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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38)화 (238/340)

(238)

쾅!

바위산 중턱에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졌다.

바위가 쩍 갈라지고, 주변 잡목에 불이 붙었으며, 그 직후 제국에서 손꼽게 고귀한 세 사람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발렌시아누스가 불타는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져 다시 넘어졌고, 텐티아가 육중한 기계 갑옷 안에서 뻗었으며, 세레라지에는 아예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누워 버렸다.

발렌시아누스는 낄낄거리며 웃었고, 맑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누나. 셋이나 같이 이동시킬 수 있게 된 건 진짜 대단한데, 원래 섬광 비행이 이렇게 어지러운 기술이었나?”

세레라지에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검의 나라라면서 마법사 전력도 나쁘지 않았잖니. 왜곡 장벽이니, 흡마 결계니, 봉인 비석이니. 마법사 견제용 주문과 마도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단다.”

“정말? 나는 거의 못 느꼈는데?”

세레레지에는 인상을 찌푸렸고, 노래하듯 답했다.

“너는 나처럼 순수한 지식과 의지로 마나를 다루는 메이지가 아니잖니. 넌 용언이니 정령의 힘이니 하는 사기적인 힘을 쓰는 소서러잖니. 넌 부럽고 치사한 재능 벌레잖니.”

발렌시아누스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누나도 용찬 할래? 어딘가 비룡이 한 마리는 더 있지 않을까?”

세레라지에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음…… 물론 넌 대가도 만만찮게 치르고 있잖니. 그건 인정한단다. 평소에는 비효율적인 면도 있지. 하지만 방금 같은 이상 상황에서는 그게 확실히 유리하단다.”

“누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네.”

“……평소에도 그렇게 순순히 인정해주면 얼마나 좋니? 하여간 자칫했으면 못 꺼내 줄 뻔했잖다. 나였으니까 이렇게라도 성공한 거잖니.”

치이이익.

마커스가 두 기계 기사와 함께 수풀을 해치고 다가왔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대공 전하?”

“왔나? 그래. 필리오스에게서 살아왔으니 이 이상 불평을 할 수는 없겠지.”

발렌시아누스는 그가 내민 의수를 잡고 일어섰다.

“…….”

“비슷한 놈들끼리 만나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쪽은 의수였고, 한쪽은 정령화되어서 반쯤 투명해진 손이었다.

“닥치게.”

발렌시아누스는 마커스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분지 군막에서 도로이센의 병사, 검객, 기사들이 몰려나오는 걸 바라보았다.

* * *

“많기도 하군.”

개를 닮은 키메라들이 목줄을 찬 채 달려 나가고, 마법사들의 패밀리어로 보이는 매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확실히 대 마법사용 마도구를 충분히 챙겨 왔는지, 주변의 마나가 점점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자자. 필리오스가 눈이 돌아간 듯하니 잡담은 이만하고, 확인할 것만 확인하고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난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했고.

“예. 전하.”

“그게 좋겠잖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텐티아, 세레라지에, 마커스는 모두 동의해 주었다.

난 제일 중요한 것부터 확인했다.

“누나. 이 근처에 운석 크레이터 같은 건 없던 게 맞지?”

회귀 전 이맘때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회귀 전에는 수도에 마경이 열리지도 않았고, 난 여전히 홍등가 망나니로 살고 있었다.

물론 운석이 떨어지는 건 내 행보와 별 관련이 없겠지만, 옛것이 관련되었다면 또 모르는 일이었으니, 꼼꼼히 확인해서 잃을 건 없었다.

세레라지에가 고깔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침한 목소리에서 초일류 마법사의 자신감이 뚝뚝 묻어났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잖니. 크레이터도, 폭발의 잔재도, 수상한 지층이나 단층, 호수나 연못도 없었단다. 물론 이물이나 침식자의 흔적도 없었지. 폐광 몇 개가 보이기는 했지만, 인스트루멘툼에서 폐광은 흔하잖니?”

이 부분은 회귀 전과 똑같은 듯했다.

즉, 필리오스의 요구는 영토 확장을 위한 완벽한 억지였다.

그걸 확인한 이상 이제 대화는 잠시 접어둘 때였다.

필요한 건 가능한 한 적은 피가 흐를 해결책과 강요로 점철된 협상뿐이었다.

“좋아. 마커스. 우회로는 찾아 놨지?”

마커스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지도 한 장을 품속에서 꺼내 건넸고, 난 표시된 길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군.”

“이 산을 타고 빙 돌아서 세레라지에 전하가 보았다는 광산 옆 강 쪽으로 빠지는 길입니다.”

