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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제국의 물류를 사적 이익을 위해 통제할 야욕을 품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경제적 침공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는 황족 치안감으로서 그들을 척결했고, 재산을 무사히 환수했다.”
나는 호셀론과 자한 동맹 상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압수했다.
제이릴리스의 이름으로 발행한 어음은 모두 불태웠고, 막대한 금화와 보석, 시약이 황실 금고로 들어갔으며, 고급 포도주와 위스키, 최고급 연초와 향유 등 현물은 내 별궁으로 들어갔다.
이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제국 상단의 지분은 일부러 건들지 않았다.
그건 수도 부르주아들을 회유하기 위해 던져줄 당근이었다.
“참 보기 좋군. 배도 자한 동맹 투자로 샀고, 건물로 자한 동맹 투자로 올렸고, 짐마차도 자한 동맹 투자로 샀고, 이번 상행도 자한 동맹 투자로 시작했나? 이게 그대의 상단인가 자한 동맹의 상단인가?”
“송구합니다.”
내가 수도 부르주아들을 찾아가 얼굴에 대고 지분 증서를 흔드니, 상단주, 공방주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리만 조아렸다.
“날 칭송해서 날 죽이려 했던 일, 본심은 아니었다 믿겠네.”
“그렇습니다. 전하.”
“모두 다 놈들의 강압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아귀 안에서 불길을 피워 올렸고, 자한 동맹 상인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지분 증서를 불태웠다.
화르르륵!
아무리 그놈들이 돈 귀신들이라지만, 금화 38만 닢은 엄청난 금액이고, 내가 호셀론을 이렇게까지 막 죽여버릴 줄은 몰랐을 거다.
이 정도 보여줬으면 제국에 헛짓거리를 더 하지는 않겠지.
돈을 벌러 오는 거야 아무 상관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한 동맹은 뛰어난 상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얻은 다음, 그걸로 폭리를 취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 내 의도는 꽤 잘 전해진 모양이었다.
여름, 제이릴리스가 날 집무실로 불러 말했다.
“그대. 자한 동맹에서 친서가 도착했노라.”
“뭐라고 하옵니까?”
“앞뒤 자르고 요약해 말하자면, 호셀론과 그 일파가 제국에 수작을 부리려 한 시도는 자한 동맹의 공식적 입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내용이니라.”
“폐하께서는 뭐라고 답장을 보내셨사옵니까?”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노라. 또한 짐의 망나니 오라버니가 시신을 훼손한 사실에 유감을 표했느니라.”
“훌륭하신 결정이옵니다. 폐하.”
제이릴리스가 만족스럽게 웃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길고 마디가 얇아 예쁜 손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하고 있다가 장갑을 벗은 다음 마주 손을 내밀었고, 제이릴리스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약간 작지만, 무척 단단한 손이었다.
“따듯한지고.”
집무실 창문으로 비치는 후광이, 이글거리는 황금빛 눈동자와 대비되는 섬세하고 긴 속눈썹이, 그리 찬란했다.
“이, 이 날씨에 따듯한 게 좋으시옵니까?”
“짐은 한서 불침이니라.”
“아.”
“그대가 짐을 대신해 피를 묻히고 있다는 걸, 짐은 잊어버리지 않노라.”
* * *
황실의 미덕은 돈을 쌓아 놓는 게 아니라, 써야 할 곳에 잘 쓰는 것이었다.
제이릴리스는 자한 동맹 상인들에게 거둬드린 돈과 현물을 모두 중부 기사들에게 뿌렸다.
“본래보다 아홉 달도 넘게 수도 주변에 머물러 주었구나. 너무나 많은 예상 밖의 일들이 있었지만, 황실에 대한 충정을 지켜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노라.”
그들은 작년 초봄쯤 자기들의 영지를 떠나서 수도로 올라왔고, 가을쯤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올해 여름까지 수도 앞에 군막을 치고 머물러 주었다.
봉신 계약대로라면 작년 가을에 자기들 영지로 돌아가 버려도 할 말이 없었지만, 중부 기사, 남작들은 우리와의 의리를 지켜 주었다.
증정식은 헬레나가 주관했다.
“가는 길 조심히…… 가게. 내, 내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겼네. 이건 금화고, 이건 시약이야. 영약, 포도주, 은잔일세. 그리고 폐하께 청해 마법약도 받아 왔네. 지방에는 흔치 않다고 하더군.”
“제가 바라는 건 이런 재물이 아니라, 전하의 손수건입니다. 제게 전하를 섬겼다는 증표를 남겨 주실 수 있으시옵니까?”
