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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45)화 (245/340)

(245)

솔레타라스의 대귀족들은 더 이상 가질 게 없을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렸다.

카리오사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의 영지전은 무언가를 빼앗겠다는 탐욕보다는,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바람에서 기인했다.

광산 때문에 전쟁이 터졌다고 해 보자.

그건 광산의 보화가 탐나서라기보다는, ‘혹시 저놈이 저 광산을 먹고 더 강해져서 나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 저놈이 먹는 건 막는다.’라는 느낌이었다.

지킬 게 많은 자는 잔인해지는 법이다.

본보기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명예를 그렇게 부르짖는 텐티아 경도, 한번 전투를 시작하면 악귀 같이 싸웠다.

애초에 루디에게 단검술을 처음 가르친 게 텐티아 경이었다.

그녀가 악귀 같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핵심만 말하자면, 제국의 전쟁은 다소 위신을 잃는 한이 있어도 이기는 게 중요했고, 언제나 무척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상대편에 강한 기사가 있으면 떼로 덤비거나, 아예 그 한 명만 노리는 참수 부대를 만드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반면 타국의 귀족들은 정말로 광산 자체가 탐나서 싸웠다.

하지만 귀족이란 작자들이 대놓고 돈 때문에 싸운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전장에서도 명분과 위신, 예의범절이 중요해졌다.

귀족끼리는 머리를 노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통용되는 왕국도 허다했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1대 1 대결은 신성한 것이었고, 진짜로 성직자가 입회하기도 했다.

실제로 텐티아 경이 엔시스와 싸우고 있을 때, 아무도 싸움에 끼어들거나 그녀를 포위하지 않았다.

내가 끼어든 건 일종의 교대나 흑기사로 해석해서 어찌어찌 용납했겠지.

즉.

내가 엔시스의 손날에 당한 순간 텐티아 경과 세레라지에가 가세한 건, 저들 기준에서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비열한 짓이었고.

내가 그 둘의 도움을 받아서 엔시스의 등을 찔러 죽인 건, 저들 기준에서 욕도 안 나올 정도로 비열한 짓이었다.

* * *

풀밭 저 멀리, 필리오스의 표정은 아주 볼 만했다.

“바, 발렌시아누스. 아버지? 아버지?”

난 솔직히 엔시스를 파편 공명으로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침식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몸 안쪽이 터져 무너지는데 견딜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천하의, 망나니 새끼가!”

필리오스가 눈에 새빨간 핏발을 세우고 달려 나왔다.

“찢고 죽인다!”

“저 개자식을 장대에 매달아라!”

“산 채로 씹어 먹어 주마!”

“죽음을 탄원하게 될 것이다!”

“사지를 잘라 수도로 보내 주마!”

“엔시스 전하의 원수를 갚아라!”

그 뒤를 수십의 검객과 수백 정예병이 따랐다.

“우와아아!”

1천의 인마가 거친 바위산을 뒷배경 삼아 나를 향해 돌격해오는 모습에는, 비현실적인 웅장함이 있었다.

“기다려라!”

“침착…… 윽!”

“경! 통제가 안 됩니다!”

장교 기사들과 호위 기사들이 당황하는 모습도 얼핏 보였다.

난 곧바로 텐티아 경을 챙겨 도망치려 했다.

철컥, 그녀가 투구 면갑을 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절 두고 가십시오. 전하.”

텐티아 경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을 일으키더니, 중간이 부러진 특대검을 다시 쳐들었다.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녀 곁에 섰다.

“그럴 것 같나?”

텐티아 경이 고개를 저었다.

난 우리 뒤로 솟은 바위산을 흘깃 바라보았다.

저 위쪽에 세레라지에와 마커스가 있겠지.

이 상황을 보고 있을 테니, 조금만 버티면 와이번을 보내든 다시 벼락을 타고 날아오든 할 거다.

“경.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우면서 바위산으로 후퇴하도록 하지. 산을 탈 여력은 남게 두게. 세레라지에 누나의 캐스팅이 늦어지면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

“예. 전하.”

난 밀물처럼 몰려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죽여라! 죽여라!”

신기하게도 그리 두렵지 않았다.

아즈를 집어삼키고 나서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다.