“그래. 아무튼 이제 빨리 도망가도록 하지. 필리오스가 많이 화났을 테니까. 아. 와이번은 안 돼. 일단 숨어 있으라 하고, 포위망을 벗어난 다음에 부를 거야.”

텐티아가 막 호각을 불려 했던 손을 멈칫했다.

“어째서입니까?”

난 길을 살피며 노래하듯 말했다.

“저들도 낙뢰를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 거야. 그리고 아까 들어가는 길에 발리스타를 봤네. 잘도 숨겨 놓았더군. 그 거대한 화살에 스치기만 해도 추락하겠지.”

“아.”

“나는 이 신발이 있으니 살겠고, 세레라지에 누나도 저 진주 귀걸이가 있으니 살겠고, 경은 그런 것 없이도 살겠지. 하지만 마커스가 죽을 테야. 헉! 설마 경? 마커스는 죽어도 된다는 건가?”

텐티아가 장난꾸러기 아이를 타이르듯 단조롭게 받아쳤다.

“절 천하의 악마 기사로 만들 생각이시군요. 유난히 예민해지셨군요. 혹시 불안하십니까?”

정곡을 찔렸다.

“……미안하네. 경.”

* * *

우리는 한참 동안 바위산을 타고 이동했다.

쾅, 으지직!

기계 갑옷을 입은 기사 둘이 잡목과 가시덩굴을 부수며 길을 뚫었고, 나는 텐티아 경과 함께 맨 뒤를 지켰다.

“전하. 필리오스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십니까?”

텐티아 경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아까 내가 불안해하던 이유까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확실히 평소의 내가 보일 모습은 아니었다.

회귀 전 반역 황자의 군세에 합류한 필리오스를 상대로 피곤한 싸움을 이어갔던지라, 조금 예민해졌던 듯하다.

나는 사과의 마음을 담아 부드러운 어조로 답했다.

“경. 도로이센 왕국의 국왕, 검왕 엔시스가 몇 살인지 아나?”

“260세 정도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손꼽히게 장수한 소드 마스터지.”

많은 소드 마스터가 자신의 힘만 믿고 너무 긴 전선을 홀로 감당하다 무너졌다.

젊음을 되찾은 소드 마스터들의 평균 수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들의 평균 수명보다도 짧았다.

“……저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소드 마스터 한 명이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 서른 명과 같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뛰어난 검객이 아니었네. 빼어난 야전사령관이자 왕이기도 했지. 어느 전쟁에서나 정치적, 행정적, 전략적으로도 현명한 선택을 내렸어. 그래서 제국 황제가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

“대단하군요.”

“그럼 도로이센의 왕태자들은 어떨 듯한가?”

“!”

텐티아 경이 눈을 부릅떴다.

“도로이센 왕국의 왕태자란 그런 존재일세.”

절대 늙지도 않고 그들보다 약해지지도 않는 아버지 아래서, 영원히 시험만 받는 후계자로 살다가, 결국 내쳐지거나 늙어 죽는 숙명을 타고난다.

“엔시스는 늙지 않으니, 언제든 새로운 아이를 만들 수 있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후계를 갈아 치우고. 필리오스도 벌써 몇 번째 왕태자인지 모르겠군. 근 수십 년 동안은 책봉식에 주변국 귀빈들을 초청하지도 않았다고 하네.”

“태자 신분으로 소드 마스터에 오르지 않는 이상, 끝없이 갈려만 나가겠군요.”

“기약 없는 기다림이지.”

“……자연사한 소드 마스터는 역사 속에 없지요. 국왕의 수명이 얼마나 긴지 아무도 모르는군요.”

“정답일세. 그러니 필리오스가 지금 얼마나 지독한 독기를 품고 있겠는가?”

이에 호응하듯, 앞쪽에서 기계 기사들이 움직였다.

치이이익!

“전하! 추적당했습니다.”

“크르르르.”

어느새 개를 닮은 추적용 키메라가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놈이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으려 했고.

“아우우-!”

세레라지에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내리쳤다.

번쩍!

푸른 빛이 번뜩이고 키메라가 바닥을 굴렀다.

“저쪽이다!”

“쏴!”

그러나 키메라에게 따라잡혔다는 일 자체가 문제였다.

쐐애액! 쐐애액! 쐐애액!

후방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의 화살이 날아들고.

“가자!”

용감무쌍한 검객들이 칼 한 자루 빼 들고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쿵, 쿵.

두 기계 기사가 땅 울리는 소리를 내며 후방으로 이동했다.

면갑이 철커덩 소리를 내며 내려가고, 판금 장갑 틈에서 증기가 솟았다.

카앙! 캉!

바람을 찢으며 날아온 마법 화살이 장갑에 맞고 튕겨 나갔다.

