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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175화 (136/340)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75화

(175)

수도 안에 언제 도적 떼나 반란군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군대를 들일 수는 없었다.

그들이 숙영지를 차릴 수 있게 확보한 공터들도 최대한 성벽에 가깝고 황궁에 먼 곳에 자리 잡게 했고, 만약의 경우 지연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게끔 근처에 석조 건물들을 두었다.

또, 막대한 무장세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덜 들어오게 막으려 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다.

최근 치안감 자리를 얻었고, 매일같이 바르바트스 경, 치안총감과 붙어 있었지만, 아무튼 내 생각은 아니다.

마커스 후작이 나를 튀겨버리고 싶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텐티아 경 뒤로 슬쩍 숨었다.

그녀는 사제의 치료를 받고 상처 치유 물약을 마셨고, 언제 헐떡거렸다는 듯 다시 늠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커스 후작이 경비병에게 말했다.

“총 얼마지?”

“다들 무장 상태가 너무 좋으셔서…… 인당 은화 다섯 닢은 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대충 계산해 보니 금화 150닢 정도였다.

왕국 같은 영지를 가진 대귀족에게 큰돈은 아니었지만, 통행료 따위로 내기에는 미친 금액이었다.

나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후작. 이참에 병사들을 물리고 기사들과 전투마법사들만 데리고 들어오는 게 어떻습니까?”

철혈당주 마커스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강철 의수를 부르르 떨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대공 전하.”

그는 세레라지에와 비슷한 류의 인물이었다.

자기 분야에서는 한없이 강하지만, 조금만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 생겨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분노 조절 장애는 더 자연재해 같은 힘 앞에서 멀끔히 고쳐지는 법이었다.

그래서 오늘 바로 만찬을 잡은 거다.

“짐을 푸시고 나오시면, 바로 황제 폐하께 모셔 드리겠습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마커스 후작의 의안에서 불꽃이 튀었다.

* * *

그가 호텔에 짐을 풀고 본궁 만찬회장으로 오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휘부로 가 치안감들과 바르바토스 경을 만났다.

다행히 비공정을 보고 놀란 수도 사람들의 혼란은 세레라지에의 비구름과 여러 마법사가 떨어트린 우박 덕에 무사히 진정되었다.

청은기사단의 보고를 듣자 하니 동쪽에서 파발이 오고 있다고 한다.

아마 ‘백상아리’ 아세노르타가 보낸 사절일 거다.

“그래도 파발을 먼저 보낸 걸 보니 본대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그만하면 좋은 소식이었다.

그 뒤로 주정뱅이 경력을 살려 약간 맛이 간 포도주가 황제와 후작의 만찬에 올라가는 걸 막고, 이제 안 나오면 심심한 암살자들의 독살 시도와 암살 시도를 막아낸 뒤 다섯 놈을 붙잡아 지하 감옥에 밀어 넣고, 텐티아 경에게 1시간의 낮잠을 명한 뒤 금화가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전하. 이건?”

“새로운 경지에 오른 걸 축하하네. 아까 보니 옛 동기들과 주고받던 눈빛이 애틋하더군. 충성맹세 일정이 끝나면 술이라도 한 잔 하게나.”

텐티아 경이 주머니를 열어 보고 붉은 눈을 부릅떴다.

“술이나 한잔할 액수가 아닙니다만…….”

“어허. 대공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게!”

그렇게 반발을 묵살하고 루디, 본궁 시녀들과 함께 한여름 날씨에 본궁 지붕에 올라갔다.

“큭, 크큭.”

“웃음이 나오니? 전투마법사도 아닌 내가 왜 보초 노릇을 해야 하는 거니? 나는 연구자란다.”

“하늘에서 벼락을 떨굴 수 있는 마법사는 연구자보다 워록일 때 더 유능한 법이잖아?”

본궁 옥상에서 황궁 일대와 도시를 내려다보는 중인 전투마법사들과 세레라지에에게 차가운 음료와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세레라지에는 싸우고 돌아온 텐티아보다도 지친 모습이었다.

새침한 얼굴에 깊은 피로가 깃들어 있었다.

온종일 나무뿌리 아래서 겨우살이 등잔에 기대어 책만 읽는 세레라지에에게, 한여름 태양볕은 그 자체로 폭력이었다.

“누나도 피로회복의 물약 먹어.”

“그건 몸 써서 피로한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거란다.”

“그건 몰랐네. 아. 혹시 빨간 약 만들어놓은 거 있어?”

빨간 약은 각성제였고, 파란 약은 분해제였다.

내가 빨간 약을 찾자, 세레라지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꼭 써야겠니? 네가 아프기를 바라지만, 괴물이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단다.”

