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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세레라지에를 바라보았다.
내가 회귀 전에 마나의 추방자로 이뤄진 암살자들과 싸웠을 때는, 길거리 개싸움처럼 싸웠다.
눈에 엄지를 찌르고, 목을 물어뜯고, 단검으로 가랑이 사이를 헤집는 등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할 싸움을 했다.
“내가 살면서 너희 같은 놈들을 한두 번 만나는 게 아니잖니!”
오늘은 달랐다.
“너희는 무슨 취업 못한 철학과 출신 인간 사냥꾼이니? 지나가는 사람 잡아다가 침대에 눕혀 놓고, 침대보다 작으면 늘려 죽이고 길면 다리를 자르는 거니?”
세레라지에가 노성을 내뱉으며 마법을 펼쳤다.
그녀의 자세는 꼿꼿했고, 태도는 당당했으며, 절박하기보다는 짜증 나 보였다.
“눈이 있다면 내 찬란한 재능을 보려무나. 현실이 만민 평등인지 뭔지 하는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나 같은 마법사를 죽이려 들어? 인간종 전체의 손해잖니?”
번쩍!
그녀가 허공에 수인을 그리고 지팡이를 내리칠 때마다, 불꽃이 튀고 마녀사냥꾼이 바닥을 굴렀다.
용언과 정령의 힘을 다루는 나이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사아아아-.
엄청난 마나가 이 바위산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녀사냥꾼이 마나를 흡수하고 흩어내는 것보다, 세레라지에가 마나를 끌어오는 게 빨랐다.
마녀사냥꾼 두 놈이 절벽 옆을 기어 올라왔다.
흐릿한 존재감 탓에 거의 다 올라온 다음에야 보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나는 무력감을 떨치며 달려들었다.
“이름을 밝히고 달려들면 전사의 도전이요,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기어들어 오면 비열한 도둑놈일지어다!”
존재감 낮은 놈들을 상대할 때는 두 가지 요령이 있었다.
첫 번째는 팔꿈치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난전을 펼치는 거고, 두 번째는 아예 광역 기술로 면을 쓸어 버리는 거였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불꽃!”
화르르륵!
내 손짓을 따라 불길이 소용돌이치며 쏘아져 나갔다.
10m도 넘게 늘어진 불길이 두 놈을 덮쳤다.
“아아아악!”
“끄으으윽!”
놈들의 몸뚱이는 마나를 빨아들이기에, 내 마법의 불길은 금세 꺼져 들었다.
하지만 흑백 법복이 검게 불탔고, 놈들은 깊은 화상을 입었으며, 비명과 신음성은 놈들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너희는 흑백이 아니라 칠흑이다! 타협하지 못하는 자들과 어찌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
악몽 속 추악한 환상 같은 놈들도, 비명을 지르니 그저 밤손님 같아 보일 뿐이었다.
“네놈들이 부르짖던 걸 선물해 주겠다!”
퍽!
나는 한 놈의 가슴팍을 힘껏 걷어찼다.
마녀사냥꾼 하나가 그대로 길게 밀려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니. 이것조차 네놈들이 바라던 그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사악!
두 번째 마녀사냥꾼이 자세를 낮추며 단검을 내질렀다.
정확히 갈비뼈 사이로 들어와 폐를 노리는 궤적이었다.
하얀 신성력이 마나 블레이드처럼 어려 있었다.
난 오른손에 용의 비늘을 갑각처럼 두르며 막아냈다.
까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신성력이 사그라들고 단검이 깨져 나갔다.
“나는 그것마저도 뿌리치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가면 너머에서도 놈이 당황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오른손은 비늘로 둘렀지만, 왼손에는 여전히 착 달라붙는 검은 장갑 ‘보이지 않는 손’을 끼고 있었다.
몸속에서 마나를 움직여 장갑에 불어 넣었다.
제3의 팔이 생긴 듯한 감각이 척수를 타고 내달리고, 나는 그 팔을 움직여 놈의 아래턱을 붙들고 힘껏 내리눌렀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턱이 빠졌다.
“끄으으윽!”
놈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가면 너머 독기 어린 시선이 나를 쏘아보았다.
빌어먹을 혼혈 귀족 놈들, 하는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라 불러라. 이 천한 것이 감히 누구를 죽이려 들어?”
나는 그 눈빛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놈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머리를 짓이겼다.
“누나는 황실의 자랑이고, 앞으로 이 세상을 지킬 마법사다. 감히 너희 따위가 발목을 잡아도 될 사람이 아니야.”
세레라지에가 막 긴 주문을 완성했다.
“왕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평소에는 무영창으로 가능한 마법도 지금은 주문과 시동어로 캐스팅해야 했다.
“낙뢰잖니.”
그러나 입가에 걸린 새침한 웃음은 사라질 줄 몰랐다.
