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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280)화 (280/340)

(280)

마테오스에게 내 신실함을 증명해주고 마차로 돌아왔다.

등을 기대며 느긋하게 늘어지니, 텐티아 경이 약간의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전하. 그런데 이렇게 여유 부리셔도 됩니까?”

“응?”

“말이 좋아 동부지. 카리오사 공작의 도시인 상어의 고향, ‘케투시온’까지 가려면 와이번으로도 거의 한 달입니다. 마커스의 인스트루멘툼보다 먼 땅이 아닙니까?”

나는 가볍게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 날씨에 찬바람 맞으며 날고 싶지는 않을걸?”

텐티아 경이 벌레 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체온 유지 마도구를 사십시오. 아니. 애초에 이물을 불태워 먹어 치우는 분이 추위를 느낀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그래.”

“그럼 대체-.”

“지금 가서 해적들 공격해 봐야 큰 의미가 없어.”

나는 웃음 속에 뼈를 담아 읊조렸고, 텐티아 경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토벌은 언제든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농민들이 제일 굶주릴 때가 봄이지?”

텐티아 경은 시골 영지 출신이었고, 당연히 아주 잘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요.”

“해적들도 똑같아. 걔들도 봄에 제일 굶주려. 그래서 더더욱 심하게 약탈하려고 몰려오는 거고.”

“그건…… 몰랐습니다.”

“지금 토벌하면서 수를 줄여도, 걔들이 봄에 안 오는 건 아니야. 그런데 지금 수를 줄여 버리면? 입이 줄었으니까 봄에 든든히 먹고 더 기운차서 오겠지.”

“아.”

“식량부족을 겪고 있어야 내분도 생길 거고, 한두 번만 물리쳐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어.”

걔들은 사실 그냥 해적이 아니라, 일종의 개척군단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쯤 그 섬에 그 사략 선장들을 따라나서 새 인생을 꿈꾸는 동방 대륙 평민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도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날씨 따뜻해지고 보리 수확 시기 전에만 도착해도 충분해.”

전쟁 관련 이야기라 그런지, 텐티아 경도 썩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렇군요. 그건 또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조금 늘어져 있어도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안 그래도 요즘 이유 없는 두통이-.”

내가 앓는 소리를 하자, 텐티아 경이 엄살 부리지 말라는 듯 말을 끊었다.

“그럼 지금은 어딜 가는 겁니까?”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강철의 거리.”

“무구가 필요하시다면 기사단 제식 장비를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만?”

“난 좋은 검 있어. 당장은 흑루로 만족한다고.”

텐티아 경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럼 뭘 하려 대장장이들에게 가십니까?”

나는 깜짝 생일 연회를 시작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경에게 검 한 자루 더 맞춰 주려고 가지!”

텐티아 경이 쥐 죽은 듯 침묵했다.

“…….”

이게 아닌가?

나는 난처하니 웃었다.

“피, 필요 없었나? 시그나인에게 받은 용골로 한손검 한 자루 만들어주려 했는데.”

척!

텐티아 경이 마차 안에서 무릎을 꿇었다.

“전하!”

핏빛 눈동자가 환희와 흥분으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이 텐티아! 전하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까 황망하옵니다!”

“그, 그렇게 좋은가?”

그녀가 오만 가지 탐욕으로 달아오른 목소리로 외쳤다.

“용골 검은 기사가 하사받을 수 있는 것 중, 영지보다도 귀한 것이옵니다.”

만약에 장난이라고 한다면, 마차 밖으로 날 던져버릴 듯한 목소리였다.

다행히도 난 마차 뒤에 진짜로 용골을 실어 놓았다.

* * *

배움의 거리에서 더 올라가면 마법 거리고, 마법 거리에서 북문 쪽으로 더 올라가면 그곳에 강철의 거리가 있다.

모험가, 용병, 사병, 황실 병사들과 기사들의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의 거리다.

텐티아 경의 백금 갑옷도 여기서 만든 뒤 황립 마도 공방에서 마법 회로를 새겨 완성한 것이다.

이곳의 대장장이 길드는 아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드워프 혼혈 장인들은 작위를 받은 자도 다수며, 지방에서 올라온 영지 귀족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재들이다.

난 검을 만드는 장인에게 가 내 다리보다 긴 용골을 건네주었다.

“이쪽은 백금 기사 텐티아 경일세. 그녀에게 맞는 한손검을 만들어주도록.”