“그래도 오늘을 넘겨야 내일도 있는 거 아니겠어? 당장 한 시간 뒤에 마커스 후작이 온다고. 루디. 걔들이 차고 있던 거 마총 맞지?”

루디가 녹색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거보다는 훨씬 조잡해 보였지만, 분명히 마총이었어요.”

마총이라는 말을 들은 세레라지에가 얼굴을 굳혔다.

마총은 상아탑이 전투 마법사들을 보조하기 위해 발명한 물건이었지만, 되려 마법사들을 주술 회로 새기는 노예로 만든 역사가 있었다.

“그건…… 정말 큰 일이구나. 그래. 비공정을 만드는 마법사가 마총을 만들 생각을 안 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잖니.”

“물론 위력이나 품질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거야. 걔들 건 사실상 쇠 구슬을 세게 던지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겠지. 하지만 화살보다 빠르고 강한 원거리 무기가 있다는 건 언제나 부담이야. 그러니까 빨리 빨간 약을 줘.”

내가 정신없이 내뱉자, 세레라지에가 뒤에서 큰 양산을 들고 있던 두 제자에게 말했다.

“들었니? 가서 가져오려무나. 어디 있는지 알지?”

“네. 스승님.”

한 제자가 양산을 놓고 땡볕 아래로 달려 나갔다.

나는 세레라지에에게 슬쩍 말했다.

“그렇게 부려 먹다가 누나 등 뒤에서 칼 맞는다.”

“괜찮잖니. 나도 아콰테그를 하나 받았단다.”

“그걸 말하는 게…….”

“게다가 언제나 사람의 처우란 주변과 비교되는 법이잖니?”

세레라지에게 새침하고 교만하고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황립 마도 공방들 중에서 월급도 제일 많이 준단다. 격주지만 휴일도 있지. 이런 공방 본 적 있니?”

“격주로 휴일이 있다고?”

“그래. 이 주에 하루 정도 쉬면 충분하잖니?”

세레라지에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주변의 전투마법사들과 시녀, 시종들, 루디가 눈을 부릅뜨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했다.

전투마법사들을 지키러 온 황동 기사들과 휘하 정예병들이 중얼거렸다.

“평야 회전 기준이기는 하지만, 전쟁에 나가도 사흘 출격하면 하루는 쉬게 해 주지 않습니까?”

세레라지에가 말을 이었다.

“다른 공방들은 다 한 달에 한 번이고, 조금 자비로운 공방주도 삼 주에 한 번인데, 나는 이 주에 한 번 쉬게 해주잖니. 식사도 내가 사준단다. 자기 일 마치면 마법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이만하면 좋은 공방주 아니니?”

나는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세레라지에 뒤에 선 제자의 눈빛은 스승의 하늘 같은 은혜에 대한 신뢰와 감사로 가득했다.

“원래 노예들끼리 만나면 목줄을 자랑한다고 하잖니? 나도 다른 귀족의 궁정에서 그쪽 궁정 마법사들을 만나면, 제이릴리스 폐하 밑에 있다는 걸 자랑한단다.”

나는 그 자조적이고도 날카로운 통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우리 누나 아주 착하다. 잘했어.”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란다. 그래도 음료수는 잘 마실게. 고맙단다.”

“한 잔은 조심해. 그거 만들 때 주방에서 암살자 잡혔는데, 마비 독이 한 방울인가 어디 들어갔을 거야.”

내 말에 옥상에 올라와 있던 모든 마법사들이 경악하며 제 음료에 해독마법을 사용했다.

그 놀란 표정들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아래층으로 향했다.

저 아래서 마커스 후작이 올라오고 있었다.

* * *

황궁 담 안에는 모기가 없었고, 황실의 정원은 무척 아름다웠기에, 만찬은 반쯤 야외에서 펼쳐졌다.

사방이 뚫린 천막 안에 큰 대리석으로 만든 원형 테이블이 놓였다.

테이블에는 나와 제이릴리스, 마커스와 그의 부관이 앉았고, 예법에 맞춘 만찬이 진행되었다.

만찬은 아주 평화로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식사 시중을 드는 시녀, 시종들을 제외하면 이 자리에서 마나를 못 다루는 사람이나 백작 이하의 귀족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양쪽을 합쳐 정원 주변을 둘러싼 기사만 60명에 전투마법사가 30명, 탐색에 특화된 일반 마법사도 6명이었다.

대공이 말하기에는 조금 천박한 말이지만, 아가리를 잘못 놀리면 대가리가 깨질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은 서로를 존중했다.

