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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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침식자가 먼동이 터 오는 하늘 아래서 하늘이 떠나가라 정신 파동을 터뜨렸다.
“끼이이이이이이-!”
근처에 있던 깡패들과 건설 길드원들이 일제히 귀와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눈동자를 새까맣게 물들인 채로 비틀비틀 일어났다.
발렌시아누스는 차마 글로 쓰지 못할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텐티아와 함께 달려 났갔다.
몇 마디를 들은 하드리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을 정도였다.
“발렌시아누스! 인부들 빼고 성기사들 불러오겠다!”
다행히도 그는 빠르게 제정신을 되찾고 해야 할 일을 했다.
하드리탄은 빼어난 검객이나 마법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직과 사람을 다루는 행정관료였고, 보신주의자의 살아 숨 쉬는 표본과 같았다.
“3구역 철수! 불은 일단 번지게 놔둬라.”
“1구역에서 앙겔루스랑 성기사들 불러와서 투입시켜!”
“너. 당장 대성당으로 달려가서 깨어있는 고위 사제, 아니. 고위 사제들을 깨워서 있는 대로 데려와라. 한시가 급하다.”
“치안감 중에 마나 유저 아랫급은 다 빼서 근처 인원 통제해. 마나 유저급은 주변 수색한다. 동료가 있을지도 몰라. 발견하면 교전하지 말고 성기사를 불러.”
“텐티아 경! 돌진하기 전에 서명 하나만 하고 가십시오. 일단 백금기사단에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경이 요청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식사 중인 기사들을 불러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시잖습니까?”
하드리탄은 신속하게 주변을 통제했고, 정신 오염에 당해 침식이 시작된 사람들은 다행히 서른 명을 넘지 않았다.
발렌시아누스는 흑루에 용언의 화염과 마나 블레이드를 벼려 둘렀다.
노랑과 빨강이 섞여 주황이 되고, 뜨겁고 격렬하게 타올라 일렁였다.
그는 얼마 전 기사단장 제르파스와의 싸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제르파스가 성자를 보고 당황하지 않았다면 그날 철퇴에 맞아 죽었을지도 몰랐다.
검술과 용언을 함께 연마할 방법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다.
“께에에엑!”
“죽여!”
“하나가 되자!”
“녹색 머리의 신을 따르라!”
연기와 불씨가 날리는 공터,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4m급 녹색 촉수 머리 완전 변이 침식자와 서른 명의 부분 변이 침식자가 달려들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눈을 검게 물들이고 녹색으로 변한 손을 뻗는 부분 변이 침식자에게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퍼어엉! 퍼어엉!
지금 등 뒤에서 들려온 두 발의 총성이, 제때 울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퍽, 퍼억!
거대한 마탄이 부분 변이 침식자들의 몸통을 사정없이 꿰뚫고 나아갔다.
두 개의 직선 경로 안에 있던 여섯 명의 침식자는 사지가 떨어진 채로 죽음을 맞았다.
“발렌 님! 엄호할게요!”
휘리리릭, 철거덕!
루디가 상하쌍대 마총을 빙그르르 돌리며 재장전하면서 외쳤다.
“잘했어! 너무 접근하지는 마!”
발렌시아누스는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그는 가볍게 뛰어올라 눈앞에서 달려드는 부분 변이 침식자 하나의 정수리를 디뎠고, 그대로 한 번 더 뛰어오르며 부분 변의 침식자의 목을 몸통 안으로 꽂아 넣었으며, 상공에서 주문을 외쳤다.
“아니마!”
* * *
솨아아악!
백발 금안의 대공이 붉고 흰 새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마도구 백구두 ‘아니마 라멘툼’이 그 사명을 다했다.
한 사람이 25m 거리를 도약하는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존재는 발렌시아누스만이 아니었다.
“께에에엑!”
녹색 침식자는 길게 튀어나온 뒤통수에서 갈라진 네 개의 촉수를 앞으로 뻗으며 발렌시아누스를 허공에서 꿰뚫으려 했다.
촉수 끝에는 강철처럼 단단한 골침이 돋아 있었고, 골침에는 어지간한 고위 사제도 해독하지 못하는 더럽고도 지독한 독이 녹색과 청색으로 번들거렸다.
“하아!”
쿵!
그때 붉은 유성처럼 달려온 텐티아가 침식자의 다리를 들이받았다.
소드 엑스퍼트 기사가 특중갑을 입고 초속 30m로 돌진하자, 아무리 4m이 넘는 괴물이라도 그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끼엑?!”
일순 허공을 가로지르던 네 줄기 촉수의 궤도가 틀어졌고, 발렌시아누스가 주황색 불꽃과 황금색 마나 블레이드가 타오르는 검을 내리그었다.
츠카아악아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녹색 체액과 독액이 튀고 네 개 중 세 개의 촉수가 잘려 나갔다.
