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34)화 (234/340)

(234)

옛 빈민가는 워낙 성벽 쪽에 가까운 만큼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진짜 혼란은 수도 수복 이후에 찾아왔다.

많은 일자리가 없어졌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몰려왔다.

“코넬 님. 경범죄 신고가 1,300건 들어왔습니다.”

“코넬 님. 치안감들이 인간 사냥의 뜻을 넌지시 비춰오고 있습니다.”

“코넬 님. 공간 문제로 패싸움이 일어나 54명이 크게 다치고, 11명이 죽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하며 이 거리를 밀어 올리고 끌어올린 코넬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시절의 풍경을 기억했다.

그 비릿한 썩은 냄새와 희망 없는 눈동자들을.

‘절대로 안 됩니다.’

코넬은 그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아주 강하게.

“일단 무리해서라도 복구 사업 일자리를 따오세요. 조금 멀어도, 손해가 나도 상관없습니다. 예산은 자한 상인들에게 투자받은 걸로 때우면 돼요.”

“알겠습니다.”

“자경단원들에게 아몬 신의 힘은 한동안 쓰지 말라고 하세요. 이 거리의 법칙에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들과 분쟁이 생기면 교회가 개입할 테고, 그럼 다치는 건 우리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동시에 포교도 은근하게 진행하세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시기입니다. 기도와 축복으로 안전하게 힘을 키울 방법이 있다고 하세요. 교회와도 비슷한 방식으로요.”

“저, 코넬 님. 교회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광역 축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그럼…… 내려주게 하면 되겠네요.”

그게 시작이었다.

코넬은 그녀의 새 9층 석조 건물 꼭대기에서 옛 빈민가를 바라보았다.

텐티아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지팡이 소리가 그날따라 낯설게 들렸다.

“코넬. 이 소파는 하마 가죽인가?”

“네. 지금 가구 장인이 된 청년에게 선물로 받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른 조직에 끌려간 딸을 구해준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 그럼 이 테이블은-.”

“흑단 나무 맞습니다. 그건 확장기에 다른 깡패 조직과 싸워서 이기고 빼앗은 거예요. 버릴 수는 없잖습니까?”

“이 고급 남부 과일은-.”

“홍등가 쪽에서 일하다 나온 애들이 꽤 있습니다. 다시 그쪽으로 안 빠지게 일자리도 찾아 주고, 사업한다고 하면 투자도 해줬는데, 그중에 온실 사업을 시작한 애들이 있어요. 꽤 안정됐다고 선물로 보내준 거예요.”

텐티아는 영악하고도 총명한 소녀에게서 발렌시아누스의 그림자를 느꼈다.

코넬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사님 생각이 맞습니다. 제가 기도로 저희 쪽 애들을 강화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교회가 먼저 그걸 하게 만든 거예요.”

발렌시아누스는 그걸 마테오스가 눈감아주게 하게끔 많은 기부금을 냈다.

* * *

텐티아는 으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놀아난 듯했고, 동시에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발렌시아누스가 하마 가죽 소파에 앉아 남부 과일을 콕 찍어 먹었다.

텐티아는 그 과일이 발렌시아누스가 마른 과일 안주로 즐겨 먹던 과일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발렌시아누스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코넬이 배시시 웃었다.

“머리 잘 썼네. 잘했다. 코넬. 좋은 의원이 되었구나.”

“감사합니다.”

텐티아는 순수한 의문만을 품고 물었다.

“전하. 속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으십니까? 이용당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다. 그런 불쾌한 기분 말입니다.”

발렌시아누스는 잠시 멈칫하더니, 능청스럽게 웃었다.

“경.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런 걸 입 밖으로 낸다는 건 서로 꽤 민망할 일일세.”

“그럼 그냥 서로 짐작하는 겁니까?”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짐작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발렌시아누스는 텐티아가 그에게 검을 가르칠 때와 흡사한 표정을 지었다.

“경이 내게 말했듯, 어떤 순간부터는 결국 사람과 상황을 믿어야 하네.”

“…….”

“코넬은 이 거리의 의원이고, 결국 이 거리와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려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대충 짐작이 가는 거야. 무리해서라도 일자리를 더 찾겠구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뭔가를 하겠구나.”

텐티아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몰래 음모를 꾸미고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걸 대놓고 말하는 게 기사였다.

발렌시아누스가 생동감 넘치게 웃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 거리를 위한 일이 아닌 듯한데? 그럼 그때부터는 다른 관점으로 보는 거지.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모든 관점을 다 보면 너무 혼란스러우니, 제일 확률이 높아 보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따지는 거지.”

텐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순간부터는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모든 검격을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내가 베고 쳐낼 수 있으리라 믿고 나아가야 의미가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텐티아는 코넬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건투를 빌지.”

* * *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깊은 밤.