중년의 장인은 검은 뼈에 흐르는 광택을 보고 매부리코가 위로 휠 정도로 놀라 펄쩍 뛰었다.

“……제가 살아서 용골이 이 정도 크기로 나도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중에 나오는 건 가루 형태로 나오나?”

“예. 죽은 용의 뼈를 찾은 대영주들이 아주 조금씩 팔아먹지요. 이거 정말로 놀랍군요. 드워프 대장장이 신 도르르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가게 안으로 우리를 안내하고는, 맑은 차를 내주었다.

“귀하신 분들이 오셨는데 이런 것만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은은하니 좋군.”

그는 가게 뒤쪽 창고로 향했고, 차가 다 식기도 전에 크고 작은 금속 주괴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귀한 물건을 다루게 되어서 심장이 막 뛰는군요. 어떻게 만들지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텐티아 경이 눈을 반짝였다.

“용골을 깎아서 검을 만드는 게 아닌 모양이군?”

도르르가 상대가 기사만 아니었다면 뺨을 쳤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대부분의 용골은 가루 형태로 유통됩니다. 네 기사단의 제식 검에도 조금씩은 들어 가지요.”

“몰랐군.”

“용골은 금속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윤기가 흐르고, 아주 가볍고 단단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결국 죽은 생물의 뼈지요. 은철로 만들고 각종 강화 주문을 새겨놓은 마법검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텐티아 경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왜 용골 검이 그렇게 좋은 건가?”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닙니다. 무기에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소드 엑스퍼트 분들에게만 좋지요. 마나 수용성이 은보다도 훨씬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은은 모든 마법 회로를 그리는 소재였다.

“검기를 잘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장인이 흡족하니 웃었다.

“마법검이고 뭐고 마나 블레이드 앞에서는 깨져 나갈 뿐입니다. 같은 마나 블레이드가 충돌하면, 그때부터는 검의 성능보다 기사님의 강함이 중요하지요. 용골은 그때 빛을 보는 겁니다.”

텐티아 경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웃었다.

약간 쑥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럼 이 검은 마나 블레이드 없이 검끼리만 부딪치면서 싸울 때 쓰면 안 되겠군.”

“예. 그건 철퇴를 놔두고, 굳이 마법 지팡이로 상대의 머리를 깨려는 행동입니다. 물론 깰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 지팡이에 금이라도 가면 너무 큰 손해지요.”

장인이 어려운 설명을 시작했다.

“구리, 이리듐, 티타늄, 크롬, 청은을 섞겠습니다. 구리와 이리듐, 티타늄은 소재의 안정성을 위해 사용하고, 크롬과 청은은 마나 블레이드의 안정성을 위해-.”

이건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였고, 텐티아 경은 방금 들은 소재 중 절반도 못 알아들은 듯했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장인은 끝도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 * *

“마나 블레이드를 사출하는 속도와 안정성을 35% 이상 개선하고…….”

“마나 블레이드가 꺾인다 해도 체내 마나 로드의 피해를 최소화…….”

“곧바로 뽑을 수 있게 단검을 늘린 듯한 형태로 만들고, 전달 효율을 위해 중심에 홈을…….”

텐티아 경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무튼 잘해줄 거 같아 다행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일세. 경. 원래 제작은 소재에 진심인 사람에게 맡겨야 해.”

주전자 가득 끓고 있던 차가 다 떨어질 무렵에야 장인은 말을 멈췄다.

“치수를 재고 가시겠습니다. 그럼 한 달 뒤에 오시면 됩니다.”

“한 달?”

그건 너무 길었다.

“일주일 주지.”

“예?”

도르르가 내가 대공만 아니었다면 뺨을 날려버렸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쥐꼬리 같은 시간으로는 쥐꼬리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내 알 바 아니었다.

“아니지. 제국 최고의 장인인 그대라면 쥐꼬리만 한 시간으로도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전하, 전하! 제가 지금 만들어야 할 검이 이만큼……!”

도르르가 예약 명단을 팔락이며 항의했다.

나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그대는 ‘적기사’ 텐티아 경의 검을 만든 장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테니, 부디 잘 부탁하네.”

“아니…….”

“결과물을 보고 내 검도 부탁하도록 하지. 혹시 누군가 순서가 미뤄진 걸 항의한다면, 내 이름을 대도록.”

도르르의 공방에서는 일주일 내내 통곡성이 흘러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전하.”

그는 후덕하던 뺨이 홀쭉해진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텐티아 경은 눈을 빛내며 하얀 가죽 검집에 든 검을 뽑아보았다.

