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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32화 (111/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32화

(132)

빼빼 마른 네 팔의 마법사, 게세레스는 필리스의 죽음에 내심 당황했다.

물론 그가 전투보다는 기동성에 특화된 모습을 갖췄고, 애초에 전투원이 아니라 마부였음을 고려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모든 걸 감안해도 저 텐티아라는 기사가 단숨에 그의 목을 벨 수 있을지는 몰랐다.

사실 별 상관없었다.

필리스 정도 되는 침식자는 그들의 밑에 많았으며.

누가 침식자가 머리를 자른다고 죽는다고 하였는가?

“히이이잉!”

텐티아는 말의 머리와 지네 같은 몸통이 각자 날뛰기 시작한 걸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우선 말의 머리를 발뒤꿈치로 짓뭉개 완전히 으깨 버렸으며, 지네 같은 몸통의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자칫하다가는 토막 난 몸통 다리들이 각자 날뛸 수도 있으니, 한쪽 다리를 죄다 잘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썩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게세레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섰다.

눈앞에 선 젊은 마법사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돌 가시들은 아주 단단하고 날카로웠지만, 살이란 게 없는 그의 몸에는 잘 통하지 않았다.

낙뢰 마법은 기본이 4서클이었고, 그는 4서클 급 파괴술을 쓰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눈앞의 새침한 마법사는 이제 스무 살을 조금 넘은 거 같았다.

이 정도는 가뿐했다는 듯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아.’

저 얼마나 찬란하고 동경했던가.

먼저 가는 자들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저 등을 이 손안에 잡고야 말했다고.

게세레스는 보랏빛 눈을 빛내며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녀는 아주 아름다우니, 부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묶어 두고 적가면을 잡은 뒤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속박 주문을 외우려던 찰나.

번쩍!

두 번째 벼락이 그의 몸뚱이를 지면에 처박았다.

“네깟 놈이 누구에게 손을 뻗는 거니. 그런 재능으로는 영원히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단다.”

세레라지에는 담 위에 걸터앉아 새침하게 웃었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슬쩍 내린 달이 그녀의 얼굴에 역광을 드리웠고, 색이 다른 두 눈동자만 푸르고 또 노랗게 빛났다.

그녀는 발뒤꿈치로 가볍게 담벼락을 두드리며 나른하게 손짓했다.

“조금 놀란 거 같구나?”

게세레스는 연기가 나기 시작한 몸을 보았다.

‘흐음.’

그의 몸에는 피가 흐르지 않았기에 전격에 거의 면역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무슨 수를 썼는지 그의 몸속까지 전류를 침투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놀랍고 또 기뻤다.

“역장.”

네 개의 팔을 벌린 검은 마법사가 다시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주변을 반투명한 보라색 역장이 둘러쌌다.

4서클 마법인 ‘낙뢰’ 정도는 열 번도 더 막을 수 있었다.

게세레스는 네 개의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속박 마법을 준비했다.

삽시간에 발광하는 거인도 묶어둘 수 있을 만큼 질긴 마법이 완성되었다.

그걸 보며 세레라지에는 생각했다.

‘저 얼마나 비참하고 하잘것없는 모습이니?’

그녀가 보기에, 남이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자기는 네 손으로 하는 건, 자기 실력이 남의 반도 안 된다는 걸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그 꼴로 여유만만한 척, 대단한 걸 깨달은 척 구는 게 너무나 꼴불견이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옷은 결국 못 입게 된다. 디스펠!”

* * *

게세레스는 그 마법이 통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으로 쌓아 올린 마나 양을 단기간에 뛰어넘기는 힘들었다.

예상대로 그의 속박 마법은 여전히 네 손 안에서 멀쩡하게 발광했다.

“무리였……!”

“그건 곧 알아서 없어질 거고.”

세레라지에가 디스펠 한 건 속박 마법이 아니라 역장이었다.

그게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번쩍!

세 번째 낙뢰가 게세레스의 몸을 후려쳤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기껏 만들어놓은 속박 마법이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게세레스는 다시금 바닥에 추락하며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그녀를 가져가기는 고사하고 적가면조차 놓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그랬다가는 사제가 그를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복수는 반드시 행해져야만 했다.

그는 몸이 다시 바닥에 닿기 전에 중심을 되찾고, 역장을 둘렀으며, 세레라지에가 앉은 담 위까지 단숨에 떠올랐다.

번쩍!

번쩍!

번쩍!

거대한 구름에서 벼락들이 뻗어 내려왔다.

“무슨……!”

게세레스는 당황을 넘어서 황당한 기분으로 외쳤다.

세레라지에는 여전히 담 위에 앉아 새침하게 웃고 있었다.