옛 빈민가 9층 석조 건물 3층에 아몬신도 자경단원 열 명이 모여들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들은 모두 늑대 같은 인상에 단단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고, 헐렁한 허리띠에 아몬신의 부적을 매달고 있었다.

완전 변이가 가능한 아몬 신도들이었다.

과거 침식자 소년을 쫓았던 소년 신도 디에 역시 함께였다.

탁.

탁.

탁.

잠시 후 실내 계단에서 지팡이 짚는 소리가 들려오고, 의족을 찬 단발머리 소녀가 내려왔다.

“다들 모였네요.”

코넬은 단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고, 천천히 기도문을 읊었다.

“눈이 멀어버린 동료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 주고자 하니, 당신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침묵의 응보를 행할 힘을 주소서.”

코넬의 허리띠에 달린 부적에서 회색 기운이 피어오르고, 열 명의 신도가 허리에 찬 부적으로 흘러 들어갔다.

“오오.”

“힘이 넘치는군요.”

“지금이라면 혼자서 깡패 백 명쯤은 날려버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근육 불거진 팔뚝에 힘을 줘 가며 기뻐했고, 코넬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좋은 일을 하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아.”

“송구합니다. 그만.”

“더 신경 쓰겠습니다.”

“가도록 하지요. 소문이 더 나기 전에 끝내야 합니다. 오늘 밤이 만월이니 더더욱요.”

그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실내 계단만 사용해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지하수로와 연결되는 큰 문이 있었다.

코넬은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고, 11인의 아몬신도가 지하수로로 들어섰다.

지하수로는 여전히 시원했고, 물은 콸콸 흘렀으며, 물속에서는 거대한 슬라임들이 헤엄쳐 다녔다.

디에는 벽과 천장, 수로를 세심히 살펴보다 말했다.

“코넬 님. 확실히 물이 더 깊어졌고, 천장은 더 높아졌습니다.”

코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폐하께서 이 아래 토사와 암반을 끌어 올려 수도 복구에 사용하셨으니까요. 그만큼 더 커지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그 녀석도 더 커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아몬 신도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일그러졌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요.”

“빨리 끝냅시다.”

그들은 어울리지 않게 진저리를 치고는, 다섯 조로 나뉘어 수색을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비명 같은 외침이 울렸다.

“이쪽이다!”

“끄아아악!”

코넬은 디에와 다른 신도의 도움을 받아 수도 옆길을 내달렸다.

‘조금만 버티세요.’

“……아.”

그녀의 눈앞에 들어온 광경은 참혹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잔잔한 어둠 속에 인영 둘이 서 있었고, 하나가 누워 있었다.

누운 인영은 수십 분 전 그녀가 직접 축복을 내려주었던 동지였는데, 몸이 반으로 찢어져 있었다.

색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붉을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바늘 같은 털이 움찔거리고 근육이 막 부풀어 오르던 걸 보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한 게 분명했다.

“코넬 님.”

같은 조의 신도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전사된 아몬 신도가 어지간해서 떨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눈앞의 거대한 인영은 공포 그 자체였다.

코넬은 한 번 더 축복의 기도문을 입에 담으며 거대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다들 미안할 뿐이야.”

천장에 닿을 듯 거대한 늑대인간이 숨을 토했다.

머리와 등에는 수십 개의 뿔이 나 있었고, 한쪽 팔은 대여섯 개의 촉수로 변해 꿈틀거렸으며, 여기저기 수포와 종양이 끓었다.

손, 발톱은 불편할 정도로 커졌고, 꼬리에는 탐스러운 털 대신 병든 물고기 같은 누런 비늘이 돋아 있었다.

몇 달 전 그날 침식된 이래로 지하수로를 배회하던 괴물의 정체였다.

탁, 타악!

코넬은 신도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빨리 끝내줄게.”

* * *

“아우우우!”

달도 없는 지하에서 늑대인간들이 부딪혔다.

코넬의 축복 기도를 받은 아몬신도들은 삽시간에 변이했고, 열 겹 방패 같은 털가죽과 열 자루의 창 같은 손톱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이에 침식된 늑대인간 역시 변이한 거구를 움직여 반격했다.

아가리와 아가리가 서로를 물어뜯고, 손톱과 손톱이 가죽을 찢었으며, 침식의 기운과 아몬신의 축복이 맞부딪혔다.

코넬은 후방에 서서 끝없이 노래를 불렀고, 기회를 틈 다 세레라지에가 만든 전격 반지까지 써 가며 침식된 신도를 공격했다.

파지지직!

어둠 속을 노란 빛이 내달리면, 거대한 괴물도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퍽!

막 신도 하나가 침식 신도의 촉수에 붙잡힌 채로 벽에 부딪혔다.

디에가 벼락처럼 손톱을 휘둘러 촉수를 잘랐지만, 비늘 꼬리가 그를 후려쳐 날려 보냈다.