그리고 이 원탁에는 대륙 최강의 검사이자, 대륙 최강의 마법사이자, 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앉아 있었다.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황제제이릴리스가 유쾌하니 웃었다.

“정말로 여기까지 오는 데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놀랍구나.”

“예. 폐하. 이 마커스. 최고의 기술자도 최고의 마법사도 아니나, 그 둘을 함께하는 분야에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비공정이 그리 빨라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 그리 신속히 이동했는가?”

“와이번에 비해 기동성은 떨어지나, 야간 운행이 가능합니다.”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으음. 짐도 한 척 가지고 싶구나.”

“아름다우신 폐하께 진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럼 제가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아니 되겠습니다. 대신! 제게 약간의 투자만 해 주신다면, 기술은 얼마든지 공유해드릴 수 있습니다.”

텐티아 경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전하. 정말 오전에 수도 입성조차 거부한 그자가 맞습니까?”

나도 회귀 전에 그를 만나보지 않았다면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을 거다.

서로 검을 뽑을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이뤄지는 마커스와의 대화는 꽤 유쾌했다.

그는 타고난 자신감이 넘쳤고, 노력으로 재능을 개화시켜 자신의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였으며, 대영주로서 후천적으로 길러진 사교성과 언변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제이릴리스 앞에서 저렇게 들뜬 분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건 무척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단정한 줄무늬 정장을 입었고, 신비하고도 호감형인 미소를 지었으며, 길쭉한 팔로 연극적인 제스처를 취해 시선을 모았다.

“폐하. 실은 지금 인스트루멘툼 가문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당장 눈물을 흘릴 듯한 목소리였다.

“서쪽의 왕국들과 공화국들, 초원의 기마민족이 저희를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방어에는 한계가 있지요.”

백금 기사 중 호전적인 자들은 벌써 면갑 아래서 복수심 어린 침음성을 흘렸다.

“제국의 확장 정책이 멈춘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자비로운 솔라타라스는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했지요.”

내 생각에 이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솔레타라스와 자비일 거다.

저 둘을 같이 쓰면 자비가 도망치거나, 솔레타라스가 자비를 짓이겨 자비를 받을 만한 모습으로 만들어놓겠지.

“저 역시 황실에 대대로 충성을 맹세한 몸, 황실의 뜻을 어길 생각은 없습니다.”

마커스가 의안과 멀쩡한 눈 모두에서 눈물을 흘렸다.

“단지. 그들에게 인스트루멘툼의 힘을 보여주어 다시는 제국의 국경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고 싶을 뿐입니다.”

단어 ‘충성’이 나왔고, ‘00하고 싶다’가 나왔다.

여기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황족으로는 못 산다.

침공해서 반격할 수 있게 해주면 충성맹세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제이릴리스가 흡족하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대가 본래 제국의 방패인 후작가의 책무를 기꺼이 다하겠다니, 짐은 감격했노라. 마땅히 그대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게 돕겠노라.”

저건…… 목을 쳐버리고 싶다는 뜻이었다.

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끝났다.

* * *

“폐하. 절대로 들어주시면 아니되옵니다.”

후작이 호텔로 돌아가고, 나와 제이릴리스는 만찬회장에 남아 총총한 별과 우거진 연못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어찌하여 팽창 정책을 펼치는지 짐작가는 바 있는가?”

짐작은 아니었고, 회귀 전에 직접 들은 바 있었다.

“유지비 때문에 약탈을 하려는 거 같사옵니다.”

“유지비라.”

제이릴리스가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와이번핏과 200명의 기사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신무기 개발도 같이하고 있으니, 자금이 쪼들리다 못해 허덕일 지경일 것이옵니다.”

“여기서 불허하면 어찌 되겠는가?”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자신의 영지를 약탈할 것이옵니다. 온갖 세금을 올릴 것이옵니다.”

“허용해주면 어찌 되겠는가?”

“전쟁이 일어나고, 그 혼란을 틈타 옛것 추종자들이 국경지대에 암약할 것이옵니다. 그들은 원한에 찬 사람들을 부추겨 몸과 마을을 바치게 할 것이고…… 그럼 인류의 적이 늘어나옵니다.”

제이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찌 시간을 끌고 어찌 거절할지 생각해 놓아야겠구나.”

나는 단호히 간언했다.

“목을 베시옵소서.”

제이릴리스가 이례적으로 당황했다.

백금색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황금빛 눈동자가 수축했다.

“그대는 언제나 피가 덜 흐르는 해결책을 간하지 않았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 하나의 죽음으로 무수한 목숨이 살 수 있다면, 그게 피가 덜 흐르는 해결책 아니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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