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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커스, 세레라지에, 한 기계 기사와 함께 갱도를 내려갔다.
한 명은 만약의 경우에 최소한의 시간 벌이라도 될 수 있게 입구에 세워 두었다.
갱도는 세 사람 정도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넓이였는데,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점점 수정 결정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래 창백한 하늘색 빛은 사물의 형태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였는데, 이제 슬슬 눈이 부셔 올 정도였다.
언젠가부터 귓가에 웅웅 거리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나만 들리는 게 아닌지 세레라지에가 미간을 찌푸렸고, 마커스 역시 이를 악물었다.
“발렌. 넌 괜찮니?”
“응? 약간 신경 쓰이는 거 빼면 괜찮은데?”
“괴물 같은 놈이잖니.”
세레라지에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지팡이를 들어 벽에 솟은 수정 결정체를 쳤다.
땅, 하는 소리가 울리고, 일대의 수정 결정체가 일제히 공명했다.
우우우웅!
천장, 바닥, 벽을 가리지 않고 솟은 수정들이 하나같이 진동하는 모습은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러웠다.
끼이이익-!
정신 파동 같은 소음이 울리고, 마커스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세레라지에 대공! 뭐 하는 짓입니까!”
세레라지에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모르겠니?”
“설명한 다음에 움직이십쇼! 설명한 다음에!”
“수정 자체가 정신 파동을 조금씩 내뿜고 있단다. 여기서 일하던 광부들이 제일 먼저 침식되었을 거잖니.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 결국 어느 날 확, 하고 돌변했을 거란다.”
“아.”
나는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 마을 좀 사라진다고 이 비싼 시약 광산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리가 없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결정타가 있었군. 천천히, 깊이 침식된 만큼 무척 강했겠지.”
“그리고 이 수정질 침식의 안정성을 생각해보면…… 그 광부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을 확률이 높단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묘한 메아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곡괭이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때마침 내리막 통로가 끝나고 거대한 공동이 눈에 띄었다.
마커스가 공책을 펼쳐 입구에서 베껴 온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서 정 반대편 길로 내려가면 됩니다. 그럼 바로 최하단 막장이 나오지요. 공동에 뭔가 있는 듯하니, 충분히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시이이잉!
수정이 우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통로 너머로 살짝 내밀어 상황을 확인했다.
“세상.”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 * *
“어이. 크리스티앙! 조금 쉬엄쉬엄해.”
“무슨 소리야. 장. 울 아들놈 학비 대려면 멀었어. 이번에 데보시온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고.”
“저 친구에게서 어떻게 저렇게 똑똑한 아들이 나왔는지 몰라.”
“하하. 우리 아들 장하지. 그 애까지 광부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난 며칠간 싸운 수정 결정 침식자들은 정신 파동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행동도 그리 빠르지 않았고, 마법 같은 힘을 쓰지도 않았고, 지성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광산 안에 있는 침식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생전의 행동과 어조까지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물이 다 떨어졌어.”
“구조대는 언제 오는 거야?”
두 사내가 수정체의 푸른 빛을 일그러진 눈코입에서 뿜으며, 수정 결정이 담긴 외발 수레를 끌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말라비틀어진 갈비뼈 사이에서, 근육이 드러난 팔뚝 사이에서, 육체를 좀먹은 수정체의 빛이 찬란했다.
세레라지에가 쓴웃음을 지었다.
“발렌. 저들은 자기들이 죽은 줄도 모르는 듯하구나.”
마커스가 의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발렌 대공. 그래도 생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것들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고 있었어. 막장으로.”
주변 벽에 솟은 수정체 하나를 똑 떼어냈다.
“옛것은 대부분 힘과 육체와 혼이 하나지. 이게 성장한다는 건 이 세상을 조금씩 침식시키고 있다는 말이고, 이걸 모은다는 건 회복한다는 뜻이야.”
마커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옛것 놈도 추락 당시 다칠 만큼 다쳤었나 보군요. 슬슬 판단이 서십니까?”
