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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65화 (126/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65화

(165)

수도 솔레타라온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바위산에는 버려진 수도원이 하나 있었다.

밤이면 벤시와 레이스가 나타난다는 소문 탓에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는 수도원이었다.

깡패들이나 용병들이 성주 노릇을 하려 찾아가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 깊숙한 기도실에서는 오늘도 불경한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아아악!”

“제발 살려주세요.”

“형!”

강철 우리에서 발버둥 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제단에 올라갔다.

사지가 결박된 사람들은 제 심장이 뽑혀 나오는 걸 바라보며 죽었다.

심장은 그들의 신에게, 육신은 서른 명 정도 모인 침식 교회의 구도자들에게 돌아갔다.

긴 테이블에 앉은 침식자들은 겉보기에는 탁발 수도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품이 넉넉한 검은 로브를 두르고 밧줄로 허리를 여몄는데, 후드가 마치 요리사들의 모자처럼 위로 높게 솟았고 정수리 부분은 평평했다.

“으음. 질이 아주 좋습니다.”

“그분께서도 만족스러워하시겠군요.”

“다음에는 더 어린아이들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하하. 역시 사제님이십니다.”

수백 수천 개의 은촛대 덕에 방 안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하지만 침식자들의 로브 안쪽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절대로 흩어지지 않을 듯한 농밀한 어둠이 얼굴 부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양손으로 붉은 고깃덩이를 잡고 뜯어댈 때, 간혹 그 어둠 안에서 셋으로 갈라진 붉고 긴 혀가 튀어나와 고기를 흩기도 했다.

그들이 만찬을 마칠 무렵, 제단 위에 올라가 있던 심장들은 수백 년 전에 올라간 것들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구도자들은 신께서 제물을 받아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합일을 준비했다.

본래 합일의 의식은 현실에서 육체의 침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제단 앞에 엎드리는 대신, 붉은 반점이 있는 환각성 식물의 잎을 말려 빻은 연초를 파이프에 채워 넣었다.

그들은 사회 속에 숨어들어 사람들을 모아야 할 구도자들이었기에, 몸을 완전히 바칠 수 없었고, 의식 역시 꿈의 세계에서만 치렀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들의 눈앞에서 악몽과도 같은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만, 수천만, 수억 개의 촉수를 가진 검은 산양이 밤하늘 한가운데를 부유하고 있었다.

촉수 하나하나에는 검은색 점액질이 번들거렸는데, 그것들은 마치 비처럼 떨어져 구도자들을 덮었다.

쏴아아아아-.

검은 점액을 뒤집어쓴 구도자들은 하나둘 꿈에서 깨어났다.

방금 연초를 들이마신 것 같았지만, 어느새 동쪽 하늘이 밝아져 오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옛 신의 은혜를 찬미한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대영주들이 수도로 모여들 겁니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입니다. 자기 성에서 나온 성주만큼, 자기 왕국을 떠난 왕들만큼 무방비한 존재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이참에 신도들을 모아 맹공을 가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인 신도들이 제 밑에 여럿 있습니다. 그들을 데려가 역사하게 하겠습니다.”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자는 이야기였다.

그때 좋은 제물을 가져왔다며 칭찬을 받았던 침식 사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부의 공격은 저들을 뭉치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저들을 안에서부터 갈라지게 해, 서로를 무너뜨리게 해야 합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수도 안에 있던 아이들 여럿이 죽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진리를 찾아 연결된 신도들도 있지만, 조직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 노란 눈의 괴물이 둘이나 버티고 있는 곳입니다.”

그가 가진 발언권의 크기를 고려하면, 이와 같은 반대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제물을 가져왔던 사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키운 아이가 있는데, 한 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방 안으로 한 소년이 들어왔다.

회색 로브를 입고 있었고,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년에게는 침식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내던 사제들의 로브 안쪽이 크게 일렁였다.

“과연, 저 아이라면 그 노란 눈의 괴물들도 뚫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야. 네가 가거라.”

한 사제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소년의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줄 정도였다.

그 순간.

쾅!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석재와 나무, 벽돌이 와르르 쏟아지고, 수도원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자욱한 먼지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쐐애애애애액-!

창 한 자루가 그 구멍을 통해 바닥에 꽂혔다.

파직, 파지지직!

그리고 다음 순간 푸른 전격이 고리형의 파문을 그리며 뿜어져 나왔다.

검은 로브를 입은 사제들이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푸른 전격은 파도와 같이 그들을 덮었다.