본래라면 곧바로 얇은 실 같은 신경줄기를 내밀며 재생했겠지만, 신비가 깃든 용언의 불꽃은 침식자의 막대한 재생력을 억눌렀고, 되려 그 단면을 시가 담뱃불처럼 조금씩 파먹으며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침식자가 끔찍한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고, 텐티아가 그 괴성도 덮어버릴 기합을 넣으며 검을 휘둘렀다.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기사, 텐티아라 한다. 추하구나. 삶과 세상을 포기한 자야. 네놈은 내 손에 갈기갈기 찢겨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녀가 ‘화한’의 자루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에서 빙그르르 휘둘렀다.
핏빛 마나 블레이드가 활활 타오르며 붉은 원을 그렸다.
사아악! 사악!
그 원이 침식자의 몸을 몇 번이고 후려쳤다.
상위급 소드 유저 중장보병이 침식되며 몇 배로 강해진 침식자의 육신도 당근 쪼개듯 쪼개버린 그 공격이었다.
녹색 침식자의 다리에서 살점과 뼛조각이 함께 튀어 올랐다.
놈은 거대한 팔을 뻗어 텐티아를 짓누르려 했지만, 텐티아는 그 주먹을 반으로 쪼개며 응대했다.
침식자는 고개를 돌려 나팔 같은 주둥이에서 독액과 부패 가스를 뿜어내려 했다.
죽을 때 죽어도 한 방은 먹이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
“피어올라 따르는 불꽃!”
이에 발렌시아누스는 주변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와 불꽃을 죄다 끌어모아 침식자의 주둥이와 열다섯 눈구멍, 여기저기 솟은 숨구멍과 독액 배출구에 밀어 넣는 것으로 답했다.
“네놈은 영원히 고통받을지어다! 네놈의 어떠한 기도도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 거머리가 죽지 않고, 유황불은 꺼지지 않는 곳에서 비루한 영혼의 죄악이 모두 불탈 때까지 억겁의 시간을 보내거라!”
거대한 침식자가 바닥을 구르며 몸부림쳤다.
놈의 몸이 여기저기 찢어지며 증기와 진물이 솟았다.
불길에 달아오른 피가 몸 안에서 끓어오르며 증기가 생겨나고, 나갈 곳 없는 증기가 몸을 뚫고 나오는 것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그 모습을 보고 불꽃을 더더욱 몰아치며 눈구멍 속으로 연기와 불씨를 밀어 넣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광소를, 가지런한 하얀 이와 침식자를 찢어발기는 게 즐겁다는 듯한 가학적인 눈웃음을 보며, 치안감들은 발렌시아누스에 대한 소문을 몇 가지 더 믿게 되었다.
‘우리 편이라서 다행이군.’
버둥거리던 침식자의 반항이 일순 약해지고, 놈의 배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최후의 정신 파동을 내지르려는 것이었다.
텐티아는 그 순간 검을 내질렀다.
제국 검술 3단계, 자리이타.
후발선점의 묘리와 함께 그녀의 근육을 감싼 마나가 부드럽지만 강하게 맥동하고.
쑥!
핏빛 장검이 침식자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푸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침식자 최후의 반항이 무위로 돌아갔고.
서걱!
텐티아는 침식자의 목을 쳤다.
“잘했네. 경.”
“전하께서 물러섬 없이 시선을 끌어주신 덕입니다. 기사로서 부끄럽습니다.”
“그런 말 말게.”
붉은 무늬와 금실로 장식한 하얀 제복을 입은 대공과 백금 갑옷을 입고 붉은 망토를 두른 기사가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괴물 앞에서 주먹을 마주쳤다.
같은 색을 두른 둘은 썩 잘 어울리는 기사와 황족이었다.
아직 부분 변이 침식자들이 남아 있었지만.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그들은 루디의 산탄 마탄 앞에서 사지가 떨어지며 세 발 만에 정리되었다.
* * *
“죽겠다.”
발렌시아누스는 그날 저녁까지 공터를 들쑤시고 다녀야 했다.
본래 침식자 이야기는 핑계일 뿐이었으나, 진짜 침식자가 나온 이상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추가적인 침식자나 옛것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소지품을 조사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작년 말 이곳으로 흘러온 빈민가 사람이라 하더랍니다. 정황상 침식의 힘을 사용하던 빈민가 깡패가 코넬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거 같습니다. 이후 울분과 복수심 탓에 침식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하고, 생명의 위기를 느끼자 결국 몸을 넘겨주고 힘을 받아온…… 그런 경우 같습니다.”
발렌시아누스는 성기사 앙겔루스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해줘서 고맙군. 내 시녀를 시켜 기부금을 보내겠다. 금화 1백 닢이면 되겠지?”
“조금 더 쓰시는 게 어떠십니까? 성자님께 인사도 드릴 겸해서.”
“그래. 내가 3백 닢, 황실에서 3백 닢 보내겠다. 잘 좀 봐 달라 전하게.”
군대와 사제들을 몽땅 빌려왔으니 이 정도는 줘야 했다.