그제야 게세레스는 자신이 절대로 저 담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알아챘다.

“!”

방금 세레라지에는 그냥 ‘낙뢰’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정 낙뢰’라고 말했다.

거대한 뇌운 하나를 부릴 수 있어야 했고, 그건 따지자면 6서클 마법이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20대 초에 6서클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황족!”

“이제야 알았니? 그런 관찰력으로 무슨 마법사가 되겠다는 거니?”

세레라지에는 가학적으로 웃었고, 게세레스는 점멸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몸이 보랏빛에 휩싸이고 30m 상공에서, 또 60m 상공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네 손이 각기 다른 수인을 그리고, ‘염동 칼날’, ‘힘의 창’, ‘염동 산탄’, ‘염동 사슬’ 등의 마법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세레라지에는 게레세스를 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꼴이 되어서 결국 얻은 게 그거니?”

디스펠.

파이넬시아와 싸울 때와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용언의 기운을 이용해 대기 중의 막대한 마나를 모아 두었고, 제 심장 안에 고인 마나는 사용하지 않고도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마법이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그 틈을 타 게레세스는 세레라지에를 돌파하고 적가면을 쫓아 날았다.

허공에 보랏빛 불이 번쩍번쩍 빛났다.

물질과 비물질 상태를 오가는 그를, 정확히 물질 상태를 때만 노려 벼락으로 치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말했잖니. 연쇄 낙뢰가 아니라 지정 낙뢰라고.”

세레라지에가 쓴 건 그걸 가능하게 하는 마법이었다.

번쩍!

게세레스가 점멸하고 다음 공간에 나타날 때마다 벼락이 떨어졌다.

단단하게 마른 검은 몸이 조금씩 타오르고 부스러지며 허공에 흩어졌다.

세레라지에는 그에게 동정과 멸시가 뒤섞인 시선을 보냈다.

한 인간을 동정했고, 한 마법사를 멸시했다.

‘누군가가 안겨 주는 진리를, 진리랍시고 받아들이고 이게 진정한 힘이다! 하는 게 마법사가 할 짓이니? 사제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너는 사제가 아니라 마법사잖니.’

만약 누군가가 먼저 마법의 끝에 다다른다 해도, 그녀는 그 누군가를 축하할지언정, 질투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방식대로 도달할 진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진리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인데.’

지식은 힘이고, 지식을 받는 건 결국 힘을 받는 거다.

‘남이 준 힘이 어떻게 네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거니?’

세레라지에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게세레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연구할 가치도 없었다.

그때 근처 지붕에 있던 루디가 그녀를 불렀다.

“세레라지에 전하.”

“왜 그러니?”

“저기…… 침식자들이 더 늘어난 거 같아요.”

* * *

흑철기사단장 바르바토스.

2m도 넘는 키에 3일 정도 면도 안 한 듯한 수염을 기른, 무리를 이끄는 전성기의 검은 수사자 같은 인상의 사내.

그가 처음 발렌시아누스라는 황족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한 건 1년 전이었다.

그가 텐티아를 울그림의 펜촉을 훔친 혐의로 잡아들였을 때, 발렌시아누스가 백금기사들을 움직여 석방 탄원서를 넣었다.

본넬이라는 백금 기사에게 전해 듣기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네들이 탄원을 넣는다면, 자네들의 탄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풀어 준다며, 바르바토스 경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지.’

바르바토스는 그 말을 들은 순간 확신했다.

발렌시아누스는 절대 생각 없는 망나니가 아니었다.

그가 홍등가와 빈민가를 빵 먹듯 드나들고, 누군가를 죽이고 구타하고 범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남은 황족들을 죄다 몰살시켰을 때에도.

급기야 후작을 참수하고, 성자를 납치하고, 북부 대공을 암살하려 했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마저도.

그는 내심 발렌시아누스를 믿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만드리옹’인가 뭔가 하는 뼈 갑옷 입은 침식자를 떠넘기며 한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발렌시아누스를 의심했다.

‘성자님께서 갑자기 경 쪽으로 달려오신다면, 힘껏 두들겨 패서라도 어떻게든 돌려보내야 하네.’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란 말인가?

성자를 때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바르바토스의 이해를 벗어난 것이었다.

바르바토스는 크게 꾸짖어 발렌시아누스의 버릇을 고쳐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만드리옹의 갑각이 예상외로 단단했고, 그의 눈빛이 너무나 절박하게 빛나고 있었기에 일단 넘어갔다.

바르바토스는 뇌까지 단련할 거 같은 외모와 달리, 검술 실력만큼이나 지략도 뛰어난 기사였다.

그는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적을 상대로 한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공부했고, 워게임과 체스를 즐겼다.

