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198)화 (198/340)

(198)

세레라지에는 예상외로 수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황족이 자신들의 애정을 받을 만한 자들이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애정을 주고 싶어했다.

제이릴리스는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멀고 고고했다.

제국의 황제는 사랑과 애정보다는 경외와 두려움 어린 존경을 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발렌시아누스는 남녀, 노소, 빈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개망나니였다.

설령 그가 개망나니가 아니었다 해도, 수도 사람들은 황제의 쌍둥이를, 그것도 본래라면 계승 서열이 앞서는 황형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다.

헬레나, 하드리탄, 데니아는 사람들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실을 향한 충성심과 애정은 있었으나, 황제도 황형도 애정을 받을 만한 자는 아니었고, 그 애정은 모두 한 마법사에게 향했다.

“세레라지에 전하시다!”

“전하! 도와주세요!”

상아탑이라는 출신이 증명하는 실력.

엘리트 코스, 1년간의 몰락, 화려한 부활이라는 매력적인 서사.

빈민가에 투자했다는 친서민적 행보.

발렌시아누스를 쓰러트리고 내쫓은 통쾌함.

지적인 인상을 주는 긴 남색 머리카락과 신비하고도 청초한 금은 요동.

동경하기에 알맞은 거리감을 유지해주는 새침한 고양이 같은 외모.

언제나 지팡이, 챙 넓은 고깔모자, 로브라는 마법사의 완전 무장을 갖추고 다니는 도도한 태도.

먼발치에서 보고 고개 숙이면, 가볍게 한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해주는 자비로움까지.

세레라지에는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좋은 요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유히 걸어 나오며 지팡이를 들었다.

“디스펠.”

일순 노란빛이 번뜩이고, 잘 익은 멜론 정도 크기로 뭉쳐든 화염의 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디스펠은 캐스팅보다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하지만, 세레라지에는 20분도 넘게 용언, 주문, 수인, 지팡이, 시약을 총동원해 주문을 준비했고, 깔끔하게 성공했다.

약간의 현기증이 남았지만, 이 정도는 귀여운 대가였다.

“이-!”

발렌시아누스가 예견된 적의를 드러내고, 세레라지에는 혀를 차며 지팡이를 땅에 내리쳤다.

“동생아. 돌아가자꾸나.”

땅!

노란 보석에서 전류가 번뜩이고, 감전된 발렌시아누스가 썩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마지막 순간 돌에 머리를 찧기 싫어 살짝 몸을 트는 몸놀림이 능숙했다.

세레라지에는 지팡이를 크게 돌리며 발렌시아누스에게 가리켰다.

“네 부자유가 저들의 안전이잖니.”

돌바닥에서 돌로 된 사슬이 뽑혀 나와 발렌시아누스의 손목과 발목을 꽁꽁 묶었다.

“와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그녀가 불러왔던 먹구름 천둥보다 큰 함성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곧 치안감들이 오면, 적당히 챙겨서 황궁으로 돌아가면 되니? 텐티아 경이 빨리 와 주면 좋겠구나.’

“세레라지에!”

“세레라지에! 세레라지에! 세레라지에!”

“전하. 만수무강하소서!”

“저 망나니를 죽여주세요.”

“복수를!”

그녀는 쏟아지는 외침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큰 목소리, 강력한 주문을 쓴 후유증, 아무리 슬라임들이 정화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역한 냄새, 암순응이 끝나지 않은 눈을 괴롭히는 광채, 함성에 실려 오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탁류가 그녀를 괴롭혔다.

‘빨리 들어가고 싶잖니. 뿔과 비늘이 안 가라앉는 걸 보니 붉은 약도 먹여야 하겠구나.’

손등 힘줄이 하얗게 달아오를 정도로 지팡이를 강하게 잡고 버티고 있으려니,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갈라졌다.

‘누가…… 온 거니?’

* * *

차르륵, 치이이익, 위이이잉.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증기 뿜어지는 소리, 체인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낯익은 얼굴이 구멍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세레라지에 전하. 이제부터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세로줄 정장, 미묘하게 색이 다른 검은 눈동자, 금테 두른 외안 안경, 사람 좋고 지적인 웃음.

그러나 같은 마법사인 세레라지에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정장과 안경 너머에는 어지간한 침식자조차 기함하며 도망칠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서부에서 제일 위험한 대영주.

철혈당주 마커스였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도 저희 쪽에서 모시습니다. 아무래도…… 그분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 했는지 황제 폐하도 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저들에게 던져 줄 수는 없고요.”

성난 군중의 목소리가 아직도 요란하게 울렸다.

세레라지에가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기계 기사 두 기가 지하수로로 뛰어내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세레라지에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마커스 옆에 선 소년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 애가 왜 여기에 있니?’

