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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94)화 (194/340)

(194)

텐티아가 침식사 소년을 양단해버릴 기세로 돌진하고, 소년은 좁은 골목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림도 없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치안감들이 전격 부여 두루마리를 찢어 도끼창과 검에 전기 칼날을 두르고 막아섰다.

소년은 멈칫거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전기 무기에 마스터급 전격마법사까지 데려온 이상 영체화로 녹아들 수는 없었다.

좁은 골목인 만큼 투명화도 빛이 바랬다.

“이악!”

스아아악!

소년의 손아귀에서 녹색 화염이 뿜어져 나가기 직전, 득달같이 달려온 텐티아가 강철 군화로 소년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소년이 집어던진 보릿자루처럼 몇 걸음 밀려났고, 텐티아는 예상외의 무게감에 전율했다.

‘200kg, 아니. 300kg도 넘는 거 같았다. 저건 가죽일 뿐인 건가?’

텐티아가 머리 위로 검을 치켜들었다.

불타는 얼음, 화한이 휘둘러질 때마다 붉은 선과 면을 그리며 소년을 압박했다.

쾅!

포장도로를 스친 검이 단단한 바닥과 벽돌을 두부처럼 자르고 조각을 날렸다.

기겁한 소년이 품속에서 손잡이만 남은 검을 뽑았다.

“히힛!”

“너?”

텐티아가 당황하기도 잠시, 소년이 칼날에 반투명한 녹색 칼날을 둘렀다.

타앗, 소년이 자세를 낮추며 텐티아의 왼쪽으로 달려들었다.

사아악!

소년의 검이 텐티아의 왼팔 건틀릿 위를 훑었다.

갑옷을 뚫기는커녕 생채기도 내지 못했지만, 텐티아는 이상하게도 팔에 차갑고도 뜨거운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꼈다.

무언가 저주나 마법적인 기운이 담긴 칼날이라는 뜻이었다.

‘이 갑옷을 뚫고 들어올 정도라고?’

그녀가 움찔한 사이 소년이 몸을 돌리며 불길을 쏘아냈다.

화르르륵!

시리고도 뜨거운 녹색 화염이었다.

텐티아는 망토를 들어서 막아내며 생각했다.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검을 고쳐잡은 순간, 불길 사이에서 소년이 튀어나왔다.

불길 자체를 애초에 텐티아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뿜어낸 듯했다.

사아악, 사악!

소년의 검은 목, 겨드랑이, 팔꿈치 뒤쪽, 오금을 노려 왔다.

기사를 상대하려면 반드시 노려야 하는 포인트들이었는데,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재능이 아니다. 제대로 배웠어. 솜씨 좋은 용병 같군.’

소년이 앞으로 몸을 던지고 빙그르르 돌며 텐티아의 허벅지 뒤쪽을 노렸다.

순간적으로 몸무게를 늘리자, 그 회전이 몇 배로 가속했다.

사아아악!

텐티아는 앞발을 크게 빼 피했고, 그대로 검을 크게 휘둘러 목을 치려 했다.

“칫!”

소년이 허공으로 튀어오르며 검을 눕혀 받아냈다.

카앙!

텐티아의 검격은 소년의 반투명한 검을 가볍게 부수고 소년을 날려버렸지만, 목을 벤다는 목적은 이루지 못했고, 소년은 상처 하나 없이 일어나 검 손잡이에서 칼날을 뽑아냈다.

“히히히!”

타앗, 섬뜩하게 웃은 소년이 왼손에서 녹색 불길을 뿜으며 달려들었다.

“하!”

그러나 텐티아는 투구 면갑 안쪽에서 더더욱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소년을 맞이했다.

예상외의 검 실력에 다소 당황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외 수준이었다.

불길과 검을 같이 다루는 상대와의 대결은 그녀가 자처해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상대의 검술은 저 침식자 소년의 검술보다도 훨씬 악랄하고 음침했다.

침식자 소년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검을 쳐들었다.

체중을 바꾸며 빠르게 빙그르르 도는 검격이, 무척 날카로웠다.

텐티아는 한 박자 기다린 뒤, 제국 검술 2단계, 불망을 펼쳐 소년의 검을 막아냈다.

사악, 사아악!

목을 노리던 검이 튕겨 나가고, 텐티아가 소년의 목을 쳤다.

옆구리를 노리던 검이 튕겨 나가고, 텐티아의 소년의 옆구리를 쳤다.

어깨를 노리던 검이 튕겨 나가고, 텐티아의 검이 소년의 어깨를 찔렀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 손목을 약간 틀어 몸을 꿰뚫고 가르는 대신 충격만 때려 넣었다.

소년이 숨이 멎을 듯 콜록콜록 기침을 토하고,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반투명한 녹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녹색 기운은 자욱한 안개처럼 주변으로 퍼지며 불타오를 준비를 했다.

