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19)화 (219/340)

(219)

세레라지에와 워록들이 황궁 본궁 관측 탑에 올라섰다.

워록들은 세레라지에를 빙 둘러쌌고, 각자 마나를 끌어모아 전격 속성을 부여한 뒤 세레라지에에게 보냈다.

사아아아-.

푸른 빛 일렁이는 하얀 기운이 세레라지에게 모였다.

타인의 마나로 마법을 부리는 건 위험한 기술이었다.

자칫하다가는 마나를 보낸 쪽과 그걸 받는 쪽과 주변에서 보던 사람까지 죽어, 마법 한 번에 사망률 300%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워록들은 세레라지에의 재능을, 세레라지에는 그녀의 노력을 믿었다.

그녀는 이카리스 진주 귀걸이에 새긴 마법을 이용해 지면으로부터 2m 정도 떠올랐고, 모든 마법사가 보낸 마나를 받아들였다.

파지지직!

청록광 넘치는 밤하늘, 하얀 이빨 사이에서 전류가 튀고, 긴 남색 머리카락 몇 줄기가 사방으로 획획 돌아갔다.

너무나 막대한 전력을 다루는 탓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아.”

그녀는 남의 고통을 대하는 듯 무심한 신음성을 흘리며, 저 멀리 떨어진 거대 이물과 불바다가 된 수도를 바라보았다.

세레라지에가 노란 보석이 달린 지팡이로 허공에 큰 원 하나를 그렸다.

시이이잉.

원은 마나로 이루어져 있었고, 허공에서 은은한 황금광을 흩뿌리며 빠르게 회전했다.

서클 마법.

엘프족으로부터 기인한 그 마법은, 심장의 마나 서클로 주문의 위력을 증폭,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울리는 현상을 일으켰다.

‘왜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는지, 싸우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잖니.’

세레라지에가 한 번 더 원을 그렸다.

두 번째 원은 첫 번째 원과 약간 겹쳤고, 두 개의 교점을 가졌다.

치이이잉!

맞닿은 두 점에서 맹렬한 불꽃이 튀었고, 일순 세레라지에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며, 두 원 모두에 더 많은 마나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잖니. 내 목숨이 제일 아깝잖니. 못 이룬 꿈도 있잖니. 그게 제일 소중하잖니.’

기사들의 마나 제어법과 마찬가지로, 결국 제일 효율적인 마나 증폭 방법은 원 간 충돌을 통한 반동 형성이었다.

서클과 서클의 충돌을 통해 반동을 만들고, 그 반동으로 마법의 위력을 올린다.

교점 하나당 힘은 두 배로 증폭되고, 한 서클이 올라갈 때마다 두 개의 교점이 추가되니, 2서클 마법은 1서클 마법보다 네 배 강했다.

‘그런데 난 왜 남은 거니?’

세레라지에가 망설임 없이 허공에 원을 그려 나갔다.

세 번째 원, 네 번째 원이 연속으로 그려졌다.

4서클.

마법의 위력은 처음보다 256배로 증폭되었고, 워록들 사이에서 경탄과 우려가 터져 나왔다.

“대단하시군.”

“역시 세레라지에 전하.”

“감탄할 때가 아닙니다! 슬슬 위험하다고요.”

“이 많은 마법사의 마나를 모두 공명시키고 있으니, 그 위력은 수백 배겠지만, 반동도 수백 배입니다. 자칫하면 마나 로드가 견디지 못하고-”.

“괜찮단다.”

세레라지에는 그 모든 시선을 받아내며 웃었다.

‘그 애들이 남겠다고 해서니?’

새침한 표정 아래 약간의 우월감과 즐기는 감각이 어려 있었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둘러 다섯 번째 원을 그렸다.

5서클.

치이이잉!!

열 개의 교점에서 미친 듯 불꽃이 튀었다.

5서클 마법은 1서클 마법보다 1,024배 강했고, 일반병들을 상대라면 홀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었으며, 주술 회로가 새겨진 최고급 갑주로 무장한 기사도 쓰러트릴 수 있었다.

혼자서 써도 그런데, 지금 세레라지에는 제국에서 제일 강력한 전투마법사 수십 명의 마나를 한데 모아 마법을 이뤘다.

팍, 파박!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톱 아래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워록 몇몇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 세레라지에는 용언의 힘을 끌어 올렸다.

서클 마법이 체내의 마나를 이용하는 기술이라면, 용언은 대기의 마나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힘이었다.

우우우웅.

황금빛 기운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색이 다른 두 눈에 솟은 핏줄이 가라앉았다.

“전하!”

“더는 안 됩니다.”

“아무리 용언의 힘을 사용하신다고 해도!”

세레라지에는 그녀를 만류하는 전투마법사들의 목소리를 일축했다.

“황제 폐하는 나보다 열 살은 어린 나이에 6서클 마법사가 되셨잖니.”