“경!”
“전하!”
“우리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걸세!”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언제나 응하겠습니다.”
금발 적안의 전쟁광 황족인 그녀는 지난 1년간 황동 기사단 소속 장교 기사로서 중부 기사들을 이끌었다.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이 많이 든 모양이다.
하긴, 매일같이 편 갈라 마상창 시합을 즐기고, 저녁이면 술잔을 나누었으니, 정이 안 드는 게 이상하다.
텐티아 경도 감격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뜨거운 눈물이 부러웠다.
중부 남작, 기사들이 각자 데려온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갔고, 헬레나는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군막 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갔고, 헬레나의 그림자도 한없이 길어졌다.
나는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고, 헬레나는 불꽃같이 붉은 눈에 어울리지 않는 허탈감을 띠고 말했다.
“발렌시아누스. 고마웠다.”
“뭐가 말이야? 누나.”
“네 덕에 저들의 손을 무겁게 보내줄 수 있었지. 황실이 빚 갚으라 바빠서, 황실에 헌신한 이들을 푸대접해야 했다면, 너무너무 비참했을 거다.”
“당연한 거지. 말하기가 다 민망하다. 황족이라면 당연히 돈 달라고 하는 놈들보다 검을 바친 이들에게 마음을 줘야지. 돈 달라 징징거리는 놈들의 가죽을 벗겨서라도. 아니, 생각해 보니까 웃기네. 검도 없이 돈 달라고 하면 그걸 들어주리라고 생각했나?”
헬레나는 피식 웃으며 금발에서 흙먼지를 털어냈다.
“무섭다, 야.”
“아이고 미안해라.”
“이제 난 다시 일개 장교기사가 되겠네. 따르는 병졸 하나 없는 장교기사. 매일같이 게임판 위에서 주석 말로 장난치는 장교기사.”
“왜 이렇게 불쌍한 척해?”
“아니. 나 좀 불쌍한 게 맞는 듯하다. 황동기사단 휘하 교도대 졸업한 애들은 죄다 치안감 쪽으로 빠지고, 정들었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니…… 지치는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축 처진 헬레나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초라해 보였다.
원래 하던 생각이 있기는 있었다.
물론 제이릴리스의 인가가 먼저고, 확인해 봐야 할 게 많지만, 희망이 먼저겠지.
“누나. 누나도 사병 만들어 볼래?”
* * *
아카데미 배움의 거리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다 죽여라!”
“세이로즈 아카데미 놈들을 이 거리에서 내쫓자!”
“헬레시오 아카데미 놈들을 깃대에 매달자!”
펑! 퍼어엉!
화염구가 폭발하고, 연쇄 전격과 전격 그물이 푸른 빛을 번뜩였으며, 빙결 숨결과 역병의 숨결이 뿜어져 나갔다.
사아아아!
작은 원방패 ‘버클러’와 브로스 소드로 무장한 검술학과 청강생들과 장검으로 무장한 검술학과 전공생들이 달려 나갔고.
챙, 챙강!
거대한 강철 십자가를 짊어진 신학생들은 성가와 기도로 자기 아카데미 생도들을 강화하거나, 철퇴를 휘둘러 상대 아카데미 생도들의 머리를 깨 놓았으며.
퍽!
흑마법 전공자들이 상대 아카데미의 실력자들을 조준하고서 온갖 저주를 일점사했다.
쐐애애액!
그리고 아카데미 연합회의 불쌍한 연합 학생회원들은, 둘 또는 세 아카데미의 사이에 껴서 어떻게든 그들을 떼어 놓으려 발버둥 쳤다.
“으아아악!”
“회장! 지원군은 언제 와요?!”
“방금 화염구 오폭으로 전멸했다는데?”
“일단 후퇴, 후퇴한다!”
진은 앞장서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패싸움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곳은 ‘너 죽고, 나 살자’의 철학이 실시간으로 구현되는 현장이었고, 한번 들어온 이상 나가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구렁텅이였으며, 싸워야 할 이유를 백 개는 댈 수 있는 생도들의 한복판이었다.
“회장. 이제 한계입니다.”
“저도 팔을 세게 맞아서-”.
“저쪽으로 뚫는다. 내가 앞장설게.”
진은 최대한 빈틈을 찾았고, 그곳도 만만찮게 치열하다는 건 알았지만, 결코 몸을 물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 같은 황족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고.
화르르륵!
