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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42화 (121/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42화

(142)

세레라지에는 빼어난 마법사였지만, 빼어난 싸움꾼은 아니었다.

상아탑 생도 시절에 결투를 안 해 본 건 아니었고, 최근 화염 마법사 파이넬시아와의 대결을 통해 대인전의 감각을 다시 깨웠지만, 마법사 대 마법사의 싸움과 마법사 대 전사의 싸움은 달랐다.

하물며 상대는 이 세상 생물이 아니라 키메라들이었다.

“시이익!”

산성 액체를 분사하고, 뼈로 된 침을 화살처럼 쏘며 원거리에서 압박하고.

“키에에엑!”

천장에 붙어 여섯 개의 발로 기어 오다가 그녀를 향해 뛰어내리고.

“우오오오!”

갑옷 같은 몸을 앞세워 정면으로 돌진해왔다.

보통 마법사였다면 실력과 관계없이 당황하다가 순식간에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세레라지에는 세레라지에였다.

그녀는 강력한 화력을 가진 천재 마법사였고, 발렌시아누스의 어깨너머로 난전을 지켜보았으며,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있었다.

“사슬 번개!”

파지지직!

블루 드레이크의 뿔이 악간 소모되고 전격이 나뭇가지처럼 튀었다.

“으아아아악!”

“피해!”

“키에에엑!”

물론 상인들 역시 그녀만큼 절박했지만, 상인들은 그녀와 달리 직접 싸우지 않았다.

번쩍!

전기 마법은 아주 짧은 시간에 발휘된다.

‘몇 초씩 상대를 지지고 있다는 건, 마나가 많다는 게 아니라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이란다.’

세레라지에는 스승의 조언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받아들이며, 그 극의를 느끼고 또 깨달았다.

‘더 빨리.’

번쩍!

‘더 빨리!’

번쩍!

‘할 수 있잖니!’

파지지직!

“시이익!”

산성 액체를 분사하고, 뼈로 된 침을 화살처럼 쏘며 원거리에서 압박하던 전갈 키메라와 지네 키메라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키에에엑!”

천장에 붙어 여섯 개의 발로 기어 오다가 그녀를 향해 뛰어내리던 거미 키메라들이 푸른 탁류에 휩쓸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우오오오!”

갑옷 같은 몸을 앞세워 정면으로 돌진해오던 사슴벌레 키메라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세레라지에는 그녀의 앞에 쓰러진 키메라의 머리를 지긋하게 밟았다.

‘왜 너희가 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니?’

겉으로는 괴물 같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다른 게 보였다.

근력을 무리하게 보강하느라 관절 부위에 무리를 줬고, 6족 보행을 2족 보행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날개를 수납할 공간이 없어졌으며, 턱을 남겨두기 위해 목을 앞으로 크게 꺾이게 했다.

‘안 봐도 뻔하구나.’

과제 제출 기한은 점점 다가오고, 임펙트 있는 걸 내야 점수를 잘 받으니, 밤을 불태워 외관이라도 그럴듯하게 만든 키메라였다.

상황이 급하다고 무리수를 두다 보면 결국 문제가 생기는 법이었다.

“세레라지에 대공 전하! 저희에게 왜 이러십니까?”

“이제 상아탑 소속도 아니시잖습니까?”

테이블 밑에 들어가 오들오들 떨고 있던 상인들이 외쳤다.

“입 다물렴.”

세레라지에는 새침하게 일갈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너희는 다들 어리석고 탐욕스럽구나. 여기에 상아탑 소각장에 한 번도 안 가본 상단주 있니?”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 탄내와 연기가 자욱했다.

상단주들은 키메라들이 터져 나가는 걸 보며 생각했다.

잘못하면 진짜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애초에 실패작들을 가져와서 통제도 못 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상아탑이 소각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징징거렸지.”

“오해이십니다!”

“내 눈은 눈이 아니라 유리구슬인 줄 아니?”

피슛! 피슛! 피슛!

테이블 밑에서 뛰어오른 늑대 키메라가 전갈의 꼬리를 휘두르며 골침을 쏘았다.

동시에 긴 혀를 뻗어 세레라지에를 묶으려 했다.

세레라지에는 싸움꾼이 아니었고, 그 속도를 눈으로 따라갈 수는 없었다.

번쩍!

하지만 꼭 보고 막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치자 다시 한 번 전격이 튀었다.