평소처럼 새침했지만, 본심은 아니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잖니. 위험하다는 건.’

그녀는 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이곳에서 대마법을 펼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상아탑 마법사들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자를 짐승 취급하고, 마법사만을 사람으로 보며, 그중에서도 상아탑 동문만을 존중했다.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잖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2년간 많은 걸 배웠다 해도, 여전히 그녀에게 보통 사람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없었다고 생각했다.

‘일상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거니? 발렌시아누스에게 황족의 책임감을 주입 받은 거니? 텐티아에게 호승심이, 루디에게 정이 옮은 거니? 그래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건 모두 질병이고 나는 중증 환자로구나.’

세레라지에는 불바다가 된 수도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운하에 한 발을 담그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물도 바라보았다.

천재 마법사의 눈빛에 전격이 일고, 섬광처럼 살고 싶다는 마법사의 의지가 하늘에 섬광을 일으켰다.

‘나를 어리석게 만드는 게, 그보다 고무적인 거라면 좋겠잖니.’

먹구름이 모여들며 뇌운을 만드는 순간, 이물의 몸뚱이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아아아-!

거대한 아가리가 하늘을 향했다.

두 번째 정신 파동을 준비하는 듯한 자세였다.

세레라지에는 용언으로 서클과 뇌운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팡이를 들어 여섯 번째 원을 그렸다.

“전하!”

“안 됩니다!”

워록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만류했지만, 세레라지에는 그 어린 날부터 한순간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역시 꿈이 제일 좋겠잖니.’

“언젠가 이 몸도 썩어 없어질 테니,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녀는 그 순간 6서클의 초입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콰르르릉!

2의 12승, 4,096배로 증폭된 전격이 구름을 타고 내달렸다.

전격은 이제 섬광이 아니라 기둥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번쩍!

하얀 번개 기둥이 이물의 벌어진 아가리에 내리꽂혔고.

‘역시 나로구나.’

세레라지에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썩은 나무처럼 쓰러졌다.

* * *

거대한 이물이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오오오오!”

안 그래도 다 부서졌던 주변 건물이 완전히 돌가루로 변했다.

직격당한 아래턱은 완전히 탄화되어 무너져 내렸고, 온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굵은 다리도 세 개나 떨어져 나갔다.

텐티아는 이물의 모습을 보며 어울리지 않는 비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

그토록 거대하던 이물이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지금!”

발렌시아누스의 목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4인의 인영이 땅을 박찼다.

첫 번째는 당연히 텐티아였고, 두 번째는 마테오스, 세 번째는 루디, 네 번째가 발렌시아누스였다.

대로에는 여전히 침식자가 우글거렸고.

“은혜로운 불꽃을 맞이하십시오!”

성자 마테오스가 압도적인 신성력으로 그들을 불살랐다.

끼루루룩!

썩은 갈매기를 닮은 거대한 이물들이 산성 타액과 배설물을 뿜으며 날아왔다.

제국의 가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단단한 석재로 포장된 마차 도로가 부슬부슬 무너져 내렸다.

“전하! 가세요!”

루디가 녹색 눈에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땅을 박찼다.

탓, 타악!

그녀는 최고급 사냥개 같은 몸놀림으로 테라스를 밟으며, 비교적 멀쩡한 석조 건물 위로 순식간에 달려 올라갔다.

철커덕, 빙그르르, 찰각.

상하쌍대 마총 카스파가 회전했고, 새로운 탄이 장전되었으며, 시녀 사수의 어깨에 개머리판을 단단히 견착 되었다.

‘전하 가시는 곳에 꽃길만 있기를 바랐는데.’

두 발의 마탄이 연속으로 대기를 갈랐다.

퍼어엉! 퍼어엉!

발렌시아누스에게 날아들던 갈매기형 이물 두 마리가 문자 그대로 터져 나갔다.

‘불꽃길이네요.’

하늘에서 수십 마리의 이물들이 활갯짓하고, 살아남은 침식자들이 우우 몰려들었으며, 거대 이물에게 가는 길에는 청은 기사단의 폭격으로 만들어진 불길이 여전히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전하 곁에 있어 드릴게요. 그게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하아아아!”

붉은 망토를 두른 기사가 그 불길을 해치며 달려 나갔다.

쿵, 쿵, 쿵, 쿵!

키가 3m 정도 되는 불꽃 괴물이 두 개의 긴 목을 뻗으며 달려들었지만.

사아악!

텐티아의 일검에 목이 잘려 나갔다.

“전하! 뭘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하의 생각대로 시도하실 수 있도록 이 텐티아가 돕겠습니다. 제 뒤로 바싹 붙어 따라오십시오!”

적기사의 외침에, 망나니 대공은 주문을 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네. 경!”

텐티아는 심장이 미친 듯 고동치는 걸 느끼며 땅을 박찼다.