막대한 불길이 전장 한복판에 내리꽂혔다.
“으아아악!”
“불기둥이다!”
“도망쳐!”
그 불길의 온도는 약 80도.
생도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버틸 수 있는 온도도 아니었다.
미친 개미 떼처럼 싸우던 생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은 얼마 전 사귄 애인을 몸으로 감싸며 바닥에 엎드렸고.
“그래. 보기 좋네. 여기는 왜 또 이 꼴이냐?”
불길이 걷힌 다음 너무나 그립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백발을 경박하게 넘긴 망나니 황형이 멋들어진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은 애인을 일으키며 고개를 숙였다.
“일단 학생회실로 모시겠습니다.”
* * *
연합 학생회장 진, 부회장, 서기, 총무 등이 회의실로 모였고, 발렌시아누스, 텐티아, 헬레나가 따라 들어갔다.
발렌시아누스는 수많은 자석으로 싸움 장소가 표시된 지도와 산처럼 쌓인 패싸움 원인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또 이번에는 왜 이 꼴이냐?”
워낙 치열한 곳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전쟁 같았다.
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작년 2학기 수업이 진행되지 않아서 졸업을 못 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
“그들은 전하와 제 아래에서 자경단 노릇도 하고, 침식자 시체도 수습했고, 때로는 침식자 사냥까지 하면서 실력이 꽤 올라간 상태입니다. 원래는 졸업하고 어디든 취업했어야 할 인재들까지 패싸움 판에 끼었으니 규모가 커지고 싸움도 치열해지는 거죠.”
“으음.”
“게다가 신입생은 신입생대로 받았으니 인구 밀도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원래도 자취방, 강의실, 기숙사, 식당, 술집, 카페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싸움이 더 치열해졌습니다.”
발렌시아누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옆 아카데미를 완전히 몰아내려 하는군.”
“그렇습니다.”
“생도 깡패들로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나? 죄다 겁을 줘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틀어박히게 한다거나.”
드르륵.
대답하듯 회의실 창문이 열리고, 붉은 장발에 늘씬한 미인이 훌쩍 뛰어 들어왔다.
텐티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카탈린은 긴 흉터 남은 눈을 찡긋하며 고혹적인 눈인사를 날린 뒤, 발렌시아누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전하.”
“왜지?”
발렌시아누스는 반대 의견도 신중히 들었다.
그는 카탈린을 통해 천막촌에서 혼란을 일으켰던 무리를 여럿 제거해보았고, 그녀가 지난 행적과 별개로 나름의 실력과 권위, 전문성을 가진 자임을 알았다.
“일단 생도 깡패들은 대부분 졸업 예정자들보다 약합니다. 제대로 된 곳에 취업을 못 해서 깡패가 되는 거니까요. 올해 패싸움의 주축 인물들은 대부분 성적으로 1, 2위를 다투었던 인재들입니다. 저도 지금 맞고 왔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 팔다리에 포션을 부은 허연 흔적이 있었다.
발렌시아누스는 세레라지에와 마커스가 제자들을 뽑을 때 얼마나 많은 인재가 지원했는지 회상했다.
“…….”
돌려 말하자면, 그 정도 수준의 인재들이 그때까지도 취업을 못 하던 상황이었다.
그들이 죄다 패싸움 판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건 제국의 손해였다.
발렌시아누스는 헬레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번뜩이며 가슴 속 야만적인 낭만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헬레나 누나. 들었지. 능력 면에서는 이미 아주 출중한 친구들을, 염가에 제국 군부로 들여오거나 누나 사병으로 만들 기회인데.”
“내가 뭘 하면 되지?”
“황제 폐하를 설득해야지. 누나가 그 군대로 이상한 짓을 벌이지 않을 거라고 증명하는 거야. 정예병 양적 증강이 필요한 이유도 동시에 설명해드리고. 할 수 있어?”
헬레나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시아누스는 내심 흡족하니 웃었다.
‘제이릴리스도 양적 증강에 관심을 가졌었으니까 어지간해서는 받아 들여줄 것 같아.’
‘생도 깡패들 잡아다 강제로 부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번에는 일시적인 징집이 아니라 장기 유지라는 게 차이점이지.’
‘정예병 전력이 워낙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 그렇지, 한 번 키워 놓으면 언제 어떻게든 쓸 수 있는데. 허락해주려나? 헬레나 누나가 랑소와 공화국 쪽 맡아주면 좋겠는데.’
‘될까? 될까? 되겠지? 제발.’
* * *
“허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