이제 엔시스가 이걸 가지지 못하게 막는 걸로는 모자랐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뽑았다.
“수도에서 이물을 죽일 때처럼 열기를 직접 밀어 넣을 거야. 엄호해줄 수 있지?”
* * *
발렌시아누스는 곧바로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솔레타라스 용혈 황족은 태생이 싸움꾼들이었고, 그와 제이릴리스는 초대 황제의 재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황족의 특성을 깊게 물려받은 자들이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것들이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
부풀어 오른 마나가 근섬유를 보조하고, 발렌시아누스의 검은 칼날이 침식자의 정수리로 들어가 가랑이로 빠져나왔다.
와지지직!
그가 일격에 광부 하나를 베고 정 반대편 통로로 내달렸다.
그 뒤를 세레라지에, 마커스, 기계 기사가 따랐다.
휙!
하나이자 전체라는 말을 증명하듯, 공동과 통로 전체를 오가던 수백의 광부들이 일제히 넷을 바라보았다.
푸른 빛 가득한 공동안에서 수백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회전하는 모습은, 공포 이상의 위압감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서부에서 제일 위험한 대영주라 불렸던 마도공학자였다.
우우우웅!
마커스의 에스토크에서 파괴술 특유의 보라색 기운이 일렁였다.
쾅!
섬광 같은 찌르기가 열선처럼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고, 막 달려들던 광부 셋이 완전히 꿰뚫려 무너져 내렸다.
“천한 것들이 지금 감히 누구에게 이를 드러내는 겁니까? 내가 너희의 주인이란 말입니다!”
세레라지에는 카리오사에게 선물 받은 진주 귀걸이에 마나를 불어넣어 날아올랐고, 뒤로 날면서 번개를 뿌리는 진귀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발렌! 가려무나!”
발렌시아누스는 망설임 없이 막장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그 길은 무척 깔끔했고, 그를 막아서는 건 빈 수레를 끌고 올라오는 광부들 뿐이었다.
“내놓아라!”
발렌시아누스는 그대로 달려들어 광부의 얼굴을 걷어차는 동시에, 외발 수레 위로 올라섰다.
그는 중심을 교묘히 잡아 지지대가 허공에 붕 뜨도록 했고, 수레바퀴는 미친 듯 구르며 내리막을 내달렸다.
“하하하하!”
중간에 곡괭이를 들고 막아서는 광부는 불의 창으로 날려버리고, 수정 결정 돋은 채찍을 휘두르는 광산 마름에게는 흑루의 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려주었다.
콰지지직!
수레가 부서지는 순간, 그는 가볍게 뛰어내렸고, 또 다른 공동에 발을 들였다.
천장이 높은 그곳에는 지금껏 본 수정 결정 중 제일 거대한 결정이 놓여 있었다.
“세상.”
그것은 전체적으로 원형이었고, 성게같이 뾰족뾰족한 수정 가시가 나 있었으며, 열대지방의 바다가 떠오르는 위태롭고 아름다운 청록색이었다.
어지간한 방 하나를 완전히 채울 크기였고, 재질 모를 검은 금속이 푸른 수정 결정체의 외곽을 빙 굴러 감싸고 있었으며, 수정 결정체 중심부에는 거대한 눈 같은 무늬가 있었다.
우우우웅-!
수정체가 진동하고 환청이 울렸다.
‘겁내지 말고, 이리 와.’
발렌시아누스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네가 바라는 모든 걸 이루어 줄게.’
1km 이물이 수도를 과자처럼 때려 부술 때도, 놈의 정신 파동이 2만 3천 명을 침식시켰을 때도 느껴지지 않았던 오싹함이었다.
‘그저 날 받아들여.’
그의 정신력은 열댓 살 먹은 소년 대공이 아니라 수십 년간 산전수전 다 겪은 망나니 대공의 것이었고, 용찬까지 한 지금은 어지간한 정신 파동을 죄다 씹어버릴 수 있었다.
‘조졌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유혹은 그가 회귀 전에 겪었던 어떠한 정신 파동보다도 치명적이었다.
