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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11)화 (311/340)

(311)

쪽빛 사제는 요새 쪽으로 올라가는 대신 왼쪽 굴로 쏙 들어갔고, 나 역시 놈을 쫓아 들어갔다.

그 굴은 그리 넓지 않았는데, 바닥에는 바닷물이 흥건했고, 벽에는 날카로운 따개비와 굴, 이상하리만큼 미끈거리는 해초가 가득 자라고 있었다.

철벅, 철벅.

방위상으로는 아퀼라를 죽인 공동과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기도 했다.

“헉, 헉!”

놈은 턱을 당기고 오랫동안 달리기 편한 자세로 달리고 있었다.

해적들과 달리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듯했다.

아마도 저놈은 이 지하에 몇 개의 출입구가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외쳤다.

“거기 서라!”

그리고 곧바로 불꽃을 피워올렸다.

“……그럴 리가 없지.”

서란다고 설 인간들만 세상에 가득하면 내가 이렇게 살 필요도 없었을 거다.

따라서 나는 불의 창을 던져 그가 조금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

화르르륵!

내 어깨 위에서 불꽃이 타올랐고, 길게 늘어나 창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놈의 등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액!

불로 이뤄진 촉이 놈의 로브를 불태우기 직전,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까아아아!”

츠츠츠츠!

허공에서 물로 된 방패가 나타나 통로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반투명한 방패 너머로 쪽빛 사제가 멀어지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펑!

불의 창이 허망하게 터지고, 벽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서 바다에 적응한 이물의 후예들이 기어 나왔다.

비늘로 감싸인 어인족 전사, 산호 지팡이를 든 주술사, 여기까지 용케 안 끼고 들어왔다고 생각될 만큼 거대한 부피의 농게 무사까지.

“시이이익!”

“솔레타라스!”

푹, 푸푹!

농게 무사가 여덟 다리를 벽과 바닥에 박으며 통로를 틀어막았고, 주술사가 농게 무사를 등지고 서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어인족 전사들이 작살과 칼을 빼 들고 달려왔다.

“카르르르!”

강철 같은 남색 비늘과 주먹만 한 눈, 예리한 이빨이 싸늘하게 빛났다.

내가 어디 가서 꿇리는 키가 아닌데도 나보다 한두 뼘은 큰 듯했다.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외쳤다.

“그 사제 놈이 어인족 공주라도 되느냐? 내가 꼭 그놈으로 맑은 국물을 우려먹겠다!”

왼손에는 송곳 같은 단검 ‘검은 비늘’을 역수로 쥐었고, 오른손에는 흑루 대신 마법검 폭풍을 쥐었다.

우우우웅!

손잡이만 있는 검에 마나를 불어 넣으니, 바람으로 된 칼날이 거세게 뿜어져 나와 90cm 정도 길이에서 안정되었다.

사아아아!

거기에 용언의 불길을 조심스레 더했다.

화르르륵!

주술 회로가 버텨 줄까 걱정이었는데, 내 제어력 덕인지 마도구의 성능 덕인지 다행히 잘 버텨 주었다.

어둠 속에서 불의 칼이 활활 타올랐다.

“키르르륵?!”

고기를 본 맹수처럼 달려오던 어인족 전사들이 함정을 알아챈 멧돼지처럼 흠칫하며 멈춰 섰다.

나는 쪽수와 무장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15마리, 작살과 칼, 이빨과 손발톱.

길이 워낙 좁아 다 피하는 건 불가능.

고위 마법 사용 시 굴의 붕괴 가능성 및 압사 가능성 및 어인족 주술사에게 디스펠이 들어와서 내 마나 회로가 박살 날 가능성이 있음.

이만하면 해볼 만하다.

“그럼 가볼까?”

“키에에엑!”

선두의 어인족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나는 불의 칼을 놈의 아가리 안으로 찔러 넣었다.

“하아!”

동시에 마나를 끌어 올리며 난전을 시작했다.

제국 검술 1단계, 일체개고.

카드드득!

마나가 근육 섬유 사이사이를 내달리며 촘촘하게 연결되고, 공명과 팽창을 반복했다.

제국 검술 2단계, 불망.

우우우웅!

마나가 신경을 자극하고, 피격 순간 몸에 새겨진 동작들로 반자동 반격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이 바다 쓰레기들아!”

첫 번째 어인족의 아가리로 찔러 넣은 불의 칼이 놈의 아가미를 뚫고 나왔다.

푸우욱!

난 그대로 놈을 방패 삼았고, 땅을 박차 놈을 밀어붙였다.

“하!”

놈의 등 뒤에서 다른 어인족들이 사정없이 작살을 내질렀다.

쑤욱!

작살 한 자루가 첫 번째 놈의 옆구리 사이로 튀어나와 내 아랫배를 정통으로 찔렀다.

예리한 촉이 배꼽 아래에 닿는 동시에 약간 뭉개졌다.

캉!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찢어진 제복이 다시 꿰매지는 동시에, 내 비늘이 지르르 울렸다.

신경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이- X발!”