늑대 키메라가 혀를 길게 뽑은 채로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키메라의 죽음을 확인하고, 허벅지에 박힌 골침을 힘겹게 뽑아내고,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해독 마법을 사용했다.

푹!

그때 종아리에 골침이 파고드는 소리가 났다.

“어?”

세레라지에는 일순 당황하며 저 뒤쪽에 키메라가 남아있었는지 확인했다.

푹!

다시 한번, 이번에는 발등에 골침이 파고들었다.

“아.”

새침한 얼굴에 당황의 빛이 일었다.

골침을 찌른 건 테이블 아래 숨어 있던 상인들이었다.

* * *

세레라지에가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손들이 뻗아 나왔다.

“잡아! 잡아!”

“찔러!”

“갑옷 안 입었다! 보낼 수 있어.”

“지팡이부터 빼앗아!”

“입 막고, 손 잡아! 수인 못 맺게 해!”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어차피 이거 황실이랑 상아탑에 알려지면 우리 다 끝이야.”

테이블 밑에 숨어들어 있던 상인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수십 개의 손이 세레라지에에게 우우 몰려들었다.

어둠 속에서 본 그 모습은 마치 수십 개의 촉수를 가진 키메라 같았다.

당황한 마법사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금은 요동이 흔들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었고, 잃을 게 없는 자가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상인들은 망하기 직전의 절박한 마음에 소각장에서 키메라를 빼돌렸고, 그 키메라를 모두 통제하지 못해 북쪽 난민촌을 마굴로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절박했던 건 상인들뿐이 아니었다.

……상황이 급하다고 무리수를 두다 보면 결국 문제가 생기는 법이었다.

‘아.’

어둠 속에서도 새파랗게 빛나는 단검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레라지에는 색이 다른 두 눈을 지긋하게 감았다.

‘어떻게든’,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대가가 돌아왔다.

상인들이 세레라지에를 대가로 맞이했듯, 세레라지에는 상인들을 대가로 맞았다.

“우리나 전하나 똑같습니다!”

“지키고 싶었지요! 살아온 세상을!”

“그런데 저희를 이렇게 다 죽이려 하시면 어떡합니까?”

“제 상품을 다 죽여버린 대가를 달게 받으십시오!”

대가.

피의 대가, 혈통의 대가.

그녀의 역린 같은 말이었다.

황족으로 태어난 대가로 상아탑을 떠나야 했고, 그때 그녀는 천국에서 추락한 천사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번쩍, 세레라지에가 눈을 부릅떴다.

“누가 감히 내게 대가를 논하니?”

색이 다른 두 눈이 번갯불처럼 빛났다.

“전광창.”

파지지직!

주문과 함께 세레라지에의 몸이 한 줄기 섬광이 되었다.

“어, 어!”

“망했……!”

상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그 빛으로 보며 경악했다.

세레라지에를 파묻어버릴 기세였던 수십 개의 손이, 한데 뭉쳐 달려들던 어둠이 섬광과 함께 갈라졌다.

빛줄기가 진흙 슬라임을 꿰뚫는 거 같기도 했다.

본래 이 마법은 좁은 방 안에서 쓰기 위해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벽 속에 파묻히거나 전력으로 벽에 부딪힌 효과만 내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세레라지에는 성공했고, 상인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세레라지에는 벽을 짚고 거친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대가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도둑놈들이 훔친 칼로 남을 해치고 다녔다고 해서, 칼 주인에게 칼을 왜 도둑맞았냐고 따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니?”

하지만 이 세상은 신의 기적이 일어나고, 일기당천의 기사들이 무를 겨루고, 수백 년을 살아온 마법사들이 진리를 탐구하는 세상이기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잖니. 그럼 나도 말도 안 되는 해법을 써야 한단다.”

쳐들어가서 다 때려눕히기, 같은 거.

“이런. 내가 내 동생을 닮아 가는구나.”

그걸 자각한 세레라지에는 새침하면서도 허탈하게 웃었다.

발렌시아누스를 닮을 수는 없었다.

상황이 급하다고 무리수를 두다 보면 결국 문제가 생기는 법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이복동생이 큰 문제를 맞이하리라 예상했다.

“시이익!”

그때 등 뒤에서 살아남은 키메라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이게 무슨 일이니.”

세레라지에는 몸을 돌리려 했지만, 오른손이 벽 속에 파묻혀 있었다.

“큰일 났구나.”

피슛! 피슛! 피슛!

