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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35화 (114/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35화

(135)

발렌시아누스는 몰려드는 성기사와 정화단 병사들을 맞아 요란하게도 싸웠다.

“다 덤벼라! 이 새끼들아!”

엎어 치고, 무기를 빼앗아 부러트리고, 병사를 천장으로 집어 던지고, 불의 벽을 쳐서 많은 인원이 쏟아져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감히 황족인 내게 무기를 겨누느냐?”

“추가 돌입 요망!”

“진짜 발렌시아누스다.”

“거 봐! 그 소문들 다 진짜라고 했지?”

“사제님! 축복 좀 내려 주십시오!”

축복을 받은 정화단 병사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는 병사들의 가랑이 안쪽을 걷어차 쓰러트렸다.

“끄아악!”

“이 미친 망나니 새끼가!”

“……섬뜩하군.”

“뭣들 하고 있느냐! 연초밀매 범죄자 놈들이 다들 도망치고 있잖느냐?”

그 말대로 적가면과 가드들과 간부들이 유유히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화단 병사들의 모든 관심은 발렌시아누스에게 쏠려 있었다.

“이익! 이 황실의 수치 같은 놈아!”

성기사 하나가 고함치며 달려들었지만, 발렌시아누스는 되려 그의 검 앞에 목을 가져다 댔다.

“!”

황족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지만, 발렌시아누스는 미묘하게 예외였다.

그는 친족살해자 제이릴리스가 처음으로 등용한 황족이었고, 황제의 쌍둥이기도 했다.

성기사는 침음성을 흘리며 검을 멈췄고, 발렌시아누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반격했다.

“잠시만 누워 있게.”

“악!”

그는 성기사의 투구를 반대로 돌려 앞을 못 보게 하고, 부러진 창대로 정수리 위를 내리치고, 다리를 걸어 바닥에 넘어트렸다.

성기사는 투구를 벗어버리며 다시 일어났다.

“이……!”

“그럴 줄 알았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발렌시아누스가 가학적으로 웃으며 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을 집어 드는 모습이었다.

퍽, 그리고 파삭!

술병이 깨지고 전의를 상실한 성기사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하하하하!”

“잡아!”

“묶어!”

“들어 올려버려!”

그 뒤로 정화단 병사들이 밧줄을 들고 몰려들었고, 발렌시아누스는 식사용 포크를 들어 병사의 손등을 내려찍으며 날뛰었다.

“아악!”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려 하느냐!”

“연초 밀매범 주제에!”

“부끄럽지도 않느냐?”

수십 개의 손과 수십 개의 밧줄이 동원되었고, 끝내 정화단 병사들은 발렌시아누스를 꽁꽁 묶어 카지노 밖으로 내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때 적가면과 간부들은 모두 카지노 밖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 도망갔습니다!”

“비밀 통로를 찾았는데, 모두 이상한 젤 같은 걸로 꽉 채워져 있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으아아아악!”

습격대의 지휘를 맡은 사제는 분통에 차 울부짖었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이 일은 반드시 황실에 책임을! ……어? 어디갔지?”

그가 있던 자리에는 불타고 남은 밧줄 한 꾸러미만 있을 뿐이었다.

어중간한 봉인으로는 용언 익힌 황족의 마법을 막을 수 없었다.

“죄다 놓친 게 아니냐? 이래서 대체 내가 무슨 낯짝으로 성자님을 뵈겠느냐?”

사제가 얼굴을 감싸며 좌절하고, 성기사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때 아래에서 정화단 병사들이 올라와 말했다.

“밀수 연초를 찾았습니다!”

“다급하게 도망치느라 다 두고 간 거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큰 방에 제 키보다 높게 쌓여 있습니다.”

“!”

오늘도 해는 뜨고, 대성당과 황궁 앞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황궁 앞에서는 흑철기사단의 포고꾼이, 대성당 앞에서는 사제가 직접 음성 증폭 마법이 걸린 나팔을 쥐었다.

“기뻐하라 신민들아! 흑철 기사단이 광명교회와 함께 밀수꾼들과 침식자 무리를 토벌했도다.”

“빛의 검들은 어젯밤 흑철 기사단과 함께 불법 연초를 밀반입하던 침식자 무리를…….”

기본적으로 장소가 밤이 되면 텅텅 비는 시장이었던지라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양쪽 모두 포고의 논조는 비슷했다.

성기사들과 흑철기사단이 힘을 합쳐 밀수꾼들과 침식자들을 잡았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흑철기사단은 ‘밀수’에 교회는 ‘연초’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고, 교회는 망나니 황족 발렌시아누스에 대한 이야기를 더했다.