발렌시아누스는 홀린 듯한 발걸음으로 수정체에게 다가갔다.
제이릴리스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쩌저저적!
수정체 표면에 균열이 일고, 자그마한 파란 결정 하나가 솟아올랐다.
그 역시 아름답지만, 거대한 수정체보다는 아니었다.
수정체가 독주를 건네는 신비한 미인처럼 결정을 내밀었다.
‘그저, 그저 날 받아들여.’
발렌시아누스의 노란 눈에 초점이 풀렸고, 그는 쥐고 있던 흑루를 떨어졌다.
땡그랑, 북부의 장검이 바닥을 구르고, 그는 장갑 벗은 손을 뻗었다.
용찬 의식과 정령 정수 이식으로 반투명해지고, 군데군데 암적색 비늘까지 돋은 손이었다.
그나마도 정령 정수 이식이 아니었다면 이미 어깨까지 비늘이 번졌을 것이었다.
“그래.”
발렌시아누스가 수정체에 손을 얹었다.
자그마한 푸른 결정이 아니라, 거대한 눈 같은 수정체 본체에.
우우우웅-!
수정체가 당황한 듯 맹렬하게 진동하고, 발렌시아누스의 손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치이이익!
청록빛 아름다운 수정에서 증기와 연기가 솟고, 망나니 대공의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어렸다.
“너 진짜 무섭다. 나도 완전히 당했어. 아무리 의지를 쥐어짜도 도저히 널 부수지는 못하겠더라고. 하나 남은 가족에게 검을 겨누는 기분이었어.”
이이이잉!
“그럼 어쩌겠냐. 불태워서 정화하고 집어삼켜야지. 될지는 모르겠는데, 넌 안정성도 높고, 네가 본체니 계속 먹어야 할 일도 없겠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망나니 대공은 어느새 세로로 찢어진 노란 동공을 번뜩였다.
“같이 죽거나, 나만 사는 거야.”
그의 관자놀이에서 산양처럼 굽은 뿔이 솟아올랐다.
수정 결정체가 발악하듯 정신 파동을 자아냈고, 발렌시아누스가 읊조렸다.
“그저 날 받아들여.”
* * *
텐티아가 천둥처럼 검을 베어 내렸다.
“내 시체를 밟고 가거나, 내 검에 시체가 되시오!”
츠카아악!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기계 갑옷 곳곳에 박힌 수정 결정체들이 공명하며 힘을 증폭시켰다.
우우우웅!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가 피로 만들어진 파도처럼 몰아쳤다.
“…….”
그러나 엔시스는 바다를 갈랐다는 선지자처럼 유유히 검을 베어 올렸다.
사악-!
텐티아에 비하면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정갈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서늘한 푸른 선은 붉은 파도를 헤치고 올라갔고, 기계 갑주의 단단한 판금 장갑을 찌그러트리고 강철 섬유와 체인을 꺾었으며, 엔서스의 몸만큼 거대한 대검의 궤도를 완전히 틀어버렸다.
치이이익!
기계 갑옷이 비명을 질러댔고, 텐티아 역시 크게 휘청였다.
“커억!”
그녀의 투구 틈 사이로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마나는 몸속에서 흐르고, 마나 블레이드는 그 흐름을 외부로 돌리는 기술이자 경지였다.
즉, 마나 블레이드가 억지로 꺾이는 건, 장기와 혈관이 죄다 터지는 수준의 충격이었다.
후욱!
그러나 텐티아는 다시 중심을 잡았고, 붕권을 날려 거리도 되찾았다.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하고도 몸이 반토막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실력과 갑옷의 질을 증명해주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군.”
사악!
엔시스의 일검이 왼손 건틀릿을 갈랐다.
단단한 철판과 스파이크가 치즈처럼 잘려 나갔다.
그가 원했다면 텐티아의 팔도 잘라낼 수 있었을 검격이었다.
물론 그는 그를 진짜로 도발한 이 맹랑한 기사를 곱게 죽여줄 마음이 없었다.