허벅지에 세 발의 골침이 박혔다.

키메라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크르르르.”

삼중으로 난 이빨이 섬뜩하게 빛났다.

쾅!

그리고 문이 부서지고 텐티아가 튀어나왔다.

“세라라지에 대공 전하!”

“텐티아?”

* * *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는 키메라를 종이처럼 찢어버리고, 벽돌을 뜯어낸 뒤, 세레라지에의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꺼내 주었다.

“여기는 어떻게 왔니?”

“발렌시아누스 전하가 상아탑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는 전하를 찾지 못했습니다. 상황을 알게 된 전하의 후배 마법사 니아르가 몇 군데를 짚어 주었고, 저와 발렌 전하가 각자 돌아다녔습니다.”

세레라지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달렸다.

둘 사이의 마지막 기억은 그 쓰레기장에서의 말다툼이었다.

“송구합니다. 전하.”

먼저 고개를 숙인 건 텐티아였다.

그녀는 발렌시아누스에게 명령을 받았고,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을 수 있었다.

“제가 잠시 눈이 멀어 무엇이 중요한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마땅히 전하의 마음을 위해 검을 들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그렇기에 세레라지에 역시 마음 편히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아니란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이미 타 죽어가고 있는 다른 사람을 살피지 못했구나. 마법사는 다들 그렇지만, 나는 대공 전하니 더 신경 써야 했단다.”

세레라지에는 무언가 알 거 같은 기분으로 대답했다.

마법사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겠다…… 같은 말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녀는 하늘을 보고 걷다 우물에 빠질 거였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을 우물에서 꺼내 주는 게 주변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그건 민폐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찌어찌 해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일단 죄다 잡기는 잡았으니까.

그러나 세레라지에는 마법의 천재였지 패악질의 천재는 아니었다.

그녀는 승리할 줄은 알았지만, 승리를 활용할 줄은 몰랐다.

‘이제 어째야 하는 거니? 일단 황제 폐하를 만나야 하는데. 그동안 상단주들은 어떡해야 하니? 직원들이 몰려올 수도 있잖니. 다 데려가기는 힘든데.’

이런 ‘거래’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천성이 마법사였고, 발렌시아누스와 달리 사람과의 관계를 즐기지 않았으며, 제이릴리스는 마주하기도 싫은 공포의 존재였다.

“누나.”

“마침 잘 왔구나!”

그래서 그녀가 잘하는 방법대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 녀석들을 뜯어먹고 싶은 만큼 뜯어먹고, 나랑 상아탑 좀 살려 주렴.”

못하는 걸 과감히 인정하고 외주를 줘 버린 거다.

발렌시아누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 * *

“……해서 일단 자격 없는 자가 마도구와 시약을 유통한 혐의로 잡아들인 뒤, 재산을 모두 압수하고 막대한 벌금을 매겼사옵니다,”

봄 햇살이 찬란한 집무실.

제이릴리스가 발렌시아누스의 보고를 들으며 배부른 육식성 파충류처럼 웃었다.

“재산을 압수하고 벌금을 매기다니, 그대도 참으로 잔악하구나.”

“감사하옵니다. 폐하.”

“그런데 상아탑도 조금 무리하는 거 아닌가?”

그녀가 노란 눈을 가늘게 떴다.

“흉작이 들 때도 있을 거고, 광산에서 사고가 날 때도 있을 텐데. 수족 같은 상단들을 그렇게 쳐내다니 말이야.”

발렌시아누스는 그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평판이 좋고, 생도들을 등쳐먹지 않은 상단들하고는 계속 거래할 생각이라고 하옵니다. 가지치기를 하겠다는 것이지, 나무를 죽이겠다는 게 아닌 듯하옵니다.”

제이릴리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노란 눈이 가학적으로 빛났다.

“결국 끼리끼리 뭉치게 된다는 말이구나. 알겠다. 이 정도 거둬들였으면 일단은 만족하겠노라. 기대하던 마도서는 얻지 못했으니, 세레라지에 대공에게 더더욱 분투하여 새로운 발견을 가져오라 이르거라.”

키메라 관리의 소홀을 문제 삼아 상아탑을 벗겨 먹지는 않겠다는 말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일어섰다.

* * *

발렌시아누스는 곧바로 세레라지에의 공방으로 향했다.

“누나. 폐하는 눈감아 주신다고 하셨어.”

“정말 다행……!”

“이제 우리가 가서 벗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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