하얀 머리, 반쯤 감긴 붉은 눈.

루디와 텐티아가 데려갔던 침식자 소년이었다.

* * *

루디는 수도의 몰락 귀족 출신이고 텐티아는 유서 깊은 기사령 출신이었다.

루디는 갈색 머리를 길렀고, 텐티아는 붉은색 머리를 짧게 잘랐다.

루디는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인상이었고, 텐티아는 늠름하고 호쾌한 인상이었다.

루디는 10살에 견습 시녀로서 일을 시작했고, 텐티아는 7살에 시동으로서 검을 쥐었다.

루디는 오랫동안 계승 서열 수백 번대의 이름뿐인 황족을 모셨고, 텐티아는 아카데미에 수석으로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기사 서임을 받았다.

루디는 암살자 식 전투 교리를 배웠고, 텐티아는 기사 중의 기사였다.

그렇게 다른 둘이지만 같은 게 있다면.

“기사님.”

“그래. 느꼈다.”

같은 사람을 모시며, 살의와 적의에 극도로 민감했다.

루디는 마차 창문 커튼을 슬쩍 열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황궁으로 가는 대로를 달리고 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언 듯 보이는 몇몇은 걸음걸이가 너무 일정했다.

“아아.”

루디는 6연발식 아가테와 마법 단검 ‘생동’을 쥐고, 사점 안경을 고쳐 쓰고, 제자리에서 몸에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정신을 깨웠다.

상냥하던 녹색 눈에 유리 조각처럼 예리한 기운이 어리고,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위쪽. 건물 위하고 뒤에서 따라오는 마차 다 함정이에요. 마부는 협박당한 거 같고, 큰 무기는 보이지 않네요. 실력파 아니면 마도구겠지만, 수도 안인 만큼 실력파일 확률이 높겠죠. 속사로 제압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철컥.

텐티아는 붉은 망토 오른쪽 고리를 풀고 한 바퀴 뒤집어서 왼팔 건틀릿 손목에 걸었다.

전신 판금 갑옷을 입으면 방패가 따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어떤 마도구를 사용할지 모르고, 일단 몸에 공격이 닿기보다는 팔로 막아내는 게 나았다.

굳이 검에 손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기사 중의 기사이자 일류 검객이었고, 언제 어느 자세에서도 발검할 수 있었다.

‘옆 거리에서 비명과 질주 소리가 들린다. 질주하는 사두마차를 따라올 정도라…… 소규모 경장 기병이다. 마커스. 결국 움직인 건가?’

텐티아는 기본적으로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주군을 더 잘 지키고 따르는 법에는 관심이 있었다.

발렌시아누스와 제이릴리스가 지난해부터 북부, 중부, 동부의 대귀족들을 만나며 충성맹세의 포석을 깔아오던 과정도 가까이서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보기에, 지금 수도에 올라온 대귀족 중 가장 위험한 자는 철혈당주 마커스였다.

‘마총을 개발하려 한다는 점에서 상아탑과도 충돌할 거고, 안정이 아니라 확장을 꾀한다는 점에서 폐하와도 부딪친다. 아마 영토 확장 허가를 공동의 목표 삼아 다른 귀족들을 끌어들였겠지.’

가운데에 교통섬을 둔 환상 교차로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마부가 고삐를 당겨 속도를 줄였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적들이 나타났다.

“꺄하하하하하!”

오른쪽 대로에서 경장 기병들이 달려왔고.

“쳐라!”

왼쪽 대로에서 경장 보병들이 날 듯 쏟아져 나왔다.

새파란 칼날을 본 마부는 그대로 고삐를 당기며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물론 텐티아와 루디는 애초에 마부가 정신을 차려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루디는 아가테를 쥐고 접근을 기다렸고, 텐티아는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 * *

‘공포새?’

오른쪽에서 덮쳐 온 적들이 타고 있던 생물은, 마치 타조를 조금 더 키워둔 듯한 외견에 단단한 부리를 가진, 날지 못하는 새였다.

텐티아는 남서부 사막에서는 사는 공포새 경장 기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힘은 말보다 약하지만, 방향 전환이 빠르고 덜 먹어서 유목 민족들이 습격에 애용한다는 짐승이었다.

그런 공포새 100여 마리를 탄 경장 기병들이 기이한 함성을 지르며 덮쳐 왔다.

그들은 사슬 갑옷 위로 기하학적인 무늬가 들어간 서코트를 여미고, 천을 감아 만든 모자를 썼으며, 활과 투창, 초승달처럼 휜 곡도로 무장했다.

