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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55화 (171/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55화

(155)

봉신들의 보고에 따르면, 발렌시아누스는 고작 다섯의 일행을 대동한 채로 세 마리의 와이번을 타고 오고 있었다.

백금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하나, 이복누이인 전격 마법사가 하나, 행정관과 법관이 각각 하나, 정체 모를 검은 예복으로 온몸을 칭칭 감은 사내가 하나라고 했다.

베네치온은 어떠한 적대 행동도 금한다는 명령을 내렸고, 그의 충성스러운 봉신들은 접대의 관습과 제국법에 따라 발렌시아누스와 그 일행을 대접했다.

와이번에게는 늙은 양을, 발렌시아누스와 그 일행에게는 잠자리, 어린 양, 물과 빵과 소금을 내주었다.

발렌시아누스, 그 저주받을 제이릴리스의 오빠는 소문과 달리 정중한 태도로 그 대접을 받았다.

“그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고, 술을 내오라 고함을 치지도 않았고, 혹시나 해서 데려간 처녀와 소년들도 모두 거절했다고 하옵니다.”

“그 어린놈이 어떤 속셈으로 나를 만나려 하는지는 아는가?”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새어 나오는 베네치온의 목소리에, 전령은 침을 삼키며 봉신들의 말을 전할 뿐이었다.

“송구하오나, 그 일행들조차도 혼란에 차 있었다고 하옵니다.”

후작은 품격 있게 늙은 얼굴에 정제되지 않은 분기를 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70년을 살아오며 많은 피를 흘리고 또 흘리게 해 왔지만, 이런 격정에 차오른 건 처음이었다.

‘그 오빠란 놈을 죽이면, 악마가 친정을 올지도 모르지. 상관없다.’

그는 하루아침에 50년의 꿈과 누나, 여동생, 친자식 같은 조카들을 모두 잃었다.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 주고야 말겠다. 황제 너도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생명체일 테지.’

그 와중에도 그의 혜안은 위기를 알렸다.

그가 지난 50년간 수도에 드리운 첩보망에 따르면, 발렌시아누스는 망나니일지언정 바보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기 아무런 생각 없이 날뛰는 자라 해도, 제이릴리스 밑에서 살아남았다면 어떠한 형태의 유능함이 있음은 분명했다.

‘네가 숨긴 칼이 고작 다섯을 데리고 내 영지 한가운데로 들어올 만큼 예리한지 확인해 보겠다. 그래도.’

“집사장.”

“예. 각하.”

“내 손자들을 와이번핏 근처의 은신처로 보내게. 내가 직접 가서 돌아오라 명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올라오지 못하게하고.”

“예. 알겠습니다.”

집사장은 지난 수십 년간 그랬듯 베네치온의 명령을 충실히 받들었다.

그곳은 의도적으로 감옥처럼 꾸며진 곳이었는데, 당대의 그레모리우스가 황실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후계들은 모두 그곳에 가두는 게 원칙이었다.

혹시 당대의 그레모리우스가 죽음을 맞는다고 해도, 그 후계자로 하여금 ‘우리는 저항했으나 갇히고 말았다.’라고 주장해서 가문이 멸문당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발렌시아누스가 와이번핏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래. 맞이할 준비를 하자.”

베네치온은 알현실로 몸을 옮겼다.

* * *

그레모리우스 가문의 알현실은 황실의 그것만큼이나 웅장했다.

사화산 중턱을 깊게 파 만든 회랑은 그 높이가 12m에 넓이가 15m, 길이는 500m에 달했다.

그의 옥좌는 금, 은, 동, 철, 납의 다섯 가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200개의 거대한 샹들리에는 수정 하나 없이 오로지 다이아몬드와 하얀 오팔로만 장식해 놓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년의 외모를 가진 노인이 옥좌에 앉자, 회랑 좌우의 통로들에서 그레모리우스 가문의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단장 제르파스. 명을 받듭니다.”

황금을 입힌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80명, 황금과 은을 입힌 전신 판금 갑옷을 입힌 종자들이 그 두 배였다.

여기서 ‘기사’란 ‘소드 엑스퍼트’에 올라 텐티아와 마찬가지로 ‘마나 블레이드’를 다룰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고, 종자들은 그런 기사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마나 유저’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경악할 전력이었으나, 그 뒤로 흑철 판금 갑옷을 입은 500명의 정예가병이 추가되었다.

