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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급 전투 사제들이 성자를 중심으로 한데 모여 기도를 올렸다.
“드리워진 장막은 광명 앞에서 걷히기 마련이고, 부정한 영혼은 광명 앞에서 횃불처럼 타오르기 마련이며……”
광명신교 수많은 신도 중에서 가려 뽑은 성기사들이 몰려오는 침식자로부터 그들을 지켰다.
“한 놈도 보내지 마라!”
“용감히 싸워라!”
“우리는 당당히 천국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쿵, 쿵, 쿵, 쿵!
“워어어어!”
완전 변이 침식자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왔고, 성기사 앙겔로스에게 마차만큼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퍽!
앙겔로스는 걷어차인 공처럼 튕겨 나갔고, 두꺼운 전신 갑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다.
그러나 이미 전투 기도를 마치고, 광명의 축복까지 받은 단장급 성기사의 회복력은, 초인적이라는 말로도 모두 표현할 수 없었다.
콰드드득!
바닥을 구르는 게 멈추기도 전에 그의 뼈는 달라붙고 살은 아물었으며, 피 역시 다시 차올랐다.
“주여! 더 세게 내리치소서! 그리고 무너지지 않을 힘을 주소서!”
타앗!
성기사가 중심을 되찾고, 빛무리에 휩싸인 채로 내달렸다.
쾅!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듯, 앙겔로스의 검이 침식자의 발목을 쳤고.
쿵!
4층 건물만큼 거대한 침식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발렌시아누스는 세레라지에와 텐티아, 루디의 엄호를 받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마테오스가 마지막 구절을 외웠다.
“마땅한 대접을 받게 하소서!”
화아아악-!
창백한 백색광이 불길 번지듯 사방으로 퍼졌다.
신성한 불꽃의 파도는 솔레타라온 성벽 안 모든 공간으로 퍼져나갔고, 제국 거리의 가장 음습한 뒷골목까지 휩쓸었다.
쓰레기통 속으로 몸을 숨기던 침식자마저도 그 불길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다.
“끼에에에엑!”
총합 2만도 넘는 침식자가 살이 지져지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둠 속에서 본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하얀 횃불처럼 타올랐다.
1km에 달하는 이물도 화끈거리는 고통에 신음하며 옆 건물에 몸을 비볐다.
언 듯 보면 일격에 모든 침식자를 불태워버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마테오스는 이 기도로는 치명상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손에 꼽는 대도시 전체를 정화한 대가로 목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눈에 잘 띄게 되었다는 걸 제외하면, 사실상 화만 돋웠을 뿐입니다. 발렌 대공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성자의 걱정은 사실이 되었다.
“아악!”
“이, 이것들이!”
실제로 도시 곳곳에서 싸우던 자경단과 정예병, 기사들이 고통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 침식자들에게 되려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테오스의 인내심은 저 멀리 대성당을 지키기 위해 나온 신도들이 미쳐 날뛰는 침식자들에게 쓰러지는 걸 본 순간, 한계에 다다랐다.
“발렌 대공! 이제 말해 주십시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기도를 올리라고 한 겁니까? 눈에 잘 띄게 되었다는 걸 제외하면 사실상 아무런 이득이 없지 않습니까?”
발렌시아누스는 투구 면갑을 내린 채로 마테오스를 돌아보았다.
“눈에 잘 띄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마테오스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성자인 그의 감은 꽤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청은 기사단은 대영주들의 숙영지 위를 정찰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중부 일대를 순찰하며 대귀족들이 수도에 모인 틈을 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려 했던 침식 교단들을 침묵시키고 있었지요. 슬슬 무장 교체가 끝났을 겁니다.”
카아아악!
저 서쪽에서 침식자와 한없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마테오스는 와이번핏 위로 날아오르는 50개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기사단은 대단한 전력이지만, 이 상황이 기사단 하나 더 출격시킨다고 해결될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들고 있느냐, 그리고 부수적 희생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느냐의 문제죠.”
“……놈들은 시가지 한가운데에서 출현했고, 주민 대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정신 파동을 근거리에서 얻어맞았으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신세일 겁니다.”
마테오스는 의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신념이 어린 목소리였다.
발렌시아누스는 눈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
“그게 제일 문제입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되어 버리니까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너무나 약하기에, 이것 외에는 침식자 2만을 쓰러트릴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대공.”