그걸 읽지 못할 세레라지에가 아니었다.

* * *

“이제 지겹잖니.”

그녀는 옥상에 서서 거리에 번지는 안개를 조소했다.

‘하루아침에 얻은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 같았니?’

그녀조차 아직 용언의 기운을 다룰 때는 세심한 조율과 의식적인 제어가 필요했다.

혈통으로 물려받은 재능도 이런데, 제물과 의식으로 만든 힘을 체화하려면 처절할 정도의 노력과 연습이 필요했다.

적어도 세레라지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르릉!

그녀가 옳다는 듯 먹구름이 울며 찬동했다.

세레라지에는 바람을 막으려 고깔모자 챙을 가볍게 잡았고, 씩 웃으며 발뒤꿈치로 땅을 쳤다.

“못의 벌판.”

높이가 5~10cm 정도 되는 금속제 못 수천 개가 저 아래 거리에서 일제히 솟아올랐다.

신발 밑창에도 철판이 들어간 텐티아는 가볍게 부수며 나아갈 수 있었지만, 침식자 소년으로서는 난감하다 못해 난처한 상황이었다.

“젠장!”

발등을 꿰뚫린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세레라지에는 그 소년에게 난처를 넘어 낭패스러운 상황을 줄 생각이었다.

“쳐라.”

번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못의 벌판을 타고 번졌다.

차르르르르르!

비늘이 떨리는 듯한 소리가 나며 못들이 진동했다.

세레라지에는 그녀가 만들어낸 광경에 몸을 떨며 기뻐했다.

“될 줄 알았단다.”

전격은 바닥을 타고 흘러나가는 대신, 그녀의 인도를 따라 못과 못 사이를 끝없이 내달렸다.

푸른 전류의 선 수천수만 개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전류와 녹색 안개가 닿아 타올랐다.

당장이라도 불타오를 듯 일렁이던 녹색 기운이, 식초 부은 우유처럼 몽글몽글 덩어리지고 뭉치다 결국 가루로 흩어졌다.

“이이익!”

침식자 소년이 하늘을 우러러 눈을 부릅떴다.

* * *

여관에서 나와 텐티아와 합류하던 발렌시아누스는 그 순간 알아챘다.

“됐다.”

몰아넣을 만큼 몰아넣었다.

정신 파동을 쓰려한다는 건, 이제 놈 역시 물러설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세 발의 불꽃 화살을 허공에 쏴 신호했다.

치안총감이 흡음결계를 준비했고, 소드 유저 이하의 치안감들을 후방으로 뺐다.

“루디.”

“네. 발렌 님.”

루디는 반투명한 그림자가 되어 발렌시아누스의 뒤에 붙었고, 상하쌍대 마총 카스파를 들었다.

사점 안경과 빼어난 시력과 갈고닦은 경험이 한데 모여 적의 목덜미를 눈에 담았다.

파아앙!

끼-!

침식자 소년의 후드 안으로 커다란 마탄이 꽂히고, 소년이 전류 흐르는 못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우우 일어난 녹색 불길이 전류를 밀어내고 가시를 녹였지만, 연거푸 날아든 마탄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화르르륵!

거리 한가운데에서 녹색 불길이 타올랐다.

텐티아는 망토와 갑옷으로, 발렌시아누스는 용언의 불길을 일으켜 막아냈다.

침식자 소년은 그 한순간의 공백에 정신 파동을 외치려 했다.

“!”

“!!”

“!!!”

그러나 소년의 후드 안에서는 바람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쩍, 쩌저적!

몇 번의 정신 파동을 받아낸 흡음결계에 끝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걸 보고만 있을 거 같으냐?’

제때 결계를 펼친 치안총감이 단호한 결의로 이를 악물었다.

골목 사이에서 치안감들이 두 번째 흡음결계를 준비했고, 세레라지에가 전광창을 캐스팅했으며, 루디가 마총을 쥐고 세레라지에 옆으로 올라갔다.

텐티아와 발렌시아누스는 나란히 서서 나란히 검을 들었다.

하얀 제복에 붉은 장식을 한 발렌시아누스와 하얀 갑옷에 붉은 망토를 두른 텐티아는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분신 같기도 했고, 대행자 같기도 했다.

텐티아 한 명에게도 목이 날아가기 전까지 밀렸는데, 발렌시아누스가 합류한 이상 승산은 없었다.

소년은 하수도 뚜껑을 열어젖히고 지하수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래서 그는 발렌시아누스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걸 보지 못했다.

* * *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 더 많은 혼란이 필요해. 왜 이 도시 놈들은 내가 몇 번이나 폭발을 일으켰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야? 다들 거리로 나와서 난리를 쳐야 하는 거 아니야?’