“침략자들 주제에 말이 많다.”

내가 느끼기에도 몸이 강인해졌다.

빈사 상태에서 손날만으로 희미하게 날렸다고 하나, 오러 블레이드를 맞고도 피 좀 보고 끝났을 정도다.

본래 마법은 강한 한 명보다 약한 여러 명을 상대하기에 유리하다.

불길 역시 온도를 올리기보다는 범위를 넓히는 게 편하고.

그리고 내 불길은 원래도 소드 마스터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 정도였고.

이제는 그 힘을 좀 더 끌어내도 몸이 무너지지 않을 듯하다.

난 용찬의 힘을 마음껏 끌어 올렸다.

“하하하하!”

파악!

야만적인 전능감이 혈관을 내달리고, 좌우 관자놀이에서 전례 없는 크기의 뿔이 솟았다.

* * *

텐티아는 발렌시아누스의 세로 동공이 살의로 물드는 걸 보았다.

거대한 용의 뿔 주변으로 마나가 우우 모여들고, 황금빛 기운에 물들었다.

붉은 입술 사이 살짝 벌어진 입 안에서 길어진 송곳니가 엿보였다.

‘몸 상태가 괜찮다?’

변이는 거기까지였다.

손이 반투명해지지도 않았고, 온몸이 비늘이 솟지도 않았으며, 피막 날개 같은 게 자라나지도 않았다.

발렌시아누스가 용심과 정령에게 확연한 주도권을 잡았다는 뜻이었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다음 순간 어디에선가 피어오른 불씨가 바람에 흩날렸다.

타닥, 타닥!

불씨가 불꽃으로 타올랐고, 불꽃은 불의 벽이 되어 치솟았다.

“……전하.”

텐티아는 그들의 앞을 막아선 높이 20여 m에 길이가 300m도 넘는 ‘화염 파도’를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최고위 전투마법사들도 시약의 힘을 빌려 가며 한참 동안 캐스팅해야 할 위력이었다.

압도적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라.”

발렌시아누스가 낭랑하게 명령했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꽃의 벽이 해일처럼 분지를 휩쓸었다.

뒤쪽 병사들은 분노에 눈이 멀어 외쳤다.

“전진!”

“죽여라!”

앞쪽 병사들은 기겁하며 뒤돌아 외쳤다.

“후퇴!”

“도망쳐!”

물론 앞쪽 병사 중에서도 끓어오르는 진노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불의 벽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이 많았고, 검객 중에는 도망친 자들이 되려 손에 꼽았다.

“하아아아!”

“타아!”

온갖 유파의 절기가 화염 파도에 작렬했다.

사아악!

츠카아악!

푸른색, 붉은색, 하얀색, 노란색 섬광이 화염 파도를 가르고, 검객들이 나아갈 길을 뚫었다.

화르르르!

소드 엑스퍼트에 올라선 검객이 전력으로 휘두른 검격은 강력했고, 실제로 불의 벽을 뚫고 나온 자도 있었다.

“뭐야?”

“우, 우리만 살아남은 거야?”

그들은 이내 옆에 남은 자가 손에 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율했다.

불의 벽은 제 몸에 작은 상처가 나든 말든, 착실하게 해야 할 일을 했다.

“……!”

“……! …….”

“……! ……! …….”

등 뒤에서는 이제 비명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 고통으로 춤추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부상자들을 찾아 달려온 성직자도 황망한 표정만 지었다.

분지 평야가 군데군데 붉게 녹아 짓물렀고, 돌 끓어오른 증기가 피어올랐으며, 뼈조차 남지 않았다.

전장에 거대한 공백이 발생했다.

발렌시아누스가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살아남은 검객들에게 손짓했다.

“돌아가.”

그는 살인을 즐기는 자가 아니었으나.

“죽을 만큼 죽었잖아?”

그들에게는 완벽한 도발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

일류 검객들이 땅을 박찼고, 발렌시아누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어렸으며, 허공에서 불덩어리 열댓 개가 타올랐다.

쐐애애액!

소드 엑스퍼트 검객들은 일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릴 얕봤구나.’

‘감히 전하를! 전하를!’

‘목이 떨어지는 순간에 후회하거라!’

