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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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티아가 단검과 ‘화한’을 들고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는 촉수와 갑각과 그 외 거무스름한 모든 것들을 잘라냈다.
우는 어린아이 앞에서 그 어머니의 팔에 난 얼굴 모양의 종양을 뜯어내고, 아이의 손가락을 잠식해나가는 촉수를 끊었다.
“도우러 왔습니다.”
“몸통 쪽에 난 종양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신실한 성기사들이 그녀를 도와 검을 휘둘렀다.
그들 역시 사제만큼은 아니지만, 치유와 정화의 권능을 다룰 수 있었다.
텐티아는 신실한 기사였고, 그들과 함께 검을 휘두르는 이 순간이 영광스러웠다.
평소에도 누군가를 죽임으로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검을 휘둘러 왔다.
지금은 오로지 살리기 위해 휘두르는 검이었다.
루디는 시장 골목골목 사이를 뛰어다니며 왼손에 쥔 마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세레라지에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마탄은 이미 늦어버린 하급 침식자의 머리를 터뜨리고, 그 안에 남아 전류를 흘리며 발악하는 몸뚱이까지 무너뜨렸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하수구 구멍에 붙어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목을 노리던 침식자의 머리를 터트리고, 인간의 상체와 사마귀의 하체를 가진 침식자의 머리를 터트리고, 거대한 육식 풍뎅이처럼 변한 침식자의 머리를 터뜨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이 시대 기준으로는 아주 평온한 죽음이었다.
“이리 나오세요.”
“죽여주세요. 제발, 제, 제발요.”
루디는 좁은 골목 틈에서 변해가는 손을 부여잡고 울먹이는 사람을 끌어냈다.
“지금 자를 거니까 저쪽으로 나가서 지혈 받으세요. 꽉 잡고 달려가셔야 합니다.”
“네? 네?”
사악!
“꺄악!”
날카로운 단검 ‘생동’은 정확하게 침식된 부위만을 노려 파냈다.
발렌시아누스가 그녀를 믿고 일을 맡겼다.
그의 곁에서 보좌하고, 그의 뒤에서 보좌하는 것.
그가 돌아왔을 때 모든 걸 깔끔하게 만들어놓는 것.
그가 앞만 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시녀의 일이었다.
“뒤, 뒤에.”
“가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크르르르-.”
끝내 이성을 잃어버린 침식자가 뛰어오르며 달려들었다.
털이 없고, 다리가 여섯 개 달려 있고, 입이 넷으로 찢어지는 검은 표범이었다.
타앗, 루디는 몸을 낮추고 땅을 박찼다.
표범의 몸 아래를 통과하며 역수로 고쳐 쥔 단검 ‘생동’에 마나를 약간 더 불어넣었다.
‘살아있는 겨울’이라는 이름처럼, 그 칼날에 서리와 얼음이 달라붙으며 날이 한 뼘 이상 길어졌다.
사아아악-!
예리한 칼날이 길게 휘둘러지고, 표범의 배가 길게 찢어졌다.
“앗!”
마지막 순간 전갈 같은 꼬리가 그녀의 마총을 쳤고,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마총에 잔금이 갔다.
일순 루디의 눈에 살의가 어렸다.
‘이건 부탁이야. 나 때문에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를 지킬 힘을 키워줘.’
그의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발렌 님의 선물인데.’
수축한 녹색 동공이 서늘한 안광을 뿜고, 재능과 노력과 마도구 ‘사점 안경’으로 단련된 눈이 정확한 검로를 찾았다.
그녀는 두 번째 마총 대신 두 번째 ‘생동’을 빼들어 칼날 길이를 늘였고.
“감히 네놈이 발렌 님이 내려 주신 무기를!”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로 소검만큼 길어진 단검을 휘둘렀다.
검은 표범이 두 발로 일어서 네 발을 반격했지만, 루디는 발목, 관절 뒤쪽, 턱 아래, 눈을 차례로 깊게 찌르고 베며 검은 표범을 난도질했다.
텐티아가 우리 편을 살리는 기쁨을, 루디가 적을 죽이는 기쁨을 안 날이었다.
* * *
“끝나 가는구나.”
세레라지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격전지로 향했다.
아무리 그녀라도 뇌운 하나를 통째로 부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후천적으로 배운 서클 마법이 아니라, 용언을 비롯한 혈통의 권능을 사용한 탓인지 몸에 열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의 색이 다른 두 눈은 여전히 탐구욕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직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잖니. 기쁘구나. 앞으로 알아갈 수 있는 게 그렇게 많다니.’