나는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아가미 사이로 튀어나왔던 검을 휘둘렀다.

불의 검이 첫 번째 놈의 아가리를 찢는 동시에, 두 번째 놈의 눈을 파고들었다.

치이이익!

“끼에에엑!”

두 번째 놈이 비명을 토하고, 생선 익는 냄새가 굴 안에 퍼졌다.

쑤우욱! 쑤욱!

세 번째, 네 번째 작살이 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나는 불의 칼을 휘둘러 작살을 베고 쳐냈다.

바람의 마법검 폭풍에는 용언의 불길과 마나 블레이드가 함께 일렁였고, 평범한 작살을 수수깡처럼 부러트렸다.

카드드득!

그러나 어인족의 검은 주술이 새겨진 물건인지 한두 번 불꽃을 튀기며 버텨냈다.

나는 근거리에서 불꽃을 피워 올렸다.

퍼엉!

이는 공격이 아니라, 아주 잠시라도 눈을 가리기 위한 시도였다.

불길이 천장까지 치솟고, 통로를 메운 어인족 전사들이 일순 고개를 돌렸고, 난 그 틈을 타 벽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

“카르르륵!”

날 본 놈의 눈알을 걷어차 터뜨리고, 용의 비늘 사이를 파고드는 어인족의 칼에 신음하고, 초 근거리에서 불의 창을 터뜨리고, 작살을 비늘 두른 손아귀를 으스러트리고, 불의 칼로 일격에 두툼한 목을 날리고…….

“뚫었다!”

그렇게 어인족의 벽을 돌파한 순간, 거대한 물 덩어리가 날아왔다.

* * *

어인족 주술사가 저 앞에서 산호 지팡이를 휘둘렀다.

“숨 막혀 죽으라!”

허공에 내 머리보다 두세 배 큰 물방울들이 둥둥 떠 있었고, 그중 하나가 날아와 내 머리를 감쌌다.

첨벙

눈앞이 흐릿해지고, 육지에서 익사할 위기가 닥쳐왔다.

“커헉!”

꼬르르륵!

비늘 돋친 손으로 뜯어내려 했지만, 어지간히 오래 준비한 주문인지 내 마법 저항력으로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손으로 물방울을 긁어낼 때마다 축축한 바닷물 몇 방울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끄윽.”

난 비틀거리며 어인족 주술사를 향해 걸었고, 끝내 버티지 못하고 벽에 손을 짚었으며, 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인족 주술사가 허리춤에서 제사용 단검을 빼 들었다.

놈이 내 귀 아래를 찌르려던 순간, 난 놈의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다.

퍽!

“!”

놈이 안 그래도 큰 눈알이 빠질 듯 눈을 부릅떴고, 나는 단검을 빼앗아 그 눈에 찔러 넣었다.

푸우우욱!

머릿속으로 들어가 뇌를 헤집는 감촉이 생생했다.

어인족 주술사의 몸과 내 머리를 덮은 물방울이 동시에 허물어지고, 난 입에 물고 있던 ‘인어의 입맞춤’ 부적을 뱉어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아퀼라 새끼가 쓰던 건데…… 바닷물로 잘 씻었으니 문제없겠지.”

이제 남은 건 농게 무사 한 마리뿐이었다.

놈이 거품을 뿜으며 날 위협했다.

부그르르! 부그르르! 부그르르!

“더럽게 크네.”

놈은 덩치가 내 사두마차만 했고, 통로를 완전히 막고 있었으며, 장창만큼 길고 방패만큼 두꺼운 집게발을 앞으로 겨누고 있었다.

스으윽.

나는 불의 칼을 거두었고, 검은 비늘을 단단히 쥐었으며, 제자리에서 두어 번 뛰어오르며 몸을 풀었다.

타악!

“하아!”

땅을 박차자, 농게 무사의 거대한 집게발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부우우웅!

내 몸통보다 큰 집게발이 기사들의 철퇴처럼 날아왔다.

나는 온몸을 던져 그 집게발을 껴안았다.

“크윽!”

쾅!

끌어안기는 했지만, 멈추는 건 불가능했고, 난 따개비와 굴이 가득한 벽에 부딪혔다.

쩍!

“윽-!”

벽에 굵은 금이 가고, 돌덩이가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엄청난 충격에 일순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난 검은 비늘을 놈의 집게발 관절에 찔러 넣는 데 성공했다.

“……일단 팔은 잘랐고.”

검은 비늘은 수분을 조작하는 힘이 있는 단검이었다.

나는 혈마법을 운용하며 단숨에 검은 비늘을 뽑았다.

“핏빛 확산!”

많은 마나가 흘러나갔지만, 지금의 내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푸와아아악-!

집게발 관절에서 반투명한 체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짜고 비릿하고 걸쭉한 액체가 내 머리를 적시고, 나는 그 감각에 소치를 떨었다.

농게 무사가 기겁하고, 거대한 집게발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온몸의 피가 다 빨리지 않도록 중간을 끊어낸 것이었다.

이제 놈은 살아있는 방패일 뿐이었다.

화르르륵!