“또한 밀수꾼들을 추적해 홍등가의 한 도박장을 공격했고, 그곳에서 큰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불법 연초를 압수했으며, 현장에서 발렌시아누스 대공을…….”

안 그래도 먹을 게 모자라 다들 힘든 시기다.

그런 와중에 황족이라는 자가 도박쟁이들과 함께 술 마시며 밀수 연초를 다루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런 천하의 개망나니를 봤나!”

“그런 놈도 황족이라고!”

“제이릴리스 폐하는 왜 그놈을 베어버리시지 않는 건지 원…… 혈육의 정이 정말 무섭기는 무섭군.”

“사실 그분도 불쌍하지 않나? 오라비라고 하나 있는 게 그런 쓰레기라니.”

“아무리 그래도 친족살해자가 불쌍하다니.”

“아니. 그렇잖은가. 그래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을 텐데.”

“어허. 아직은 말 가려 하네. 가만히 놔두는 것도 문제야.”

그런 오빠를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이릴리스에 대한 동정론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성자님. 이번에 들여온 연초 판매금까지 더하면 숫자가 이 정도 나옵니다. 농장을 하나 구입하고, 고아원 세 곳 정도를 더 후원하고, 급식소 두 곳을 더 설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교회는 연초 판매 등 다양한 활동으로 조성한 기금을 통해…….”

그 모든 게 발렌시아누스의 음모였다.

* * *

[안녕하십니다. ‘희망’의 ‘적가면’입니다.

쫓기는 몸이라 필체가 좋지 않음을 양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의 만남이 실패로 끝났음에 깊은 아쉬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실 거 같아 도의적으로 연락드립니다.

그날 보내 주신 사제님께 교회가 따라붙었습니다.

네 명의 신도분들은 모두 장렬히 전사하셨고, 연초는 흑철 기사단의 손에 폐기되었습니다.

제 카지노인 ‘희망’에도 성기사들이 쳐들어왔고, 저는 지금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치고 있습니다.

세력 회복을 도와주신다면 반드시 은혜를……(후략).]

“이렇게 보냈더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식으로 답장이 왔습니다. 한동안 그들과 수도 홍등가와의 거래는 끊어질 모양입니다.”

적가면은 발렌시아누스의 술잔을 채워 주고 가면 턱 아래쪽을 분리했다.

발렌시아누스가 그녀와 잔을 부딪치며 유쾌하게 웃었다.

“깔끔하게 잘 처리되어서 다행이군. 역시 그대와 일할 때가 제일 편해.”

“VIP께서 저희의 사정을 잘 봐주신 덕이지요.”

적가면은 발렌시아누스가 ‘덕분’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묘하게 표정이 풀어지는 걸 알고 있었다.

말 한마디로 천금의 빚을 갚는 세상이니, 그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줘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그가 단숨에 잔을 비우더니, 비인간적인 노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연초 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할 예정인가? ‘희망’이 문을 닫았으니 그대의 주머니도 궁해질 텐데.”

가면 안쪽 그녀의 눈이 보기 좋게 휘었다.

지금부터는 신중하게 답해야 했다.

발렌시아누스는 그녀와 홍등가가 너무 커지는 건 원하지 않았고, 또 그러면서도 밀수 연초 시장에 침식자들이나, 깡패들이나, 의원들이 들어오는 걸 막아주길 바랐다.

“한동안은 물량을 푸는 대신 시장 규모를 파악하고 인선을 꾸리는 데 집중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제게서 반 이상 독립을 시켜줘야 하니까요. 주머니는 괜찮습니다. ‘여명’이 개업 했지요. 그 자리에 그대로요.”

이곳은 그녀가 발렌시아누스, 바르바토스, 마테오스에게 작전을 브리핑하던 그 룸이었다.

‘희망’에서 ‘여명’으로 간판만 바꿔 단 것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방금 그걸 적가면 입으로 말하게 해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연초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지 못하게 막은 거였다.

‘빈틈이 없다니까.’

적가면은 줄타기를 하는 기분으로 웃으며 세련된 몸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여하간 VIP.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번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손사래를 치며 그녀가 내미는 보석 상자를 받아 들었다.

“우리 사이에 그게 무슨 말인가? 그대가 없어지면 내 주머니도 말라붙을 텐데.”

주머니 잘 채워 줬으니 조금은 더 바라도 된다는 말이었다.

적가면은 씩 웃었다.

예상대로였다.

그녀는 특유의 눈치과 혜안을 통해 조금씩 발렌시아누스라는 사내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그는 망나니가 아니고, 그렇다고 자비롭지도 않고, 특별히 부패했거나 탐욕스럽지도 않았다.