“장군 파오릭.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사의 종자들과 마찬가지로, 체내에서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마나 유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랜드워록 솔베리우스가 궁정의 주를 뷥습니다.”

60명의 전투마법사 역시 철편을 꿰매 만든 찰갑이나 흉갑을 입고 있었다.

마나를 저장해둔 수정구를 몇 개씩 품고서 마나 고갈에 대비하고, 검술 역시 일반병 두셋은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익힌 워록(Warlock) 중의 워록들이었다.

“저희가- 저희가- 저희가- 왔습니다.”

정령술사들은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하나같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색색의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바람에 기이한 속삭임이 실려 오는 건, 그들의 부리는 정령들이 그들의 살의와 긴장감을 알아채고, 곧 내려질 명령에 갈기갈기 찢길 상대에게 조소 어린 애도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크흠.”

마지막으로 그레이스 옆에 모여든 건 성기사와 정화병, 그리고 고위 사제와 주교들이었다.

“각하. 저희는 각하의 종이 아니라 광명의 종입니다.”

늙은 고위 사제가 그들을 사냥개 부르듯 부른 베네치온에게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표했지만, 70살 먹은 노귀족은 흑철관 아래 그 흑철관보다도 예리하게 빛나는 시선으로 주교를 입 다물게 했다.

“혹시 발렌시아누스가 큰부상을 입을 경우에, 그를 반드시 살려야 하네.”

“……예. 각하.”

그는 발렌시아누스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제이릴리스를 괴롭히고 싶은 거였다.

따라서, 그 망나니 대공은 절대 죽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만에 하나 발렌시아누스가 저들을 모두 뚫어내고 그의 앞에 선다 한들, 방패처럼 모인 성기사들에게까지 검을 휘두르기는 힘들 터였다.

“그가 왔습니다.”

시종이 달려와 속삭였다.

저 회랑 끝에서 문이 열리고, 고작 6인이 걸어들어왔다.

베네치온은 20대처럼 눈을 반짝이며 6인의 면면을 훑었다.

‘왔구나.’

행정관과 법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흑의를 뒤집어쓴 사내 역시 잔뜩 주눅이 들었는지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베네치온은 그런 자들은 죽든 살든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처음으로 노귀족의 눈을 멈춰 세운 건 텐티아였다.

그녀는 최고의 마법사들이, 대륙 최고 권력자의 뜻에 따라, 최고의 강철에 최고의 주술 회로를 새겨 만든 전신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투구 뒤로 드리운 붉은 리본은 고갯짓에 따라 툭툭 따라붙고, 화염 내성의 주문이 걸린 듯한 붉은 망토는 석양처럼 유유히 따라붙었다.

좁은 투구 틈으로 80명의 기사와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기사 한 명을 얻을 수 있다면 천금도 내줄 수 있던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듯했다.

“세레라지에 대공.”

그다음으로 노귀족의 시선을 받은 건, 남색 로브를 두른 긴 남색 생머리의 마법사였다.

20대에 무영창 마법사가 되고, 황실의 용혈을 깨워 용언까지 부린다는 소문이 자자한, 어린 전설이었다.

텐티아가 그녀의 기사들과 눈을 마주치며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면, 세레라지에는 그 새침한 얼굴과 색이 다른 두 눈을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흥.”

“저……!”

누가 오든 제 상대가 될 수 있겠냐는 그 오만한 태도에, 그레모리우스 가문의 최고 마법사 솔베리우스가 이를 악물었다.

베네치온은 이번에도 눈짓 한 번에 솔베리우스의 입을 다물게 했고, 여섯 일행의 선두에 선 발렌시아누스를 바라보았다.

‘제 누이하고 똑같군.’

백금색 머리카락은 경박하고 유쾌하게 뒤로 넘겼고, 눈동자는 황금과 같은 마력을 품고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는 소문대로 하얀 제복에 붉은 띠를 차고, 검 한 자루를 허리춤에 매고 있었다.

