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86)화 (186/340)

(186)

옛 빈민가 최고의 거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다들 외다리 소녀 의원 코넬을 꼽는다.

그러나 코넬이 어째서 최고의 거물이라고 묻는다면 다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재개발 조합장이나 의원이라는 직책도 모두 그녀의 실체 없는 권력을 어떻게든 제국의 제도 안에 집어넣기 위한 용어에 불과했다.

“언젠가, 전사다운 죽음을.”

“언젠가, 전사다운 죽음을!”

굳이 코넬이 보유한 권력의 이름을 문자화해서 기록한다면, 그건 아마 수도 아몬신교 지부 제사장일 거다.

북방에서 숭상하는 늑대와 전사의 신 아몬.

전사의 심장을 가진 소녀는 아몬의 선택을 받아 전사를 길러낼 영광을 얻었다.

디에는 그 소녀에게 선택받은 소년이었다.

“코넬 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며칠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디에. 하지만 조심해. 여러모로…… 흉흉한 시기니까. 미친 마법사 이야기는 들었지?”

“염려 마십시오. 설마 망나니 발렌시아누스라도 마주치겠습니까? 하하.”

“그럴 수도 있으니까.”

연갈색 머리에 연갈색 눈동자, 나이는 코넬과 동갑인 16세, 아몬신교 입교는 이번 달로 8개월째.

그러나 성장이 빨라 단기간에 전투조 2군에 들었고, 이제 어엿한 한 명의 전사가 되었다.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디에는 옛 빈민가를 떠나 거리를 달렸다.

무더운 8월, 상당한 거리였지만, 아몬의 신도들은 달려서 갈 수 있는 곳을 마차로 가는 걸 죄악시했다.

디에는 한 시간이 조금 되지 않아 배움의 거리에 도달했다.

길가의 음수대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과 목을 닦고, 번화한 주변을 둘러보며 약속 장소를 찾았다.

‘여기는 언제나 정신이 없어.’

빈민가도 사람은 많았지만, 그곳과는 또 달랐다.

이곳에는 미래가 열려 있는 아카데미 생도들만의 분위기가, 내일을 향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그 묘한 감각이 있었다.

그걸 동경해서, 이곳이 싫었다.

“이번에 그 미친 마법사 있잖아. 사실 침식자라는 소문 들어 봤어?”

“뭐? 그게 말에 되냐?”

“진짜라는데?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침식자 나왔다고 하면 대귀족들 다 돌아갈까 봐 숨긴 거래.”

“나는 발렌시아누스의 자작극이라고 들었는데. 마법 거리랑 우리 배움의 거리 사이를 통제하려고 자기가 불을 지른 뒤, 우리에게 덮어씌웠다고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네. 여기 좁아터진 거 때문에 우리 매일 싸우는데, 아무것도 안 해주잖아.”

“야. 야. 저기 치안감들 온다. 입 조심해.”

디에는 생도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가, 한 카페로 들어섰다.

역시 배움의 거리라서 그런지, 소문이 빠르게 휘몰아쳤다.

아카데미는 여름 방학을 맞았지만, 카페는 언제나처럼 졸업 과제에 시달리는 생도들로 붐볐다.

디에는 그 사이에서 약속했던 사람들을 찾아냈다.

* * *

테이블에는 디에를 제외하고 이미 네 명이 모여 있었다.

호쾌한 인상에 장검을 찬 푸른 머리의 검술학부생.

음침한 인상에 나무 지팡이를 짚은 검은 머리의 마법학부생.

선량한 인상에 신학교 교복을 입고 머릿수건을 쓴 신학생.

깐깐하지만 정의로운 인상에 안경을 쓴 장년의 남자.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음침한 인상에 마법학부생이 입을 열었다.

“나는 오델리야. 성 세레나데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공부하고 있어. 디에…… 라고 불러도 돼?”

“네. 오델리 누나.”

오델리가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미 들어봐서 알겠지만, 나는 요 며칠간 일어난 폭발 사건이 미친 마법사의 짓이 아니라 침식자의 짓이라고 생각해.”

디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델리는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배움의 거리 근처에서 사고가 있었어. 녹색 폭발이 일어났고, 내 옆 자취방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 다행히 나는 살았지만, 불이 번져서 내가 연구하던 마도서가 완전히 타버렸어.”

“……세상에.”

디에는 마법사에게 마도서가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약간의 애도를 표하고 있으려니, 청발의 검술학부생이 입을 열었다.