“아르르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

텐티아는 그들의 앞을 홀로 막아서며 면갑을 올려 늠름한 얼굴과 붉은 눈을 드러냈다.

“나는 발렌시아누스의 대공 전하의 기사, 텐티아라 한다. 나는 그대들이 두렵지 않으며, 싸울 준비가 되었다. 내게 도전할 자 누구인가?”

“히히히히히히!”

“히히히히!”

그녀를 비웃는 목소리가 경장 기병들 사이에서 울렸다.

남서부의 전사들은 저런 싸움 방식을 ‘무식한’ 것으로 치부했다.

선두의 사내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고삐를 당겨 달려들었다.

그의 손아귀를 떠난 투창 한 발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곧이어 초승달 같은 곡도가 뽑혀 나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그대들은 내 포로가 될 수 없다!”

텐티아는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박차며 가속했다.

텅, 투창이 건틀릿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적잖은 충격이 실린 걸 보니 상대도 소드 유저 급은 되는 거 같았다.

“기사! 죽어라!”

눈앞에서 공포새 기병이 곡도를 치켜들었다.

텐티아는 막거나, 피하거나, 튕겨내는 대신, 건틀릿 낀 오른쪽 주먹을 휘둘러 공포새를 때려눕혔다.

소드 엑스퍼트의 몸놀림은 무겁고도 빨랐다.

기수도 공포새도 피하기는커녕, 보지도 못했다.

뻐억!

목이 부러진 공포새가 걷어차인 공처럼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당황한 경장 기병은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고, 텐티아는 그제야 검을 뽑았다.

“자, 잠깐!”

“그대는 내게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 나는 그대를 모른다.”

그런 ‘무식한’ 방법을 기사들이 고집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텐티아는 당황한 경장 기병의 목을 베었고, 그 목을 들어 뒤따라오는 경장 기병에게 집어 던졌다.

“자! 내게 도전할 이름 없는 자 누구인가!”

장검 ‘화한’에서 피같이 끈적한 질감의 마나 블레이드가 타올랐다.

‘여전히 대단하시네요.’

텐티아는 뛰쳐나갔지만, 루디는 마차 안에서 기다렸다.

‘전신 판금 갑옷이 없는 자의 비애에요.’

왼쪽 문이 열리고, 한 경장 보병이 상반신을 들이밀었다.

그는 경장 보병 주제에 판금을 덧댄 가죽 갑옷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관절 부위에는 톱니바퀴와 체인이 보이고, 허리춤에는 마총 비슷한 걸 차고 있었다.

‘T’ 형태의 투구 눈구멍은 유리인지 수정인지 모를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사점 안경과 같은 주문이 걸린 마도구였다.

“운이 좋군.”

마커스를 섬기는 정예병은 마차 안에 백발의 소년 표적이 있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고, 그 소년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기뻐했으며, 마차 안에 있는 게 여리여리한 인상의 시녀 한 명뿐이라는 걸 알고 환호했다.

“얍!”

그는 그 시녀가 얼음으로 만들어진 칼날을 눈구멍으로 찔러넣어서 눈이 꿰뚫리고 머릿속이 헤집히는 순간까지도 웃고 있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정예병이 쓰러지고, 경장 보병들이 활을 당겼다.

근력 강화와 사점 투구는 궁술을 사용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퍽, 퍼억, 퍼어억!

마차가 고슴도치처럼 변하고, 마커스의 병사들은 침착하게 마차 문을 열었다.

“잘 오셨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던 건, 의자 발치에 엎드려 있던 루디였다.

“그리고 안녕히 가세요.”

퍼어엉!

마총 카스파가 산탄 마탄을 발사하고, 문 앞에 모여 있던 10여 명이 동시에 나동그라졌다.

“아아악!”

루디는 ‘생동’과 ‘아가테’를 쥐고 몸을 날렸다.

“발렌 님을 방해하려는 거죠? 그렇죠? 아아, 이 숨 쉬는 산소가 아까운 자들! 모두 광명신 곁으로 가 주세요.”

멱살을 잡고 그 몸을 방패 삼아 아가테를 발사하고, 생동으로 투구 틈과 관절 부위를 찔러 절명 시키고, 그렇게 피로 만들어낸 칼날을 휘둘러 목을 쳐내고, 바닥을 구르며 종아리 뒤쪽을 찌르고, 뛰어오르며 턱 아래를 꿰뚫고…….

시녀와 기사, 두 ‘섬기는 자’가 전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열사암후의 암살자들은 그림자조차 없이 마차에 다가갔고, 백수십 명의 병사들이 도륙당하는 동안 소년 하나를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

루디는 어느 순간 마차 안이 텅 빈 걸 보았고.

“히히.”

씩 웃으며 뺨에 튄 피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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