번쩍!
검붉게 물든 하늘에서 하얀 섬광이 번뜩이며 나뭇가지처럼 뻗어 내려왔고, 마녀사냥꾼 열댓 명이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아예 흔적도 남지 않고 타버린 놈도 있었다.
이제 서 있는 놈보다 누워있는 놈들이 더 많았다.
놈들이 가면 쓴 얼굴을 서로 마주하더니,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섰다.
수풀이 갈라지고 한 놈이 더 걸어 나왔다.
놈은 기묘한 뿔피리를 들고 있었고, 세레라지에가 그걸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동생아. 저거-.”
놈이 뿔피리를 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난 귓가를 맴도는 이명을 느꼈다.
세레라지에가 날 보며 입을 뻐금거리다 혀를 찼다.
뿔피리 소리만 안 들리는 게 아니었다.
흡음 결계였다.
나는 이 황당한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회귀 전에도 못 마주한 경우였다.
마녀사냥꾼이란 놈들이 마도구를 써?
* * *
우리는 절벽을 뒤로 하고 놈들을 밀어붙였지만, 놈들은 다시 한번 우리를 절벽으로 밀고 들어왔다.
스윽, 스으윽!
수화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포위망을 좁히는 솜씨가 볼만했다.
하얗게 신성력 타오르는 칼날과 망치가 우리의 몸을 찢고 부수려 했다.
나는 용찬의 힘을 더더욱 끌어 올렸고, 하늘을 우러러 포효했다.
“……! ……!”
쩌저저적!
어중간한 마도구로는 나와 세레라지에를 묶어둘 수 없었다.
그러나 저 뿔피리로 만든 흡음 결계는 대체 어떻게 된 물건인지, 도저히 사라질 줄을 몰랐다.
어둠 속에서 신성력 어린 칼날들이 흔들렸다.
난 그제야 그 뿔피리의 정체를 알아챘다.
인위적으로 만들었든 진짜든, 저건 성물이었다.
젠장.
랑소와는 만민 평등을 외치는 공화국이었고, 자연스럽게 광명신 앞에서 만민 평등을 외치는 광명 교회와 가까워졌을 거다.
그러니 일반병들까지 기도와 신성력으로 무장하고 주문을 썼겠지.
그런 나라의 마녀사냥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성물을 가지고 있을 법도 했고, 성물이라면 내 힘을 버텨낼 만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난 세레라지에를 껴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려 했다.
이 몸이라면 낙하의 충격 정도는 버텨 줄 테니까.
하지만 세레라지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색이 다른 두 눈은 뿔피리를 분 마녀사냥꾼 대장을 응시하고 있었고, 긴 손가락은 끝없이 움직이며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겹치는 수인을 맺고 있었다.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표정을 지키고 있었지만, 목덜미와 관자놀이에는 포도알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천재였지만, 자신의 재능보다 열정과 노력을 더 믿어 온 천재였다.
그녀가 눈빛으로 말했다.
‘3분만 버텨 주겠니?’
나는 눈빛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부탁이잖니.’
아.
진짜.
세상.
나는 발을 한 번 구르고 세레라지에 앞을 막아섰다.
스으윽, 스윽!
마녀사냥꾼이 수십 명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밤하늘 아래서 금속 가면과 신성력 어린 무기들만이 번뜩였다.
난 손과 팔에 비늘을 두르는 동시에 장검 흑루를 베어 올렸다.
서걱!
깔끔한 손맛과 함께 마녀사냥꾼 하나가 얼굴이 반토막 나 쓰러졌다.
푸, 푸푹!
동시에 단검 둘과 손도끼 하나가 내 옆구리와 빗장뼈를 가르고 들어왔고, 전투 망치가 내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땅!
나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놈들의 눈을 손가락으로 쑤시고, 가랑이를 걷어차고, 목을 물어뜯었다.
나를 지나쳐 세레라지에에게 향하는 마녀사냥꾼의 옷자락을 붙들었고, 놈이 내 손을 뿌리치려 하자 악력으로 살을 짓이겨 놓았다.
마녀사냥꾼 대장이 성기사나 쓸 장검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저 칼에 찔리면 많이 아플 듯했다.
놈이 웃는 게 가면 너머로도 보였다.
‘엿이나 먹어라.’
나는 놈의 얼굴에 대고 중지를 펴 보였다.
놈이 내게 검을 겨누었다.
우우우웅-!
다음 순간 내 코앞까지 다가왔던 장검이 시간을 되돌린 듯 멀어졌다.
퉁!
푸른 알갱이가 뭉쳐 만들어진 듯한 역장이 놈들을 일제히 밀어냈다.
세레라지에의 자기 역장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혀를 내둘렀다.
마나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수인만으로도 이 정도 되는 마법을 펼쳐내다니.