난 불의 칼을 빼 들었고, 많은 마나를 주입해서 칼날을 길게 뽑아냈다.

불길과 바람과 마나 블레이드가 섞인 칼날이 천장을 긁고 태우며 고약한 연기를 뿜었다.

“이제 됐지?”

“키르르륵!”

농게 무사가 거품을 뿜었다.

“버틸 만큼 버텼잖아!”

츠카아악!

농게 무사가 작은 집게를 뻗었고, 난 놈의 거대한 몸뚱이를 반으로 잘랐다.

* * *

“거기 서라!”

난 의적 따위가 나오는 소설의 삼류 경비병처럼 외치며 굴을 달렸다.

저 앞에 오른쪽 끝에 출구가 어렴풋이 보였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의적을 자칭하는 강도 놈들이 날뛰는데, 대부분은 1, 2년 뒤 도적으로 돌변하니, 다 조져야 했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 유스티아누스 놈의 병사들도 대부분…….

잡념이 떠오르는 걸 보니, 지금 상황이 망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보다.

거의 잡을 뻔했던 쪽빛 사제는 저 멀리 그림자만 어른거렸다.

미친 듯 달려 굴 밖으로 나갔다.

우르르릉!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쏴아아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휘오오오!

사람이 날아갈 듯한 바람이 불었다.

카리오사가 준비한 마법이 드디어 제 위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하.”

아직 밤에는 쌀쌀한 봄이다.

이 정도 비가 오면 내륙으로 숨어든 해적 패잔병들은 밤에 다 얼어 죽을 테고, 바다로 도망친 해적 패잔병들과 개척촌 사람들은 다 물에 빠져 죽을 테지.

“발자국이 다 사라졌네.”

그러나 지금 날 환장하게 하는 건, 쪽빛 사제의 발자국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철썩!

왼쪽은 2, 3m 정도 낙차가 있는 해안이었고, 오른쪽과 앞은 잡목이 가득한 거대한 언덕이었다.

철썩!

해안 쪽을 바라보니 미친 파도가 치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가 울부짖을 때마다 하얀 벽이 솟았고, 그 사이로 날카로운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쪽빛 사제 놈의 정체가 뭐든 간에 저 바다로 헤엄칠 수는 없을 터였다.

“방위상으로는 이 언덕 위가 도시 쪽인데…… 빙 돌아갈 생각인가?”

언덕을 샅샅이 훑고 있자니, 저 멀리 남색 로브가 보였다.

“내가 말했지! 산 채로 국을 끓어버리겠다고!”

나는 천둥소리에 묻히지 않을 만큼 큰 목소리로 외치며, 놈을 쫓아 언덕을 올랐다.

“!”

놈이 기겁하며 다리를 재촉했다.

푹, 푸욱!

비로 질척해진 언덕은 죽죽 미끄러졌고, 가시 난 관목은 잡기만 해도 뽑혀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쪽빛 사제보다는 내가 신체 능력이 좋았고,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앞으로 3분 안에 저놈을 잡아 다리를 뽑아 버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무렵, 언덕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이쪽입니다!”

“빌어먹을 기사가 오고 있습니다!”

“뛰어라! 뛰어!”

대화 내용을 들어 보니 해적 패잔병 같았다.

“웬 놈들이냐!”

그런데 그 수가 좀 많았다.

“바, 발렌시아누스다!”

“황족이라고?”

“이, 이렇게 된 이상 결사 항전이다! 잡아!”

언덕 위에 해적 패잔병이 바글바글했다.

적어도 500명은 되는 듯했다.

“쪽빛 사제도 있습니다.”

“그 새끼가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나와? 수상한 새끼. 일단 그놈도 잡아라!”

“다들 들었지? 저 둘을 잡아라!”

언덕 위에 바글바글하던 해적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1천 개의 눈동자와 꼬질꼬질한 얼굴이 우리를 향하는 모습은 썩 괴기했다.

쪽빛 사제와 난 동시에 기겁했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그 목소리가 의외로 맑아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 죽여라!”

“바다에 쓸어 넣어라!”

“발렌시아누스 대공 전하의 기사, 텐티아가 왔다!”

해적들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이진이 항복하자 텐티아 경이 요새 앞을 떠나 저들을 추격해온 듯했다.

“경!”

쏴아아아!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저 아래 바다는 사납게 울부짖었으며, 언덕은 질퍽하고 자꾸 미끄러졌다.

쪽빛 사제는 이제 몇 걸음 앞에 서 있고, 우리 둘을 잡으려는 해적 놈들이 언덕을 내려왔으며, 텐티아 경과 동부 기사들이 놈들의 등을 잡았다.

내가 쪽빛 사제만 확보하면, 이 혼란도 끝이었다.

아퀼라는 죽었고, 카리오사도 곧 남은 어인족을 해치울 것이다.

승리가 눈앞이다.

혼란에 찬 머리를 차가운 빗방울이 식혀 주는 가운데, 쪽빛 사제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다음 순간 쪽빛 사제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라-.”

난 그 맑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오늘 밤도 아주 길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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