엘프의 마나 친화력과 오거의 육체를 가진 기사의 심장은 충성의 미학과 전장의 낭만에 반응했다.

그런 인종이었다.

“시이이익!”

그녀는 불꽃에 휩싸여 발광하는 비늘 거인의 다리를 베고, 달아오른 금속 갑각을 가진 침식자의 얼굴을 보조 무기인 전투 망치로 깨부수었으며, 불타는 언데드들이 계속 탈 수 있게끔 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하하하하!”

피처럼 붉은 마나 블레이드는 한없이 무겁게 타올랐고, 그 검은 종횡무진 휘둘러지며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의 목을 잘라냈다.

그렇게 숨을 쉬는 걸 잊고, 몸이 뜨겁다는 사실도 잊고, 뒤에 주군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는 몰입의 순간은.

“끼에에엑!!”

“이런-!”

필연적인 한계를 맞이했고.

초대하지 않은 상념이 기사를 찾아갔다.

* * *

“하아.”

텐티아는 거친 숨을 내쉬며 막 공격을 받아낸 흉갑을 더듬었다.

마커스의 주문과 주술로 갑옷을 더 강화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뚫릴 뻔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거대 이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래를 닮은 놈은 다치고 망가진 지금도 거대했다.

여기까지 와서야 눈치챘지만, 하늘의 마경에서 청록색 기운이 흘러 들어와 계속 이물의 몸을 강화하고 또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아직 멀었고, 그 사이에는 온갖 침식자들이 우글거렸다.

그녀는 약간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검을 들었다.

사실.

이런 걸 기대했다.

‘넌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내?’

‘언니. 전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니,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게 있군요.’

아카데미에서 선배와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했다.

기사의 로망은 전장을 호령하는 것.

모두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쁜 가운데, 홀로 적과 싸울 수 있는 가진 존재로서, 자신의 강대함과 특별함을 체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텐티아는 발렌을 만나 다치는 사람들을 보았고, 영웅 같은 기사가 필요한 세상의 아픔을 보았다.

그녀가 베어 죽인 빈민가 사람 중 무고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 물음은 아직도 텐티아의 마음 한자리에 남아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

기사는 살인의 업을 짊어진 자였고, 명령에 따라 무고한 자를 벨 각오를 한 자였으며, 천박한 어조로 표현하자면 인간 도살 기술자였다.

그러나 텐티아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

피로 물든 삶을 마냥 즐길 수는 없으나, 의무감만으로 살 수도 없다.

“계속, 가겠습니다.”

“고맙네. 경.”

둘의 눈앞에는 불타는 해골 병사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거대했고, 네 사람 이상의 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거대한 해골 철퇴를 들고 있었다.

첫 정신 파동으로 즉사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언데드로 화하고, 뭉친 것이었다.

“끼이이익!”

“발렌시아누스 전하의 기사, 텐티아가 간다!”

텐티아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그들을 베어 넘겼다.

“영락한 자에게도 안식을!”

마냥 들뜨지는 않은 기분으로.

약간의 비애와 존중도 담아서.

그러나 발렌 전하의 앞길을 뚫는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자부심을 안고서.

‘당신을 원망하고도 경애하듯, 저 스스로에게도 그러려 합니다. 검 한 자루로 무수한 일을 할 수 있고 그 모두가 검의 본질이듯, 한 사람도 무수한 일을 할 수 있고 그 모두가 그 사람의 본질이니까요. 그림자를 인정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그녀의 호위 대상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성자를 납치하고, 깡패들과 협잡질했으며, 뇌물을 받고, 살인을 밥 먹듯 저지르며,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은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러나 텐티아는 그래도 발렌시아누스를 따라야 할 나름의 이유를 보았고.

‘자기 사람들을 아낄 줄 알고, 영광의 순간을 준다.’

그것이 기사를 기사로 살게 했다.

그 순간 텐티아는 그녀의 시야가 한결 맑아지는 걸 느꼈다.

시야 확장의 주술이 걸린 투구의 효과 이상이었다.

뼈와 근육, 눈에 스며드는 마나 줄기들이 몇 배로 섬세해졌다.

그 정도는 준비돼야 올라설 수 있는 경지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찰각, 찰각, 찰각, 찰각, 찰각.

불타는 해골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오는 가운데.

햐얀 갑옷조차 연기와 불길로 달아올라 붉고.

붉은 망토를 두른 붉은 기사가 붉은 검을 들었다.

제국 검술 7단계, 유견무색대(有見有對色).

보이지는 않으나 있는 검.

텐티아의 검기는 이제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피같은 붉은색으로 한없이 가볍게 흐르며.

사사사사-!

바람이 춤추듯 적을 베어나갈 뿐이었다.

해골 파도를 갈라버린 기사가 외쳤다.

“전하! 여기는 제게 맡기고, 앞으로 가십시오!”

언제나 좋아하는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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