그들 중 저렇게 천천히 날아오는 불덩이에 맞을 만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불덩이 속에서 중성적인 소년 소녀들의 상반신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정령?”

“까르르륵!”

쉬익!

쉬이익!

불덩이가 허공에서 제멋대로 궤도를 바꾸며 검객들에게 안겨들었다.

검객들은 어울리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고, 양팔을 벌리는 소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

사악!

마나 블레이드 타오르는 검이 불꽃 소년의 몸을 반으로 잘랐지만, 소년은 그대로 다시 합쳐지며 검객을 껴안고 몸을 불살랐다.

“까르르륵!”

펑!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발렌시아누스가 정령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네. 몸도 멀쩡하고. 적어도 붕괴는 끝난 듯해.’

정령 정수를 이식받은 순간부터 생각했던 기술이었는데, 몸이 너무 정령화 될 듯해서 지금까지는 써 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는 텐티아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바위산으로 향했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검객은 이제 한 명뿐이었다.

“너! 이 간악한 자야!”

검객이 불꽃 파도와 정령 난무를 모두 이겨내고 발렌시아누스 앞에 섰다.

그는 갈색 머리에 다정한 인상의 미남이었고, 빼어난 유파의 계승자였으며, 영체를 베는 검술을 극성으로 익힌 검객이었다.

그 역시 정상 상태는 아니었다.

머리카락에서는 탄내가 났고, 옷도 여기저기 불타고 찢어졌다.

발렌시아누스는 수도 제일의 망나니답게 오만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대공 전하라 불러라. 미천한 것아.”

그는 본래도 유약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육체의 안정을 되찾은 뒤로 더더욱 강인해졌다.

앞섬이 잘려 나간 제복 사이로 강철 섬유 같은 복근이 엿보였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검객은 장도를 치켜들며 절기를 펼쳤다.

사아악!

섬광 같은 일격이 발렌시아누스의 어깨를 갈랐다.

텐티아는 기겁하며 특대검을 들고 나섰다.

“전하!”

그녀가 아는 발렌시아누스라면 당연히 막거나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발렌시아누스가 막거나 피했다는 듯 여전히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것도 한 번은 시험해 봐야겠지. 살의에 물든 상대가 딱 한 명 남아있고, 경이 내 옆에 바싹 붙어있는 게 흔한 상황은 아니니까.”

검객의 갈색 눈동자에 공포가 차올랐다.

사선으로 갈라진 대공의 어깨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발렌시아누스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렸다.

“이게 정령화랑 결합 되니까 참 좋네. 피격당하는 순간에 해당 부위를 수정질로 바꿔 버려.”

갈라진 상처 안에서 노란빛으로 달아오른 수정이 자라나고, 상처 부위가 메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탄탄하고 뽀얀 근육만 남았다.

검객은 기겁하면서도 다시 검을 들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그는 저런 기괴한 능력은 두 곳에 동시에 사용하기 힘들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이번에야말로-!”

푹!

“죽어야지.”

발렌시아누스가 흑루로 검객의 심장을 관통했다.

자세를 낮추는 동시에 깊게 파고드는 정석적인 찌르기였다.

‘발로 차올리고, 허공에서 잡아챈 다음에 심장을 찔렀다. 저 정도셨나?’

기예는 아니었으나, 텐티아가 봐도 깔끔하고 효율적인 동작이었다.

발렌시아누스가 투덜거리며 검객의 몸에서 검을 뽑았다.

“지금까지 너무 답답했어. 할 줄 아는 건 많은데, 몸 사리느라 못하는 기분 알아? 도자기로 만든 검을 들고 싸우는 기분이었다고.”

그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검객의 시신을 불태웠다.

“너도 그냥 저쪽에 서 있지, 왜 달려왔어? 도로이센에 대체 뭐라고 말을 하지? 궁정 수석 마법사라는 놈을 잡아야 하는데, 내가 방금 왕이랑 왕자를 다 죽여버린 거 같단 말이야. 아, 왕자는 살아 있나?”

“전하.”

“그래. 텐티아 경. 내가 다시 필리오스와 협상해볼 여지가 남아있을까?”