“반갑다. 디에. 나는 크리스티안이야. 나도 오델리랑 비슷해. 폭발이 일어났고, 친구가 크게 다쳤어. 사제님께 치료를 받았지만, 부상자가 너무 많아서 완치 받지는 못했어.”

이후 디에는 신학생과 상인의 이야기까지 들었다.

신학생은 순수한 의분으로 나섰고, 상인은 폭발에 비싼 화물이 불타 버렸다고 한다.

“디에. 너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지?”

크리스티안이 디에에게 물었고, 디에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아시겠지만…… 저는 빈민가에서 왔어요. 얼마나 위험한 곳이었는지 아실 거예요.”

“그래.”

“코넬 님 덕분에 부흥할 기회를 얻었죠. 여기저기 커다란 공방들도 생겼어요. 그런데 폭발 때문에, 공방 하나가 문을 닫았어요. 사람도 많이 다치고 죽었고, 손해가 커요. 보내주기로 한 위약금이 장난 아니거든요. 코넬 님이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미루기는 했는데, 잘못하면…….”

디에는 말꼬리를 흐렸고, 크리스티안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디에. 우리 모두 그 ‘침식자’ 때문에 손해를 봤다. 힘을 합쳐서 그놈이 미친 마법사가 아니라 침식자라는 걸 밝히자. 치안감들하고 교회에 신고하는 거야.”

디에는 망설이는 척 물었다.

세상은 소년을 어른으로 만들었고, 그는 영웅이 되려면 대가가 따르며, 그 대가는 주변 사람들이 덮어쓸 때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찾을 방법은 있나요?”

오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약간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침식자는 옛것에게 힘을 받았잖아. 그런데 녹색 불꽃을 다루는 옛것은 흔치 않아. 먼저 어떤 옛것인지 확인하면 추적할 방법이 있어.”

신학생이 순수한 눈망울을 깜빡이다 말했다.

“저. 금서목록 정리본 있어요.”

* * *

“아이니. 녹색 횃불을 든 옛것. 이 녀석일 거예요.”

“그놈이 맞는 거 같아요. 녹색이라는 게 이렇게 강조된 옛것은 흔치 않고, 도시나 성을 불태울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라고 하니까요.”

신학생의 금서목록은 유용했고, 아몬신도인 디에와 마법학부생인 오델리는 빠르게 답을 찾아냈다.

크리스티안이 오델리에게 물었다.

“오델리. 그럼 이제 찾을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쉽게?”

오델리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어깨를 움츠러트리며, 약간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마법 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내가 직접 찾기는 힘들어. 책도 시약도 없어서…….”

“그럼?”

“대신 찾을 방법을 아는 분을 알아. 마법 거리에 있는 분인데…… 호즈. 그분 신고하면 안 돼.”

신학생은 선량한 얼굴에 초연한 미소를 띠었다.

“이미 금서목록까지 빼 왔는데, 제가 뭘 망설이겠어요? 제가 하는 일이 광명신의 뜻에 어긋난다면 이미 알려 주셨을 거예요.”

그녀의 눈이 총기와 광기로 번뜩이고, 일순 오델리와 디에는 마른침을 삼켰다.

오델리가 그들을 데려간 곳은 마법 거리의 깊은 골목이었다.

머리 셋 달린 고양이가 꼬리 다섯 달린 쥐를 쫓고, 뱀이 주인을 산책시키며, 시약의 연기와 기묘한 색채의 안개가 걷히지 않는 곳.

호즈는 주변을 둘러보다 상큼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 화형감이네요.”

크리스티안 역시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오델리. 이곳에서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 거 같다.”

“그,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델리는 간판도 걸려 있지 않은 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 안에도 시약 연기가 자욱했고, 디에는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 반쯤 잠들어있는 노구의 마법사에게서, 코넬이나 선배 전투조원들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디에와 크리스티안, 호즈가 오델리를 바라보았고, 오델리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몸을 떤 뒤, 종종걸음으로 마법사에게 달려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디에의 귀에도 자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마법사가 잠에서 번쩍 깨어난 걸 보니, 뭔가 대단한 말을 한 거 같았다.

늙은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함쳤다.

“못 해! 나는 못 한다! 너희 중 누구도 내게 그런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는 없어!”

그때 장년의 상인이 움직였다.

상인은 비루한 집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품속에서 큼지막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테이블 위에 턱 올려놓았다.

차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반은화, 은화, 반금화가 쏟아졌다.

상인은 금니를 보이며 반금화 한 닢을 튕기고 히죽 웃었다.

“우리는 못 해도, 얘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마법사의 눈에 탐욕이 번뜩였다.