“그리고 저들이 변한 몸에 적응하고 정신 파동을 내지르는 순간 2만은 4만이, 4만은 10만이 될 겁니다. 그럼 이 도시는 망할 거고, 황실의 위세는 바닥에 떨어질 테고, 대영주들은 각자도생을 시작하겠죠. 미친 듯 서로를 침공하며 말입니다.”
“…….”
“당연히 제일 많이 다치는 건 힘없는 신민들일 거고, 이 세상에는 그들의 부름에 답할 온갖 사악한 악신들이 바글거립니다.”
“그게 그들을 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고…….”
마테오스는 말을 잊지 못했다.
발렌시아누스가 하늘에 뚫린 마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이 어려 있었다.
그 역시 황제가 마경 속으로 날아들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발렌시아누스가 자괴감과 자부심이 이중으로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진짜 황제로 만들 거고, 그 아래에서 영화를 누릴 겁니다. 그걸 위해서는 이 도시가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보다 적은 사람을 죽이는 건 슬픈 일이지만, 이 잘난 대공의 작위는 그걸 위해 받은 것입니다.”
마테오스는 평소와 달리 너무나 진솔한 목소리를 들었다.
발렌시아누스는 경박한 가면을 벗은 게 아니라, 그걸 쓰고 있을 기운도 없는 듯했다.
“발렌시아누스!”
“내 책임은 내가 사태와 해결책을 외면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고, 그대가 일으킬 기적에 모든 걸 의지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며, 내가 당신에게 사과하는 것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청록색 빛이 내리쬐는 밤하늘 아래, 침식자들의 괴성과 와이번 날갯짓 소리가 아득하게 울려오는 가운데.
성자 마테오스 앞에서 언제나 망나니 황형 발렌시아누스였던 소년 대공은, 제 반쪽을 두 번이나 눈앞에서 떠나보낸 오라비가 되어 말했다.
“유감입니다. 마테오스. 이게 내 방식입니다.”
다음 순간 수십 발의 대마법급 마도구가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 * *
청은 기사단이 사용하는 투창형 마도구는 일회성이었고, 고작 한 번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쌌다.
‘화염 파도’ 주문을 새긴 투창 하나를 만들려면 대장장이, 목공 장인, 마나를 머금을 수 있는 질 좋은 금속, 섬세한 은 회로, 주문을 물건에 새기기 위한 대량의 시약, 최고위 기술자인 마법사 인력이 모두 필요했다.
게다가 주문이 강해질수록 도구화, 제품화하는 데에 더 많은 재화와 노력이 필요한 마법의 특성상, 대마법급 마도구는 그야말로 한 발 한 발이 금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너무 많은 자원, 너무 많은 마나, 너무 많은 지성이 한 번의 파괴만을 일으키고 사라질 물건을 만드는 데 투입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인 솔레타라스 제국에서도 양산은 황실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역대 황제들은 양산을 포기하지 않았고, 47대 황제인 제이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되려 본인이 친히 공방에 들어서서 마법사들과 함께 회로도를 보강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값비싼 파괴 도구는 와이번을 탄 청은 기사들의 손에 쥐어질 때만 진가를 뽐냈다.
기사는 초고가의 갑옷을 입고, 거액의 녹봉을 받으며, 어릴 적부터 아무런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수련에만 몰두한다.
와이번핏은 지름이 수백m에 달하는 거대 건축물이고, 매년 건물 유지비만 금화 수천 닢이었으며, 흉년이 들어 사람이 굶어 죽어도 그곳의 와이번들은 고기를 먹었다.
금화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피와 땀을 거둬 만들어낸 게 고작 파괴 도구라는 사실에 염증과 아이러니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와이번핏에서 일하는 관료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 관점은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보험의 진가는 재난이 닥쳤을 때만 느낄 수 있었다.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명령이다! 투하하라!”
“저 괴물 새끼들에게 받아 마땅한 대접을 해주어라!”
청은 기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50기의 청은 기사들이 지상을 향해 급강하했다.
어둠 속에서 하얀빛을 내며 타오르는 침식자들은 아주 아주 잘 보였다.
쾅!
그 빛이 제일 촘촘하게 모인 곳에, 가장 강한 살상 마법이 담긴 투창이 떨어졌다.
화르르륵!
높이가 30m도 넘는 ‘화염 파도’가 동심을 그리며 지름 500m까지 퍼져나갔고, 그 안에 든 모든 생명체를 불태웠다.