치지지지직!

“크윽!”

“젠장!”

침식 사제들이 바닥을 굴렀다.

뇌 속에 지옥을 기르나, 인간의 육체를 가진 그들은 감전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습격자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저 새벽하늘을 거대한 날개를 가진 비늘 달린 괴물들이 수놓고 있었다.

“청은기사단!”

* * *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그러나 수백m 상공을 날고 있는 청은기사단의 기사들과 전투마법사들은 저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사제들을 제압했다! 이제부터 소탕 작전에 들어간다.”

“완전 침식급 신도가 서른, 부분 침식급 신도가 쉰! 워록들은 범위 마법을 준비하라!”

“두 차례 투하, 두 차례 폭격 후 돌입한다. 가자!”

청은기사단의 기사들이 고삐를 당겼다.

익폭 20m, 몸길이 15m에 달하는 와이번들이 하늘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카아아악!”

서른 기의 와이번이 V형의 편대를 이루고 지면을 향해 급강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침식 신도들은 눈빛을 나누었다.

“온다.”

“우리의 신이시여.”

“저 무도한 자들을 벌할 힘을 주소서.”

끔찍한 살덩어리가 부풀어 오르고 총합 80기에 달하는 침식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11m에 달하는 여섯 눈의 거인, 타락한 정령을 품은 나무 인간 정령 술사, 세 개의 악어 머리를 가진 인간, 검은 깃털을 두른 뼈다귀 수녀, 두 개의 긴 다리를 가진 거대한 뱀…….

수천의 군대로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를 괴물들이었으나, 와이번을 탄 청은 기사들은 미동 없이 강하를 이어 나갔다.

그건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힘으로 바꾸는 법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기사들이 침식자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하아!”

안장에 꽂아둔 투창 형태의 마도구를 집어 들고, 전력을 다해 쏘아낸 것이다.

급강하하는 와이번의 속도에 기사들의 완력이 더해지자, 투창은 그야말로 섬광처럼 날아들어 침식자들의 단단한 몸을 꿰뚫었다.

퍽! 퍼어억!

물론 80여 침식자 중 투창 한 방에 쓰러질 만한 개체는 없었다.

“크르르르!”

“끼이이이이!”

치이이익!

되려 정신 파동을 내지르고 촉수를 뻗고 독액을 분사하며 반격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투창이 황립 마도 공방 최고의 마법사들이 설계한 마도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콰아아앙!

시작을 알린 마법은 파이넬시아의 ‘화염파도’였다.

높이가 5m에 달하는 불의 벽이 반경 100m 넓이로 퍼져나가는 이 마도구는, 전쟁용 마도구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았다.

불길에 휩싸인 침식자들이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파지지지직!

그 뒤를 이은 마법은 세레라지에의 ‘전격 파도’였다.

번개 마법의 역사에서 이 정도 효율로 이 정도 넓은 범위를 공격하는 주문은 없었고, 그런 주문이 마도구로 양산된 적도 없었다.

푸른 전격이 반구를 그리며 반경 75m을 휩쓸었다.

갑옷과 갑각 안으로 파고드는 성질이 더해져 다시 수십의 침식자들이 바닥을 굴렀다.

쿵! 쿠궁! 쿠구구궁!

그런 마도구 서른 발이 떨어진 수도원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나무가 부러지고, 수풀이 불타고, 석재와 목재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홀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완전 변이 급 침식자들도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급강하했던 와이번들은 그들에게 달려드는 대신, 지상 50m 즈음에서 날개를 펼치며 바람을 품고 반등했다.

“올라오는군.”

“곧 안전지대까지 올라오네.”

“준비하자고.”

청은 기사들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자, 열 명의 워록들이 상공에서 대마법을 준비했다.

“불이여.”

“굳게 모여 터져라.”

“끝없이 부풀어 오르라.”

‘화염구’는 황실의 워록들이 수인과 주문, 시약까지 투자해서 만들어야 할 만큼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화염구가 문자 그대로 집채만 한 크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쿠구구구구구구!

1차 폭격에서 살아남은 침식자들은 막 동쪽 하늘을 밝히는 태양이 자신들을 향해 떨어지는 듯한 광경을 보았다.

수도원 정중앙에 떨어진 화염구는 수도원 내성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수도원 외벽까지 날려버렸다.

청은 기사들은 같은 짓을 한 번 더 한 다음에야 지상에 발을 딛었다.