그게 세레라지에와 게세레스의 차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 앞으로 더 많은 걸 알아갈 수 있다며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마법을 배워 무엇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법을 배우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타고난 재능과 관계없이 사회적 성공과 나름의 위치를 얻었다.
“바르바토스 경. 그걸 조금만 가져가도 되겠니? 폐하께 침식자 연구 허가는 받았단다.”
“세레라지에 대공 전하? 으음. 성기사들이 뭐라고 할 거 같습니다만.”
“내 공방에서 생산한 전격 침투 마도구의 우선 수령권을 받고 싶지 않니?”
“으하하. 손가락 조금 없어진다고 누가 알아챌 수 있겠습니까?”
멋들어진 검은 수염을 기른 거구의 기사.
그는 막 만드리옹의 머리를 베고 몸통을 반으로 잘라낸 참이었다.
그를 아는 모두가 그를 좋은 기사이자, 좋은 아버지이자, 좋은 단장으로 평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적당한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며 이권을 챙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약삭빠른 단장’이 아니라, ‘좋은 단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이권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부하들과 나눌 이권이기 때문이었다.
“단장님. 밀수 연초들이 없어졌습니다. 언제 없어졌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습니다.”
“적가면의 여섯 아지트에도 물건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희망 쪽으로 갔다는 제보가 있었는데, 제보자가 만취한 도박쟁이였습니다.”
“그걸 보고라고……!”
경갑과 코트를 입은 치안감들과 검은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흑철 기사들이 달려와 보고했다.
그들은 밀수꾼들, 깡패들, 그리고 침식된 밀수꾼과 깡패들과 싸우던 참이었다.
적가면의 미꾸라지 짓까지 감시하라는 건 바르바토스가 생각하기에도 무리한 요구였다.
“이참에 그 미꾸라지 같은 여자를 잡아 와이번핏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니다. 할 만큼 해주었다.”
바르바토스는 세레라지에가 만드리옹의 손가락과 촉수를 잘라 작은 봉인 상자에 넣는 걸 못본 척하며 말했다.
“홍등가 지배인을 잡아 족치는 데 꼭 증거가 필요하지는 않지. 탈세와 항쟁이 기본인 곳이다. 일단 잡은 다음에 증거를 찾으면 그만이지. 당장 포위망을…….”
“단장님.”
한 기사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달려왔다.
“침식 연초는 현장에 스무 통이 모두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노란 두건 쓴 놈들이 열 명 정도 묶여 있었습니다.”
“!”
바르바토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노란 두건 쓴 놈들은 침식자가 이끄는 밀수꾼 패거리의 하수인들이었다.
반드시 심문해서 정보를 얻어야 할 자들이었고, 한 명 한 명이 제이릴리스에게 보고할 실적이었다.
“어서 가서 확보해라. 절대 죽이면 안 된다. 그 종이는 뭐냐?”
“거기 붙어있던 편지입니다.”
“편지? 줘 봐라.”
“그게…….”
기사가 이례적으로 망설였고, 바르바토스는 편지를 낚아챘다.
[홍등가 쪽으로 도망치던 놈들을 몇 명 잡아 보냅니다. 침식 연초는 하나도 건들지 않았습니다.]
그 아래에 붉은 잉크로 여우 얼굴 그림이 작게 그려져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공이자 뇌물이었다.
선을 넘지 않을 테니 귀엽게 봐달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하하하하!”
바르바토스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 편지를 구겨서 버렸다.
“제법이로구나.”
“포위망은…….”
“되었다. 뇌물을 한 번 받았으니 한 번은 봐줘야지. 게다가 내가 흑철 기사 단장인 한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테다.”
바르바토스는 붉은 여우 가면을 쓴 그 세련된 여인을 떠올렸다.
정말로 치안감들 사이에 첩자를 심어 놓은 건지, 그 망측한 소문대로 발렌시아누스와 여러모로 통하는 사이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사람을 관리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자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아직도 그는 그가 홍등가를 덮쳤을 때 어떻게 ‘희망’만 모든 서류가 정상이었고, 불법 무기와 약 하나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 감각적인 부르주아 돈 귀신을 상대로 언젠가 승리할 날을 떠올리며, 기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 * *
싸움이 끝났다.
침식자들은 죄다 타 죽었고, 성자 마테오스는 사제들과 함께 침식된 부위를 도려낸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성자님. 감사합니다.”
“다리가…… 다시 생겼어?”
