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74화 (135/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74화

(174)

통상 기사들끼리 순수한 무예를 겨룰 때는 착용하고 있는 마도구를 모두 벗거나, 반마력장 안에서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마커스 각하의 기사, 알베토스라 하네.”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기사, 텐티아라 합니다.”

마도구의 유무가 어중간한 실력의 격차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마도구는 순히 갑옷에 ‘견고함’이나, 검에 ‘예리함’ 주문 정도를 새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검에 온갖 주문을 새겨 불과 번개와 바람 칼날을 뿜어내고, 갑옷에 ‘반사’나 ‘충격 흡수 및 방출’ 같은 기이한 마법들을 불어넣었으며, 손가락마다 다른 마법이 새겨진 반지를 끼는 수준이다.

“마도구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없으면 아쉬워하실 거 같은 목소리인데, 쓰시지요. 이 텐티아가 특별히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사 중에는 너무 많은 마도구를 쓰다 보면 마도구에 의존하게 된다거나, 마도구에 새겨진 주술 회로를 가까이하면 체내의 마나 운용에 방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로, 공격용 마도구만큼은 사용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

텐티아는 그랬고.

“후회하지 말게나. 텐티아 경.”

알베토스는 아니었다.

펄, 럭.

태양이 이글거리는 7월 말, 알베토스가 망토를 벗어 던졌다.

텐티아는 그 거구를 보고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육중한 황동색 특중갑에 은은한 마력광이 감돌고 있었다.

관절과 관절 사이의 장갑 아래로 톱니바퀴나 체인도 보였다.

마도 공학의 산물인 마갑이었다.

발렌시아누스가 텐티아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텐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면갑을 올려 알베토스에게 얼굴을 보였다.

서로가 겁먹지 않았음을 확인한 두 기사는 면갑을 닫았고.

“사제를 불러 놓는 게 좋을 거다!”

“그 갑옷은 벗기는 법을 모르겠으니, 심장이 멎어도 원망을 마시오!”

두 마리 들소처럼 격돌했다.

쾅!

공성추가 성벽에 격돌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발렌시아누스는 그 순간 싱긋 웃었고, 마커스는 혀를 찼다.

텐티아가 바람처럼 달려들어 한 박자를 먼저 가져갔다.

그녀가 검을 내리치는 동시에 끈적한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를 둘렀다.

불타는 얼음, 화한이 붉은 면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이에 알베토스는 한 손으로 검을 들어 베어 올리며 쳐내려 했다.

“어림도 없소!”

텐티아는 갑옷 없이도 장정 수십과 줄다리기를 해서 이길 수 있는 기사였고, 그녀의 백금 갑옷 역시 근력 강화 등 많은 보조술식이 새겨진 기물이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내리친 검이니, 같은 소드 엑스퍼트라도 한 손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카드드드드-!

흑회색 마나 블레이드와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가 충돌하고, 알베토스의 발밑이 움푹 들어갔다.

끼이이익!

철판과 기어가 비명을 지르고, 장갑판이 들썩거렸으며, 그 넓은 등이 파르르 떨렸다.

텐티아가 알베토스를 땅속에 묻어버릴 기세로 찍어 눌렀다.

알베토스의 몸이 서서히 기울고, 누가 봐도 그가 밀리고 있다고 생각될 무렵.

“잘 알겠소. 텐티아 경. 이…… 정도로군.”

“여유만만한 말을 하기에는, 목소리에 여유가 없군. 언행불일치요!”

“이제부터라도 일치시키겠소.”

치이이익!

갑옷 판금 사이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마력광이 한 차례 거세게 일렁였다.

갑옷 철판 안쪽에서 톱니와 기어가 맹렬히 회전하고, 광기의 천재 마커스가 근육 구조를 따라 만든 강철 와이어가 수축했으며, 발밑에서 거센 바람이 뿜어져 나와 반탄력을 만들었다.

후욱!

검을 찍어 누르던 텐티아가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땅!

섬광처럼 땅을 박찬 알베토스가 눕힌 장검에 전류를 두르고 내질러 복부를 후려쳤다.

물론 그걸 그대로 맞아줄 텐티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허공에서 무릎을 차올리고 팔꿈치를 내려찍으며 검면을 붙들었다.

파지지직!

팔꿈치와 무릎의 스파이크에서 요란한 불꽃이 튀었다.

쿵!

다시 두 기사가 바닥에 내려앉고, 텐티아는 검을 머리 위로 쳐들고 빙그르르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침식자의 몸을 몇 번이고 갈아내 버린 붉은 원반이었다.

알베토스는 정면으로 막아서는 대신, 왼손 건틀릿에 새겨진 주술 회로에 체내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파지지직!

그의 주먹에 푸른 전격이 번뜩이고, 그는 마치 그물을 던지듯 전격을 방사했다.