그는 무관심했다.

이유는 몰랐다.

무관심한 것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직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상은 알았다.

그의 황금색 눈빛이 비인간적인 건, 그가 주변의 모든 걸 사람도 아니라는 듯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난리를 치는 건, 주변을 관심 가질 필요가 없는, 알아서 잘 굴러가는 상태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상황과 장소를 직접 관리하지 않고, 현지 협력자를 구하는 것이리라.

배신과 숙청의 도돌이표를 막기 위해서 잃을 게 많은 자나 도움이 필요한 자를 택했으며, 그런 자들에게 충분히 긴 목줄을 채워 놓고 풀어 놓았다.

‘상관없어.’

그녀가 원하는 건 발렌시아누스가 경계하는 권력이나 마법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돈과 그걸 벌고 쓸 자유를 원했고, 그 부분에 대한 발렌시아누스의 목줄은 아주아주 길었다.

그녀가 수도 전체의 경제를 한 손에 쥐고 흔들 상황까지 가지 않는 이상, 발렌시아누스는 그녀가 얼마를 벌어들이든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적가면은 기꺼이 발렌시아누스가 준 목줄을 받아들였다.

‘이번에도 까딱하면 죽을 뻔했다. 역시 그는 내 기회야.’

그건 보통 목줄이 아니라, 늑대에게서 목을 보호하기 위해 차는 가시못 목걸이였다.

* * *

나는 사두마차에 탔다.

뒤쪽에는 보석과 은화와 금화가 한가득 실려 있었고, 옆에는 루디가 앉아 있었다.

“발렌 님. 일은 잘 마치셨습니까?”

그녀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거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고, 마차가 황궁으로 출발했다.

끝났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자 순간 눈앞이 빙빙 돌았다.

루디가 다급하게 내 어깨를 붙들고 등을 기대는 걸 도와주었다.

“발렌 님! 괜찮으세요? 마부! 교회로……!”

나는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며 말했다.

“아니야. 루디. 집에 가자. 제발.”

“네, 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래? 답답해서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은데.”

루디는 고맙게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사실 제가 먼저 묻고 싶었는데, 물어도 될까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었어요. 말해주세요. 많이 궁금해요.”

나는 목까지 차오른 말들을 수문을 열듯 털어놓았다.

“적가면은 카지노를 지키면서도 침식자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싶었고, 교회는 연초 밀수를 막고 싶었고, 흑철기사단은 실적을 원했어.”

그리고 나는 이 셋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동시에, 밀수 연초 시장을 틀어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막고 싶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침식자들을 막고 밀수꾼들을 잡은 건 알 거야.”

“네.”

하지만 언제나 진짜 싸움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 시작되는 법이다.

“흑철기사단을 빼는 건 쉬웠어. 팔지도 못하는 침식 연초와 쓸데도 없는 그 하수인들을 잡아 넘겼고, 그들은 충분한 실적을 생겼지.”

“그다음에 밀수 연초 시장을 두고 교회와 적가면이 붙은 건가요?”

루디가 녹색 눈을 반짝이며 요점을 짚었다.

“그래. 게다가 적가면은 침식자들에게도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아.”

“그래서 교회를 이용하기로 했지. 내가 미끼가 되었고, 적가면은 그날 챙겨간 일반 연초 절반을 토했어.”

“교회가 적가면을 망하게 했으니, 침식자들도 더는 그녀가 필요 없겠네요.”

놈들은 적가면과 ‘희망’이 가진 홍등가에 대한 영향력이 필요했다.

몰락한 적가면은 도와줄 의리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게 침식자에게 벗어난 거야. 교회도 엄청난 양의 연초를 압수했으니, 설마 더 숨기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쉽게 못 할 거고.”

그렇게 그녀는 교회의 눈에서도 벗어났다.

“나는 침식자 놈들의 음모를 막고, 연초 시장에 대한 영향력과 금화를 손에 넣었지.”

“성자님의 신뢰도요.”

“응?”

루디가 불쑥 말했다.

“그날 밤에 성자님이 발렌 님이 달리 보이신다고 말했어요.”

“아.”

나는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렸다.

구할 수 있는데도 1백 명이 침식되게 내버려 두라는 폭언을 퍼붓고, 사람 살을 감자 싹처럼 파내 버리라고 기사에게 명령했고, 성자의 손목을 억지로 끌고 달렸다.

……세상.

파문당할 감이다.

그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죽음에 무뎌진 게 무슨 자랑이라고, 진리를 설파하는 듯 잘난 척을 했을까?

내가 한 말들은 사실일지언정, 진실이어서는 안 되었다.

“……아마 더 나빠 보인다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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