“엄마, 아빠!”
우리는 모두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을 구했다.
그는 아무래도 회귀 전에 내가 알고 있던 검은 성자 마테오스와는 조금 다른 인물로 성장할 거 같았다.
그때의 그는 방금 같은 상황에서 정신 파동을 지른 침식자에게 더더욱 분노를 터뜨리지, 휘말린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고뇌하는 다른 성직자들을 윽박지르며 침식자에게 돌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달라진 건 그가 성자라는 직위 없이 겪은 10년의 세월 때문일 거다.
10년은 길다.
강과 산도 변하는 시간이고, 나는 고작 1년 만에 전쟁을 몇 번이나 막아냈다.
……원래 내가 마테오스에게 맡기려 했던 역할은 악역 중의 악역이었다.
회귀 전의 그는 한 도시가 침식되면 주변 영지를 빙 돌며 정화하고,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침식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사람은 다 태워 죽이고, 멀쩡한 사람은 내쫓았다.
그렇게 침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번지지 못하게 막은 다음에 그 도시에 홀로 들어가 다 불태워버렸다.
그걸 제이릴리스가 하면 멀쩡한 도시나 영지도 반란군에 합류할 게 뻔하니, 반대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교회에 맡긴 거였다.
그런 상황이 다시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놔야겠다.
“하아.”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부 대공 세베릭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마테오스가 보통 성자다운 모습을 보이는 게 좋았다.
아니, 나라고 해서 100명을 버리거나 사람 살을 감자 싹처럼 파내는 게 즐거운 게 아니니까.
그가 수도원에서 기적을 일으켜 백작가 후계자를 구했을 때는 정말 신앙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과 내가 가진 작위는 ‘보통 성자다운’ 마테오스를 원하지 않았고, 불확실한 1만과 확실한 1백 사이에서 1백을 구하는 결정을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 결정해야 한다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면.
“내가 해야지.”
이것도 제이릴리스가 한 번은 살려 준다고 했으니까 가능한 말일지도 몰랐다.
나는 희망 카지노로 내려갔다.
루디도 텐티아 경도 세레라지에 누나도 대동하지 않았다.
셋은 황궁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준비는 되었나?”
카지노 넓은 홀에는 바가 차려져 있었고, 가드들이 분주히 오가며 정밀한 도박용 기계 장치들을 안쪽 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VIP. 오셨습니까?”
가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홀은 언제나처럼 호사스럽고 화려했으며, 언제나와 달리 고급 연초가 상자째로 가득히 쌓여있었다.
밀수꾼들이 들여온 양의 ‘절반’이었다.
적가면은 가운데 가져다 놓은 테이블에 앉아 고급 위스키와 얼음, 안주를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했군. 다행이네.”
그녀가 세련미 넘치는 동작으로 내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세레라지에 님 덕분이었습니다.”
“빈말로라도 내 덕이라 해주면 안 되나?”
그녀가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그분을 보내 주신 게 VIP이시니, VIP 덕분이기도 하지요.”
“그렇지.”
내 덕이라는 말은 언제든 듣기 좋았다.
40년간, 아니. 작년 포함 41년간 계속 내 탓이라는 말만 들으며 살아서 그런 거 같다.
나는 적가면과 건배를 하고, 주변 행동대장들과 간부들하고도 한 번씩 잔을 부딪쳤다.
그들은 모두 내 정체를 알았고, 황송해하며 잔을 들이켰다.
“오늘 몇 시쯤 약속 잡았나?”
“곧 꼬리를 ‘잡힐’ 겁니다.”
“바르바토스 경 쪽은 입막음했겠지?”
“노란 두건 쓴 놈들을 열 명 정도 잡아서 보내 드렸습니다.”
“내가 몇 분이나 버텨 줘야 하겠나?”
“비밀 통로가 네 곳에 있습니다. 1분만 버텨 주셔도 다들 멀리멀리 도망갈 수 있습니다.”
나는 흡족하니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오늘의 마지막 싸움이 될 터였다.
잠시 쉬며 팔에서 광택과 강도를 잃은 비늘을 뽑고 있자니, 위가 소란스러웠다.
가드들과 행동대장, 간부들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얼굴만 비추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앞으로 향했다.
“우리는 광명 교회의 성기사들이다! 이곳에서 연초 밀수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듣고 왔다.”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리고,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교회 ‘정화단’ 소속 병사들이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그들이 내 얼굴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나는 모두 들으라는 듯 외쳤다.
“이런 젠장! 들켰다! 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