물론 텐티아의 백금 갑옷은 낙뢰 마법도 흘려내 버리는 마갑이었고, 알베토스 역시 그걸 알고 있었지만, 애초에 단 1초를 벌기 위한 공격이었다.

카드드득!

붉은 원반이 전격을 베어냈고, 그 사이에 알베토스가 미끄러지듯 달려들었다.

무릎과 팔꿈치의 판금 사이에서 증기가 솟아오르고, 강철 군화 발바닥과 등에서 거센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검을 한 손으로 쥐고 있었고, 텐티아는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두 손 쪽이 더 강하고 정밀하지만, 한 손이 쪽이 더 길었다.

카앙-!

예리한 파공성이 울리고, 텐티아가 걷어차인 공처럼 밀려났다.

몸을 숙이며 멈춘 그녀의 다리는 무릎까지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더 해봐야 하겠소?”

“물론이오! 이제 막 몸이 풀리려 하는걸!”

* * *

백금 기사들과 강철 기사들이 하나둘 침음성을 흘렸다.

‘텐티아. 원래도 열 번 대련하면 일곱 번은 밀렸지만…… 어느새 실력이 저 정도까지 늘었을 줄이야, 이제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알베토스 경은 저 마갑을 제일 잘 사용하는 분이시다. 공격용 마도구 하나 없이 저렇게까지 맞설 수 있다고? 하물며 체격 차도 크다. 인간으로서의 기량은 저쪽이 위야. 역시 황실의 백금 기사라는 건가.’

텐티아와 알베토스의 대련은 30분째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텐티아가 검을 회초리처럼 가볍게 휘두르며 알베토스의 온몸을 유려하게 두드렸고, 알베토스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텐티아의 견갑, 흉갑, 투구를 후려쳤다.

“흡!”

쿵!

텐티아가 진각을 밟으며 힘을 모아 일순 잔상이 남을 듯 가속했다.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양손으로 휘두른 검이 알베토스의 옆구리, 팔꿈치, 어깨, 투구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베었다.

갑옷의 유무와 관계없이 치명타가 될 공격들이었으나, 알베토스는 묵묵히 받아내며 검을 내질렀다.

땅, 하는 소리와 이번에도 텐티아가 밀려나고, 발렌시아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경.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같은 천재들 사이에서는 힘든 건가.’

알베토스가 달려들어 텐티아의 오른쪽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그대로 어깨로 배를 밀어 태클을 시도했다.

텐티아는 왼발로 땅을 박차 일순 중심을 되찾고, 검 손잡이 아래 달걀만 한 쇳덩이로 알베토스의 목덜미와 관자놀이를 다섯 번이나 내리쳤다.

우당당탕!

바닥을 구른 건 텐티아였지만, 일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린 건 알베토스였다.

그 순간 텐티아는 팔꿈치로 알베토스의 턱을 후려쳐 빠져나왔고.

파지지직!

전격을 정통으로 맞아 뒤로 나자빠졌다.

“이런, 이런.”

마커스가 불만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알베토스가 기껏 큰 한 방을 먹여 놓고도 달려드는 대신, 호흡을 골랐기 때문이다…… 라고 발렌시아누스는 생각했다.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기 싸움을 하다못해 기사 간의 승부에 들어간 거다. 나름 도박이었겠지. 이겨 봐야 결국 제이릴리스를 마주해야 하지만, 지면 관료들 얼굴이나 봐야 한다.’

발렌시아누스는 이쯤에서 대련을 멈출 생각이었다.

목적은 마커스에게 충성맹세를 받아내는 거지, 그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는 게 아니었기도 하거니와, 그는 10년 후의 텐티아가 얼마나 강해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경. 무리하지 말게나. 이제 고작 1년이야.’

괜히 지금 한 번의 싸움에서 무리를 했다가 경지에 못 오를 수도 있었다.

미래의 약속된 승리를 아는 자 특유의 여유였다.

“후작. 이만하면-.”

“하아아!”

그때 텐티아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는 듯 우렁찬 기합을 넣었다.

둘은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고, 둘 다 갑옷 위로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기세만은 여전히 형형했다.

발렌시아누스는 텐티아의 검에 굳은 피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은 마나 블레이드를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게 되었군. 경. 내가 경을 모욕했어.’

아름다운 백금 갑옷에 수많은 생채기가 나고, 투구의 붉은 리본이 뜯겨 나가고, 다리를 절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늠름하고 위풍당당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 끝에 경지에 오른 경인데 말이야.’

* * *

텐티아는 문득 숨이 거친 걸 느꼈다.

아무래도 갈빗대가 부러진 거 같았다.

마나로 신체를 보조하고, 판금 갑옷이 외골격처럼 기능해준 덕에 뼈가 몸을 파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럼 싸울 수 있었다.

“흐.”