두 기계 기사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세레라지에 전하와 마커스 각하가 새로 만들어주신 기능을 시험할 기회입니다.”

“발렌 전하. 마커스 각하. 금방 처치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먼저 가십시오.”

정말.

기사들이란.

“그래. 경들이라면 그 말을 할 줄 알았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필리오스의 숙영지 측면을 향해서.

* * *

필리오스는 분노를 어리석음이 아니라 힘으로 바꿀 줄 아는 사내였다.

그는 기사와 검객들을 따라 달려 나가는 대신, 숙영지 중심의 군막에 앉아 보고를 듣고 명령을 내렸다.

‘놈은 혼자고 나는 군대를 데리고 있다. 체계적인 움직임이 나의 이점이자 강점이야. 즉, 이 싸움은 내가 혼란에 빠지면 지는 거다.’

“패밀리어들을 아낌없이 풀어라. 시약을 아끼지 마라. 이 근처 마나 흐름은 원래 이상했다.”

“절대 흩어지지 마라. 발렌시아누스도 빼어난 마법사이자 전사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거대한 이물 하나를 통째로 불태웠다는군.”

“검객들을 이렇게 많이 데려와 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원거리에서 궁수들이 압박해라. 승리가 먼저다.”

그때 필리오스의 천막 옆에 묘한 인영이 내려앉았다.

필리오스는 무심하게 한 손을 들었고, 기사와 검객들은 한 걸음씩 물러서 인영의 보고를 허락했다.

“고하라.”

“와이번핏이 설치된 도시에서 철혈당주 마커스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검은 꽁지머리에 황동색 외안 안경을 썼고, 의수와 의안을 정비하기 위한 맑은 기름과 소금 성수를 샀다고 합니다. 본인이 확실합니다.”

필리오스로서 썩 마음에 드는 소식은 아니었다.

“……”

마커스는 모르겠지만, 마커스의 아버지를 충동질하고 검객들을 지원해준 게 그였다.

그렇게 인스트루멘툼에 내분을 일으켰고, 계획대로 영주 일가를 몰살했으며, 마커스의 아버지까지 죽였다.

‘제국 귀족은 이종족 혼혈이고, 본인부터 강력한 기사나 마법사다. 가주 일가를 잃으면 혼란에 차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전력이 날아가지. 인스트루멘툼을 빼앗아 왕국의 고토를 수복할 기회였는데. ……그럼 아버지 전하께서 내게 영지를 내려 주셨을지도 몰랐다.’

당시 제국 황실은 선황의 병환, 1황자와 황태자의 정쟁으로 혼란에 차 있어, 충분히 땅을 빼앗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필리오스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이름뿐인 후계자 따위가 아니라, 자기 땅과 백성을 가진 독립 영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온 천재 꼬맹이 하나가 모든 걸 망쳐 놓았다.

‘마총이라니. 그게 뭐냐?’

그리고 검왕 엔시스는 그가 가장 원치 않던 말을 들려주었다.

‘네 동생이 제국의 대영주를 몰락시키는 동안 널 뭘 했느냐?’

‘아바마마!’

‘필리오스. 이제 네가 내 후계자다.’

필리오스는 그가 가장 피하려 했던 그 자리에 정확히 꽂히게 되었다.

‘이번만은 성공해야 한다. 왜 폐광밖에 없는 비루한 산지를 이렇게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은 성공해야 한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고, 이곳이 왕궁이 아니라 제 기사들과 검객들에게 둘러싸인 천막 안임을 확인했다.

“발렌시아누스 대공은 생포하도록. 아버님께 바치겠다. 뭐라도 하나 더 들고 가야 뭐라도 하나 더 주시겠지.”

“현명하십니다.”

“추적대에게는 새로운 소식은 없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종이 달려왔다.

“기계 기사들과 추적대가 조우했습니다.”

“뒤를 맡겼군. 그래서 놈들의 위치는? 경로 파악은 어떻게 되었지?”

시종은 전령이 전해준 두루마리를 펼쳐 보고는, 얼굴을 흙빛으로 물들이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고 합니다.”

기사들과 검객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망발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다시 확인해 보아라.”

필리오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하?”

그는 그 사내다운 얼굴을 왈칵 일그러트리며 외쳤다.

“다시 병사들을 불러들여라! 빨리!”

“왜 그러십니까?”

“……양동이다.”

* * *

타닥, 타닥.

숙영지 남쪽에서부터 연기가 치솟고.

쿵, 쿵.

적기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망나니 황형은 불길을 피워 올리며 중얼거렸다.

“난 혼자고 넌 군대를 데리고 있지. 체계적인 움직임이 네 이점이자 강점이야. 즉, 너만 잡으면 내가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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