이 폭격을 한 번 할 때마다 금화 수백 닢이 나갔지만, 침식자를 상대할 때는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게 나았다.

그 말을 증명하듯, 모든 나무가 불타고, 돌이 녹아 증기를 피워 올리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침식자가 있었다.

수정질 갑각을 온몸에 두른, 8개의 팔을 가진 침식자였다.

그 침식자를 향해 달려 나간 건 백금발에 세로로 찢어진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대공이었다.

“내가 가겠네.”

침식자가 수정질 팔을 들어 지면을 쳤지만, 발렌시아누스는 되려 그 손목에 황금빛 마나 블레이드 일렁이는 장검을 찔러 넣었다.

침식자의 수정 갑각은 무쇠처럼 단단했지만, 발렌시아누스의 검은 갑각과 갑각 사이를 섬세하게 파고들었다.

사아악!

흑루가 검은 반원을 그리고, 어지간한 사람의 몸통만큼 두꺼운 손목이 떨어져 나갔다.

다음 순간 같은 손 다섯이 푸른 빛을 두르고 발렌시아누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충격파만으로 사람 몇쯤은 으깨버릴 위력이었다.

그러나 대공은 갑옷도 아니라 하얀 제복 차림으로 침식자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참으로 용맹하십니다!”

그 뒤를 바싹 따라온 기사 때문이었다.

텐티아는 투구에 달린 붉은색 리본을 휘날리며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를 두른 검을 휘둘렀다.

막강한 힘과 갈고닦은 기술이 절충을 이루는 참격이었다.

카드드드득!

화한이 침식자의 수정 갑각을 살얼음처럼 바스러트리며 베어갔다.

깔끔한 올려 베기가 단숨에 팔 세 개를 잘라냈고, 텐티아는 그대로 손목을 틀며 검을 크게 베어 내렸다.

서걱!

검 끝에 걸린 팔 하나가 작두 안에 들어간 듯 잘려 나갔다.

발렌시아누스는 침식자의 한 손을 비웃으며 피했다.

“참으로 왜소하고 볼품없구나!”

그는 용언의 불꽃을 마나 블레이드와 함께 섞어 벼려냈다.

“광명께서는 네 사악한 영혼도 신성한 불길로 정화해 주시겠지만!”

태양 같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흑루가 침식자의 정수리로 파고들었다.

“나는 네 머리를 쪼개는 게 즐거울 뿐이다!”

치이이익-.

수정 갑각이 증기와 함께 녹아내렸고, 마지막 완전 변이형 침식자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 *

청은 기사단의 기사들은 쑥대밭이 된 버려진 수도원을 수색했다.

텐티아가 보기에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할 폐허였지만, 청은 기사들과 워록들은 놀랍게도 살아남은 침식 사제들을 넷이나 발견했다.

그들을 오랜 경험과 시동 시절의 배움을 통해 그들에게는 어떠한 심문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제쯤 되면 정신 마법이나 약물을 통한 자백 유도도 소용이 없었다.

따라서 침식 사제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리고 화장되었다.

세레라지에는 그 불구덩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청은기사단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위력은 내가 보기에 괜찮았는데, 그립감은 어떠니?”

“예. 위력은 대만족입니다. 다만 저희는 건틀릿을 끼고 창을 잡으니, 나무로 된 손잡이 쪽이 약간 미끄럽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공방에 말해서 굵은 사포로 마감하라고 하면 되겠니?”

“예. 전하. 그럼 정말 최고의 마도구가 탄생할 거 같습니다.”

그녀는 제 마도구가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고, 색이 다른 눈을 반짝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사와 워록들은 그녀의 천재성을 제대로 알아보았고, 받아 마땅한 대접을 해주었다.

“동생아. 너도 나에게 조금 더 공손하게 굴어 보는 게 어떠니?”

그녀는 곁에 다가온 발렌시아누스에게 말했다.

발렌시아누스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문, 순찰자, 치안감, 대 상아탑 외교사절까지. 나는 직책이 네 개인데, 누나는 공방주랑 상아탑 사절까지, 두 개잖아. 누나가 나에게 공손해야지.”

“흐음. 공손은 모르겠고, 네 안색을 보니 조금 친절하게 대해줄 필요는 있는 보이는구나. 왜 병약한 천재 같은 몰골을…… 진짜 왜 그러니? 혹시 ‘영생’ 부작용?”

세레라지에가 새침한 얼굴을 굳혔다.

발렌시아누스는 말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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