알베토스는 강했다.

과연 후작이 내보낼 만한 기사였다.

푸화악!

등 뒤로 바람을 내뿜으며 가속하는 몸놀림.

파지지직!

전격을 쏘아내고 그 뒤로 이어지는 돌진.

화르륵!

팔꿈치의 파이프에서 뿜어지는 거센 불길.

사아악!

일순 육체를 폭발적으로 강화하며 내지르는 한 손 베기까지 무엇 하나 위협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나 텐티아는 알베토스의 움직임을 보며 어딘가 조잡하다고 생각했다.

기사는 마나와 육체를 단련하며 그 자체로 완전해질 수 있었다.

‘제국 검술.’

그녀의 몸 안에서 마나가 근섬유와 힘줄을 감싸며 움직임을 보조했다.

때로는 강철처럼 단단하고, 때로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데, 어딘가 거슬렸다.

텐티아는 알베토스를 거울처럼 보며 그 거슬리는 부분을 찾아냈다.

‘찾았군.’

갑옷에 새겨진 수많은 주술 회로가 그의 검술 흐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의식하면 배제할 수 있었다.

주군을 의식하게 하는 적들을 배제하듯, 텐티아는 제 몸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부분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동안은 마나로 근력만 강화했지, 내구성을 높일 생각은 거의 안 했다.’

최고급 갑옷이 있는데, 창검을 몸으로 받아내려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육체 그 자체의 강도가 확보되어야 펼칠 수 있는 기술도 있기 마련이었다.

사아아아-.

붉은 마나가 몸 안을 거미줄처럼 채워 나갔다.

그 순간 텐티아는 헛돌던 톱니바퀴가 맞춰진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제야 온몸의 힘을 한 점에 담아낼 수 있을 거 같았다.

“흐.”

“승부를!”

알베토스가 검에 전격을 두르고 쏘아져 왔다.

특중갑을 두른 그는 인간보다는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골렘 같았다.

텐티아는 유려한 몸동작으로 검을 쳐들었다.

사아아아아아-.

제국 검술 6단계, 자성분별(自性分別).

눈앞의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베는 경지였다.

몸을 슬쩍 낮추며 어깨로 알베토스의 검을 밀어 올린다.

갑옷의 강도를 믿고 정면으로 받아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몸을 한 번 굽혀 줘야 내려 베기에 반탄력이 실린다.

그녀의 몸 안에서 붉은 마나가 팽창하고 또 수축하며 힘을 모았다.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가 살아 있는 듯 울었다.

알베토스와 마커스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알베토스는 패배를 직감했고, 마커스는 그 의안으로 텐티아의 몸속에서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츠-카아아아악!

화한이 요란하게 울부짖고.

알베토스가 갈라진 갑옷 틈에서 증기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텐티아는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었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걸어 발렌시아누스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하.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 * *

후작가의 기술자들과 연금술사들과 마법사들이 알베토스를 비공정 안 의무실로 옮기고, 마커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텐티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커스에게 말했다.

“후작. 비도 그쳤으니 어서 들어갑시다. 황제 폐하가 후작과의 저녁 만찬을 고대하고 있으시오.”

마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순순히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호위대 숫자를 조금만 늘려도 괜찮겠지요? 500명 어떠십니까?”

처음부터 이걸 원했다는 듯 유들유들 웃으면서.

나는 한 방 먹었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내가 들어가자고 말하고, 텐티아 경을 시켜 알베토스 경을 쓰러트린 모양새니, 여기서 호위대를 늘려주지 않기는 또 힘들었다.

너희 기사를 쓰러트릴 수 있는 우리 기사들이 우글거리는 수도 안에, 100명만 데리고 들어와라, 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였다.

“300명. 어떤가?”

“좋지요. 300명으로 하겠습니다.”

하드리탄이 그래도 괜찮냐는 듯 하얀 눈썹을 치켜세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싱긋 웃었다.

마커스는 기다렸다는 듯 골렘 같은 갑옷을 입은 강철 기사, 등에 마법 강철 촉수를 매단 전투마법사, 아무리 봐도 마총 같은 걸 차고 있는 중장 보병대를 꾸렸다.

우리는 성문 밑을 지났고, 형식적인 검문이 뒤따랐다.

그리고 경비병과 치안감이 말했다.

“그럼 무장세 징수가 있겠습니다.”

마커스 후작이 얼굴을 굳혔고.

“무장세?”

“한 뼘 이상의 모든 날붙이, 흉갑을 제외한 모든 갑옷 부위, 마도구, 투구마다 받고 있습니다.”

“무장세를 내고 싶지 않으시다면, 저희 쪽 보관함에서 보관해 드립니다.”

“단, 이때는 보관료가 징수되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내 몫의 무장세 은화를 성실히 납부했다.

“후작도 어서 납부하지 그런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