텐티아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양심이 있으십니까? 아버지를 주살한 망나니와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역시 그렇지?”

텐티아는 문득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발렌시아누스에게 많이 듣던 말이었으나, 이번만은 약간 느낌이 달랐다.

망나니 대공이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이번에도 어쩔 수 없겠네.”

* * *

필리오스는 미친 듯 날뛰었고, 기사들에게 몇 대 얻어맞고 그대로 뻗었다.

“태자님! 혼자서는 저 괴물을 못 이기십니다!”

“혼자 돌격하실 생각 마십시오! 이제 태자께서 저희를 이끄셔야 합니다!”

“내, 내가?”

“이 나라의 후계자가 아니십니까?”

“저도 이 상황이 이해 안 됩니다! 그래도 태자님은 태자님이십니다!”

장교 기사들은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붙들었고, 3천 중 2천 이상이 제자리를 지키게 하는 데 성공했다.

병사들은 수백의 전우가 뼈도 남지 않고 타버리는 걸 보며 전율했다.

그리고 도로이센의 장교 기사들은 병사들의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저 정도 경지의 마검사에게 천 단위의 물량 공세는 큰 의미가 없다.’

‘잡을 거라면 우리 기사들이 마법사의 서포트를 받아 가며 잡아야 해.’

‘적어도 이 녀석들이 죄다 돌격해버리는 참상은 일어나지 않겠군.’

그들은 부사관들에게 명령해 병사들을 아예 뒤로 물리기 시작했고, 넋 나간 왕태자 필리오스를 닥달했다.

“태자님!”

“발렌시아누스 대공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필리오스의 검은 눈동자가 한번 풀렸다.

‘아버님. 아버님이…….’

온 세상 같던 아버지, 검왕 엔시스가 사실 침식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비겁한 협공에 당해 죽었다.

빼어난 검객 여럿이 상처 하나 제대로 입히지 못하고 불타 사라졌고, 망나니 대공이 손짓 한 번에 불의 벽을 일으켰으며, 애인은 생사조차 몰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서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게 있다면.

“태자님!”

“듣고 있네. 그래. 일단 마법사들을 후방에 배치하고 병사들의 호위 아래 물 마법을 준비하게. 위협은 하지 말고 준비만 해 놔. 그리고 왕실 깃발과 백기를 준비하게. 전령을 보낼 거야.”

“이, 이 거리에서 무슨 전령을-”.

“지금 저 망나니도 잔뜩 긴장하고 있겠지. 저놈도 단순 검객과 기사의 격차는 잘 알고 있을 거고. 적어도 우리가 대화의 의사가 있음을 알려 줘야 해. 이럴 때일수록 절차를 통해 안정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겠는가?”

“!”

“내가 데려온 마법사들도 아버지 전하의 마법사들과 함께 배치하게. 행정관 불러서 문서 만들 준비하고. 저 씹어먹을 망나니 놈도 뭐라도 요구를 해오겠지.”

“대체 그걸 어떻게 믿으시고……!”

“우리와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면 망나니 대공이 아니라 신성 황제가 왔겠지!”

“!”

“그리고 마스터 에즈라즈를 불러오게. 도망치려 하면 감금하고. 아버지 전하의 주치의를 겸하던 놈이, 아버지 전하께서 침식되고 있다던 사실도 모르고 있다니. 몰랐으면 무능이고, 알았으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예, 예.”

“후방에 전령 보내서 총력전을 준비하게. 혹시 일이 안 풀릴 가능성도 고려하겠어. 그리고 만약 내가 죽으면 태자 위는 내 동생이 아니라 폐위되셨던 형님에게 돌리게. 나보다 오래 태자셨으니 어련히 잘하시겠지.”

“…….”

“왜 답이 없는가? 내 지시에 문제가 있었는가?”

“아, 아닙니다. 태자님.”

멍한 얼굴로 있던 기사들이 미친 듯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필리오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20년은 늙은 듯하던 인상도 다시 멀끔해졌다.

그는 전령이 달려 나가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전하. 왕위를 물려받고 있습니다. 예. 저는 결국 아버지 생전에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했군요. 모자란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모든 걸 베어나가지는 못하겠으니, 어떻게든 협상을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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