더더욱 불쾌한 건, 이 기사가 그의 그런 마음조차도 알고 있는 듯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철이고, 베이지 않는 물이다!”
텐티아가 갈라진 특대검에 다시 한번 마나 블레이드를 둘렀다.
붉은색 파도가 재차 일어났다.
필리오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 전하께 끝까지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분명 그가 텐티아를 이겼을 텐데도, 필리오스는 텐티아 앞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도로이센, 검과 기사의 나라가 그토록 칭송하는 미덕의 현현이 그 자리에 있었다.
텐티아는 엔시스에게 지극히 집중했다.
‘세상도 사람도 다양한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고, 평가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한 가지 관점을 선택해야만 한다. 관조하고만 있어서는 나아갈 수 없나니.’
검술 교본의 고리타분한 말이 불현듯 마음속에 떠올랐다.
중요한 건 무수한 선택지 중 하나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도망쳐도 될 이유가 아무리 많아도, 싸우기로 선택했다는 것.
그 순간 텐티아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였다.
“흐.”
제국 검술 8단계, 살가야견(薩迦耶見)
5단계 아사와 흡사하나, 그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경지였다.
5단계 아사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소에 뭘 보고 들으며 살았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텐티아에게 몰려들었다.
지금이라면 이 세상의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아아악-!
검왕 엔시스가 푸르게 타오르는 검을 베어 내렸고, 텐티아는 무릎을 크게 숙이며 피해냈다.
마치 피할 수 있을 걸 한 박자 앞서 안 듯했다.
엔시스의 표정에 이채가 스치고, 텐티아는 곧바로 뛰쳐나가며 특대검을 베어 올렸다.
어깨부터 집어넣고, 그대로 크게 휘둘러 목을 치는 기술.
제국 기사들의 간판 기술 중 하나였다.
붉은 검이 거대한 반원을 그렸다.
차아아아-!
붉은색 마나 블레이드가 해일처럼 일어났다.
동시에.
‘일으켜서, 끊어낸다.’
텐티아의 손에서 도로이센 검객들의 절기가 펼쳐졌다.
갑옷을 통과해 살을 직접 벤다는 신묘한 기예였다.
마나 블레스트!
‘지금이라면!’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베는 파도와,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파도가 엔시스를 덮쳤다.
츠카아아악!
웅장한 파공성이 일고, 엔시스와 텐티아가 교차했다.
“후우, 후우.”
텐티아는 거친 숨을 토하며 몸을 돌렸고, 엔시스는 투구에 난 깊은 금을 건틀릿으로 쓸었다.
강대국의 왕인 만큼, 그의 갑옷은 제국 황실 기사들의 갑옷보다도 많은 마법 회로로 강화되어 보호받았다.
“내게 고작 피 한 방울 흘리게 했군.”
그는 스스로 그 투구를 벗어 던졌다.
목에 혈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아무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도, 소드 마스터의 벽은 높았다.
“이제 만족하나?”
슬슬 편해지는 게 어떠냐는 제안.
텐티아는 기사답게 그 제안을 걷어차 버리고, 검을 들었다.
“나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철이요, 베이지 않는 물이다. ……피를 흘린다면, 죽일 수도 있겠지.”
엔시스가 옅게 조소했다.
“네 주군을 그렇게 믿느냐? 지금쯤 그는 수정체에 침식되어 괴물이 되었을 거다.”
텐티아는 시정잡배들의 잡소리를 들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기사가 주군을 믿지 않으면, 누가 누굴 믿을까?”
“음.”
“그분은 거짓말을 즐기지 않으시지. 그분은 반드시 저 아래 잠든 옛것을 토막 내실 것이고, 난 그분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 서 있을 것이다.”
엔시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대가 내 기사였으면 좋았을 텐데.”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몇 배로 타올랐다.
텐티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다가올 죽음 앞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쐐애애액!
그때 불의 창 한 자루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불길이 터지고, 엔시스가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는 그 불길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서늘한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누구 기사에게 더러운 혀를 놀려?”
그리고 그 불길 뒤에서, 몇 배는 더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