‘원래 오늘은 싸울 생각 없었는데.’
그는 넓은 공터가 된 옛 창고 거리를 가로질렀다.
성벽과 가까운 쪽은 이제 평탄화 작업까지 끝났고, 반대쪽은 남겨둔 창고들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한 생도가 노을빛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훤칠한 키와 책임감 있는 인상, 회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
“진. 남아 있었나? 혹시 모르니 정화 기도는 받았겠지?”
발렌시아누스는 의식적으로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예. 전하.”
그 웃음에 학생회장 진은 더더욱 큰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학생회원들을 증원해서 패싸움을 말리면 되었을 일이 너무너무 커져 버린 거 같았다.
괜히 공터를 확보한다고 행정관료들을 귀찮게 하고, 망나니 대공은 거기 살던 사람들을 내쫓으려 교회에서 정화병들을 빌려오고, 결국 멀쩡하게 살던 사람들 수천 명이 집을 잃게 되었다.
발렌시아누스는 눈빛만으로도 진의 생각을 읽고 피식 웃었다.
“진. 역사에 만약은 없지. 네가 아니었으면 저 침식자는 더 강해진 다음에 제 모습을 드러냈을 거다. 그럼 이 거리의 사람들 수천 명이 죄다 정신 파동에 당해 괴물이 되었을 수도 있어.”
“그건…… 결과론입니다.”
“세상은 결과다. 바른 과정을 밟으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이 말을 뒤집으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왔으면 바른 과정을 밟았다는 말이다.”
진은 잠시 혼란에 빠졌고, 텐티아는 면갑을 올리고 쓰게 웃었다.
“전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젊은 엘리트를 타락시키지 마십시오.”
“하하. 들켰군.”
발렌시아누스는 도망치듯 하드리탄에게 다가가 서류를 건네받은 뒤, 손짓으로 진을 불렀다.
“진. 받아라.”
“이게 뭐…… 전하?”
진의 푸른 눈동자에 경련이 일어났다.
발렌시아누스는 경악하는 그를 보며 옅게 웃었다.
“높이는 7층, 층당 16호. 1, 2층에는 상가를 들일 테니 자취방은 총 80호. 그렇게 스무 동을 지을 예정이다. 300년은 갈 석조 건물이고, 계약금과 공사비는 내가 냈다.”
“…….”
“여러 궁정 귀족들이 투자했지만, 그들은 배당금만 받아 갈 뿐 건물의 권리에는 간섭하지 않을 거다. 내 지분은 총 20%다. 나 역시 배당금은 받아 가겠지만, 입주자 선정은 모두 네게 맡기겠다. 이참에 학생회원들에게 특혜를 주고, 인재를 끌어모으는 걸 권장한다.”
“왜…… 제게 이런 것까지 해 주십니까?”
발렌시아누스는 당황하는 진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실 진이 한 살 형이었지만, 진은 그 사실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따지자면 내가 네 삼촌뻘이지.”
발렌시아누스는 선황의 아들이었고, 진은 선황 아들의 사생아였다.
“삼촌이 조카한테 주는 늦은 회장 당선 선물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
“!”
발렌시아누스는 이번에도 많은 비밀을 만들었다.
이 공터에 지어질 고급 공동 주택에서 살게 될 사람들은 모두 학생회나 진의 지인일 테고, 곧 아카데미의 실력자들이었다.
오늘의 진상을 알게 되면 당연히 ‘대피한’ 육체노동자들이 황실에 반발하겠지만, 좋은 자취방이 생긴 아카데미의 실력자들은 그들의 반발에 제집이 날아갈까 두려워 그들을 찍어 누를 것이다.
그렇게 조금만 시간을 끌면 황실에서 분양하는 염가 주택들이 다 지어질 거고, 좋은 집을 싸게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면 당연히 육체노동자들의 반발도 사그라들 것이다.
많은 자금을 투자했지만, 어차피 배움의 거리는 언제나 붐비고, 마법 거리 등과 연결되어 큰돈이 오간다.
땅값이 오르고, 지분을 통해 1층 상가 입주권 등을 두고 경쟁을 받으면 그 자금은 언제든 회수할 수 있다.
게다가 배움의 거리는 어차피 관리해야 만 하는 곳.
제국 수도의 아카데미들은 타국에서도 검과 마법에 재능이 있는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명문들이고, 당연히 온갖 기상천외한 약과 마법, 신비와 기이, 그리고 침식과 옛것 관련 의식이 들끓는다.
그걸 조기에 방지할 수 있다면, 나아가 인력을 통해 그걸 관리하고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면.
몇백 배는 남는 장사다.
“하드리탄. 가자. 황제 폐하께 보고드려야지.”
“나도…… 같이 가는 건가?”
“그래. 이제 곧 대영주들이 도착할 거다. 준비해야지.”
하드리탄은 물소 뿔 안경을 중지로 올리며 웃었다.
“최선을 다하겠다. 제국을 위하여.”
출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