“아름답군요.”

용골 특유의 검은빛 광채가 금속광과 뒤섞여 아주 야만스럽고도 고혹적인 자태를 자아냈다.

저녁놀 비친 물결이 흘러가는 듯하기도 했다.

약간 짧은 듯 보이기도 했지만, 다급하게 뽑아서 마나 블레이드를 실어 휘두르기에는 딱 맞는 크기였다.

“이름은 뭘로 하겠나?”

텐티아 경이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민하다 답했다.

“이 장검이 ‘화한(火寒)’이고, 이 한손검은…… ‘만하(晩霞)’로 하겠습니다.”

“저녁놀의 검인가? 좋군.”

그녀가 두 자루 검을 차고 처연하니 웃었다.

“제게 석양이 찾아온다 해도 전하를 섬기겠습니다.”

나는 그 웃음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부디 그래 주게나. 경.”

마지막으로, 도르르에게 금화와 알 굵은 보석으로 대금을 치렀다.

“정말로 일주일만에 만들어줄 줄은 몰랐군.”

“예?”

핼쑥해진 얼굴이 우스워 말했다.

“아니. 당연히 못 할 줄 알고 일주일을 불렀네. 오늘 와서 다 안 되어 있었다면,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는 더 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정말 대단하군. 내 인정하겠네. 다음에는 내 검도 부탁하지.”

도르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가 하얗게 물들기를 반복했다.

나는 캘캘 웃으며 공방을 떠났고, 장인의 비명이 마차 뒤로 아득하게 울렸다.

* * *

늦겨울이라는 말도 약간 늦은 초봄이었다.

땅 위로 이르게 나온 새싹이 밤사이에 다시 얼어 죽는 가운데, 나와 텐티아 경은 와이번핏에서 각자 하사받은 와이번을 타고 수도를 떠났다.

“동생아. 잘 다녀오려무나.”

“발렌 님. 다치지 마세요.”

목적지는 상어의 고향 ‘케투시온’.

동부의 백상아리, 아세노르타 가문의 총본산이었다.

“가자!”

“전하! 오늘은 제가 이기겠습니다!”

“비행으로 나를 상대하려 하는가?”

케투시온까지는 와이번으로 한 달도 넘는 거리였지만, 나도 텐티아 경도 비행에 환장한 족속이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기사들이나 세레라지에, 마테오스 때문에 그리 마음 편하게 비행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자유였다.

“아하하하!”

“으하하하!”

몸이 공중에 붕 뜨는 수직 낙하.

“따라오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쫄리면 죽게나!”

태양을 향해 치솟아 올라가는 급상승.

“가보자고!”

“하아!”

그 자리에서 와이번을 180도 돌리는 외발 회전.

“최대한 뒤로 밀리지 않는 게 핵심입니다.”

“가만히 떠 있어야 하니.”

날개를 접으며 가속하는 돌개비행.

“이 맛에 와이번 타는 거지요!”

“나도네.”

돌개비행에서 회전을 넣어 더더욱 가속하는 회전돌개비행.

“짐 잘 묶었나?”

“예! 전하도 잘 묶으셨습니까?”

“그렇다네! 그럼, 가지!”

와이번의 몸체를 기울게 하고 지면을 향해 화살이나 마법을 발사하는 측면사격.

“오늘 저녁은 들소 고기를 먹도록 하지.”

“전하. 저거 들소가 아니라 목장 안에 있던 소인 듯합니다.”

“……물어줘야겠군.”

측면사격을 하기 위해 목표의 대각선으로 나아가는 선견 비행.

숨이 가빠질 정도의 높이에서 거센 바람을 타고 빠르게 나아가는 풍랑 방랑.

“정말로 숨이 가쁘군요.”

“무리하지는 말게. 이건 이탈하거나 급습할 때만 써야 하는 비행법이야.”

구름 속으로 숨어든 뒤 공중에서 위로 한 바퀴 돌아 상대의 뒤를 잡는 꼬리잡기까지.

나와 텐티아 경은 와이번 전투의 정수와도 같은 기술을 연마하고 또 연마했다.

그렇게 즐거운 하늘의 낮이 끝나면, 지리멸렬한 땅의 밤이 찾아왔다.

“손 들고 가진 것 다 내놓아라!”

“우리 형님이 누구인지 알아?”

“하하. 두 놈 다 아주 반반하게 생겼습니다. 남창에 환장하는 늙은이들에게 팔아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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