 전격을 따라가는 거였다.

세레라지에는 머릿속으로 술식을 써 내려갔다.

차르르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전광창’을 기본 술식으로 잡고, 비물질의 물질화 연구를 씌워야겠잖니. 조율은 감으로 때우는 게 좋겠구나.’

그 조율만으로도 마도서가 세 권은 나올 터였다.

찬란한 재능과 지독한 노력과 일상이 된 열정은, 기적 같은 위업을 이뤄냈다.

마법사는 재현할 수 없는 기적을 싫어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세레라지에는 생각했다.

‘나는 내일 이걸 지금의 달아오른 기분과 감과 재능에 맡기는 게 아니라, 대략적인 술식이라도 기억해둬야 했다고 후회하겠지.’

자기 자신의 섬광이 되어 기억에 남는다.

‘나쁘지 않잖니?’

그녀의 몸이 노란빛으로 달아올랐다.

심장에서 솟구친 전류가 팔과 다리, 이마로 흡수되고 또 튀어나와 온몸을 덮었다.

“전광창-.”

세레라지에는 약간 흐려진 발음으로 시동어를 외쳤다.

번쩍!

불꽃에 갇혀 구석까지 몰렸던 세레라지에가 노란 빛줄기가 되어 파이넬시아를 치고 연무장 안을 가로질렀다.

눈 깜짝하는 사이보다 몇 배는 빠르게.

“전하?”

파이넬시아가 의문이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순 마나의 통제력이 그녀의 손을 떠났고, 지름 50m, 높이 15m 연무장 안을 가득 채우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달칵, 파이넬시아는 의족이 꺾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대체 무슨 마법을……?’

똑같은 재능으로 가지고 똑같이 갈망하며 사는 삶이라면.

단 한 가지만 갈망하는 게 더 깊이 팔 수 있었다.

그녀가 돈과 세속의 권세를 원할 시간에 세레라지에는 마법만을 원했다.

‘내가 밀려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군.’

* * *

며칠 뒤, 옛 빈민가 공방 공사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차 안.

“괜찮니?”

세레라지에는 새침하게 웃으며 물었다.

“괜찮고 말고 할 일도 없어. 나는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고. 마스터 파이넬시아랑 마르쿠스 의원에게 금화도 넉넉하게 받아 챙겼고.”

발렌시아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 빈민가는 많은 투자를 받고 있었고, 코넬은 그곳 인부들과 공사 담당자의 부주의로 불이 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그래야 다른 투자자들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발렌시아누스는 다시 한번 제 이름을 팔았다.

코넬과 마르쿠스와 세레라지에와 파이넬시아가 복잡하게 얽힌 내막은 밝힐 만한 게 못 되었다.

결국 그의 악명을 이용하는 게 이번에도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었다.

“울면서 하든, 웃으면서 하든, 해야 하면 해야지.”

그가 세레라지에를 질투한 끝에 공방을 파괴하려 했고, 치열한 결투 끝에 세레라지에가 발렌시아누스를 반 죽여 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통쾌하다고 느낄 만한 소식이 들려왔고, 그런 업적을 세운 세레라지에의 공방이 지어진다는 소식에 여러 부호와 지방 영주들이 눈을 빛냈다.

“게다가 내 지분은 여전히 있잖아. 누나 마도구가 많이 팔리면 내 주머니도 두둑해진다고.”

세레라지에는 제 이복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로 세간의 평가 따위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제 이름 따위가 바닥에 떨어지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 같았다.

“돈 받은 걸로 마도구 사러 가자. 나는 잘 모르니까 내일 같이 가줘야 해.”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알아서 가면 안 되니?”

“얼마 전에 손도 발도 눈도 없는 노마법사를 기절시킨 황족이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나까지 너 같은 망나니로 만들려고 그러니?”

세레라지에는 그렇게 답하며 새침하게 웃었다.

그녀는 마음을 읽는 마법은 쓸 줄 몰랐지만, 발렌시아누스가 웃으려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발렌시아누스도 따라 웃었다.

아주 잠깐, 그 능글맞음이 사라진 거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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