아무리 수로가 넓어졌다 한들, 거대한 늑대인간들로서는 수적 우위를 살리기도 힘들었다.

코넬은 이를 악물며 기도에 집중했다.

‘침식되었다 해서 아몬신의 축복이 사라지는 건 아니군요.’

아무리 제어해도 그녀의 기도를 들으면 저 침식 신도까지 약간이나마 강해지는 듯했다.

게다가 침식 신도는 다른 옛것들에게도 힘을 받고 있으니, 점점 더 강해지는 듯했다.

사아악! 사악!

긴 손톱이 어둠 속에서 검붉게 빛나며 십자를 그렸고, 그녀의 자경단원들이 피를 흘리며 물러섰다.

“코넬 님.”

“일단 후퇴하십시오!”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저희가 코넬 님까지 지켜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코넬은 잠시 머뭇거리다 더 강한 축복을 빌었다.

“당신의 이름으로 피와 불꽃을 피워 올리리라.”

회색 기운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자경단원들을 감쌌다.

“반드시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교회나 다른 의원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인간 사냥도 다시 시작될 겁니다.”

“……!”

자경단원들이 각오를 다지고, 침식된 신도가 검붉은 안광을 피워 올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마탄 소리가 울렸다.

타아앙!

침식된 신도의 허벅지에서 검은 피가 튀었다.

“카아아악!”

그는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했고, 코넬은 과거 비슷한 공격을 맞아본 적이 있었다,

‘은?’

“그래서 그랬구나. 왜 도와달라고 안 하는지 궁금했는데.”

지하수로 한쪽에서 어둠이 일렁였다.

‘흐릿함’ 주문이 깨지고 있었다.

코넬은 침음성을 흘리며 그를 맞이했다.

“전하.”

지하수로와 어울리지 않는 구둣발 소리가 울리고, 화려하게 치장된 하얀 제복이 드러났다.

갈색 머리의 여인이 시녀복 차림에 마총을 들고서 그 뒤로 바싹 붙어 따랐다.

둘은 제복과 시녀복에 액체금속 갑옷 아콰테그를 먹이고 있었고, 세레라지에는 그 갑옷에 ‘흐릿함’ 주술 회로를 더했다.

“!”

발렌시아누스를 본 디에가 부르르 떨었고, 아몬신도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코넬을 둘러쌌다.

그들 중에는 코넬과 발렌시아누스의 밀월관계를 모르는 자들도 있었다.

발렌시아누스는 피식 웃으며 하얀 장갑 위로 불길을 피워 올렸다.

화르르륵!

새빨간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뿜어져 나갔고, 침식된 신도의 입, 귀, 눈, 코, 털구멍 하나하나로 파고 들어갔다.

“카아아악!”

침식 신도가 벽에 금이 가도록 발광했지만, 발렌시아누스는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그의 불길이 파고든 곳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라 그의 손아귀로 흡수되었다.

불길은 1분도 되지 않아 침식 늑대인간의 몸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코넬은 난처하니 웃으며 물었다.

“전하. 이것도 알고서 그냥 믿고 있으셨던 겁니까?”

발렌시아누스는 제 붉은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그걸 입 밖으로 낸다는 건 너무 민망한 일이지. 그냥, 사람과 상황을 믿었을 뿐이다.”

‘일자리 창출로도 유입 인구 제어가 되고 있었어. 새로 들어온 신도들이 제대로 싸우려면 몇 달은 걸릴 테지. 즉효성 기도나 축복을 써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다른 관점에서 보았지.’

“책임지고 수습하려던 태도, 좋았다.”

코넬은 고개를 내리깔았다.

“은폐를 책망하시는 게 아니라요?”

“그 둘이 같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코넬은 쓰게 웃었고, 발렌시아누스는 손을 흔들었다.

“들어가라. 이런 건 내게 맡기고, 내 건물 올릴 인부들이나 잘 뽑아서 배움의 거리로 보내다오.”

* * *

코넬과 자경단원들이 멀어지고, 루디는 수로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발렌 님.”

“그래. 나도 눈치챘다. 대체 저게 어떻게 흘러나온 건지. 원.”

우우우우.

어둠이 일렁이며 갈라지고, 검은 정장 차림에 하얀 가면을 쓴 사내가 걸어 나왔다.

‘흐릿함’ 주문까지 새긴 아콰테그를 어떻게 구해서 옷에 먹여둔 듯했다.

그는 가슴팍에 붉은 여우 가면 배지를 달고 있었다.

“지배인께서 VIP를 뵙고 싶어 하십니다.”

“무슨 일이지?”

“도로이젠 왕국의 첩자와 관련된 일입니다.”

발렌시아누스는 목덜미를 잡았다.

이렇게 찾아올 만한 일이었다.

“안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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