그러나 노마법사는 끝내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너무 위험해.”

디에는 그 모습에서 옛 빈민가 사람들을 떠올렸다.

코넬이 해주던 말도 떠올렸다.

사실 이 거리는 빈민가 사람들의 힘으로 성공한 거라고, 할 수 없으리라 믿고 있어서 해볼 생각도 안 한 거라고, 나는 그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것뿐이라고.

해야 하니까.

“마법사님.”

“꼬마야. 돌아가서 엄마랑 같이 잠이나 자라.”

“엄마 죽었어요.”

“……미안하다.”

디에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마법사님 말이 맞아요. 위험한 일이에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

“침식자가 수도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사람이 다치고 죽고 거리의 희망이 꺾일 뻔했는데, 황제 폐하도, 발렌시아누스 대공도, 바르바토스 단장도, 지방 대귀족들도 아무것도 안 해요. 이걸 두고 볼 수는 없어요. 마법사님. 도와주세요. 마법은 기적 같은 힘이잖아요.”

노마법사와 오델리가 고개를 저었다.

“마법은 기적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거다.”

하지만, 하고 운을 떼며 노마법사는 말을 이었다.

“마법사의 마음은 움직인 거 같구나. 옛것 아이니라고? 그래. 두 시간 정도만 기다려라.”

노마법사가 오델리와 함께 2층으로 돌아갔다.

두 시간 뒤 둘이 내려왔고, 노마법사는코, 눈, 입, 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곧바로 일어서 그를 부축하려 했고, 호즈는 치유의 빛을 준비했다.

노마법사는 크리스티안을 밀쳐 내고 호즈에게서 몸을 돌렸다.

“이건 마나 회로 문제다! 그 빛 치워. 신성력으로 억지로 아물게 하면 다시는 마법을 못 쓸 수도 있다! 그 빛 치우라고!”

“네, 네!”

“오델리. 이제 꺼져라. 다시는 얼씬거리지 마!”

* * *

다섯은 쫓겨나듯 마법사의 집을 나섰고, 오델리는 손수건 안에 무언가를 소중하게 쥐고 있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빛과 피의 선이 이어져 나를 인도하리라.”

손수건 안에서 무언가가 우웅 빛나고 사그라들었다.

오델리는 품속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고 한 번 더 주문을 외웠다.

“빛과 피의 선이 이어져 나를 인도하리라!”

손수건 안에서 녹색 빛이 한 번 더 번뜩이고, 오델리가 허공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디에도 크리스티안도 호즈도 그게 오델리의 눈에만 보이는 선임을 알고 있었다.

“가자!”

‘코넬 님. 제가 진범을 찾을게요. 그럼 침식자 보험에서 돈을 내줄 거예요.’

‘내 검으로 복수해주마.’

‘광명이시여.’

다섯은 한참을 달렸고, 오델리는 숨을 헐떡이며 한 4층 석조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호텔이라 하기에는 초라하고, 여관이라 하기에는 호화로운 숙박업소였다.

“여기서…… 선이 멈췄어.”

오델리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 벽에 등을 기대고 섰고, 크리스티안은 조심스럽게 입구로 다가갔으며, 상인은 뒷문을 확인했다.

그때 디에는 본능적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선배들과 같이 한 훈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다!”

지붕 위를 누군가가 달리고 있었다.

호즈가 양손을 모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외쳤다.

“구마와 분별의 빛이여!”

환한 신성력이 번뜩이고, 인영이 덮어쓴 후드가 벗겨졌다.

“!”

그때 디에는 똑똑히 보았다.

제 또래 같은 소년의 얼굴을.

황족의 상징 같은 탐스러운 백금발을.

‘황족은 몇 달 전에 거의 다 죽은 게 아니었어?’

디에는 그를 쫓아 달리며 외쳤다.

“크리스티안, 따라와요! 호즈. 치안감에게 신고해줘요!”

* * *

“치안감님! 저쪽에 침식자가 나타났어요!”

“뭐? 어디냐?”

“침식자?”

신학교 교복은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 강력한 믿음을 주었다.

호즈는 주변을 달리며 마주치는 모든 치안감과 경비대원들에게 그녀가 본 사실을 알렸다.

그녀의 뒤통수를 보며, 치안감과 비슷한 제복을 입은 사내가 중얼거렸다.

“침식자라…… 황실은 미친 마법사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각하가 좋아하시겠군.”

철혈당주 마커스 휘하 마총 사수 정예병의 복장은 치안감들의 복장과 놀랍도록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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