쌍둥이인 만큼 맑은 피부와 수려한 얼굴, 높은 콧대와 붉은 입술은 무척 닮았지만, 그 저주받을 노란 악마와 비교해 봤을 때 느껴지는 기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베네치온이 ‘피의 즉위식’ 날 본 제이릴리스는 이미 소드마스터이자 대마법사였고, 발렌시아누스는 그에 대한 온갖 기이한 소문의 진위가 어떻든 간에, 아직 소드마스터도 대마법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른한 와중에도 오만하고 잔혹해,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야 마는 위태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만큼은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베네치온은 더없이 흡족한 기분으로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잡아서 내 앞에 꿇려라. 우선 오른쪽 눈을 뽑을 것이다.”

저 망나니 대공을 갈가리 찢고 이어 붙이기를 반복하다 보면 천불이 날 듯한 이 속도 조금은 가라앉을 거 같았다.

제르파스가 뒷굽으로 바닥을 찍어 소리를 내어 명령을 받들었고, 황금 갑옷의 기사들이 하나둘 나섰다.

발렌시아누스는 만면에 조소를 띄우며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한 표정의 법관에게 손을 뻗었다.

법관이 벌벌 떨며 두루마리 하나를 발렌시아누스에게 건넸고, 그는 두루마리를 펴며 외쳤다.

베네치온은 그의 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했다.

설령 저 두루마리가 사실 어떠한 문서가 아니라, 노란 악마가 담아준 마법 스크롤이라 해도, 그의 마법사들은 스크롤에 담긴 마법 정도야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다.

“베네치온 키멜리온 그레모리우스. 침식자와 내통하고, 본인까지도 침식된 죄를 물어 그대의 후작위를 박탈한다!”

그래서 그 백발의 대공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을 때, 그 뜻을 이해하는 게 한 박자 느렸다.

“……뭐?”

그는 옥좌 팔걸이를 끌어당기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의문 어린 그의 목소리에, 기사들이 발렌시아누스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늦추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의기양양하게 두루마리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샛노란 눈동자에서 다음 수를 읽을 수 없는 광기가 번뜩였다.

“이는 성자님께서 검증하실 것이다!”

다음 순간 그가 맨 뒤에서 따라오던 사내가 뒤집어쓴 망토를 벗겼다.

새까만 검은 머리에 새까만 눈동자, 발렌시아누스보다도 큰 키에 강직하고도 그윽한 얼굴.

성자보다는 젊은 기사에 가까운 인상이었으나, 그의 이마에서 빛나는 문양은 분명 성흔이었다.

베네치온은 다섯 금속으로 만든 옥좌에서 일어서며 뭐라 외치려 했다.

지독한 낭패감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

그러나 성자가 찬란한 신성력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게 더 빨랐다.

파아아앗-!

일순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아야 할 만큼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발렌시아누스는 검은 망토를 둘둘 말아 눈을 가렸는데도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였다.

신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기도해 ‘변별의 장막’을 펼친 것이다.

일주일 내내 와이번 곡예비행에 시달리며 분노에 찬 성자는 이참에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침식자로 밝혀지면 좋겠다는 분노, 아니. 의분을 담아 장막을 펼쳤다.

막대한 신성력은 구형으로 파문을 그리며 성자를 중심으로 지름 11km를 뻗어나갔고, 그레모리우스 가문의 주도(主都)이자 보물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키멜리온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퍼퍼퍼펑!

그리고 키멜리온 전체에서 암약하던 침식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 * *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텐티아 경과 세레라지에를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침식자 하나가 탈피에 실패한 바닷가재처럼 뭉개지고 있었다.

주술 회로 걸린 갑옷을 입은 채로 변이한 탓에 부풀어 오르는 살과 근육이 갑옷에 짓눌려 으깨지는 거였다.

“동료로서 나를 데려왔다면, 다음에는 더 많은 언질을 주기를 바란다. 너같이 막돼먹은 아이도 나 같은 천재가 이런 곳에서 죽으면 제국의 손실이라는 걸 알잖니?”

세레라지에가 새침하게 쏘아붙이며 ‘자기 역장’을 준비했고, 텐티아 경이 검을 뽑으며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를 둘렀다.

성자는 비행의 피로와 신성력 고갈으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사실 이 회랑만 쓸어 줘도 충분했다.

물론 그걸 굳이 말하며 성자를 타박할 생각은 없었다.

‘변별의 장막’은 모든 이형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기에, 나 역시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졌다.

“아쉽군요.”

마테오스는 촉수도 살점도 눈알도 돋아나지 않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대충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거 같은데, 돌아가는 길에는 회전 급하강을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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