소년은 지하수로 안을 빠르게 달려 나가며 생각했다.

그는 발렌시아누스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발렌시아누스는 구심점이 될 만한 지식인들을 침묵시켰고, 배움의 거리가 새 주택가 이야기에 집중하게 했고, 1년 전부터 홍등가와 빈민가에 발을 뻗어 가장 혼란스러워야 할 곳을 고요하게 다졌다.

한참을 달려 나간 소년은 그가 만들어둔 몇몇 부하들을 깨웠다.

“모습을 드러내. 우리가 직접 나서는 건 하수지만, 어쩔 수 없어.”

충성맹세 방해라는 중대한 과업이 고작 소년 한 명에게 맡겨진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내분의 씨앗을 심는 거지, 수도를 지옥도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황제 제이릴리스는 절대 정면으로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서 강한 힘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더 강했으니까.

그러니 그녀가 모르는 힘, 알고도 대처할 수 없는 힘으로 공격해야 했다.

실제로 지금 소년이 모르는 곳에서 내달리고 있는 전령들과 모여드는 대영주들을 생각하면, 소년의 창조자가 소년에게 바랐던 목표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돼.”

소년의 손아귀 안에서 녹색 기운이 흘러 나와 시체처럼 굳어있던 ‘부하들’에게 스며들었다.

이 부하들은 키가 2.5m에 달했고, 몸은 약간 썩어 뒤틀린 근육질에 창백했으며, 드문드문 갈라진 갈비뼈 안쪽과 눈, 입 안에서 녹색광을 뿜었다.

“끼이이익…….”

“시이이익!”

시식귀라 불리는 고위급 언데드, 구울이었다.

힘으로는 ‘흉물’ 어보미네이션이나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 ‘죽음의 기사’ 데스나이트에 밀리지만 정신 파동을 쓸 수 있다는 게 구울의 장점이었다.

구울 30기가 일어나 소년에게 머리를 숙였다.

쾅!

다음 순간 구울의 머리 하나가 썩은 호박처럼 터져 나갔다.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 텐티아가 구울의 뒤통수를 잡고 지하수로 벽에 찍어버린 거였다.

“어?”

파아앙! 파아앙! 파아앙!

산탄 마탄을 장전한 마총이 연이어 불을 뿜고, 구울들이 하나둘 뒤로 나자빠졌다.

“죽, 죽여!”

구울 셋이 입을 쩍 벌리며 몸을 날렸다.

어지간한 사람은 반응하지도 못할 속도였지만, 신의 눈조차 닿지 않는 이 지하에 어지간한 사람은 없었다.

파지지지직!

세레라지에의 연쇄 번개가 푸르게 번뜩였다.

쿵! 우당탕!

득달같이 뛰어올랐던 구울들이 그대로 몸을 굳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구울까지 다룰 줄은 몰랐잖니. 폭발, 정신 파동, 부활, 지배…… 말로만 들어보면 거의 주교급이구나. 같이 가는 게 어떠니? 안심하렴.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너는 아주 오랫동안 살게 될 거란다.”

그녀의 도도한 얼굴에 전격이 만들어낸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그래. 그건 나도 약속해줄 수 있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발렌시아누스였다.

그는 흑철 기사 열 명과 단장 바르바토스를 대동하고 있었다.

“넌 웃긴 놈이야. 아무리 잘 숨어도 네가 나보다 여기를 잘 알 거 같았어?”

그 잘생긴 망나니가 바닥에 쓰러진 구울들의 머리를 하얀 구둣발로 짓이기며 다가왔다.

“저 추악한 시식귀들을 모두 쳐죽여라!”

바르바토스의 고함과 흑철 기사들의 난투를 배경 삼아서.

세로로 갈라져 고요히 타오르는 동공은 여전히 피폐했지만, 더 이상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나 화려한 제복으로 몸을 두르고 있던 발렌시아누스에게서, 제복보다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건 절박함이었다.

지난 한 달간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며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온 망나니는, 코앞까지 다가온 목표 앞에서 거리낌 없는 기량을 뽐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오, 오지 마.”

“팔다리를 다 자르고 혀와 성대를 도려낼 거야.”

“오지 말라니까.”

“네 정보 같은 건 필요 없어. 뇌에서 직접 뽑아낼 거거든.”

“오면 터뜨릴 거야!”

대공의 발걸음이 일순 멈칫했다.

소년은 후드 너머에서도 절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지하수로 여기저기에, 내 불꽃을 준비해 놨어. 내가 신호하면 언제든 날려버릴 수 있다고. 대귀족들 묶는 호텔이 무너지면 참 볼만한…….”

멈췄던 발렌시아누스가 다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해 봐. 새끼야.”

육두문자를 퍼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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