위인전에 실리고도 남을 업적이었다.
세레라지에가 나를 보고 씩 웃으며 지팡이를 들어 보였다.
분명 흡음 결계가 쳐져 있었지만, 그녀의 새침한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역시 난 뼛속까지 특별하잖니.”
특별해지기 위해 노력한 끝에 진정 특별해진 마법사의 말이었다.
그녀의 지팡이 주변으로 검은 쇳가루가 모여들며 길게 소용돌이쳤다.
츠츠츠츳!
사철 칼날이었다.
안개 같은 칼날이 수십 줄기로 나뉘며 뻗어나갔다.
사아악, 사악!
마녀사냥꾼 놈들의 목과 팔다리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떨어져 나가는 광경은, 어지간한 전쟁을 다 겪어 본 나로서도 비현실적이었다.
마녀사냥꾼 대장이 다시 장검을 치켜들었다.
신성력의 칼날이 은은하게 타올랐다.
그때 수풀 속에서 손가락 두 개가 빠르게 튀어나와 마녀사냥꾼 대장의 무릎 뒤쪽을 짚었다.
아주아주 작은 푸른 전류가 튀고, 대장의 몸이 휘청였다.
누가 보면 대장이 알아서 휘청인 줄 알았을 만큼 은밀한 습격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 나가 뿔피리를 빼앗았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감각과 함께 소리가 돌아왔다.
“이 빌어먹을 놈이 감히 나랑 세레라지에 누나를 한날한시에 죽이려 들어?”
나는 마녀사냥꾼 대장을 번쩍 들어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마경 핵 주변에는 거대한 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 * *
마녀사냥꾼 대장은 죽었고, 성물은 빼앗았다.
마녀사냥꾼 놈들이 가면 너머로도 부들부들 떠는 게 느껴졌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불꽃.”
나는 불꽃을 피워 올렸고, 세레라지에는 자기 역장 너머로 사철 칼날을 뻗었다.
여전히 마나를 움직이는 게 편하지는 않았지만, 주문으로 마법을 펼칠 수만 있어도 놈들은 우리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놈들 대신, 마녀사냥꾼 대장을 쓰러트리게 도와준 손이 나왔던 수풀을 바라보았다.
에릭일 게 분명했다.
이물 군단이 랑소와로 진격 중인 이 사태가 어쩌다 비롯되었는지 물으려 헐레벌떡 달려왔겠지.
국민을 제 목숨처럼 아끼는 그 녀석의 성격상, 지금 이 상황도 안타까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흑루를 늘어트렸고, 마녀사냥꾼 놈들이 잘 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돌아가서 전해라. 지금 당장 회군하지 않으면, 너희 국경 근처의 마을과 도시들은 죄다 불바다가 될 거다. 이건 예측 같은 게 아니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되게 할 거니까.”
마녀사냥꾼 놈들이 가면 쓴 얼굴을 마주했다.
결의를 다지는 듯 단검을 쥐는 자도 있었고, 절벽 아래 지금도 늘어나는 이물들을 보며 이를 가는 자도 있었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턱을 쳐들었다.
“계속하고 싶다면 계속해도 좋다. 혈통의 정점, 타고난 지배자, 불합리의 대공, 솔레타라스 제국의 용혈 황족이 너희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버리겠다.”
이는 어떠한 심리전이 아니라, 그저 순수한 패악질을 부리고 싶은 내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신성력 어린 단검 맞은 자리가 지금도 불타는 듯 아팠다.
“도전하거나 도망치거라. 그래. 나야 이참에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게 좋지.”
흑루에 용언의 불길을 흘려 넣자, 검은 칼날에 오렌지색으로 달아올랐다.
저벅.
내가 한 걸음 나아가자 놈들이 한 걸음 물러났고, 내가 두 걸음 나아가자 놈들이 두 걸음 물러났다.
뭐라 외쳐야 저놈들이 보기 좋게 싹 도망칠까 고민할 무렵, 놈들은 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전하!”
치이이익.
텐티아 경이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경! 지금까지 어디서 뭘-.”
나는 반사적으로 원망의 말을 내뱉었다.
텐티아 경이 절벽으로 올라오는 길목을 막고 있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막고 있었기에 마녀사냥꾼이 이렇게 몰려왔단 말인가?
“용서하지 마십시오. 전하. 제가 부족하여-.”
텐티아 경이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그녀 뒤로 마녀사냥꾼 시체와 랑소와 정찰병들 시체가 총합 200구 정도 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시체가 쌓여 길이 막힐 정도였다.
텐티아 경이 아니었다면 저들이 모두 몰려왔을 테고, 그럼 물량 공세에 당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경. 충분히 잘해 주었네.”
다시 절벽으로 돌아가자 세레라지에와 에릭이 마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