“광명신이여.”

지금 그는 막 만드리옹에게 승기를 잡았고, 발렌시아누스가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 * *

나는 이 거대한 다섯 발 꽃 진딧물 침식자 새끼의 관절에 ‘불의 창’을 쏘아내며 생각했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다고.

처음부터 놈들의 움직임을 알아챘다.

주민 대피도 성직자들이 잘해주었다.

놈들이 예상보다 많이 왔고 또 예상보다 강했지만, 어쨌든 내가 놈들을 꽤 오랜 시간 붙잡아 놓았고, 결국 성자가 제때 와서 저 거대한 진딧물 새끼를 반쯤 녹여버렸다.

그래, 단언하는데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다.

……침식자를 상대할 때 제일 힘든 건 놈들의 이빨이나 발톱이나 기이한 마법이 아니다.

정신 파동 때문에 지켜야 할 신민들이나 같이 싸우던 병사들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해버릴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군대는 침식자와 상성이 안 좋았고, 또 시가전이 침식자와 상성이 안 좋았다.

회귀 전에도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했다.

그래도 일단 이번 생에는 40년의 경험이 있었다.

어찌어찌 놈들을 지하수로로 몰아넣거나, 인적 드문 곳에서 잡거나, 애초에 동족을 늘리는 계열이 아니었거나, 뭐 그렇게 운과 실력을 겸비해 잘 풀어나갔다.

그 운은 여기까지였나 보다.

회귀 전의 경험상, 제대로 된 교단을 이룬 침식자들일수록 높은 놈들이 정신 파동과 마법을 사용했고, 낮은 놈들은 몸을 썼다.

저 거대한 진딧물 같은 새끼가 정신 파동을 쓰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그래서 전투 사제들이 옥상 곳곳에서 억제의 기도를 하며 놈의 정신 파동을 억누르고 흩어놓았다.

유감스럽게도 놈은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나와 성자가 놈의 다리를 죄다 잘라 내기 전에 전투 사제들이 만든 포위망 바깥쪽으로 나갔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겠는가?

“끼이이이이이이익!”

다행히 인근 주민들은 어느 정도 대피했고, 또 놈이 사제들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1만 신민이 단번에 침식되어 괴물로 변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만 명은 아니고, 그 100분의 1 정도 변했다.

대피령에 응하지 않았거나, 응하지 못했거나, 아까 도망치지 않고 시장에 숨은 연초 밀매꾼들이었다.

차라리 죄다 단번에 괴물로 변했으면, 바르바토스나 성자에게 좀 멸시당할 각오 하고 기사나 성기사 좀 증원해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단번에 괴물로 변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사제들의 주문은 진딧물 놈의 정신파를 강하게 억눌렀고, 사람들은 아주아주 천천히 침식되고 변이했다.

마테오스는 지난 초봄 알첸베르크 수도원서 기적을 일으켰다.

침식이 너무 심해 본래라면 정화해도 죽었을 사람을 살려낸 거다.

나는 모든 기적에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맨정신으로 망나니짓을 하는 것도 회귀라는 기적의 대가였다.

그러니 살릴 수 없는 자를 한 번 살려낸 자의 대가는 무엇이겠는가?

“도와주세요!”

“성자님! 저는 괜찮습니다! 제 아이부터 좀 봐주십시오.”

앞으로는 절대로 외면하지 못하게 되는 거다.

“발렌 대공! 아직 안 늦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마테오스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좌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딧물 놈이 정신파를 내질러 놓고 몸을 움츠러트리고 있었다.

어딘가로 도망칠 생각인 게 분명했다.

다행히 이미 아가리가 신성력에 불타올라 추가적인 정신 파동을 내지를 수는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놈이 도망치면, 놈은 사람을 잡아먹고 힘을 회복한 뒤, 그때는 정신 파동을 억눌러줄 사제들도 없는 곳에서 한 번 더 오염을 시도할 것이다.

그때는 정말 1만 신민이 단번에 침식자로 변할 수도 있었다.

마테오스를 보내고 나 혼자 저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어려웠다.

마테오스가 놈의 갑각을 한 번 더 뚫어줘야 내가 몸 안쪽에 불을 지를 수 있었다.

“성자님!”

다린 다친 아이와, 그 아이가 앉은 바퀴 달린 의자를 미는 어머니가 애달프게 외쳤다.

나는 차라리 지금 고막이 터져 버리기를 바랐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대공이라는 작위는 외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선택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고, ‘네가 무슨 권리로 선택하느냐?’라고 따지기만 하며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고서.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홀로 눈물 섞인 술을 마셔야 하는 거다.

나는 사람들에게 향하려는 마테오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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