수천 도도 넘게 치솟은 열기가 목재를 불태우고, 석재를 녹였으며, 철골을 끓어오르게 했다.
“끼에에엑!”
강철과 돌이 녹아 끓어오르는 그곳에서도 살아남은 괴물은 있었다.
열기 그 자체에 면역이 있는 계열의 침식자였다.
그 개체 자체가 화산처럼 타오르고 있기도 했다.
물론 청은기사들은 다른 마도구도 가지고 있었다.
쾅!
파지지직!
세레라지에의 확산-침투 술식을 새긴 투창이 쏘아져 나갔다.
“키리리릭!”
“끼에에엑!”
불타지 않은 침식자는 온몸이 오그라들며 죽음을 맞았다.
“하늘에서 계속 던져라! 잔당은 땅의 기사들이 처리할 것이다!”
“고도를 유지하라!”
“싹 다 불태워라!”
청은 기사단장은 기사들을 일정 고도 이하로는 하강시키지 않았다.
지상에서 날아 오르려는 침식자들과 뒤섞이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저 불지옥 속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들과 눈이 마주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 * *
대마법급 마도구는 한 발 한 발이 반경 500m를 불태웠다.
제국 중심부의 인구 밀도는 굳이 말하는 게 민망했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거나 침식되었다 해도, 그만큼 많은 부상자와 생존자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도 이물 근처에 있던 이상 잠재적 위험 요소였고, 내일 또는 몇 시간 뒤에는 적이 될 확률이 높았다.
‘전하.’
하지만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충성스러운 신민이었던 사람들을 위험 요소로 대하는 건, 아무리 살육의 업을 가진 기사들이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본래 윗사람은 대의를 위해 아랫사람을 잘라내는 모습을 함부로 보여 주면 안 됩니다. 다른 아랫사람들이 자기도 잘려 나갈까 두려워하게 되니까요.’
청은 기사단장은 5명의 전령이 전해온 발렌시아누스의 명령을 떠올렸다.
‘침식자들이 뭉친 곳에 대마법급 마도구를 사용하라. 최대한 빨리 수를 줄여야 한다. 부수적인 피해는 내가 책임지겠다.’
‘그걸 다 아실 분께서 왜?’
청은 기사단장은 잠시 고민했고, 그 명령에서 제일 중요할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이건 황제 제이릴리스의 명령이 아니라, 발렌시아누스 대공의 명령이었다.
‘기사들의 가족은 모두 황궁에 있다고 한다. 즉, 우리 기사들 역시 가족 때문에라도 대공의 비상식적인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된다.’
청은 기사단장은 제국 최고위 인사답게 발렌시아누스가 단순한 망나니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의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고 있었다.
‘제이릴리스 폐하가 신이라면, 그는 제사장이다. 온 세상에서 손가락질당해도, 폐하에게만 버려지지 않으면 그의 권세는 변치 않아.’
그러니 기꺼이 손가락질받는다.
세상이 보내는 모든 원한과 울분에 아무런 마음을 두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청은 기사단장은 생명의 불꽃을 끄듯 하얀빛을 끄고 다니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광명교회의 순교자 중에서도 흔치 않다.’
‘그 경박한 자가 그런 마음으로 살 리가 없다.’
뭉쳐 있는 하얀빛이 거의 사그라들고, 청은 기사단장은 마지막 이물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투하
수십 발의 강력한 마도구가 하늘을 가로질렀고, 대폭발을 일으켰다.
“크오오오!”
그러나 전고 960m에 달하는 이물은 여전히 굳건히도 버티고 서 있었다.
지옥불 같은 불길이, 싸늘한 냉기가, 하늘을 밝히는 전격이, 땅을 뚫고 올라온 가시가, 몰아친 칼바람이 그 몸을 아무리 난자해도.
“젠장!”
“다시 회복합니다!”
여덟 발 달린 고래를 닮은 이물은 촉수 같은 혈관으로 양분을 올려보내 제 몸을 회복시켰다.
가죽까지는 어찌어찌 뚫어도, 30m 단위의 지방층을 돌파할 수가 없었다.
되려 귀찮다는 듯 노기에 찬 신음을 흘리며 거대한 아가리 안에서 기괴한 이물들을 토했다.
“까아아악!”
“까아악!”
10년쯤 썩힌 갈매기를 닮은 그 이물에게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청은 기사단장은 이 싸움이 아주 길고 피곤해지리라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